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요양원의 두 어르신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제는 울지 알고 “잘 가셨다.”는 생각이 드는 거 보니 저도 연륜이 쌓이는 걸까요?

 

요양원에 오기 전, “누군가가 죽었다.”라는 전제는 항상 슬펐습니다.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셨을 때도 친척들이 시키는 “아이고~아이고~”대신에 “엉엉~” 큰소리로 울었었고, 엄마를 하늘나라로 가셨을 때도 3박4일 동안 병원 장례식장에서 울고 또 울었었죠.

 

내게 있어서 “누군가가 죽는 것”은 항상 슬픈 일이었습니다.

내 가족을 잃는 슬픔이었으니 말이죠.

 

실습생으로 요양원에 발을 들이고, 처음에는 내가 알던 분들이 돌아가시는 것이 너무 슬퍼서 일하면서도 울고, 복도를 다니면서도 울고, 그 어르신의 가족 분들이 울면 나도 덩달아 울고, 일을 하러 간 것인지 울러 간 것인지 하루 종일 뻘건 토끼눈을 하고 다녔더랬습니다.

 

사실만큼 사셨고, 이제는 하늘나라 가시는 것이 이 땅에 사는 것보다 더 편한 분들이셨는데.. 그때는 왜 그리 슬펐던 것인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정말로 이 세상에 사는것이 죽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인지..

 

지금은 압니다.

개똥밭에 구르지 않아도 이승이 낫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www.bing.com에서 캡처

 

요 며칠 새에 90대 중반의 어르신 두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서로 다른 층에 사셔서 요양원에 사시는 동안은 얼굴 한번 마주친 적이 없으셨지만 두 분이 96살 동갑내기셨네요.

 

한 분은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그곳에서 하늘나라로 가신 할배.

다른 한 분은 침대에 누워서 식물인간처럼 계시다가 가신 할매.

 

병원에서 돌아가신 할배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꼽는 가장 “건강한 죽음”이었습니다.

 

어떤 것을 요양보호사들이 “건강한 죽음”으로 꼽냐구요?

“죽는 날까지 남의 도움 안 받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것!”

 

침대에 누워서 남이 씻겨줘야 하고, 먹여줘야 연장되는 삶은 사실 내 삶이라고 할 수는 없죠. 내가 아닌 타인의 의해서 연장되는 삶 일뿐이죠.

 

할배는 요양원에 사셨지만 요양보호사들이 도움은 전혀 받지 않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어느 햇살 좋은 날은 창가에 앉으셔서 당신의 속옷을 꿰매고 계셔서 제가 다 당황했었습니다. 90대의 할배가 당신의 구멍 난 속옷을  바느질하고 계십니다.

 

남한테 들었다면 “뻥치네!”할 수도 있는 일인데, 제가 목격한 실화입니다.

 

할배께 “아니 왜 바느질을 하시냐?”고 여쭤보니...

“심심해서”이시랍니다.

 

바느질까지 직접 하실 정도로 할배는 좁은 요양원의 방에서 당신 소소한 삶을 즐기셨습니다. 우리가 할배께 해 드리는 서비스라고는 하루 세끼 방에 식사를 갖다드리고, 할배가 씻으시고 내놓으신 수건을 갈아드리는 일이었죠.

 

할배는 당신 방에 들어오는 요양보호사들한테 항상 인사를 하셨습니다.

 

“내 방에 찾아줘서 고마워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길 바래요!”

 

오후에는 요양원 1층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할배를 찾아오시는 여친(정말 여자친구)이나 다른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종종 목격했었죠.

 

그렇게 건강하셨던 분이신데 간만에 출근했더니 할배가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뇌출혈/뇌졸증”인지, 몸에 마비가 왔었다고 합니다.

 

나는 초보 요양보호사이니 궁금한 것이 많죠. 젊은 사람들은 활동하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알 수 있지만 어르신은 활동이 거의 없어서 알아채기 힘들었을텐데...

 

“어르신은 하루 종일 앉아 계시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뇌출혈인지 알았어?”

“며칠 동안 어르신의 혈압이 높았고, 입의 한쪽이 심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해서 뇌출혈 의심에 병원에 입원시켰지.”

 

그렇게 마지막까지 건강하셨던 어르신이 뇌출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셔서..

퇴원 일을 앞두고 계셨다고 합니다.

 

요양보호사들끼리 “어르신이 다시 요양원에 오시면 요양보호사의 도움에 의존하셔야겠다. 항상 다 혼자 하시다가 우리들이 도움을 잘 받아들이실 수 있으실까?하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동료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할배가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어쩌면 그 할배께는 가장 건강한 죽음이 아닌가 싶어.  끝까지 남의 도움 없이 살다가 죽고 싶은 우리들의 희망사항처럼!“

 

그 말에 나도 동의를 했었는데..

 

할배는 요양원에 돌아오시는 대신에 건강한 죽음을 택하신 거 같습니다.

끝까지 당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건강하게 하늘나라로 가신 거죠.

 

 

또 다른 할매는 마침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자식들에게는 참 많이 힘든 나날이었지 싶습니다.

 

이 할매는 제가 실습생이던 4년 전에도 거의 돌아가실 뻔 했죠.

거의 마지막이라고 할매의 자식들이 3박4일 날밤을 새면서 할매곁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시나 했는데, 할매는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곤 또 1년을 건강하신가 싶었는데, 또 다시 식음을 전폐하시고..

다시 할매의 자식들은 3박4일 할매 곁은 지켰죠.

 

안 드시던 할매가 다시 물을 드시고, 식사를 하시니 또 다시 사셨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할매가 사시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스스로 삶의 끈을 놓으면 쉽게 가는 하늘이지만, 끝까지 살고자 하면 가는 길이 더디죠.

그러니 할매는 몇 번이나 다시 사는 기적을 만드셨겠지요.

 

거의 식물인간 상태이신지라 씻겨드리고, 먹여드리는 도움 없이는 힘드신 할매가 이번에도 안 드시고(아니 못 드시는 거죠) 상태가 더 나빠지셔서 이번에도 불려왔던 할매의 자식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자식들도 많이 지친 상황.

 

“울 엄마는 빨리 안 가시고 도대체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다.”는 할매의 딸.

 

할매가 돌아가시고 동료직원이 들었다는 할매딸의 증언.

 

”울 엄마가 나 죽을 때 웃으면서 갈 거야” 했었는데, 정말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 보니 입 꼬리 한쪽이 올라간 거 있죠.”

 

정말로 할매가 사실만큼 사시고 웃고 가신 것인지 아님 딸의 억지주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내 할매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두 분이 돌아가셔서 비어있는 방들은 입주를 기다리시는 대기자중 당첨되신 분들이 오시겠지요.

 

도움이 100% 필요한 어르신이 오실지, 수건서비스만 필요한 어르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오시는 분들도 우리 요양원에서 건강한 마지막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침내 가신 분과 건강하게 가신 분.

두 분은 하늘나라로 잘 가셨겠지요?

 

오늘은 두 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늘 가시는 길이 수월하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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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23 00:00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엄마는 마당에 있는 허브들을 말리기 시작하십니다.

허브를 종류대로 잘라다가 햇볕이 잘 드는 마당에서 잘 말린 후에 겨울동안 사용하시죠.

 

저도 허브를 말리기는 하지만, 낮에 집에 없는 날이 많아서 밖에 말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혹시나 비가 오면 안으로 가져갈 수가 없으니 말이죠.

 

“시부모님이 같이 사시는데, 비가 오면 밖에 널어놓은 것쯤은 안에 갖다 주시겠지...”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이런 마음은 접어놓고 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터득했습니다. ^^

 

우리 주방의 창가에 잠깐 들어오는 햇볕을 이용해서 허브를 말리곤 했었는데,

이번에 무청 우거지를 만들면서 사용한 방법을 적용 해 봤습니다.^^

 

 

 

집에 가지고 있던 노끈을 무총을 말리는데 쓴지라 더 이상 노끈은 없습니다.

노끈이 없으면 직접 제작을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음식물을 넣는 데 사용하는 비닐봉투를 이용했습니다.^^

 

봉투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머리 땋듯이 길게, 튼튼하게 노끈을 만들었습니다.^^

 


 


 

만든 노끈으로 마당에서 따온 파슬리를 엮었습니다.

 

파슬리도 주방 창가에 볕이 들어오는 공간을 찾아가면서 매번 옮기고 했었는데..

이렇게 엮어서 주방 창가에 걸어놓으니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진작 이 방법을 생각했더라면 모든 허브를 이렇게 엮어서 편히 말릴 수 있었을 텐데...

무청 시래기 만들면서 생각난 방법이 완전 대박입니다.

 

창가에 들어오는 볕을 고스란히 받는 파슬리는 며칠이 지나니 바싹 말랐습니다.

 

잘못 말리면 허브의 색도 잃고, 허브향이 아닌 풀냄새만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 버려야 하죠.^^;

 

지난 가을에 아빠가 다 베어버린 엄청난 양의 바질을 말리는 과정에서 며칠 비가 오는 바람에 제대로 햇볕을 받지 못한 바질이 바질향이 아닌 풀 향이 나서 다 버려야 했습니다.^^;

 

 

 

잘 말린 파슬리는  채에 넣어 잘게 부쉈습니다.

 

말린 허브는 손으로 살짝만 힘을 가해도 잘 바스러지는데,

채 위에 놓고 부수면 아래로 파슬리 가루가 아래로 떨어지죠.

 

진작 이 방법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당 한쪽에서 무성하게 자라던 애플민트가 다 베어져 쓰레기통에 있는 것을 본 어느 날은 무지하게 속이 상했었습니다.

 

생잎을 따다가 애플민트차를 마시곤 했었는데, 너무 심하게 무성해지니 지나치게 부지런하신 시아버지가 다 베어버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아까운 애플민트가 베어지기 전에 내가 왕창 따다가 잘 말렸더라면 겨우내 내가 만든 유기농 애플 민트차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앞으로는 이 방법으로 다양한 것을 말려봐야겠습니다.

마당에 새싹들이 나기 시작하는 내년 봄부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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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21 00:00

 

 

유럽의 연말은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이벤트가 있습니다.

 

11월 말부터 12월 크리스마스 전인 12월 중순까지 나라마다, 도시마다 “크리스마스 시장”이라는 이름의 “장”이 들어섭니다.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서는 시기에는 유럽 내에서 관광객들이 몰립니다.

 

내가 사는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의 “크리스마스 시장”구경을 위한 대규모 관광버스들이 오가는 시기죠.

 

지난 11월 말에 “회사야유회“로 갔던 ”체스키 크롬로프“

이미 두어 번 갔다 온 곳인데 내가 또 간 이유는 그곳의 ”크리스마스 시장“은 어떤가 궁금해서 이었습니다.

 

예쁜 도시에 들어서는 “크리스마스 시장”은 다른 도시와는 다를 거 같아서 한번쯤 보고 싶었죠. 이미 어두워져서 도착했고 생각보다 장이 너무 작아서 실망했지만 말이죠.^^;

 

오스트리아에서 체스키 크롬로프로 가면서 넘게 된 국경.

그곳에서 아주 재밌는 현장을 봤습니다.

 

 

 

겨우 2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국경을 넘으면서 “면세점”에 잠깐 서겠다는 우리 관광버스.

 

버스가 서고 사람들이 내리길레...

“도대체 뭘 사려고 내리나?” 하는 마음에 나도 따라 내려 봤습니다.

 

“유럽 국경의 면세점에는 어떤 것을 파나? 궁금한 마음도 있었구요.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만 사는 물건은 다 동일합니다.

 

“담배!”

 

내가 면세점이라고 생각한 가게 안에는 여러 종류의 담배들이 한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담배의 가격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담배는 1갑에 3,50유로. 한 보루에 35유로.

오스트리아에서 팔리는 담배는 대체로 한 갑에 5유로인데, 이곳은 1,50유로나 저렴합니다.

 

“면세점에서는 원래 이렇게 저렴하게 파나?”했습니다.

면세점에 가도 담배 코너는 본적이 없어서 가격을 잘 모르죠.^^;

 

면세점에서 담배를 살 때는 1인당 살 수 있는 용량이 정해져있죠.

담배를 사는 사람들 중에 아는 직원이 있는지라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시 담배를 더 사려면 사서 나줘. 내가 가지고 갈게!”

 

국경을 넘을 때 검문에 걸려도 “내 담배”라고 하면 되니 그녀에게는 도움이 되는 거죠.

 

 

 

내 의뢰를 받아들인 그녀가 나에게 넘겨준 담배봉지에는 담배가 4보루나 들어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면세범위”는 담배는 2보루인디..

남 도와주려다가 내가 검문에 걸릴 판이라 정색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면세 범위는 담배 2보루인데, 이건 4보루네?”

“응, 여기서는 4보루까지 허용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담배 사러 여기에 자주 오거든!”

 

알고 보니 내 동료나 그들의 흡연자 지인들은 담배를 사러 국경을 넘는 일이 자주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다 안다” 모드인거죠.

 

내가 받은 봉지안의 담배 4보루의 가격은 총 140유로입니다.

내 동료는 4보루의 담배가 들어있는 비닐을 4봉지나 샀습니다.

 

봉지 하나는 내가 맡았고, 하나는 동료 자신이 맡고! 나머지 2봉지는 차 안에 있던 동료들이 국경을 넘을 때 자신들이 “담배주인”행세를 해주겠다고 해서 더 샀다고 합니다.

 

담배 4보루가 들어있는 한 봉지 하나에 140유로이니, 총 560유로네요.

 

국경을 넘는다고 주변사람들의 담배심부름을 온 것인지..

회사 아유회오면서 담배 사겠다고 거금을 들고 왔었네요.

 

담배는 4보루까지 허용을 한다니 그렇다 치고 웬 콜라병인지 물어보니..

 

담배 4보루를 사면 콜라를 한 병 사은품으로 준다고 하면서 내가 맡은 봉지에 있는 콜라는 나보고 가져가라나요?

 

담배를 사는 건물 안에서 구경을 다하고 밖에 나왔는데 주차장에 있어야할 버스가 없습니다. 버스를 찾아 헤매는 나에게 얼굴이 낯선 동료가 하는 말.

 

“버스는 면세점에 잠깐 갔는디?”

“엥? 나는 이곳이 면세점인줄 알고 내렸는디?“

“여기는 담배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려준 것이고, 면세점은 저 위에 있어.”

“그럼 담배를 면세점에서 사지, 왜 여기서 사?”

“면세점은 여기보다 더 비싸게 팔거든.”

 

 

구글지도에서 캡처

 

어쩐지 면세점 봉투치고는 참 허술하기 짝이 없는 비닐봉투이고, 가게 안에 있는 직원들도 다 아시아 사람이라 이상한 면세점이다 했었더니만..

 

 면세점이 아닌 체코 국경에 있는 가게였습니다.

구글맵으로 이곳을 찾아보니 이곳의 이름은 China Shop 중국가게.

 

가게 안에 있는 동양인 직원들은 중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대화하던데..

중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고용한 것인지..

 

그나저나 이곳에서 판매하는 담배는 정상적인 루트로 나오지 않았거나, 어디선가 불법으로 만들어진 담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면세점보다 더 싸게 판매하는 제품이니 말이죠.

 

중국에서 컨테이너로 들여오기는 했는데, 오스트리아는 법에 까다로우니 힘들고!

 

법이 조금 허술한 체코의 국경에나 가게를 차려놓고 저렴한 가격으로 오스트리아의 흡연자들이 국경 넘어 담배 사러오게 만드는 마케팅을 이용하는 거 같습니다.

 

 

구글지도에서 캡처

 

혹시나 “나도 거기 가서 담배를 사고 싶은데 어딘지 알려주오~”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서 구글맵으로 위치를 캡처했습니다.

 

보통 담배는 1갑에 5유로선인데 이곳에서 파는 담배는 3,50유로에 팝니다.

 

담배 4보루를 사면 시중에서 파는 것 보다 60유로나 더 저렴하고, 제 동료 같은 경우는 4보루 든 봉지를 4개나 샀으니 240유로를 저렴하게 샀다고 무지하게 좋아하던데..

 

면세점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곳의 담배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중국에서 정품으로 판매하는 담배들을 컨테이너에 실어서 온 것인지,

아님 중국산 짝둥제품을 만들어서 유럽에 유통 시키는 것인지..

 

제가 담배를 안 펴서 이곳에서 파는 담배 맛이 시중에 팔리는 것과 같은지 다른지도 모르겠지만, 흡연자들이 국경을 넘어서까지 사러 오는걸 보면 담배 맛에서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저렴하게 샀다고 가게 앞에 모여서 버스를 기다리며 신나게 줄담배 피는 흡연자 사이에 껴서 나도 덩달아 신이 났었습니다. “글감”을 하나 건졌다고 말이죠.^^

 

유럽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쾌락을 즐기려는 남자들이 여자를 사러 국경을 넘기도 하고,

조금 더 저렴하게 담배를 피고자 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기도 합니다.

 

국경을 넘어도 신분증이나 여권이 필요하지 않은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이들만의 “쇼핑 문화”. 저에게는 참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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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20 00:00

 

 

우리부부의 겨울스포츠는 노르딕스키.

 

처음 스키 장만할 때 돈이 약간 들기는 하지만..

활강을 하는 알파인스키에 비해서 엄청 저렴한 겨울 스포츠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노르딕스키는 아주 오래전에 남편에게 선물 받은 것입니다.

결혼 전이였으니 12년도 훨씬 전이네요.

 

그때 선물 받은 스키를 아직도 타고 있으니...

한번 장만하면 평생 사용도 가능할거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캡처

 

노르딕스키를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싶어서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

 

노르딕스키는 스키 부츠의 앞쪽만 바인딩에 고정이 됩니다. 뒤꿈치는 스키에서 떨어지는 형태로 스키부츠의 앞쪽부터 뒤쪽까지 스키에 고정하는 알파인 스키와 다르죠.

 

앞뒤가 고정된 알파인스키는 활강 전문이고, 뒤가 열린 노르딕스키는 걷듯이 앞으로 쭉쭉 밀고가면 되는 별다른 교육 없이도 쉽게 탈수 있는 스키입니다.

 

요즘 떠오르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도 노르딕스키처럼 앞만 고정된 상태로 스케이트 타듯이 스키를 탑니다. 앞만 고정한다니 노르딕스키로 크로스컨트리스키를 타면 될 것도 같지만 고정하는 방법이 다르고, 크로스컨트리스키는 노르딕스키에 비해서 뒤가 조금 짧다는 것이 남편의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는데, 12년 넘게 신다보니 스키부츠가 작아진 것인지 내발이 커진 것인지 요즘은 스키를 타고 나면 발이 아파서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습니다.

 

“나 스키부츠를 사야할거 같아. 작아졌는지 신고 나면 발가락이 엄청 아파.

이러다 발톱이 빠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마눌의 투정이 안들리는듯 남편은 또 노르딕스키를 타러갔죠.

 

마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편은 꼬셨습니다.

“남편, 우리 눈신발 신고 산이나 오르자.”

“가서보고..”

 

“가서보고”에 희망을 걸었었는데..

결국 남편은 노르딕스키로 결정.

 

발가락 아픈 마눌도 스키장을 2번(10km)돌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벌게진 발가락을 남편에게 들이밀었습니다.

 

“봤지? 내가 스키 안탄다고 했잖아. 이러다가 정말 발톱 빠지겠어.”

“그래? 그럼 다음부터는 반창고를 붙이자!”

 

스키를 타러 갈 때마다 남편은 발뒤꿈치에 반창고를 붙이는 준비를 했었는데..

마눌이 아프다고 하니 마눌의 발가락에도 붙여줄 모양입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스키를 타러간다는 남편.

 

마눌에게 얼른 발을 대령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그래서 마눌의 발을 남편에게 내밀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입니다.

남편이 마눌의 발가락을 주물럭거리는 건!

 

새로 신발을 사면되는데 왜 이리 번거롭게 반창고를 붙이는 거냐고 따졌습니다.

 

내가 찾아본 노르딕스키 중고부츠는 별로 비싸지도 않다고 하니 남편은 아무 부츠나 샀다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키 안 맞을 수도 있어서 사려면 스키도 같이 사는 것이 좋다는 말씀!

 

 

 

남편은 마눌이 아프다는 네 번째 발가락과 더불어서 세 번째 발가락도 같이 반창고로 봉해버렸습니다. 새 신발 대신에 남편이 해준 반창고 테라피.

 

나름 정성스럽게 반창고를 세 번씩이나 예쁘게 붙였습니다.

이것이 뭔 효과가 있겠나 싶으면서도 남편의 성의 때문에 군소리 없이 나섰죠.

 

 

노르딕스키타고 내리막 길 달리고 있는 남편.

 

남편이 반창고를 붙여준 날은 스키를 타고난 후 발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남편의 반창고는 효과 짱이었습니다.

 

그 이후 스키를 타러 가자고 하면 더 이상 반기를 들지 않죠.

 

스키를 타러가기 전에 남편이 해주는 반창고 서비스도 나쁘지 않고,

또 남편이 마눌의 발가락에 정성스럽게 반창고를 발라줄때 기분도 좋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남편에게 마눌의 발가락이 만져지겠습니까?

 

그래서 요새는 그걸 즐기고 있습니다.^^

남편의 해주는 특별한 서비스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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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19 00:00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국제결혼을 해서 살다가 헤어지게 되면 철저한 AS가 따라야 한다는..

 

세상의 모든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할 수도 있지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서 살다가 이혼하는 것과, 국제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혼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로 남편하나 믿고 시집와서 잘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다면..

 

국제 결혼한 아낙은 딛고 있던 반석 같은 땅이 사라져버린 것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거죠.

 

남편 때문에 온 나라인데 남편이 없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아님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지..

 

남편이 없다고 해도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떠나온 시간이 긴만큼 다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혹시 아이라도 있다면 더더욱 내 나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나라에서 아이가 받게 될 차별이나 언어문제를 고려해야 하니 말이죠.

 

남편이 없는 나라에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다 알아서 해주던 관청일이나 계약에 관한 이런저런 일들도 이제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혼자 부딪혀야한다는 이야기이니 말이죠.

 

내 나라로 돌아가던, 남편의 나라에 남아서 살던, 제일 심각한 문제는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꼬?” 바로 경제적인 문제죠.

 

내 문제도 아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내가 만난 한 아낙 때문입니다.

내가 다니는 시민대학의 독일어 코스!

 

거기서 만난 선생님 때문에 “국제결혼의 AS"를 생각하게 됐죠.

 

 

우리반 강의시간

 

처음에는 그녀가 나잇값 못하고 사는 인간형인줄 알았습니다.

 

중년의 아낙인데 강의 중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전혀 프로 같지 않고!

(저는 강의 시간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100%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 1인입니다.)

 

패션도 어떤 날은 히피풍으로, 어떤 날은 나팔바지 복고풍으로 입고오고, 참 특이했습니다.

 

강의를 한다고 고리타분하게 입고 다니라는 법은 없지만, 특이한 패션의 극과 극을 달리는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온 선생님하고는 차원이 달랐죠.

 

우리 반에서 독일어가 딸려 잘 못 알아듣는 이집트 아저씨에게 “아랍어”로 대화를 시도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외국어 (독일어, 영어, 아랍어 등등)를 나열할 때는 조금 철이 없어 보이기도 했죠.

 

그녀와의 수업이 길어지니 조금 더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이집트에서 17년을 살았고, 남편이 이집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하는가 했더니만, 어느 날은 “남편과 사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낮에 그녀가 가르치는 다른  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과부라 낮에 하는 난민상대 독일어 강의를 하면 젊은 난민청년들이 들이댄다.”

 

남자 학생들이 추파를 던져도 대놓고 정색을 하면서 거절하기보다는 그저 웃고 마는 그녀.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혼자 몸이니 가끔 젊은 청년들을 만나나 보다..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은 수업 중에 “오스트리아에 다시 돌아온 지 4년 됐다.”는 그녀.

 

그녀가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을 대충 종합해보면..

 

이집트 남편과 이집트에서 17년 살았고, 남편과 사별했고, 오스트리아에 다시 돌아온 지 4년.

 

항상 수업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저와 일찍 온 선생님이 잠시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개인적인 것을 물어도 되냐고 한 뒤에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죠.

 

“샘, 이집트에서 17년 살다가 오스트리아에 오신지 4년 되셨다고 하셨는데..

그 시기가 샘의 부군이 돌아가신 다음인가요?“

“네”

“샘 상당히 어려 보이시는데 큰아이가 23살이라고 하시고, 혹시 연세를 여쭤봐도 될까요?”

“올해 42살이에요. 큰 아이를 19살에 낳았죠.”

“이집트에서도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남편분이 살아계실때도 일을 하셨어요?”

“네,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난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독일어 개인교습도 하면서 살았는데, 남편도 죽고, 이집트내의 물가가 갑자기 몇 배로 뛰는 바람에 더 이상 그곳에 살수가 없어서 아이들 데리고 돌아왔죠.”

 

이집트의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했다면 웬만한 수입은 될 텐데 하는 마음에 전공이 “영어”였나고 물어보니 대답을 어물거리는걸 봐서는 (어디선가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기는 한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국제 외국인 학교”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19살에 이미 아이를 큰 아이를 낳았다면,

대학은 시집가서 살던 이집트에서 나온 것인가 했었거든요.

 

샘의 올해 나이가 42살이니 남편이 돌아가신 4년 전에는 38살이었겠네요.

 

어릴 때 만난 첫사랑 남편과 이집트에 살면서 잘 먹고 잘 살았는데..  4년 전 갑자기 남편에게 암선고가 내려졌고, 암투병 3달 만에 남편은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습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오스트리아, 친정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독일어 강의부터 저녁 8시 30분에 끝나는 시민대학 강의까지 바쁘게 산다고 했습니다.

 

아이 셋은 다행히 아랍어와 독일어가 가능해서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 잘 적응했고, 큰아이는 이미 독립해서 살고 있고, 20살인 둘째와 막내인 15살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니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였습니다.

 

“이집트에서 17년 살았음 그곳에 집같은거 사놓은 건 없으세요?”

“그러게 말이예요, 물가 싼 그때 집 한두 채 사놨으면 지금 부자가 됐을 텐데.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보니 못 샀어요. 지금은 비싸서 엄두도 못 내죠.“

 

남편에게 갑작스런 암 발병이 없었다면 지금도 이집트에서 잘 살고 있을 그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남편은 돌아가셨고, 그곳에서 더 이상 살기가 힘드니 돌아왔지만!

이곳에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로 보였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독일어 개인교습하느라 바쁘게 살았다는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강의를 다니고,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는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봐주고, 교정하는 일까지. 정말 전투적으로 생활을 합니다.

 

이제 42살이니 그녀는 최소한 앞으로 20년 이상 오스트리아에서도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립하고 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덜 일해도 되겠지만, 그건 아직은 먼 이야기.

그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국제결혼은 철저한 AS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남편이 먼저 가면서도 그녀가 혼자 살아갈 수 있게 준비를 해뒀더라면..

 

그녀가 대학에 진학해서 영어전공을 했고, 정말 제대로 된 외국인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을 했더라면 남편 없이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 경제적은 어려움없었을텐데..

 

그랬다면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계속해서 살았겠죠.

 

어느 날 남편이 사라지고, 딛고 있던 반석이 사라져서 맨땅에 주저앉은 외국인아낙!

내 독일어 샘은 그곳에서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오는 쪽을 택했습니다.

 

너무 오래 떠나 산 고국인지라, 4년이 지난 지금도 적응중이라는 그녀.

 

남편과의 사별이나 이혼이나 외국인 아낙에게는 같은 의미죠.

남편 없이 혼자서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

 

외국인 남편을 만나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낙도 있고,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시간제 일을 하는 아낙도 있고,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사는 아낙도 있겠죠.

 

외국인 아내를 맞이해서 사는 몇몇 남편들은 아내를 집에 가두려고 합니다. 아내가 밖에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날개옷을 가진 선녀”처럼 자기 곁을 떠날 꺼라 생각하는 것인지...

 

외국인 아내는 살다가 이혼을 하고 싶어도 혼자 자립할 능력이 안 되니 그냥 살아갑니다.

 

아이를 데리고 직업도 없이 혼자 살아갈 자신도 없고, 국제결혼 했던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이를 데리고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건 사실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이죠.

 

아빠의 나라에서 아이도 성장하고, 공부를 하고, 한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최후의 선택으로 하는 고국행!

 

“내가 없어도 내 아내가 “내나라”에서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살 수 있게 ‘직업교육“을 알아봐주고, 경제적인 자립도 가능한 직업을 만들어 주는 것이 외국인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AS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내의 날개옷“이라고 믿는 현지인들과의 소통과 현지에서 받는 직업교육.

날개옷을 감춘다고 아내가 날아가지 않는 건 아니죠.

 

갑작스런 남편의 부재로 혼자서 힘들게 사는 내 독일어 샘을 봐도, 또 지금 이 순간 외국인 남편과의 원활하지 않은 소통 때문에 힘들어도 “이혼”은 엄두도 못내는 아낙들을 봐도!

 

국제결혼의 제대로 된 AS는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국제결혼이고, 사랑해서 결혼한 국제결혼이지만..

사별이나 이혼 후에 “국제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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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