백인들이 살고 있는 유럽.


유럽의 한복판인 오스트리아에서 나는 우리나라에서나 

느낄 법한 인정을 시시때때로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고!”


나라마다 문화와 언어는 다르지만,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어떤 이는 인색하고, 어떤 이는 너그럽고, 어떤 이는 마음이 따뜻하고

그런 사람들 중에 이번에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23일간의 와이너리 지역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잠시 사과를 사러 갔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남부인 Steiermark 슈타이어마르크(슈타이어막)주는 

유명한 상품이 2가지 있는데

하나는 아랍국가에서 대부분을 수입해 간다는 호박씨 오일.

또 하나는 바로 사과!

한국에서도 사과하면 떠오르는 지역이 몇 군데 있죠.

오스트리아도 슈타이어막하면 바로 사과가 나옵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당에서 

일을 하시는 시아버지께 여쭤봤습니다.


아빠, 올 때 호박씨 오일 사다 드리냐고 엄마한테 여쭤보세요.”


집안에 계신 엄마께 아빠가 호박씨 오일이야기를 하시니 

시어머니가 나오셔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올 때 사과도 좀 사다 다오!”


지금까지 우리가 슈타이어막에서 사과를 사온 적은 없었는데..


사실 슈퍼에서 파는 사과들의 생산지가 슈타이어막 이어서 

굳이 사과를 사올 필요는 없는데!


 

일단 엄마가 사과를 사다 달라고 하시니 여쭤봤습니다.


얼마나 사올까요? 5kg? 아님 더 사올까요?”

그냥 두어 개만 사다 다오!”


대놓고 몇 kg라고 말을 하시면 더 쉬운데.. 

절대 본심을 내놓으시지 않으시니 대충 내 맘대로 2~3kg로 결정!


호박씨 오일이야 아무 가게나 들어가면 살 수 있지만

사실 사과는 아무데서나 살 수는 없습니다.




슈타이어막까지 갔는데 2kg짜리 포장된 

슈퍼마켓 사과를 사다 드릴 수는 없고!


일반 슈퍼가 아닌 가게는 보통 저녁 6시면 문을 닫아버리니 

시간이 늦어버리면 사고 싶어서 사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죠.


23일간의 여행


그라츠에 사는 친구 집에서 하루를 더 머물면 조금 더 여유가 있었을 텐데.. 


혹시나 싶어서 침낭에 매트리스까지 챙겨갔지만 자기가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집에서 자는 것은 힘들겠다는 친구.


그래서 23일의 여정을 마치고 

저녁에 다시 린츠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


예상대로 일정은 오후5시가 넘은 시간에 끝이 났고

린츠로 돌아오는 길에 사과를 사야 하는데...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문을 연 가게를 찾아야 하는 상황!


시간이 늦어서 사과를 못 산다는 나의 독촉에 

남편이 뱉은 한마디.


걱정 마! 거기는 오후 8시까지 영업을 한데.”

 




일단 저녁까지 영업을 한다니 일단 그곳으로 가기로 했죠.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로, 달랑 주소 하나만 들고 

가는 길이라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엄마가 일부러 부탁을 하신 건데

농장까지 찾아갔는데 이미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사과가 우리가 생각한 품질이 아니면 어쩌나?


네비게이션에 주소만 치고 가는데..

 가는 길은 구불구불.


날씨까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굽이굽이 산길로만 달렸죠.


남편은 도대체 어떤 과수원을 찾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습니다.


날은 어둡고, 초행 길인데 길은 구불구불


운전하는 것도 버거운 남편이라 길만 보고 초집중하면 

마눌이 물어도 대답은 들을 수 없거든요.

 

단지 운전하고 가면서 남편은 이 한마디만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운전해서 가는데 사과가 형편없으면 안되는데..”





우리가 찾아간 곳은 내가 생각한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주소지에는 철문이 있고

그 안에서 사과 상자를 옮기시는 노부부


두분 다 너무 연로하셔서 두 분이 함께 드셔야 

사과 상자를 옮기실 수 있으셨죠.


아무리 봐도 가게는 안 보이지만

일단 철문 안의 두 분께 사과를 사러 왔노라고 하니 


철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들어가니 할매랑 사과 상자를 내리던 

작업을 하시던 할배가 우리를 사과가 있는 곳으로 안내 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남편과 대화 시작!


처음에는 할배가 일하시기 싫으셔서 그러시나? “했습니다.


트랙터에서 사과 상자를 할매랑 내리셨는데

할배가 이렇게 들어가 버리시면 할매 혼자는 작업이 불가능하거든요.


처음에는 밖에서 할매가 할배를 부르시는 소리가 몇 번 들렸지만

할배는 정말 안 들리시는 것인지, 아님 안 들리시는 척 하신 것인지 

남편과 계속 대화중!


처음 본 우리에게 당신이 파킨슨 병이라 손을 떤다고 하신 할배

그런 할배께 내 마누라가 요양원에 일한다.”고 한 남편.


처음 만난 과수원 주인과 사과 사러 온 손님인데

사과를 사고 파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화를 하시는 두 남자분!




할배는 남편에게 가게 옆에 딸린 사과를 구분하는 공간도 데리고 가서는 보여주시고

나오시면서 커다란 사과를 2개 가지고 오셨습니다.


가게 안의 사과를 보니 적당한 크기의 사과가 1등품이고

너무 큰 것들도 2등품으로 분류를 하던데..


할배가 주신 커다란 사과 2개를 저울에 

올리면 1kg는 나올만한 크기


이것이 2등품이라고 해도 돈 주고 사려면 1유로를 내야 하는데,


할배는 늦은 저녁에 사과를 사러 온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주신다고 

(파킨슨이라) 손을 떠시면서도 사과를 챙겨 오셨습니다.


아무리 사과가 많이 나는 과수원이라고 해도 

이렇게 큰 사과를 아무에게나 선물로 주지는 않을 텐데


할배는 남편이 맘에 들었던 것일까요?


할배가 너무 연로하시고 중얼거리듯이 말씀하셔서 

내가 알아듣기는 조금 힘든 독일어였지만


남편과는 끊임없이 대화를 하셨습니다.


남편이 내 마누라는 한국 사람이다.”했더니만 

북한의 독재자이야기를 하시는 할배!


보통 파킨슨은 치매로 이어지는데, 할배는 아직 정신도 또렷하시고

남편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셨는데 



남편도 할배가 박식하다고 하더라구요.


할배가 운영하시는 과수원에 딸린 가게는 

무인 가게여서 평소에는 사람이 없는데..


할배는 간만에 만난 사람에 좋으셨는지 

우리가 물건을 고를 시간도 안 주시고 


남편과 대화를 하셨죠.


할배는 남편이 대화를 오래 해 줘서 사과를 주신 건 아닙니다


사과는 우리가 가게 안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서 가지고 오셨었거든요.


우리가 과일을 얼마나 살지도 모르면서 

일단 선물로 챙겨 오신 사과 2


과일을 많이 산다고 주는 건 덤인데, 이건 덤도 아니고!


물론 우리가 사과를 조금 많이 사기는 했지만

럽의 문화가 많이 샀다고 깎아주거나 덤을 주는 문화는 아닙니다.


할배는 날씨도 어두워지는데 그 구석까지 

사과를 사러 온 관광객이 고마웠던 것일까요


아님 남편이 할배가 하시는 말씀을 들어드리고 

대화를 해 주니 답례를 하신 걸까요?


남편은 이곳에서 산 사과도 만족스럽고, 할배와의 대화도 좋았고

거기에 커다란 사과를 2개나 선물로 챙겨주신 

할배가 계신 이곳이 맘에 들었다고 합니다.



다음 번에 다시 그라츠로 가게 되면 다시 

또 이곳에 들려서 저렴하게 사과를 사올 거라고 하네요.


할배가 워낙 연로하셔서 우리가 내년에 가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계셨음 좋겠습니다.


그라츠에 사시는 분들은 추천 해 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최상품의 사과들이 kg1,50유로, 2등품이 kg1유로.


주스나 쨈등을 만들 용도라면 kg30센트/50센트짜리 사과도 있고

저렴하다고 해도 과수원에서 바로 딴 사과들이라 다 싱싱하다는 것!


인터넷에 찾아보니 사과뿐 아니라, 복숭아, 체리등 

다양한 과일들이 철마다 나오는 모양입니다.


다음 번에는 어떤 계절에 그라츠를 가던 이곳을 들리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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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오늘의 이야기 속 그 사과를 사던 현장입니다.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9. 00:00
  • 비엔나코피 2020.10.29 06:53 ADDR EDIT/DEL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자전거로 달리던 들판으로 남편과 간만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남편이 재택 근무를 하면서 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자전거를 타러 나가거나 친구랑 테니스를 치기도 했었는데..


며칠씩 비가 오면 그런 활동은 불가능.


보통 출 퇴근할 때는 퇴근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저녁 10시를 넘기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재택 근무를 하면서 남편이 자정까지 앉아서 일하는 날들이 늘어갑니다.


아침 8시경에 책상에 앉으면 자정까지 

그 자리 그래도 앉아서는 동료들과 인터넷 전화로 그룹 통화를 하기도 하고

거기서 고쳐야 할 부분은 수정을 해서 또 통화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니 

남편의 건강이 걱정스러운 지경.


나야 근무를 하면 하루 10시간을 하루 종일 움직이고 다니니 운동량 충분하고!


집에 있는 날도 2층의 주방에서 1층의 남편에게 간식이나 점심을 갖다 나르고

장 보러 가기도 하는 등, 최소한의 활동은 하고 있지만 ...


며칠 씩 하루 종일 앉아만 있는 남편이 걱정되어 내가 제한한 것은 산책!




마당에 내놓은 홈트레이너 자전거를 30분 정도 타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비가 오는 날은 지붕 있는 마당에 앉아서 홈트레이너 자전거를 30분 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또 운동량도 걷는 것보다는 더 될 테니 좋겠지만!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는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상쾌한 가을 바람이죠


그래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운동량 보다는 

온몸 운동에 좋은 산책을 제한했습니다.


남편의 성격상 마눌이 뭐 하잔다고 한 번에 OK하는 성격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쇠뇌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남편, 하루에 1시간 정도 산책을 가자.”

?”

당신 하루 종일 앉아만 있잖아. 그러니 운동을 해야지.”

그럼 밖에서 자전거 타면 되잖아.”

그건 비 오는 날 하고, 비가 안 오면 저녁에 나랑 산책 가자.”

“……”


그렇게 며칠 남편과 비슷한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 말미의 남편의 말은 항상 같았죠.


그럼 내일 하자.”



평소 같으면 이 말에 버력 화를 냈을 겁니다.


남자가 왜 그러니? 한번 뱉은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기다렸습니다


재택 근무를 하면서 남편이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 퇴근을 했다면 자정까지 일한 것에 대한 수당을 받겠지만

재택 근무에서는 자정까지 일해도 나오는 수당이 없습니다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자정까지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죠.


오죽했으면 자정까지 일을 할까 하는 마음에 산책을 가자고 제안은 했지만

남편이 나설 때까지 그냥 제안을 하고 기다렸습니다.


운동량의 부족은 나보다 본인이 더 잘 알 테니 말이죠.





그렇게 산책 가자를 며칠 했더니만 

남편이 드디어 산책을 나섰습니다.


날씨가 어둑해질 무렵에 평소에는 자전거로만 달렸던 길을 걸었죠

간만에 가을 바람을 코끝으로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간만에 나가는 들판이라 액션캠을 가지고 갈까 했었지만

이미 어둑해지는 시간이어서 다음 번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그저 걸으면서 가을도 느끼고, 또 바람도 느끼고!


홈트레이너에 앉아서 미친듯이 자전거를 타는 것 보다야 

운동량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걷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온몸 운동이죠.


그렇게 남편과 들판을 걸으면서도 쇠뇌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밖에 나오니까 좋지? 우리 내일부터 매일 한 시간씩 걷자!”


물론 비가 오는 날은 밖으로 못 나올 수도 있겠지만


비가 와도 우비를 입거나 우선을 챙겨 들고 

걸을 수는 있으니 일단 쇠뇌 교육은 진행중~


간 만에 나온 들판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자전거 타고 달릴 때 봤었던 대마초 밭은 대마초는 얼마나 더 자라는지 보고 싶었는데

간만에 가본 들판에 대마초는 흔적이 없어진 상태.


호박 밭에 추수를 다 끝내서 밭 언저리에 다 문드러진 호박 하나가 

그곳이 호박 밭이었음을 알려줬죠.



여기서 잠깐!

오스트리아의 특산물 중에 호박씨 오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이 오일이 

남성들의 전립선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죠.

오스트리아에서 심은 호박은 호박씨 오일 용이라 

밭에서 호박의 씨만 추출합니다


그래서 가을의 호박 밭을 보면 호박들만 고랑을 따라서 따 놨다가 

기계가 지나가면서 호박씨만 추출하고 호박들은 다시 밭에 다 버려버리죠.

아까운 호박들을 왜 버리나 싶지만


필요한 것은 씨뿐이라 나머지 호박들은 다 으깨서 

밭의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가끔 추수가 끝난 밭 언저리에 멀쩡한 (쪼맨한) 호박들이 있는 경우도 있죠


그런 것을 만나며 주어와야지..했었는데 

아직까지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을 들판에는 생각보다 주어올만한 것들이 꽤 있었죠.^^




이런 걸 주어올 줄 알았다면 비닐 봉투나 장바구니를 하나 가지고 갈 것을..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라 두 손만 채웠습니다.^^


추수가 끝난 옥수수 밭을 지나면서 주운 것은 작은 옥수수

유럽의 들판에서 보는 옥수수는 사람 용이 아니라 사료 용이죠.


그래서 옥수수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기계가 지나가면서 옥수수를 통째로 갈아버리죠


기계가 뱉어낸 것인지 아예 기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옥수수가 보여서 주어 왔습니다.


꾸미는 것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는 아낙이지만

남편이 자연에서 주어 오는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 가을용 데코로 챙겼죠.^^


그리고 배나무 아래를 지나칠 때는 나무 아래 떨어진 배를 주었습니다


밭 옆으로 난 길가에 서있던 커다란 배나무는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 

그냥 야생 배처럼 작은 크기죠.


떨어진 것 중에 멀쩡한 것으로 2개만 주었습니다

달랑 손이 2개라 더 주어 올 수도 없었죠.


그렇게 걷다가 만나게 된 것은 추수가 끝난 사탕무 밭 언저리에서 뒹굴던 사탕무.


내 눈에는 순무로 보이지만 

이곳의 들판에서 흔하게 보는 것이 바로 사탕무


사탕수수는 들어봤어도 사탕무는 처음이라 나에게는 신기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많이 심는 작물인 모양입니다.


어떻게 무에서 설탕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어봤었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남편인 데도 저는 매번 묻습니다.^^


사탕무를 끓여서 설탕을 추출할 걸?”


어쨌거나 몰라가 아닌 대답이라 만족^^





남편은 사탕 무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순무처럼 보여서 일단 챙겼습니다

이것을 맛보면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순무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죠.^^


산책하면서 마눌이 이런 것을 주울 때 남편은 구경만 합니다.


옥수수는 데코용으로 주웠고

야생 배는 당근 먹으려고! 사탕 무인지 순무인지는 궁금해서 챙겼습니다

정말로 설탕을 추출할 정도로 단맛이 나는지도 봐야죠.^^


산책하는 1시간동안 주운 것은 세가지 종류지만 

눈에 띈 것은 더 많았답니다.


밭은 놀릴 목적인지 아님 사료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끼풀 같은 것이 자라는 곳도 많은데 거기서 내가 본 것은 무청.


무청이 눈에 밟힌다고 남의 밭을 마구 들어가면 안되죠


하얀 꽃, 노란 꽃이 달린 무청들을 보면서 

저거 갖다가 말리면 시래기로 왔다인데 하면서 아쉬워했는데


비포장 도로 옆의 밭 언저리까지 나와서 자라고 있는 무도 봤습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 밭에서 날아온 씨앗인 듯 한데

무가 자라는 언저리의 밭은 추수가 다 끝난 허허벌판이라 

이곳의 무청은 잘라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간만의 산책에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고 나니 

더 자주 나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죠.


집에서 가까운 가을 들판이라고 해도 혼자 나다니는 건 

남편도 별로 권하지 않고, 나 또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죠.


허허벌판에서 뭔 일이 일어나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도 있고

또 숲을 지나가는 것도 별로 안전하지도 않고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들판 길 산책.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추수가 끝난 밭 언저리에서 사탕무 3형제를 만났습니다


내 손에는 이미 사탕무랑 옥수수 

그리고 배까지 2개라 더 이상 주어 갈 수가 없는디..


남편에게 배와 옥수수를 주면서 들고 있어봐!”


그리곤 사탕무를 하나 더 주어서 두 손에 하 나씩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잠깐 들고 있으라고 하는 줄 알고 들었던 남편은 

옥수수와 배를 집까지 군소리 없이 배달했죠.^^



주어온 사탕 무 2개는 처마 밑에 잘 모셔 놨습니다


3일 연달아 근무하는 중이라 시간도 없어서 

근무가 없는 날 사탕무를 분해해볼 생각입니다.


사탕 무는 도대체 어떤 맛이 나는지

내 눈에는 순무로 보였는데 정말로 순무가 맞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깍두기나 무 피클로 만들어볼 예정입니다.


근무가 없는 날 남편과 하게 될 

들판 산책에 은근 기대가 됩니다.


장바구니를 가져갈지

아님 작은 배낭을 메고 산책을 나설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무청을 베어 올 수 있게 작은 칼 하나는 챙길 예정입니다.

정말 신나는 가을이고, 기대되는 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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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오늘 산책 같은 들판 영상입니다.


생각 해 보니 전기자전거 테스트로 달렸던 들판이 

올해 마지막 달렸던 들판이었네요.^^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7. 00:00
  •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까 2020.10.27 10:20 신고 ADDR EDIT/DEL REPLY

    사탕무.? 본적 먹어본 적 없어서 궁금합니다.

  • Favicon of https://maru1217.tistory.com BlogIcon 핑크 봉봉 2020.10.27 13:26 신고 ADDR EDIT/DEL REPLY

    뭔가 수확한다는 것은 정말 기쁠것 같아요 ^^

  • 호호맘 2020.10.27 15:25 ADDR EDIT/DEL REPLY

    안그래도 지금쯤에 호두 주워 모은얘기 밤 주운 애기가 있어야 또 가을이
    오고 있구나 할텐데 지니님 드디어 많은것을 채집 하셨군요.
    남편분도 이제 들판 채집에 잔소리 안하시는걸 보니 그동안 지니님한테 많이 보고 배운게
    효과가 있나 봅니다 ㅎ ㅎ
    엊그제 주말엔 지니님 지난 뉴질랜드 이야기를 들어가 몇편 읽었더랬습니다.
    조개를 줍고, 홍합을 따서 요리를 하고 . 무서운 파도 이야기 . 눈부셨던 조개 껍질 해변 .
    잡은날 저녁으로 구워 드셨던 파란 물고기.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던
    해변들 이야기에 한참 빠져 있더랬습니다.


    .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7 17:14 신고 EDIT/DEL

      뉴질랜드의 북섬 끝에 가셨었군요.^^ 우리가 다시 뉴질랜드에 가면 다시 가고 싶은 곳중에 한 곳입니다. 지난 8월에 비행기가 캔슬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뉴질랜드의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냈지 싶은데요.^^

      짧게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곳이지만, 뉴질랜드에 가면 내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중 열손가락 안에 우선순위에 드는 곳이랍니다. 호호맘님도 그곳의 풍경을 보시면서 힐링하셨길 바래요.^^



얼마 전에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사실 친구라고 해도 그녀를 만난 시간보다 

만나지 못한 시간이 더 길었죠.


내가 그라츠를 떠난 것이 2012년이니 

그때 이후로 보질 못 했었네요


내가 오스트리아로 다시 돌아온 것이2014


우리는 린츠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그녀의 소식은 

페이스북으로 접하고, 가끔 문자나 전화 정도만 했었죠.


어떻게 보면 타인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구” 라고 우길 수 있는 건

내가 그녀의 사정을 남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정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남편 이야기나

자기 형제들 이야기와 엄마 이야기


들어도 좋은 이야기 보다는 네 엄마는 왜 그러시니?” 

혹은 네 동생은 쫌 너무 한 거 같다.”


조금은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아무에게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친구 기능이니 나는 그녀에게 친구가 맞았던 거 같습니다.




뜻밖에 접한 그녀의 사망 소식


그리고 불행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무거웠고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한 내 친구, 죽을 때까지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만 하다가 간 것은 아닌지..”


다음날 또 근무가 있어서 일찍 자겠다고 마눌이 침대에 누었는데..

울고 있으니 남편이 마눌의 머리를 쓰담쓰담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지만


남편은 천냥 대신에 (마눌에게

천대를 맞을 수 있는 언변의 소유자.


말로는 마눌에게 절대 위안을 못 주는 걸 아는 

남편이 선택한 방법은 그냥 조용히 마눌을 쓰다듬어 주기.


내 친구가 죽었다는 말을 하니 남편도 조금은 놀란 듯 했었죠


남편이 내 친구를 만난 적은 없지만

마눌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던 친구.


그녀의 불행했던 결혼과 남편의 양아버지 24시간 간병일

그리고 대장암과 나중에 전이된 암들까지


(마눌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던) 친구가 죽었다고 하니 

마눌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죠.




남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마눌이 우울입니다


마눌이 말을 안 하기 시작하면 눈에 띄게 

어색한 눈빛과 행동으로 마눌의 눈치를 살피는데..


남편이 바로 그 행동을 하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서 우는 마눌의 머리를 쓰담 쓰담하면서 

남편은 최선을 다해서 온몸으로 마눌을 위로 했습니다.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볼을 쓰다듬고

마눌이 눈물을 멈추고 이제는 잠자려고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니 


이번에는 마눌의 손을 꼭 잡아 줍니다.


평소에는 마눌이 손 잡자고 해도 마눌 손을 냅다 갖다 버리는 인간형인데

마눌이 남편의 손이 귀찮다고 저리 치우라고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마눌의 손을 잡아줍니다.


저는 그렇게 그날 저녁에 남편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남편은 왕 친절 모드”.


그녀의 장례식은 근무가 있어서 못 가지만

그 다음날 그녀의 유해를 모신다는 그녀의 집에 가고 싶다는 뜻을 비추니 


처음에는 안 된다 고 결사 반대하더니만 

나중에는 당신이 가고 싶으면 같이 가 줄게!”로 많이 양보했습니다.




남편이 가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밖에 나가는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도 이왕이면 안 가면 좋은 시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던 거죠.


남편 딴에는 마눌의 건강을 생각해서 완강하게 반대를 했었는데.. 

나중에는 내가 원하면 자신이 그라츠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라츠까지 왕복하면 4~5시간이 걸리는 거리


재택 근무로 일을 해야 하는 남편이 

하루 휴무를 내고 마눌을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거죠.


장례식은 중계 영상으로 이미 봤고

그 다음날 유해가 모신 집까지 찾아가 봤자


나는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나라 사람들만 있을 테니 

남편까지 고생 시키고 싶지 않아서 안 가기로 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마음속으로 떠나는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고

이런 내 마음이 친구에게도 전해졌다고 믿기로 했죠.


그리고 친구의 죽음으로 삶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지..”에 대한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느라 며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근무를 하는 날은 근무를 가서 평상시처럼 행동했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의 죽음이나 

내 기분을 알릴 필요는 없으니 그저 근무만 열심히!


어르신들 사이에서 많이 웃고, 

평소처럼 유쾌한 직원으로 하루를!


마눌의 우울 모드가 며칠 진행되니 

남편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합니다


평소에는 마눌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틈만 나면 마눌 머리 끝에 올라가서 대장 노릇을 하려는 남편이 


마눌이 우울한 며칠 동안 

납작 엎드려서는 마눌의 눈치를 봅니다.


평소에 큰소리 치고,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하려는 독재자 모드의 남편이 

갑자기 비굴 모드로 전환하니 내가 보기도 애처러운 상황.


틈만 나면 마눌 옆에 와서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고, 머리에도 뽀뽀를 하고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애정 표현이 총 출동했습니다.



그리곤 마눌이 말을 할 수 있게 자리를 깔기 시작했죠.


남미 출신 아낙M이 친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친구의 마지막 상황을 알거 같다


하니 하니 빨리 M에게 연락을 해 보라도 재촉도 하고!


M과의 오랜 시간 통화를 하고 나니 얼른 쫓아와서는 

친구의 마지막은 어땠는지 물어 봐주고!


친구의 남편은 전과 변함없이 자기는 

양아버지네 집에서 24시간 간병인과 함께 살았고


친구는 혼자 남편의 집에서 살았었다는 

이야기에는 혀를 차기도 하고!


이 부분에서 남편에게 쐐기를 박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같이 결혼 때문에 집에서 멀리 나와있는 사람들은 남편이 가족의 전부야

남편이 잘해야 시댁 식구도 예쁘게 보이는 거지


남편은 개떡 같은데 시부모님이 잘해줘 봐야 

그건 10~20%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러니 남편이 잘해야 하는 거지.”

알지


남편이 정말 뭘 알아서 안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눌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고



또 마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위로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요 며칠 시간 날 때마다 남편은 말없이 마눌의 머리를

뺨을 쓰다듬어 주고, 손도 잡아주고, 안아 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무언의 위로를 했으니 말이죠.


친구는 외롭게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떠났으니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운 마음은 담아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내 눈치 보느라 가재미 눈이 되어가고 있는 남편에게도 

다시 살기 발랄한 마눌을 보여줘야 할 거 같습니다


남편이 다시 마눌 머리 끝에 

올라앉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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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5. 00:00
  • 지니님매력에푹빠진 2020.10.25 07:55 ADDR EDIT/DEL REPLY

    마눌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현명한 남편이십니다
    이젠 지니님이 아무리 남편 흉을 봐도 그의 지니님 사랑을 절대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 호호맘 2020.10.25 08:41 ADDR EDIT/DEL REPLY

    지니님 남편분 은근 귀여우세요ㅎㅎ
    타인을 위로하거나 마음을 달래주는 방법을 세련되게 하지는 못 하지만
    마누라 마음이 아플까봐 전전긍긍하고 계시는 그 모습이 남편의 진심아니겠어요.
    지니님이 먼 타국에서 기대고 살아갈 유일한 버팀목인 남편인데 이제 그만
    친구분 상실감을 털고 두분이 행복한 일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갈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겠어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3 신고 EDIT/DEL

      네. 마눌이 집에 있으면 근무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궁시렁 대고, 마눌이 근무하고 퇴근해서는 "근무를 더 할까?" 하면 됐다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죠. 매번 이야기가 달라지는 남편입니다. ㅋㅋㅋㅋ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25 18:48 신고 ADDR EDIT/DEL REPLY

    남편분의 마음도 알거 같습니다!
    자신은 없는데 남편분은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니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독단적인 면은 저도 있고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6 신고 EDIT/DEL

      마눌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어르고, 빰치고 하는 능력이 탁월하기는 한데, 마눌의 기분을 우울하면 눈에 띄게 반응하는 남편을 보면 말씀대로 마눌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거 같아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6 신고 EDIT/DEL

      마눌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어르고, 빰치고 하는 능력이 탁월하기는 한데, 마눌의 기분을 우울하면 눈에 띄게 반응하는 남편을 보면 말씀대로 마눌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거 같아요.^^



나는 13녀중 셋째 딸

위로 언니가 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죠.


, 아래로 형제가 있는 중간 아이지만

실제로 저는 막내처럼 자랐습니다.


청소년기 엄마랑 떨어져 살 때는 

두 언니가 엄마처럼 나를 돌봐 줬고


심지어 청소년이 된 동생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때를 밀어줄 정도로 

저에게 두 언니는 엄마 같은 존재였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남동생한테 애교를 떠는 누나입니다

마치 오빠한테 애교 떠는 여동생처럼 말이죠.


부모는 똑 같은 사랑을 준다고 하지만 

아이들의 느끼는 부모의 사랑은 제각각이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 형제로부터 여러 종류의 상처를 받는 다죠?


맏이는 맏이어서 부모의 기대를 져버리면 안될 거 같은 책임감에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하는 건 덤으로 해야 하는 일이죠.


둘째는 맏이에게 쏠려있는 부모의 사랑을 자기에게 돌리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을 테고,


막내는 또 막내 대로 부모에게 받는 사랑과는 별개로 

형제 사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겠죠.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서론이 기냐구요?


이론 상으로는 

위로 언니 둘에, 아래로 남동생 하나를 둔 나도 마음속에 받은 상처투성이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상처 하나 받지 않고 살았습니다.


엄마를 떠나 있어야 했던 청소년기에 

엄마 대신에 나를 돌봐야 했던 언니들에게는 스트레스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막내처럼 언니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살았죠.


내 위로 두 언니는 연년생입니다.


모든 연년생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큰 언니가 둘째 언니보다 작습니다


둘째 언니가 우리 집에서 키도 크고, 예쁘고 눈에 띄는 존재였죠.


그런 둘째 언니를 아빠는 아주 예뻐라 하셨고

인텔리라는 애칭으로 부르시곤 하셨죠.


똑똑 하기로 따지면 큰 언니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더 똑똑했는데..


셋째 딸이지만 예쁘지도 않은 나에게 나에게 아빠가 자주 하셨던 말씀은..


우리 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을 누가 그랬어?”




어릴 때 집에서 별로 존재감 없는 중간에 낀 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빠의 이 말은 내 존재를 보기도 아까운 우리 집 셋째 딸로 만들어 주곤 했죠.


엄마한테 혼나서 훌쩍이며 울다가 아빠가 이 말을 하시면

 대성 통곡을 하면서 울어 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의 막내처럼 항상 언니들에게 받고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내 기준에서 내가 줄 사람은 남동생뿐이죠.


언니들에게는 항상 받았으니 언니들은 나에게 주는 존재 들이고

내가 줄 사람은 내 아래로 있는 남동생이라 생각했었죠.


언니들도 가끔은 위로가 필요하고

가끔은 동생에게 받고 싶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니들은 내 손윗사람이니 말이죠.


내리 사랑이라고 하니 언니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는 언니들에게 받은 사랑을 동생에게 주는 거라 생각했었죠.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이 그동안 내 생각 너머에 있던 

큰 언니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는 그동안 이해 못 한 큰 언니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맏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큰 언니는 맏이로서의 살아야 했던 치열한 삶이 있었고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나 봅니다.


큰 언니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을 세월이 지나서 만나게 됐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합창단을 지휘하셨던 분이었는데


이미 중년이 된 언니를 만나서 그분이 하신 말씀은 

언니의 기억에도 없는 추억이었다고 합니다.

합창단 연습을 하고 있으면 네가 수줍게 손을 들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저 동생들 밥 해줘서 지금 가야 해요.” 했었어.”


10살짜리 여자아이가 집에 밥을 하러 가야 한다니.. 

내가 10살때는 철부지였는데.. 


큰 언니는 이미 10살 때 장사 나간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들 밥을 챙겨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살았었네요.



유튜브에서 캡처


할 일을 정해주고 나간 부모를 대신해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10살짜리 맏이


동생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자기 밥은 먹지 못하고, 

아이들이 밥을 먹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맏이.


간식을 먹으라고 정해진 시간에 

혹시라도 늦을 까봐 시계를 보고 또 보던 맏이.


부모가 없는 시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동생들이 사고 치면 거기에 대한 사고 수습까지 하는 너무 대견한 10살짜리 맏이.


자신이 한일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었는데

칭찬보다는 질책을 받아야 했던 맏이


동생들이 잘못한 것도 다 몰아서 혼나야 했던 맏이.


성격이 별났던 울 엄마도 큰 언니가 집에 없을 때 

일어난 일로도 큰 언니를 잡으셨죠.


우리 집에서 제일 수다스럽고 말로는 절대 안 지는 셋째 딸.


엄마 말에 꼬박꼬박 말대답을 해서는 

하루 종일 엄마를 약 올려놓으면.. 


그 화를 저녁에 퇴근한 큰 언니에게 쏟아 부어서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큰 언니는 

뜬금없는 날벼락을 맞기도 했었죠.^^;


사실 저도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화내는 엄마가 하시는 말씀에 조목조목 따져서 대답을 하다 보니 

그것이 엄마를 더 열 받게 했던 거죠. ㅠㅠ

 



부모에게도 형제들에게도 인정보다는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인식에 

칭찬보다는 질책과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맏이.


나보다는 가족을 더 챙기느라 

자신이 원하는 건 마음속 저 깊이 감춰둔다는 맏이.


큰 언니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 봐주고 

챙겨준 사람이 없어서 더 외로웠나봅니다


평생을 함께 한 동생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맏이로 살아야 했던 큰언니.

내가 맏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던 큰언니.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싶었지만

여전히 동생들을 돌보고 보듬어야 했던 큰 언니.


중년이 된 지금에야 10살에 동생들 밥을 해줘야 했던 

큰 언니의 그 작은 어깨를 생각합니다.


큰 언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당신의 그 힘든 삶을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베풀기만 강요 받았던 맏이로서의 삶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그 맘 이해합니다


누군가 함께 짊어질 수도 없는 맏이로 

치열하게 살아준 그 세월에 박수를 보냅니다.


세상의 모든 맏이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동생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수고와 어려움

스트레스를 나이 들어 이제야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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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으로 힐링하세요.^^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15. 00:00
  • Favicon of https://ownerlife.tistory.com BlogIcon 다잡이 2020.10.15 00:18 신고 ADDR EDIT/DEL REPLY

    큰언니도 마냥 고생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거에요 ㅎㅎ 같이의 가치가 크니까요!

  •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까 2020.10.15 00:26 신고 ADDR EDIT/DEL REPLY

    우리집 맏이는 지금도 그래요. 부모님 모시고 동생 챙겨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5 05:36 신고 EDIT/DEL

      그것이 맏이의 숙명인거 같은데, 그래도 "네가 맏이여서 든든하고 고맙다."같은 소리를 들으면 더 힘이나고 행복할거 같아요.^^

  • Favicon of https://moonchina.tistory.com BlogIcon 월량선생 2020.10.15 01:52 신고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저도 맏이이고, 제 와이프도 맏이라...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5 05:37 신고 EDIT/DEL

      다른 형제들은 모를 맏이만의 마음인데, 두분이 다 맏이시라니 그 맘을 이해하시니 관계가 더 좋을거 같아요.^^

  • 초콜렛 2020.10.15 05:23 ADDR EDIT/DEL REPLY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밥하고 가끔 도시락도 싸야 했지요. 놀러가도 싶어도 집안일 등으로 마음 편히 친구들과 수다를 떨 시간도 없었던 제 학창시절이 생각납니다. 잡채를 좋아했던 동생들을 위해 요리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동생은 능숙하게 잡채를 하고 있는 저를 보며 그랬냐고 생각이 안나다고 하네요~ 원래부터 잘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ㅎㅎㅎ 큰 언니처럼 칭찬 한 번 받아보지 못했고 비슷하게 자랐는데 오늘 위로가 되었네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5 05:40 신고 EDIT/DEL

      친구들 놀러 다닐때 집에 가서 동생들을 챙기는 것이 가장 힘들 거 같아요. 그때는 마냥 놀고 싶은 때인데 맏이라는 중책을 어깨에 매고 살아아 했던 순간들. 초코렛님이 동생들을 위해 희생한 시간이 있었기에 동생들의 오늘이 있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당신은 멋진 맏이셨네요.^^

  • Favicon of https://janiceshin86.tistory.com BlogIcon jshin86 2020.10.15 06:16 신고 ADDR EDIT/DEL REPLY

    저도 맏이에요.
    맏이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정말 크게 느껴졌던적이 있네요.

  • 2020.10.15 09:11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위슬러79 2020.10.15 13:39 ADDR EDIT/DEL REPLY

    알아주는 동생이 있다는것만으로도 감사할거 같습니다. 아마 언니분이 이글을 보시면 마음이 따스해지실거 같아요^^

  • 2020.10.16 10:07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9 04:32 신고 EDIT/DEL

      셋째딸은 보여주면 아무도 안 데려가려 해서 선 안보이고 시집 보낸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런 말을 어릴 때 들었다면 엄청 슬펐을거 같아요.^^;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16 10:07 신고 ADDR EDIT/DEL REPLY

    맏이!
    하는 일은 없어도 책임감을 느끼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 2020.10.17 13:11 ADDR EDIT/DEL REPLY

    ㅋ 나는 예전부터 지니님의 내리사랑론이 너무 싫었슴.
    살아보면 알거임. 맏이라고 회사에시 월급 더 주는거 아니고 생활비도 다 똑같이 드는데 동생은 꼭 무슨 당연히 받아가도 되는 권리 있는냥ㅋ
    살아보세요. 내돈 아까우면 언니돈도 아까운 거임.
    지금 50인데 이제야 깨닫다니 시간은 뭘 했을꼬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9 04:41 신고 EDIT/DEL

      예전부터 저의 내리사랑론이 싫다고 하시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ㅂ님은 저를 잘 아시나요? 50된 지금도 제가 유튜브의 그 채널을 못 봤다면 맏이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은 절대 몰랐겠지요. 저는 셋째딸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말이죠. 맏이라고 회사에서 월급 더 주지도 않는 것도 알고, 맏이라고 해서 언니한테 돈 달라고 돈 벌린 적도 없습니다. 내글을 @ㅂ님 마음대로 해석하신 듯 하네요.

  • 제시카 2020.10.19 20:28 ADDR EDIT/DEL REPLY

    언니맘 알아주는 동생때문에 그래도 응어리가 풀리시지 않을까요? 저같은 민폐형 맏이는 부끄럽네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0 21:47 신고 EDIT/DEL

      솔직히 평생 맏이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모를 일이었죠. 제가 그 유튜브 방송을 보지 않았더라면..저는 죽을 때까지 몰랐을 맏이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저는 주 20시간 근무하는 시간제 직원이라 한 달에 8일 정도만 

일을 하러 가서는 하루 종일, 일만 하다가 와서 그런지..


동료들과 끈끈한 그런 정은 없습니다.


근무하는 날 가서 내가 할 일을 찾아다니고

근무 시간에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어 대도 

가끔은 그들의 사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 남의 뒷담화를 할 시간에 어르신들이 계신 방을 한번 더 돌아보거나 

아님 정원으로 모시고 가죠.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험담이 오가는 법이고

 

내 직장도 당연히 있는 일이죠.


내가 그런 소문이랑 조금 거리가 있는 이유는 

나는 근무시간 외에는 직원들과 접촉하는 일이 없습니다


밖에서 만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도 떨어야 이런저런 직장내 소문을 알겠지만

나야 그런 일과는 거리가 있었죠.



굳이 이유를 대라면 ..

나는 근무하는 날 외에는 집에서도 엄청 바쁜 사람입니다.


블로거이니 글을 써야 하고, 구독자는 아직 천 명도 안되지만..

올린 영상의 수는 이미 400개가 다 되어가는 이제 2년차를 바라보는 유투버입니다.


아시는 분만 아시겠지만..


 영상 편집이라는 것이 시간이 엄청 걸리고

눈도 빠질 거 같이 아픈 작업의 연속이죠.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글 쓰는 시간이 엄청 부족해졌죠.^^;


영상과 글 말고도 내가 집에서 바쁜 이유는 

바로 남편 때문이죠.


남편은 지난 3월 이후로 내내 재택 근무중

내가 밥을 해줘야 하는 삼식이로 지내고 있죠.


오전 10시에는 과일 간식을, 정오 무렵에는 점심을 챙겨줘야 하고

저녁은 알아서 먹을 때도 있고, 마눌에게 달라고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죠.


이런저런 이유로 엄청 바쁜 사생활이고

출근을 해서도 하루 종일 발을 동동거리면서 10시간 근무를 합니다.



간만에 출근을 했는데, 그날 함께 근무한 간호사 C가 하는 말!


내가 그만둔다, 그만둬!”


이런 말은 농담이라도 하는 말이 아닌데.. 

동료의 말에 내가 더 놀랐습니다


뭐가 어쨌길레 그만둔다는 이야기인지..

 

그 말을 한 간호사는 그날 간병을 하는 근무가 주어졌었죠.


원래 간호사가 하는 일은 하루 3번 어르신들께 약을 나눠주고

서류를 작성하고, 상처를 소독하고 새로 붕대를 감아주고


어르신들의 가정의가 진료를 오면 따라다니면서 증상을 설명하고 

의사의 소견을 들으면서어르신들에 대한 서류를 작성하는 일을 합니다.


한마디로 몸은 편한 일이라는 이야기죠.


원래 간호사들은 어르신들을 씻겨드리는 간병은 하지 않지만

가끔 간병” 으로 근무가 배정될 때도 있습니다


요양 보호사가 간호사에 비해서 부족하니 간호사들에게 간병 근무를 주지만 

편하게 일하던 간호사에게는 힘든 근무라고 할 수 있죠.






실제도 우리 병동의 간호사중 몇몇은 요양 보호사로 근무를 시작했다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 2년간의 직업 교육을 받아서 간호사가 된 경우죠.


요양 보호사로 2년 정도 근무를 해보니 내 몸이 못 견디겠더라

그래서 직업 교육을 받고 간호사로 갈아탔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결정이야!”


요양보호사 출신의 간호사들은 다 이렇게 말을 하죠


나에게도 직업 교육을 더 받아서 간호사가 되라고 하지만

외국인인 나에게는 요양보호사 과정도 절대 쉽지 않았던 터라,

 

간호사까지는 꿈꾸지 않고 있습니다.^^


모르죠, 내가 지금 30대라면 2년정도 투자해서 

간호사 과정을 하려는 시도를 했었을지도..


하지만 나는 이미 50대이니 거기까지는 안 가기로 했습니다.^^;


간호사가 간병을 하는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는 것이 힘이든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그만 둔다! 그만 둬!”

해서 내가 당황을 했었죠.


다른 동료에게 “C가 간병이 힘든지 그만둔다고 하네.”했더니 동료의 말!


“C는 지난 3월부터 내내 그 말을 달고 살아. 맨날 그만 둔다고!”


지난 3월이라면 C3년간의 간호사 직업 교육을 마치고 

우리 요양원에 정식 직원이 되어 근무를 시작한 시기인데




입사 초기부터 그 말을 달고 살았다니..


그날 근무한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를 주어 들으니 더 가관입니다.


C는 모든 동료들이 자기를 왕따 시키고 있다고 한다나요


동료 중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왕따까지 시키는 질 나쁜 사람들은 아닌데..


그리고 나는 C를 왕따 시킨 일도 없는데

자기를 왕따 시킨 직원에 나도 포함이 되는 것인지..


근무하면서 C는 모든 직원들과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모든 직원이 자기와 부딪히니 그것이 불편해서 

자기가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나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간 일이지만 

나와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네요.


내가 사직서를 냈다고 했을 때 C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설마 나 때문에 그만두는 건 아니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독특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타인의 인생에 그렇게 까지 악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우리 요양원에는 보통 20~30년 근무한 요양보호사들이 많습니다




이런 직원들은 초보 간호사보다 보고, 겪은 것이 더 많으니 

초보 간호사들을 은근히 무시하기도 합니다.


 지가 뭘 안다고!” 

뭐 이런 식이죠.


나는 그런 경력과는 거리가 먼 3년차 초보 요양 보호사라 

모든 것을 일단 간호사에게 알립니다


한 팀에 간호사 1명에 요양 보호사가 2~3, 혹은 3~4명으로 일을 하지만

간호사도 팀원으로 간주하지 간호사를 상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내가 간호사에게 어르신들의 상태를 알려주는 이유는 


상사에게 보고하는 차원이 아니라 

동료에게 알리는 정도의 의미죠.


C와 근무를 했던 날, 내가 맡았던 어르신들의 피부 상태를 이야기 하면서 

약간의 발진 정도여서 연고를 발랐어

했더니 C가 나에게 했던 말!


나한테 연락하라고 했잖아. 내가 보겠다고!”

발진 정도가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일부러 전화를 하지 않았지.”

네가 보면 뭘 알아?”

그동안 봐온 일반적인 발진 정도였어.”


자신이 맡고 있는 층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고 하나부다..했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네가 뭘 알아?”하는 이야기는 

좀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잊었습니다.



C가 워낙 나대고 잘난 체하고간호사인 자기가 마치 요양보호사들의 상사인양 

행동해서그래 너 잘났다.”생각하고 있었죠.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다른 직원들에게도 했던 모양입니다

C와 문제가 없는 직원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그렇게 잘난 체를 하는데, 가끔씩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니 

동료 간호사들에게 핀잔도 들었을 테고


또 경력이 있는 요양 보호사들은 초보 간호사가 깝죽대면서 

네가 뭘 알아?”하면 그걸 가만히 듣고 있지는 않죠.


페이스북에 자기 맘을 들어내는 포스팅을 종종 올리더니만 

실은 자기가 만들어낸 지옥이었네요.



그녀의 포스팅은 아래에 있습니다.


http://jinny1970.tistory.com/3269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마음


그녀도 나 같은 외국인입니다

루마니아 출신이죠.


내가 만나온 몇 명으로 그 나라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루마니아 출신들을 솔직히 조금 나대는 타입이었습니다.


이건 나만의 생각 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내 동료들이 C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바로 이 말이었죠.


“C가 루마니아 출신이잖아.”


그렇게 잘난체하고 나대는 것은 루마니아 사람이라 그렇다는 이야기죠.


실습생 중에 하나가 간호사 C가 자꾸 자기를 갈군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했었는데

나는 그냥 지나치 듯 들었습니다


그 실습생은 내 맘에도 안 들게 일을 했었거든요.


그렇게 실습생은 갈구고, 어떻게 보면 나에게 했던 행동도 

함께 근무하는 동료를 무시하는 발언이기는 했었죠.



간호사는 나의 상사가 아닌 팀 동료로서 

간호사들이 30여명이 되는 어르신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간병을 했던 요양 보호사가 이상이 있는 어르신의 특정 부위를 알려주면 

그 부분만 찾아가서 보면 되죠.


어떻게 보면 간호사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거죠


그런데 자기가 간호사라고 요양보호사들을 아랫사람 부리듯이 하는 건 

우리 요양원에 근무하는 다른 간호사들은 절대 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런 행동을 외국인 초보 간호사가 하고 있으니 

경력 30년이 다되어가는 오스트리아 요양보호사들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죠.



말 한마디 잘못해서 모든 직원들을 자신의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자신은 왕따이고, 그래서 그만둔다는 말을 달고 사는 모양입니다.


C의 나이가 어리다면 어려서 그런가 부다 할 텐데.. 


마흔이 훌쩍 넘긴 나이에 대졸도 아닌 고졸로 간호사 교육을 받았다고 

내가 제일 잘났어~”를 외치면서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되죠.


내 눈에는 자기가 만든 지옥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C가 안타깝게 보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인지..


오늘도 C는 한마디로 사람들이 자신의 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네가 뭘 알아?”


이 한마디가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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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오늘부터 편집에 들어갈 지난 9월의 여행입니다.

이 영상은 여행 갔다온 기념으로 후딱 시원하게 내달리는 풍경만 먼저 올렸던거죠.^^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13. 00:00
  • Favicon of https://girlsonfire.tistory.com BlogIcon 서연onFIRE 2020.10.13 06:39 신고 ADDR EDIT/DEL REPLY

    정말 배울점이 많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shrtorwkwjsrj 2020.10.13 11:08 ADDR EDIT/DEL REPLY

    경치도 좋고, 9월말이면 날씨도 라이딩하기에 딱이고.. . . . .
    정말 부럽네요.
    나는 가난한 유학생으로 너무나 힘든시기를 독일에서 보냈어요.
    다른사람들은 독일에 있으니 국내뿐아니라 국외,즉 유럽각지를 여행하더라구요.
    그땐 그것만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라이딩도 못한게 너무나 아쉬운 . . . .
    . . . . . .
    너무나 힘들어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않은 곳인데,
    사람의 마음은 참 알수가 없어요.
    가끔 그리울때가 있답니다.
    내인생의 한부분이기 때문이겠지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4 02:42 신고 EDIT/DEL

      저도 그런 경우 봤어요. 이곳에 살아도 여행 갈 차도 없고, 경제적으로 여유마저 없어서 몇 년동안 휴가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마눌을 데리고 다녀주고, 마눌에게 좋은거 보여주려고 하는 마음이 예쁘게도 보이구요. 너무 힘들었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때로는 그리운 것은 "내가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어서가 아닐까요? ^^

  •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까 2020.10.13 13:35 신고 ADDR EDIT/DEL REPLY

    국제공통으로 여자가 많으면 시기질투를 하거나 그룹이 만들어지거나 하는군요

  • 느그언니 2020.10.13 19:06 ADDR EDIT/DEL REPLY

    양희은의 시원한 발언.."갸는 그러라 그래"와 "그래 그럴수도 있지"인데 어디에나 어울리는 말입니다.

  • Favicon of https://korea6.tistory.com BlogIcon 호건스탈 2020.10.14 01:36 신고 ADDR EDIT/DEL REPLY

    프라우지니님저도 그분이 너무 자기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라우지니님언제나 화이팅!!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4 02:46 신고 EDIT/DEL

      글쎄요? 자기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이 다친다는건 전혀 생각을 안하니 그렇게 생각하는거겠지요?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20 00:23 신고 ADDR EDIT/DEL REPLY

    루마니아인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어디나 하나씩 있나보네요!
    대접받으려면 본인부터 어느정도의 처신은
    해야지요!
    한국엔 꼰대라는 말이 재유행 합니다
    제 고교시절 실력없는데 권위나 세우려 하는 선생님을 꼰대라고 했었습니다!
    지금은 좀 더 의미가 확대된거 같습니다!
    자업자득이면서 꼭 남탓하는 사람들
    그러려니 지금처럼 내두시는게 좋을거
    같네요!
    알아들을 사람이면 그런 행동을 안하죠~^^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0 21:49 신고 EDIT/DEL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타인을 자기만의 잣대로 재고, 판단하고 평가하지만, 내가 타인을 평가하기 전에 내 행동부터 한번 돌아보는 것이 조금 더 맘 편하게 세상을 사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