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듣게 된 친구의 사망 소식과 장례식.


마지막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날 오후에 근무가 있었고

하필 시간까지 겹쳐서 갈 엄두를 내지 못했죠.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장례식은 오후 3.


오후 2시에 근무가 들어가는데

장례식장은 여기서 두어 시간 떨어진 도시


미리 알았다면 근무라도 바꿔볼 시도를 하겠는데

장례식 전날 알게 된 소식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우울하기만 했었죠.


페이스북으로 친구의 장례식을 

라이브 중계하겠다고 했던 시간은 오후


내가 근무하는 시간이라 생중계도 보지 못할 줄 알았었는데..

그날 오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을 봤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려놨던 장례식 시간은 여기 시간이 아니라 

친구의 나라 시간이었나 봅니다.





장례식이 오전인 줄 알았다면 

오전에 무리해서 라도 그곳으로 갔었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출근 전인 오전에 친구의 장례식을

 화면으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은 

초반에는 66명이 보는 듯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거의 9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있었죠.


장례식 중계영상에서 본 친구의 언니

어려운 시기에 마지막 가는 동생을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왔었나 봅니다.


마지막 가는 친구가 외롭지 않게 언니까지 

와준 것이 멀리서나마 너무 감사했습니다.


라이브 영상은 장례식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하나 비춰주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도 감사했습니다.


대부분은 친구와 같은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지만

오스트리아 현지인도 보였고


마지막 가는 친구의 인생에 대해서 말해준 건

 오스트리아 사람의 독일어였죠.




오스트리아에 사는 교포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한 첫 해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을 해 봤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고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간병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2년전에 대장암을 발견하고는 투병을 했었다는 아주 짤막한 이야기.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건강 상의 이유보다는 

1년에 한 번도 잠자리를 갖지 않는 남편 때문이었고


시아버지도 남편의 아버지가 아닌 

남편의 오스트리아인 양아버지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속사정은 그냥 묻는 거죠.






이곳에 살면서 지금까지 많은 장례식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많은 근조화환이 있는 장례식은 처음 입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떠나는 친구를 위로하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비엔나에 있는 친구의 나라 대사관에서 보낸 것도 있었고

각 가정이나 개인 몇몇이 같이 돈을 모아서 만들었는지 

각자의 이름이 쓰여진 것들도 있었죠.


가는 마당에 화려한 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시겠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친구를 생각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나는 멀리 살아서 친구가 얼마나 투병을 했는지

마지막은 혹시나 외롭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장례식의 모인 사람들의 숫자와 라이브로 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을 보는 사람들

장례식에 놓여진 근조 화환들의 갯수로,

 친구를 생각 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 또 감사를 했습니다.


내 나라를 떠나서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세상에 혼자 뚝 떨어져 사는 그 느낌


어디 의지할 때도 없는데 아프면 그 외로움이 더 사무치죠.






장례식으로 바쁜 사람들에게 그녀의 마지막은 어땠는지외롭지 않았는지

많이 아파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건 너무 실례일 거 같고!


결국 생각해낸 사람은 친구를 알게 됐던 

당시 같은 독일어 코스를 다녔던 남미 출신의 아낙,M


독일어코스에서 알게 되어서 그 후에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친구만큼 자주 만나지도, 또 그리 친하지도 않았습니다.


친구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정도?


페이스북에 그녀의 사진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눌러주는 정도의 친분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죠.


M에게 몇 년 만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잘 지내냐고 친구의 갑작스런 장례식 소식에 너무 당황 했었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가게 될 줄 몰랐다고 하면서 


혹시 시간이 있으면 통화를 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니 바로 전화를 해준 M.


M은 친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때때로 자주 만났던 모양입니다

M은 친구의 마지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줍니다.


대장암으로 수술하고 항암 치료까지 받았었지만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서 또 다시 수술을 했었고

그때마다 M이 병원으로 친구의 병문안을 다녔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M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외롭지 않게 옆에서 지켜준 M이 있어서 

친구는 위안을 얻었을 테니 말이죠.






친구의 마지막에 친구의 남편은 어땠냐고 물어보니 

변함없는 태도” 였다고 하네요


남편은 아픈 친구의 마지막에도 

함께 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남편이 지켜야 했을 친구의 마지막은 

친구의 언니가 지켰다고 합니다


친구의 언니는 지난 8월에 이미 오스트리아에 도착해서는 

내내 친구와 함께였다고 하네요.


아픈 동생 병간호를 위해서 몇 달씩 자리를 

비우는 것이 가능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두바이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비엔나로 입국이 가능 했었나 봅니다.


생업을 뒤로하고 이곳까지 동생을 보러 온 언니 덕에 

친구가 가슴에 있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 편히 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번 생은 이리 힘들고, 불행했지만

다음 생에서는 더 좋은, 행복한 삶으로 태어나라고 

그녀의 언니는 떠나는 동생에게 이런 덕담을 해줬겠지요.


젊은 나이에 타국에서 외롭게 혼자 견디다가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준 

그녀의 언니가 있었다니 다행이다 싶고


그녀의 마지막이 사랑하는 언니의 

품속이었을테니 마음 한 켠이 가벼워집니다.


떠나는 그녀를 장례식에 찾아와준 사람들도 많았고

또 멀리서 라이브로 떠나는 그녀를 배웅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녀가 외롭지 않게 떠난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떠나가는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며 울어주고

다음 생에서는 더 행복하길 바란다는 사람들의 염원이 그녀에게 전해져서 


그녀도 그렇게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떠나갔길 바랍니다.


그녀의 마지막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고


또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해준 사람들이 많아서 

그 마음 하나하나를 다 가지고 친구가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나는 그녀와 멀리 살아서 아직도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인사는 독일어로  Wiedersehen 비더제엔


Wieder(비더/다시) sehen (제엔/보자)

다음에 다시 만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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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4. 00:00
  • 호호맘 2020.10.24 18:08 ADDR EDIT/DEL REPLY

    친구 장례식 영상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네요.
    멀리 이곳 한국에서도 지니님의 친구분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편안하고 좋은곳으로 가시길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5 03:16 신고 EDIT/DEL

      네. 멀리서나마 장례식을 볼수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웅을 받으며 친구가 좋은 곳으로 갔다고 믿습니다. ^^

  • Favicon of https://cheersmyvancouver.tistory.com BlogIcon cheersj 2020.10.26 06:12 신고 ADDR EDIT/DEL REPLY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몇주전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코로나때문에 한국에 가지 못했어요. 마음 너무 아프죠... 기도 열심히 해드리고 있어요. 친구분도 이렇게 생각해 주는 분들 있으니 좋은 곳에 가셨을거에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7 15:42 신고 EDIT/DEL

      시아버님도 가시면서 먼 곳에서 가슴 아파하는 며느님의 마음을 아셨을겁니다. 좋은 곳에 가셨을테니 이제는 그 마음 내려놓으셔도 좋을거 같아요. ^^



그녀의 소식을 접하려고 그랬나 봅니다

왠지 스마트폰의 페이스북을 열어보고 싶었죠.


매일 확인하는 페이스북이 아니어서 

내가 놓치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근황 들이 많이 있는데


어제 페이스북을 보다가 

내 친구의 얼굴이 보이길래 클릭 해 봤습니다.



내 친구의 사진을 게시한 것은 친구의 언니였죠

친구의 사진들 속에서 많이 보던 언니라 만난 적은 없지만 친근한 얼굴.


거기서 읽게 된 뜻밖의 소식.


친구의 장례식에 대한 안내였습니다

가끔 페이스북에 얼굴을 비치길래 잘살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작년 12월경에 그녀가 전화를 해 와서 알았던 그녀의 대장암 전이 소식.


9월 말에 그라츠 쪽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녀를 만나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녀에게 연락조차 못 했었죠.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간 만에 접하게 된 소식이 장례식이라니..


화장을 해서는 그녀의 유골을 고국으로 가지고 가려고 

그녀의 언니가 이곳에 온 모양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들이 거의 결항이라 

오스트리아 입국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 그녀의 마지막을 언니가 지켜줘서 다행이네요.


어떤 친구인지 궁금하신 분은 아래로.



내가 아는 그녀는 참 불쌍한 인생이었는데.. 


그녀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불쌍한 인생을 살다가 

간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디에 살건, 어떤 일을 하건 행복은 마음에서 오는 것인데..

내가 아는 그녀는 참 부정적이었죠.


그래도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힘들었나 봅니다삶의 끈을 놓아버린 것은 보면..


그라츠에 같은 나라 출신의 교포들도 

꽤 있어서 나름 인맥이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다 남편을 너무 좋게 보고

또 남편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친절한 천사 같은 존재라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안 믿는다 고 했었는데..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이중 인격자 같은 행동을 하는 남편 때문에 

어디에 진실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서 빈집 살다가 삶을 마감한 것은 아닌지..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일단은 멍했고

그 다음은 그녀가 불쌍했습니다.


한번 살고 가는 세상,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한 날만 살아도 짧은 것이 이번 생인데 

그녀는 행복한 날보다 힘들고 우울한 날이 더 많았죠.


요양보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자주 접하는 죽음이지만

친구의 죽음은 나에게는 달랐습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는 목숨이 어디 있겠냐마는 ..


요양원에서 80대 혹은 90대를 넘어 백살까지 바라보고 

사시던 분들이 돌아가시면 잘 가셨다.”고 했었죠.


주무시다가 가신 분들은

그래도 당신 손으로 다 하시다가 가셔셔 다행이다.”


침대에 식물인간처럼 누워서 직원들의 손에 

목숨을 연명하시던 분이 돌아가셔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의사 표현도 못하고 타인에 의해서 

연명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죠.


요양원 직원인 우리들이 말하는 가장 행복한 삶의 끝은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하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삶을 연장하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요양원에 사시는 분들이나 

일하는 직원이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거든요.

 

그렇게 지금까지 잘 된 일이다.”라고 생각했었던 죽음과는 

달리 친구의 죽음은 마음이 먹먹합니다.


이제 48살인데, 아직 환갑도 지나지 않았는데.. 

적어도 환갑까지는 살아야지 조금 덜 억울할 거 같은데.. 

누구는 죽고 싶다고 울면서도 죽지 못해서 사는 하루지만

누구는 살고 싶어도 못사는 하루!”


불행했던 그녀의 삶과

젊은 나이에 하늘로 떠나버린 친구 때문에 마음이 먹먹했는데..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한 내 친구, 죽을 때까지 그렇게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그걸 즐기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이죠


피할 수 없는데, 그 상황만 비관하고 불평하면 나만 힘들어질뿐인데..


친구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드리고 마지막을 평안하게 갔는지

아님 끝까지 자신의 불행한 삶만 생각하고 비관하다가 갔는지는 모릅니다.


그녀가 암의 합병증으로 시간이 다 된 것인지.. 


아님 면역력이 약했던 암환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이 더 짧아진 것인지 알 길이 없죠.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우울하고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끝까지 타국에서 외롭게 살다가 간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말이죠.





그렇게 그녀의 페이스북에서 그녀 언니의 페이스북으로

또 그녀 지인의 페이스북으로 옮겨가면서 

그녀의 사진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녀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가는 그녀에게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포스팅하면서 


작별 인사를 하는 그녀의 친구들이 있어 

그녀가 외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는 타국에서 만난 인연으로 된 친구지만

그녀의 고국에는 나보다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이니 

그녀에 대한 마음도 나보다는 더 진한 사람들이겠지요.

 




올해는 찾지 못했지만, 해마다 그녀의 생일을 챙겨주는 지인들이 

그라츠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나는 생일이라도 해도 누구를 초대할 사람도 없어서 

그냥 조용하게 보내는데...


나보다는 인복이 많은 친구였던 모양입니다

매년 생일을 함께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죠.


이렇게 친구의 친구를 통해가면서 그녀의 사진들을 보다 보니 

처음보다는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행하게 만 산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나보다는 더 많았으니 말이죠.

 



나에게는 그냥 동글뱅이로 보이는 그녀의 모국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번역기를 돌려봤습니다.


그리고 알았죠

그녀는 지난 13일에 이미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을.


1019일에는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다고 하는데 

그날은 근무라 힘들고!


다음날에는 그녀가 살던 집으로 유골은 모시고 

오는 모양인지, 집 주소도 있습니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마눌이 너무 우울해 하니 

내가 원하면 그라츠까지 같이 가주겠다고 하는 남편.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안 가는 것이 좋고


또 그 나라 사람들만 모였을텐데, 말도 안 통하는 그곳까지 가는 것보다는 

그냥 나는 이곳에서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지인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그녀와의 추억을 그녀에 페이스북에 업로드 했습니다.


그녀의 38번째 생일날 함께 했던 나들이.


그녀와 만난 날이 그녀의 생일이었고

같이 밥을 먹고 그라츠 근처의 성당이 있는 동네로 나들이를 갔었죠.


남편 밥을 해주러 가야 한다던 그녀에게 네 생일이라고 하루쯤 

안 챙겨도 큰일 나는 거 아니라고 했던 남편의 식사 한끼.


그날 저녁에 그녀는 남편의 한 끼를 챙기지 않는 것 에 

대한 잔소리를 한 보따리 들었다고 했었죠.


그녀의 가족들은 몰랐을 38살 그녀의 생일날 풍경을 

내 추억 속에서 꺼내 보내줬습니다.


불교가 국교인 나라 출신이니 그녀는 환생을 믿었겠지요.


죽기 전 자기가 가진 것들을 여기저기 시주 하러 다닌 그녀를 보니 

그녀도 마지막은 준비하고 있었던듯 합니다.


 

잘 가! 친구야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서 만나 서로의 외국어로 대화를 하면서 

친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생에도 만났으니 다음 생에도 만나게 되겠지.

너의 삶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줘서 고맙다


다음 생에서는 이번 생보다 더 행복하고 

사랑 받는 인생을 살게 되길 바랄께.

마지막 가면서 나까지 마음에 담고 갔을지 모를 친구

하늘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멀리서 나마 이렇게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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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1. 00:00
  • Favicon of https://cheersmyvancouver.tistory.com BlogIcon cheersj 2020.10.21 07:08 신고 ADDR EDIT/DEL REPLY

    요즘 죽음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조용히 또한번 마음을 정리하게 되네요.
    갑작스럽게 당황한 모습으로 떠나지 않도록, 아직은 젊은 시간들을 소중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
    친구분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janiceshin86.tistory.com BlogIcon jshin86 2020.10.21 12:13 신고 ADDR EDIT/DEL REPLY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25 18:36 신고 ADDR EDIT/DEL REPLY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모두 가야할 길이지만 빨리 떠난 친구분
    그 믿음대로 다음 생에는 좀더 행복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4 신고 EDIT/DEL

      각자가 가진 환경은 사실 피 한다고 피해지지 않죠. 그저 자기가 가진 환경에서 만족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 그녀도 마지막은 다 내려놓고 미련없이 이세상을 떠났기를 바래봅니다. ^^



나는 13녀중 셋째 딸

위로 언니가 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죠.


, 아래로 형제가 있는 중간 아이지만

실제로 저는 막내처럼 자랐습니다.


청소년기 엄마랑 떨어져 살 때는 

두 언니가 엄마처럼 나를 돌봐 줬고


심지어 청소년이 된 동생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때를 밀어줄 정도로 

저에게 두 언니는 엄마 같은 존재였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남동생한테 애교를 떠는 누나입니다

마치 오빠한테 애교 떠는 여동생처럼 말이죠.


부모는 똑 같은 사랑을 준다고 하지만 

아이들의 느끼는 부모의 사랑은 제각각이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 형제로부터 여러 종류의 상처를 받는 다죠?


맏이는 맏이어서 부모의 기대를 져버리면 안될 거 같은 책임감에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하는 건 덤으로 해야 하는 일이죠.


둘째는 맏이에게 쏠려있는 부모의 사랑을 자기에게 돌리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을 테고,


막내는 또 막내 대로 부모에게 받는 사랑과는 별개로 

형제 사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겠죠.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서론이 기냐구요?


이론 상으로는 

위로 언니 둘에, 아래로 남동생 하나를 둔 나도 마음속에 받은 상처투성이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상처 하나 받지 않고 살았습니다.


엄마를 떠나 있어야 했던 청소년기에 

엄마 대신에 나를 돌봐야 했던 언니들에게는 스트레스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막내처럼 언니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살았죠.


내 위로 두 언니는 연년생입니다.


모든 연년생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큰 언니가 둘째 언니보다 작습니다


둘째 언니가 우리 집에서 키도 크고, 예쁘고 눈에 띄는 존재였죠.


그런 둘째 언니를 아빠는 아주 예뻐라 하셨고

인텔리라는 애칭으로 부르시곤 하셨죠.


똑똑 하기로 따지면 큰 언니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더 똑똑했는데..


셋째 딸이지만 예쁘지도 않은 나에게 나에게 아빠가 자주 하셨던 말씀은..


우리 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을 누가 그랬어?”




어릴 때 집에서 별로 존재감 없는 중간에 낀 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빠의 이 말은 내 존재를 보기도 아까운 우리 집 셋째 딸로 만들어 주곤 했죠.


엄마한테 혼나서 훌쩍이며 울다가 아빠가 이 말을 하시면

 대성 통곡을 하면서 울어 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의 막내처럼 항상 언니들에게 받고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내 기준에서 내가 줄 사람은 남동생뿐이죠.


언니들에게는 항상 받았으니 언니들은 나에게 주는 존재 들이고

내가 줄 사람은 내 아래로 있는 남동생이라 생각했었죠.


언니들도 가끔은 위로가 필요하고

가끔은 동생에게 받고 싶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니들은 내 손윗사람이니 말이죠.


내리 사랑이라고 하니 언니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는 언니들에게 받은 사랑을 동생에게 주는 거라 생각했었죠.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이 그동안 내 생각 너머에 있던 

큰 언니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는 그동안 이해 못 한 큰 언니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맏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큰 언니는 맏이로서의 살아야 했던 치열한 삶이 있었고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나 봅니다.


큰 언니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을 세월이 지나서 만나게 됐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합창단을 지휘하셨던 분이었는데


이미 중년이 된 언니를 만나서 그분이 하신 말씀은 

언니의 기억에도 없는 추억이었다고 합니다.

합창단 연습을 하고 있으면 네가 수줍게 손을 들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저 동생들 밥 해줘서 지금 가야 해요.” 했었어.”


10살짜리 여자아이가 집에 밥을 하러 가야 한다니.. 

내가 10살때는 철부지였는데.. 


큰 언니는 이미 10살 때 장사 나간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들 밥을 챙겨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살았었네요.



유튜브에서 캡처


할 일을 정해주고 나간 부모를 대신해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10살짜리 맏이


동생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자기 밥은 먹지 못하고, 

아이들이 밥을 먹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맏이.


간식을 먹으라고 정해진 시간에 

혹시라도 늦을 까봐 시계를 보고 또 보던 맏이.


부모가 없는 시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동생들이 사고 치면 거기에 대한 사고 수습까지 하는 너무 대견한 10살짜리 맏이.


자신이 한일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었는데

칭찬보다는 질책을 받아야 했던 맏이


동생들이 잘못한 것도 다 몰아서 혼나야 했던 맏이.


성격이 별났던 울 엄마도 큰 언니가 집에 없을 때 

일어난 일로도 큰 언니를 잡으셨죠.


우리 집에서 제일 수다스럽고 말로는 절대 안 지는 셋째 딸.


엄마 말에 꼬박꼬박 말대답을 해서는 

하루 종일 엄마를 약 올려놓으면.. 


그 화를 저녁에 퇴근한 큰 언니에게 쏟아 부어서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큰 언니는 

뜬금없는 날벼락을 맞기도 했었죠.^^;


사실 저도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화내는 엄마가 하시는 말씀에 조목조목 따져서 대답을 하다 보니 

그것이 엄마를 더 열 받게 했던 거죠. ㅠㅠ

 



부모에게도 형제들에게도 인정보다는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인식에 

칭찬보다는 질책과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맏이.


나보다는 가족을 더 챙기느라 

자신이 원하는 건 마음속 저 깊이 감춰둔다는 맏이.


큰 언니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 봐주고 

챙겨준 사람이 없어서 더 외로웠나봅니다


평생을 함께 한 동생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맏이로 살아야 했던 큰언니.

내가 맏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던 큰언니.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싶었지만

여전히 동생들을 돌보고 보듬어야 했던 큰 언니.


중년이 된 지금에야 10살에 동생들 밥을 해줘야 했던 

큰 언니의 그 작은 어깨를 생각합니다.


큰 언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당신의 그 힘든 삶을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베풀기만 강요 받았던 맏이로서의 삶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그 맘 이해합니다


누군가 함께 짊어질 수도 없는 맏이로 

치열하게 살아준 그 세월에 박수를 보냅니다.


세상의 모든 맏이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동생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수고와 어려움

스트레스를 나이 들어 이제야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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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으로 힐링하세요.^^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15. 00:00
  • Favicon of https://ownerlife.tistory.com BlogIcon 다잡이 2020.10.15 00:18 신고 ADDR EDIT/DEL REPLY

    큰언니도 마냥 고생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거에요 ㅎㅎ 같이의 가치가 크니까요!

  •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까 2020.10.15 00:26 신고 ADDR EDIT/DEL REPLY

    우리집 맏이는 지금도 그래요. 부모님 모시고 동생 챙겨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5 05:36 신고 EDIT/DEL

      그것이 맏이의 숙명인거 같은데, 그래도 "네가 맏이여서 든든하고 고맙다."같은 소리를 들으면 더 힘이나고 행복할거 같아요.^^

  • Favicon of https://moonchina.tistory.com BlogIcon 월량선생 2020.10.15 01:52 신고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저도 맏이이고, 제 와이프도 맏이라...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5 05:37 신고 EDIT/DEL

      다른 형제들은 모를 맏이만의 마음인데, 두분이 다 맏이시라니 그 맘을 이해하시니 관계가 더 좋을거 같아요.^^

  • 초콜렛 2020.10.15 05:23 ADDR EDIT/DEL REPLY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밥하고 가끔 도시락도 싸야 했지요. 놀러가도 싶어도 집안일 등으로 마음 편히 친구들과 수다를 떨 시간도 없었던 제 학창시절이 생각납니다. 잡채를 좋아했던 동생들을 위해 요리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동생은 능숙하게 잡채를 하고 있는 저를 보며 그랬냐고 생각이 안나다고 하네요~ 원래부터 잘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ㅎㅎㅎ 큰 언니처럼 칭찬 한 번 받아보지 못했고 비슷하게 자랐는데 오늘 위로가 되었네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5 05:40 신고 EDIT/DEL

      친구들 놀러 다닐때 집에 가서 동생들을 챙기는 것이 가장 힘들 거 같아요. 그때는 마냥 놀고 싶은 때인데 맏이라는 중책을 어깨에 매고 살아아 했던 순간들. 초코렛님이 동생들을 위해 희생한 시간이 있었기에 동생들의 오늘이 있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당신은 멋진 맏이셨네요.^^

  • Favicon of https://janiceshin86.tistory.com BlogIcon jshin86 2020.10.15 06:16 신고 ADDR EDIT/DEL REPLY

    저도 맏이에요.
    맏이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정말 크게 느껴졌던적이 있네요.

  • 2020.10.15 09:11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위슬러79 2020.10.15 13:39 ADDR EDIT/DEL REPLY

    알아주는 동생이 있다는것만으로도 감사할거 같습니다. 아마 언니분이 이글을 보시면 마음이 따스해지실거 같아요^^

  • 2020.10.16 10:07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9 04:32 신고 EDIT/DEL

      셋째딸은 보여주면 아무도 안 데려가려 해서 선 안보이고 시집 보낸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런 말을 어릴 때 들었다면 엄청 슬펐을거 같아요.^^;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16 10:07 신고 ADDR EDIT/DEL REPLY

    맏이!
    하는 일은 없어도 책임감을 느끼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 2020.10.17 13:11 ADDR EDIT/DEL REPLY

    ㅋ 나는 예전부터 지니님의 내리사랑론이 너무 싫었슴.
    살아보면 알거임. 맏이라고 회사에시 월급 더 주는거 아니고 생활비도 다 똑같이 드는데 동생은 꼭 무슨 당연히 받아가도 되는 권리 있는냥ㅋ
    살아보세요. 내돈 아까우면 언니돈도 아까운 거임.
    지금 50인데 이제야 깨닫다니 시간은 뭘 했을꼬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9 04:41 신고 EDIT/DEL

      예전부터 저의 내리사랑론이 싫다고 하시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ㅂ님은 저를 잘 아시나요? 50된 지금도 제가 유튜브의 그 채널을 못 봤다면 맏이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은 절대 몰랐겠지요. 저는 셋째딸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말이죠. 맏이라고 회사에서 월급 더 주지도 않는 것도 알고, 맏이라고 해서 언니한테 돈 달라고 돈 벌린 적도 없습니다. 내글을 @ㅂ님 마음대로 해석하신 듯 하네요.

  • 제시카 2020.10.19 20:28 ADDR EDIT/DEL REPLY

    언니맘 알아주는 동생때문에 그래도 응어리가 풀리시지 않을까요? 저같은 민폐형 맏이는 부끄럽네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0 21:47 신고 EDIT/DEL

      솔직히 평생 맏이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모를 일이었죠. 제가 그 유튜브 방송을 보지 않았더라면..저는 죽을 때까지 몰랐을 맏이의 어려움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하나를 보면 단번에 열까지 알아채는 

눈썰미와 명석한 두뇌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눈치, 코치”가 세계 정상이라는 이야기죠.


상대방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행동에서 뭘 원하는지 알아채는 능력도 있죠.


그래서 피곤할 때도 많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이 바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는 힘들죠.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 알고 있으니 

내가 먼저 알아서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은 “내가 너무 앞질러갔나?싶을 때도 있지만 말이죠.^^;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꽤 여러 명의 일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 내 기억에 짱 박혀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3.

각자 조금은 각기 다른 성격으로 내가 “일본인의 성격”을 알게 했죠.


내 기억의 첫 번째 주자는 일본 남자, K

K 와의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내 두 번째 기억은 일본 여자,M 이네요.

필리핀에 지사장으로 나와 있는 남편 덕에 팔자 편하게 살던 여자.


결혼 10년이 넘도록 아이는 없고, 대신에 “피리프(필립)라는 개를 키웠죠.


남편과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 방을 쓰는,

그 당시에도 그런 용어가 있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데..

“섹스리스”부부였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별로 친하지도 않고 국적도 다른 나에게 

왜 그런 말까지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는 “싱글”이라 M의 부부 관계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별별 부부가 다 존재 할 테니, “그런 가 부다”했었죠.


M의 집에는 살림하는 메이드가 있어서 M이 집에서 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녀가 하는 일은.. 기사가 딸린 자기 차를 타고 골프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

내가 M을 만나게 된 것은 그녀 남편의 소개였습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 물건을 팔러 왔던 그녀의 남편이 

“내 아내가 한국 음식도 너무 좋아하고, 한국인과 사귀고 싶어 한다.고 했고

마침 그녀가 사는 곳도 우리 집 근처라 만나게 됐죠.


그렇게 그녀를 몇 번 만났고, 다른 회사들의 지사장 부인들과도 만나게 됐죠.



엄청나게 비싼 월세 아파트에 사는팔자 좋은 지사장 부인들은 

나와는 격이 달랐습니다.


그때 나는 한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통역겸 매니저겸 

회사의 모든 일에 관여를 하고 있는 상태라 엄청나게 바빴죠


저녁에는 거래처 (필리핀)인간들 접대까지 쫓아다녀야 했습니다.


여자가 옷 벗고 쇼 하는 곳까지 내가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1차 식사를 끝내고는 2, 3차를 거쳐서 화끈한 그것까지 바라는 피노들을 

접대 하라고 직원에게 돈을 찔러주러 다니곤 했었죠.


그래서 저녁이라고 해도 별로 시간이 없는 나에 비해서 

지사장 부인들은 언제가 시간이 널널했죠.


특히나 M은 아이도 없어서 다른 지사장 부인들보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많았죠.


없는 시간을 쪼개서 M과 또 다른 회사의 지사장 부인이랑 같이 식사를 했었는데

M은 내가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계산을 합니다



나에게는 손해가 나는 계산법이었죠.


일본 사람들은 연인 관계라도 해도 “더치페이”를 하죠.

너가 먹은 건 너가 내고, 내가 먹은 건 내가 내고!


대충 이런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접한 더치페이는 조금 다르더군요.


3명이서 식사를 했습니다.

나와 다른 아낙은 저렴한 음료를 주문했고

M은 가격이 서너 배 비싼 칵테일을 주문한 후에 

음식 몇 가지를 주문해서 같이 먹었습니다.

3명이 같은 가격의 음료를 마셨다면 음료

식대 포함해서 나누기 3 하면 되지만!

M은 우리보다 몇 배 더 비싼 음료를 드셔 놓고는 

음료, 식대를 다 합친 가격을 3으로 나눕니다.


그렇게 되면 저렴한 음료를 마신 두 사람이 비싼 음료를 드신 

M의 칵테일 값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죠


지는 나보다 돈도 더 많으면서 왜 나한테 칵테일 값을 내라고 하느뇨?


이런 일이 몇 번 반복 되니 짜증이 났습니다.

그녀는 일부러 그것을 노리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자기가 밥을 사는 거라면 비싼 음료를 시켜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계산서 나누기 N인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행동은 언제가 같았습니다.


그녀의 이기적인 행동은 식당 뿐이 아니었네요.


그녀가 우리 집에 오면 김치며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주곤 했었는데..

난 그녀의 집에 가도 물 한잔 얻어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죠.


M은 나에게 물 한잔 주는 것도 아까운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번 이러고 나니 더 이상 그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필리핀을 떠나게 되서 그녀와는 작별을 했죠.


내가 기억하는 M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이서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안 드는 일본인이었습니다.



원래 일본인이 이런 성격인가요?


세 번째 인물은 이번에 만난 미유키입니다.

같이 식사하러 갔었는데, 우리가 먹은 음료 값을 선뜻 지불했던 아낙.


일본인들은 더치페이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달랐죠.


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1457

동양인들의 인정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일본인과는 또 다른 유형입니다.


미유키는 인생의 절반 이상은 오스트리아에 살았으니 

전형적인 일본 사람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도 “일본에 가서 살아보니 힘들더라.고 했죠.


일본에 돌아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2411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팔자


내가 그녀를 만났던 당시가 결혼 1~2년 정도 된 상태였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꽤 시간이 지났네요.


그녀와는 오랫동안 소식이 단절 됐었는데

작년 연말 쯤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다시 만나서 수다도 떨었고, 또 그녀가 점심 식사를 초대해서 식사도 했습니다.


그녀와 만나면 매번 화제가 되는 건 

녀의 남편과 남편이 하는 가게.


그녀 남편의 나이는 제 시아버지 또래인데 아직도 현역에서 일을 하십니다.

70대 초반인 그녀의 남편은 하루 13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합니다.


직원이 아프다고 결근 하면 사장이 나가서 그 자리를 채워야 하는 거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은행에서 받은 대출은 꽤 있는 모양입니다.


남편이 나이가 있으니 앞으로 남편이 없어도 

그녀가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할 텐데..


지금 사는 집은 은행에 담보로 걸려있고

그 금액 또한 큰 모양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대출금은 늘어만 가는 안타까운 그녀 가정의 현실.


모르겠습니다.

원래 일본인들이 이런 개인적인 일까지 이야기를 하는지는..


그렇게 식사를 하고는 

그녀의 남편이 하는 식료품 가게를 가서 시간을 보냈죠.


유기농 식료품 가게 안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도 있어서 

“유기농/채식 음식”을 선호하는 단골들은 꽤 있는 모양입니다.


반쯤 비어있는 카페에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앉아서 수다를 떠는데...

그녀의 남편이 “어떤 음료”를 마실지 물어옵니다.



내가 주문하는 음료가 아니라 

서비스로 주려고 하는 것이니 난 그냥 “수돗물 주세요!


그렇게 수돗물을 앞에 놓고 어느 정도 수다를 떨고 나니,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녀 혼자 떠들었습니다. 나는 계속 맞장구만 쳤죠..)


그녀가 가게를 한 바퀴 둘러보라고 합니다.


그것이 말 그대로 “가게 구경”만 하면 되는 것인지

아님 내가 무엇을 사야 하는지 헷갈렸습니다.


그녀의 남편 가게가 영업을 해도 이익은 

제대로 나지 않는 상황인 것은 나도 알고 있고,


가게에 놀러온 나에게 “가게 구경”하라는 의미를 

나는 “제품 구매”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가게 안은 “유기농 식료품”가게 답게 대부분의 제품들이 고가입니다.


쪼맨한 병에 담긴 김치는 3,50유로

거의 백김치에 가까운 비주얼입니다.


한국인인 내 입맛에는 절대 맞을리도 없거니와 너무 비싸!


뭘 사기는 사야 하는데 그렇다고 김치를 집어 올수는 없고!

내가 선택한 것은 나름 고가의 물건!



구글에서 캡처


요즘 저녁마다 얼굴에 처발처발하는 호호바 오일.


집에서는 “유기농”이 아닌 저렴한 제품을 사용했었는데..

유기농 가게 답게 “유기농 호호바 오일을 판매중!


가격도 보통 가게에서 파는 판매가보다 쪼매 더 비싼 가격.


글을 쓰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유기농 호호바 오일은 16유로면 구입이 가능한데,

그녀의 유기농 가게에서는 19,90유로에 구매했습니다.


식료품보다는 꽤 고가의 오일을 선택하니 그녀가 깜짝 놀랍니다.


유기농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호호바 오일은 내가 사용하는 제품이니 그냥 질렀습니다.


그녀에게 점심도 얻어먹고, 또 카페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시간을 보냈으니 

이 정도는 사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습니다.


나에게 자꾸 “가게 구경”을 하라고 내 등을 떠미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었죠.


그녀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 이해 했을수도 있지만,

다음번에 그녀를 만나면 그녀의 가게까지는 안 갈 생각입니다.


갈 때마다 오일을 사올 수는 없으니 말이죠.^^;


집에 이미 2 병이 있었는데

유기농 오일을 사 들고 와서 집에 넘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들어갑니다.


그녀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단순히 “가게 구경이나 해!이었는데..

내가 너무 앞질러 간 걸까요?


물건을 굳이 살 필요는 없었는데,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산 내 행동.

잘한 걸까요?


다음에 그녀의 가게에 가게 되면 난 또 뭔 가를 구매해야 할까요?


그녀가 등 떠 밀면서 “가게 구경해!” 하면 

또 사라는 줄 알고 사게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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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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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작년 9월에 갔었던 크로아티아 여행의 아침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국내 여행이나 하루 나들이로 휴가를 보냅니다.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8. 00:00
  •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까 2020.10.08 00:05 ADDR EDIT/DEL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 2020.10.08 01:21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today-top-pick.tistory.com BlogIcon 오늘은 뭔데? 2020.10.08 02:48 신고 ADDR EDIT/DEL REPLY

    글 잘 읽고 구독 누르고 가여 ~~^^ 자주 소통해여 ㅎㅎ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09 12:58 신고 ADDR EDIT/DEL REPLY

    ㅎㅎ 그래서 일본인은 참 개인주의라는 느낌이~
    그런데 겪으신 일을 보면 좀 지나치다
    는 생각이 듭니다!

  • 별빛속에 2020.10.10 12:40 ADDR EDIT/DEL REPLY

    제 주변을 봐도 있는 사람들이 더합니다
    더 있다고 뭘 바라진 않지만 더 계산적, 이기적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더 잘사나보다합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11 04:37 신고 EDIT/DEL

      있는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뭔 가를 바래서 모인다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구요. 정말 그런 사람들이 꼬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러잖아요. 없어도 남한테 없는 티 내면 안 된다고 보태줄 것도 아니면서 없다고 괜히 무시를 하죠.^^;

  • Favicon of https://unamogliecoreana.tistory.com BlogIcon 밀라노댁 2020.10.27 05:57 신고 ADDR EDIT/DEL REPLY

    일본인들이 좀 특별(?)하기는 합니다.
    예전에 이탈리아어 코스 다닐 때 선생님이 제가 사는 동네에 사는 일본인을 가르쳤다면서 연락해보라고 이메일을 줬거든요. 그래서 그 이 메일 주소를 제가 직접 아는 다른 일본인 동네친구한테 주고 같은 나라 사람끼리 연락해보라고 했는데, 뭐라고 답장이 왔는지 아십니까?
    "당신이 뭔데 메일을 보내냐.일본인하고 엮이고 싶지 않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
    한국사람끼리만 일본인 이상하다고 하는 건 아니고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인 친구 많은 이탈리아인 남편도 일본인 이해 안 될 때 많다고 합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7 15:44 신고 EDIT/DEL

      예의는 엄청 챙겨서 대놓고 싫다는 소리도 못한다는 일본인이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째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네요. 세상 어디에서 솔직하게 인간관계를 하는 한국 사람들은 없는 거 같아요. 가끔은 너무 솔직해서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죠. ㅋㅋㅋㅋ

  • Favicon of https://unamogliecoreana.tistory.com BlogIcon 밀라노댁 2020.10.27 19:05 신고 ADDR EDIT/DEL REPLY

    아. 위의 말을 일본인답게 아주 돌려서 완곡하게 표현했는데 그 구구절절한 이 메일을 간추리면 연락하지 말라는 소리였어요. 어떻게 된게 문화가 완전히 다른 유럽인보다 옆나라인 일본인 상대하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8 23:42 신고 EDIT/DEL

      일본인들이 원래 속안 내보이지 않으니 지구에서 제일 상대하기 힘든 족속이 아닌가 싶어요. 빨리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를 제대로 까보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날이 왔음 좋겠습니다.^^

 

 

우리가 뉴질랜드에 다시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어디에서 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조차도 특별히 세워놓은 계획은 없죠.

 

남편은 뭔가를 세웠을지도 모르겠네요.

단지 마눌에게 이야기를 안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으니 말이죠.

 

마눌의 살짝 물어봤지만, 별다른 대답을 안 하는 걸 봐서는..

남편도 아직 세워놓은 계획은 없는 모양입니다.

 

남편이 계획을 세워서 마눌에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마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가면 가나 부다~ 오면 오나 부다~”하거든요.

 

어디에서 살던 그곳에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걸 찾게 되겠죠.

 

남편이 낚시를 가면 차 안에서 하루 종일 잘 놀고 있을 테고!

남편과 트렉킹이나 하이킹을 가면 또 하루 종일 궁시렁거리면서도 잘 따라 다니죠.

 

뉴질랜드는 남편이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니...

남편이 가고 싶은 곳에서 머물고, 남편이 하고 싶은걸 하게 되겠죠.

 

 

 

대충 예상이 되는 건 지난번처럼 차를 사서 자작캠핑카를 짓게 되겠죠.

 

“이번에는 차 안에 싱크대도 넣자!

 낮에는 중간에 사람이 앉을 수 있게 침대가 변형이 됐으면 좋겠어”

 

이건 단순한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사실 안전하기로 따지면 지난번처럼 만드는 것이 왔다죠~

 

세계 여행 중인 한 유명 유튜버를 보니 짐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잠을 잘 때는 노트북 같은 고가의 장비들을 앞쪽의 운전/보조석에 두고 취침을 했었나본데, 자고 일어나니 다 털어가서 몇 백만 원 손해에 여행 일정까지도 차질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만들었던 자작캠핑카는 저장 공간이 충분했었죠.

 

어찌 보면 관을 짜 넣은 거 같은 구조인데, 길이가 170cm가 넘는 길이여서  짐을 넣는 공간에서 나같은 단신은 누워서 자도 될 정도였죠.^^

 

그래서 우리는 잘 때 모든 장비(라고 할 거까지도 없었지만)들을 다 침대 아래 보관하고 깔고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우리를 깨우지 않는 이상 털어 갈수 없는 구조였죠.ㅋㅋㅋ

 

 

 

우리 캠핑카의 응접실은 지난번처럼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 캠핑카처럼 낮에는 응접실, 저녁에는 침대로 변신하는 걸 만들어보자고 했지만..

 

남편이 전문 목수도 아니고, 똥손에 느린 손으로 이 정도 만든 것도 대단한 일이기는 하죠.^^;

 

“애초에 중고 캠핑카를 사면 안 되남?”

 

마눌의 요구에 남편이 자세한 설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고 밴(봉고차)를 사서 의자를 떼어내고 자작 캠핑카를 만들어서 사용하다가 팔 때 안에 설치했던 나무들을 다 뜯어내고 의자 다시 장착해서 파는 것이 캠핑카보다는 더 팔기가 쉬워!”

 

남편 말대로 팔기가 쉽기도 하지만 손해를 덜 보는 방법이죠.

 

 

우리는 지난 2012년에 14,000불짜리 밴을 사서 2년 동안 캠핑카로 잘 탄 후에, 2년 후인 2014년에 중고차 매장에 가서 12,000불 받고 팔았습니다.

 

우리가 2년 동안 자동차를 사용했음에도 남편은 손해 본 비용은 달랑 2,000불.

 

2년 동안 우리가 사용한 캠핑카 비용이 달랑 2,000불이었다는 이야기죠.

 

물론 우리가 나무를 사서 차안에 자작캠핑카를 설치했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손해라고 할 수도 없는 비용이죠.

 

 

대충 내가 예상하는 뉴질랜드 생활은 지난번과 같겠죠.

 

남편을 따라서 강어귀를 따라다니고, 바닷가에서 놀 거리를 찾아도 보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차 안에 앉아서 낚시 간 남편을 기다리는 나날들을 보내겠죠.

 

낚시에 성공해서 신이나 자신이 잡았지만 놔뒀던 생선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테고..

하루 종일 낚시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날은 남편의 짜증도 감당해야 합니다.

 

대놓고 내는 짜증은 아니지만, 괜히 별거 아닌 일에 트집을 잡는 것이 낚시꾼 남편이 짜증을 내는 방법이죠.

 

제 동료들은 떠날 날을 잡아놓은 나에게 질문을 합니다.

 

“뉴질랜드 떠나게 되서 좋아?”

“그냥 그래!”

“왜? 신나지 않아?”

“이리 다 본 곳을 또 가는거라, 그냥 가나 부다..하고 있어.”

 

내가 안 가본 호주를 전국일주 하는 거라면 신이 나겠지만..

이미 아는 동네 또 가는 것이라 동료들의 “좋겠다”는 반응에 그냥 씩 웃기만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죠?

여행을 가면 한동안은 카메라를 동네방네 디밀고 다니지만..

1주일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익숙해지면 카메라를 들이밀 정도로 신기한 곳은 없죠.

 

제게 뉴질랜드는 그런 곳입니다.

이미 다 아는 곳이라 별로 신기한 것이 없는 나라죠.^^;

 

 

 

이번에는 남편이 정말로 연어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속의 연어는 남편 옆에서 연어를 2 마리나 잡으신 아주머니 연어를 빌려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연어도 빌려주시고, 사진까지 찍어주시는 포토그래퍼가 되셨죠.^^

 

지난번에는 우리 주변에서 함께 머물며 캠핑을 했던 낚시꾼들이 나에게 와서 남편의 안타까운 사정을 이야기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배 위에서 낚시를 해서 강어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파악했었죠.)

 

“네 남편이 연어를 다 잡은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놓쳤어.”

 

연어를 잡으면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낚싯대를 던져놓고 연어를 잡은 사람이 연어를 물 위로 올릴 수 있게 도와주는데, 남편은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나봅니다.

 

물살이 센 강어귀에서 던진 낚싯대를 다시 감은 것만으로도 힘이 딸리는데..

그 행동을 하루 종일 하다가 걸렸던 연어를 다 끌어올린 상태에서 놓쳤다니!

 

어두워서 차로 돌아오는 남편이 더 짠하게 느껴졌던 날이었죠.

 

그때쯤 일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1132

뉴질랜드 길 위의 생활기 413- 애처로운 낚시꾼 남편의 뒷모습

 

남편이 바다에서 낚시를 하면 망망대해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낼 테고..

남편이 어디 강 상류에서 낚시를 가면 주변에 과일 나무들은 있는지 보게 되겠죠.

 

우리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싶습니다.

그저 건강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즐기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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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퍼온 영상은 컴퓨터의 바탕화면 영상에서 자주 볼수있는 뉴질랜드 남섬 최북단, 와라리키 해변입니다. 야생 아기물개들을 만날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 동네에 우리들의 지인이 살고있어서, 공짜로 한달간 대여용 숙소에서 산적도 있었죠.^^

제 뉴질랜드 여행기를 보신분은 아실수도 있는 해변입니다.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8. 16. 00:00
  • Claudia7791 2020.08.16 16:20 ADDR EDIT/DEL REPLY

    진정한 럭셔리 라이프를 즐기시는 지니님 커플^^ 시간에 구애 없이 여행하시다니.. 그것도 뉴질랜드에요.. 맑은 공기와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지니님 특유의 먹거리 관련 글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

  • 예진맘 2020.08.19 22:58 ADDR EDIT/DEL REPLY

    밀포드 트레킹을 가고 싶은데 혹시 가보셨나요? 제가 등산은 질색팔색 하는데 걷는건 자신 있거든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08.20 00:35 신고 EDIT/DEL

      제 글중에 밀포트 트렉킹을 했던 이야기가 있을꺼에요. http://jinny1970.tistory.com/302부터 밀포드 트렉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 Favicon of https://today-top-pick.tistory.com BlogIcon 오늘은 뭔데? 2020.10.08 02:48 신고 ADDR EDIT/DEL REPLY

    넘 멋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