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수명대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하면 되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주어진 수명은 참 불평등한 거 같습니다.

 

우리 요양원에는 이제 100세를 코앞에 둔 어르신이 꽤 계십니다.

그 외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80대 중반이시죠.

 

“무병장수”라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인줄 알았습니다.

 

병 없이 100세까지 산다고 해도 몸의 기능은 제 기능을 못해, 약에 의존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이 힘드신 분들이 오늘날 100세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현실입니다.

 

치매를 앓으시는 분들은 정신이 외출한 채로 내 삶인지 낢의 삶인지 모를 하루하루를 사시고, 제정신이신 분들은 여기저기의 통증 때문에 약을 달고 사시죠.

 

우리가 원하는 “무병장수“는 꿈입니다.

우리 몸의 장기들을 100년씩이나 사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거든요.

 

제가 어르신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비교는 이겁니다.

 

“어르신, 차도 10년 타고 나면 부품의 여기저기 손 봐야하고, 고쳐가면서도 한 30년 타면 정말 기적이라고 하는데.. 어르신은 90년이 넘도록 안에 부품 (장기) 교환 없이 사용하셨으니 여기저기 아프신 건 당연하신거에요.”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역이라고 하시는 어르신께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어르신, 아무리 그래도 우리 삶에 오늘은 딱 하루뿐 이예요. 오늘도 즐겁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더 살고 싶고, 잡고 싶은 하루였는데,

누군가는 죽고 싶은데 억지로 살고 있는 그런 하루죠.“

 

얼마 전에는 저를 천사라 하시는 할매가 저에게 짜증을 내셨습니다.

 

98세이신데 아직 틀니가 아닌 당신 치아로 식사를 하시지만,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으신 분이신지라, 직원들한테 짜증을 자주 내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에게는 안 그러셨는데...

 

어느 날 아침 그 방에 들어가서 어르신께 씻으러 가시자고 일어나시라고 하니,

나에게 날아온 가시 돋친 한마디.

 

“당신은 내가 69살로 보여요? 난 98살이라고요!”

“알죠.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셔서 제가 왔잖아요.”

“.....”

 

일어나서 씻으러 화장실에 가자고 하니 짜증이 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이니 당신이 천사라 하시던 저에게 그러신 것이겠죠.

 

화장실로 모셔서 씻겨드리고 있는데 할매가 한마디 하셨습니다.

 

“내가 요즘은 수건으로 목을 매고 죽고 싶다니깐!”

 

당시는 할매가 나에게 짜증을 내신 것이 미안하셔서 하신 행동인줄 알았는데..

생각 해 보니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당신의 삶에 지치셨나봅니다.

 

 

인터넷에서 캡처

 

내 눈에 장수는 축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죽지 못해 사는 하루하루 일뿐이죠.

 

인간의 삶이, 수명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듭니다.

 

왜 어떤 이는 100살까지 죽고 싶어도 억지로 살아가야 하고,

왜 어떤 이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어린나이에 생을 달리 해야 하는 것인지..

 

예전에야 불치병이 많아서 환갑까지 사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환갑은 노년기로 접어드는 단계일 뿐이죠.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적어도 환갑까지는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서 몸 관리, 건강관리 잘하면 더 오래 더 살수도 있고!

 

 

거리의 소아암 포스터. 라라는 소아암 환자입니다.^^;

 

갖고 태어난 수명대로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치료가 되지 않는 암에 걸려서 하늘나라로 가는 건 도대체 어떤 삶을 부여받았기에 그렇게 짧은 생을 살아야 하는지!

 

그런 아이들에게 누군가의 살기 싫어도 억지로 사는 삶에서 시간을 조금 나눠준다면...

더 공평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부모가 해주는 것에 의존하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꼬마천사들.

 

그런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을 부여받았기에 이 땅에 그렇게 잠시 왔다 가는 것이고, 그 아이의 부모는 도대체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길레 이번 생에 자식을 가슴에 묻는 천형을 받은 것인지..

 

요양원,

하늘가는 길 위에 사시는 분들의 삶을 보면 너무 긴 삶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사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마지막이면 참 좋을 텐데...

 

제 정신 잃고, 타인의 손의 의해서 이어지는 수명으로, 혹은 너무 아파서 죽고 싶고, 더 이상 살아갈 의지도 없는데 이어지는 의미 없는 나날은 아깝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주어진 삶을 끝까지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한 하루인데..

누군가는 죽지 못해서 허비하는 하루의 시간입니다.

 

인간에게 불평등한 것은 많은 거 같습니다.

가진 자과 갖지 못한 자는 돈뿐 아니라 수명 또한 포함이 되니 말이죠.

 

요 며칠 새 5살도 안된 아이들의 사망사고를 많이 봅니다.

이 땅에 와서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가는 그 아이들을 보다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너무 길어서 살기 지루한, 혹은 죽고 싶은데 억지로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에서 한 20년쯤 잘라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명의 평등화는 없나?

 

참 별의별 생각을 다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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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28 00:00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국제결혼을 해서 살다가 헤어지게 되면 철저한 AS가 따라야 한다는..

 

세상의 모든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할 수도 있지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서 살다가 이혼하는 것과, 국제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혼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로 남편하나 믿고 시집와서 잘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다면..

 

국제 결혼한 아낙은 딛고 있던 반석 같은 땅이 사라져버린 것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거죠.

 

남편 때문에 온 나라인데 남편이 없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아님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지..

 

남편이 없다고 해도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떠나온 시간이 긴만큼 다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혹시 아이라도 있다면 더더욱 내 나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나라에서 아이가 받게 될 차별이나 언어문제를 고려해야 하니 말이죠.

 

남편이 없는 나라에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다 알아서 해주던 관청일이나 계약에 관한 이런저런 일들도 이제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혼자 부딪혀야한다는 이야기이니 말이죠.

 

내 나라로 돌아가던, 남편의 나라에 남아서 살던, 제일 심각한 문제는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꼬?” 바로 경제적인 문제죠.

 

내 문제도 아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내가 만난 한 아낙 때문입니다.

내가 다니는 시민대학의 독일어 코스!

 

거기서 만난 선생님 때문에 “국제결혼의 AS"를 생각하게 됐죠.

 

 

우리반 강의시간

 

처음에는 그녀가 나잇값 못하고 사는 인간형인줄 알았습니다.

 

중년의 아낙인데 강의 중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전혀 프로 같지 않고!

(저는 강의 시간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100%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 1인입니다.)

 

패션도 어떤 날은 히피풍으로, 어떤 날은 나팔바지 복고풍으로 입고오고, 참 특이했습니다.

 

강의를 한다고 고리타분하게 입고 다니라는 법은 없지만, 특이한 패션의 극과 극을 달리는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온 선생님하고는 차원이 달랐죠.

 

우리 반에서 독일어가 딸려 잘 못 알아듣는 이집트 아저씨에게 “아랍어”로 대화를 시도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외국어 (독일어, 영어, 아랍어 등등)를 나열할 때는 조금 철이 없어 보이기도 했죠.

 

그녀와의 수업이 길어지니 조금 더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이집트에서 17년을 살았고, 남편이 이집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하는가 했더니만, 어느 날은 “남편과 사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낮에 그녀가 가르치는 다른  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과부라 낮에 하는 난민상대 독일어 강의를 하면 젊은 난민청년들이 들이댄다.”

 

남자 학생들이 추파를 던져도 대놓고 정색을 하면서 거절하기보다는 그저 웃고 마는 그녀.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혼자 몸이니 가끔 젊은 청년들을 만나나 보다..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은 수업 중에 “오스트리아에 다시 돌아온 지 4년 됐다.”는 그녀.

 

그녀가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을 대충 종합해보면..

 

이집트 남편과 이집트에서 17년 살았고, 남편과 사별했고, 오스트리아에 다시 돌아온 지 4년.

 

항상 수업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저와 일찍 온 선생님이 잠시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개인적인 것을 물어도 되냐고 한 뒤에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죠.

 

“샘, 이집트에서 17년 살다가 오스트리아에 오신지 4년 되셨다고 하셨는데..

그 시기가 샘의 부군이 돌아가신 다음인가요?“

“네”

“샘 상당히 어려 보이시는데 큰아이가 23살이라고 하시고, 혹시 연세를 여쭤봐도 될까요?”

“올해 42살이에요. 큰 아이를 19살에 낳았죠.”

“이집트에서도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남편분이 살아계실때도 일을 하셨어요?”

“네,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난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독일어 개인교습도 하면서 살았는데, 남편도 죽고, 이집트내의 물가가 갑자기 몇 배로 뛰는 바람에 더 이상 그곳에 살수가 없어서 아이들 데리고 돌아왔죠.”

 

이집트의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했다면 웬만한 수입은 될 텐데 하는 마음에 전공이 “영어”였나고 물어보니 대답을 어물거리는걸 봐서는 (어디선가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기는 한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국제 외국인 학교”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19살에 이미 아이를 큰 아이를 낳았다면,

대학은 시집가서 살던 이집트에서 나온 것인가 했었거든요.

 

샘의 올해 나이가 42살이니 남편이 돌아가신 4년 전에는 38살이었겠네요.

 

어릴 때 만난 첫사랑 남편과 이집트에 살면서 잘 먹고 잘 살았는데..  4년 전 갑자기 남편에게 암선고가 내려졌고, 암투병 3달 만에 남편은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습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오스트리아, 친정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독일어 강의부터 저녁 8시 30분에 끝나는 시민대학 강의까지 바쁘게 산다고 했습니다.

 

아이 셋은 다행히 아랍어와 독일어가 가능해서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 잘 적응했고, 큰아이는 이미 독립해서 살고 있고, 20살인 둘째와 막내인 15살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니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였습니다.

 

“이집트에서 17년 살았음 그곳에 집같은거 사놓은 건 없으세요?”

“그러게 말이예요, 물가 싼 그때 집 한두 채 사놨으면 지금 부자가 됐을 텐데.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보니 못 샀어요. 지금은 비싸서 엄두도 못 내죠.“

 

남편에게 갑작스런 암 발병이 없었다면 지금도 이집트에서 잘 살고 있을 그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남편은 돌아가셨고, 그곳에서 더 이상 살기가 힘드니 돌아왔지만!

이곳에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로 보였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독일어 개인교습하느라 바쁘게 살았다는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강의를 다니고,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는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봐주고, 교정하는 일까지. 정말 전투적으로 생활을 합니다.

 

이제 42살이니 그녀는 최소한 앞으로 20년 이상 오스트리아에서도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립하고 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덜 일해도 되겠지만, 그건 아직은 먼 이야기.

그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국제결혼은 철저한 AS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남편이 먼저 가면서도 그녀가 혼자 살아갈 수 있게 준비를 해뒀더라면..

 

그녀가 대학에 진학해서 영어전공을 했고, 정말 제대로 된 외국인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을 했더라면 남편 없이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 경제적은 어려움없었을텐데..

 

그랬다면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계속해서 살았겠죠.

 

어느 날 남편이 사라지고, 딛고 있던 반석이 사라져서 맨땅에 주저앉은 외국인아낙!

내 독일어 샘은 그곳에서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오는 쪽을 택했습니다.

 

너무 오래 떠나 산 고국인지라, 4년이 지난 지금도 적응중이라는 그녀.

 

남편과의 사별이나 이혼이나 외국인 아낙에게는 같은 의미죠.

남편 없이 혼자서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

 

외국인 남편을 만나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낙도 있고,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시간제 일을 하는 아낙도 있고,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사는 아낙도 있겠죠.

 

외국인 아내를 맞이해서 사는 몇몇 남편들은 아내를 집에 가두려고 합니다. 아내가 밖에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날개옷을 가진 선녀”처럼 자기 곁을 떠날 꺼라 생각하는 것인지...

 

외국인 아내는 살다가 이혼을 하고 싶어도 혼자 자립할 능력이 안 되니 그냥 살아갑니다.

 

아이를 데리고 직업도 없이 혼자 살아갈 자신도 없고, 국제결혼 했던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이를 데리고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건 사실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이죠.

 

아빠의 나라에서 아이도 성장하고, 공부를 하고, 한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최후의 선택으로 하는 고국행!

 

“내가 없어도 내 아내가 “내나라”에서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살 수 있게 ‘직업교육“을 알아봐주고, 경제적인 자립도 가능한 직업을 만들어 주는 것이 외국인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AS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내의 날개옷“이라고 믿는 현지인들과의 소통과 현지에서 받는 직업교육.

날개옷을 감춘다고 아내가 날아가지 않는 건 아니죠.

 

갑작스런 남편의 부재로 혼자서 힘들게 사는 내 독일어 샘을 봐도, 또 지금 이 순간 외국인 남편과의 원활하지 않은 소통 때문에 힘들어도 “이혼”은 엄두도 못내는 아낙들을 봐도!

 

국제결혼의 제대로 된 AS는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국제결혼이고, 사랑해서 결혼한 국제결혼이지만..

사별이나 이혼 후에 “국제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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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18 00:00

 

 

2019년 첫날 여러분이 읽으실 글을 어떤 걸 정할까 생각하다가...

그동안 써놓은 글이 꽤 있음에도 제쳐놓고 이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현재 내 직업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이고,

그분들을 가족들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효(孝)도 만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인들은 각자의 삶에 충실합니다.

조금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부모도 자식도 각자 자기의 삶만 살죠.

 

자식들은 밥벌이를 할 나이가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을 합니다.

부모는 나이가 밥벌이를 할 때까지만 부양할 의무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제 남편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을 가겠다고 밝혔을 때,

집안 어른인 시할머니, 시아버지의 반발에 부딪혔었다고 시어머니께 들었습니다.

 

시할머니는 “대학을 나와서 실업자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굳이 대학을 갈 이유나 뭐냐?”하시고, 시아버니도 당신의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면 당신이 하시는 “페인트공”으로 일하시기를 바라셨죠.

 

중학교를 졸업하면 월급을 받아가며 견습 생활을 거쳐서 3년 후 전문직업인이 돼서 부모로터 경제적인 자립을 해야 부모도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이니,

 

자식이 대학진학을 하는 것보다 직업교육을 받는 것이 부모에게는 더 나은 방향이죠.

 

독립을 하는 나이는 유럽이라고 해도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15살부터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의 견습 생활을 거치는 동안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는데,

1년차는 700유로 상당, 2년차는 900유로 상당, 3년차는 천유로 이상을 받죠.

 

견습생으로 일을 하면 월급을 받으니 이때부터는 부모님께 용돈 달라고 손 벌릴 일이 없고, 3년간의 견습생활동안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갖고 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3년 후에는 대부분 부모 집에서 독립을 합니다.

경제적으로 혼자 살 정도의 돈은 버니 말이죠.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두고 우리나라의 인문계 방향으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이곳의 대학 진학률은 30%선인지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으면 대학교 혹은 대학원까지 부모가 전 재산을 바쳐서 지원을 합니다.그러니 부모들에게 아이는 노후연금일수밖에 없습니다.

있는 재산을 다 바쳤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곳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해준 것이 없기 때문에 바라지 않죠. 아이들은 빠르면 직업교육을 시작하는 15살에 경제적인 독립을 했으니 부모에게 받은 것이 없습니다.

 

부모 또한 아이들이 자립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신들의 노후를 생각하면서 살죠.

제 남편을 봐도 자신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무료 학비에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생활비로 충당을 했으니 실제로 부모님이 공부하는데 해주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처럼 마눌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두 분 부모님중 한분이 먼저 돌아가시면 우리가 모시고 살자!”

 

내말에 남편은 무심하게 대답을 했죠.

 

“부모님은 나중에 요양원에 가실 거야.”

 

자신이 받은 것이 없으니 부모님이 연로하셔도 부양해야하는 의무감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님 이곳의 문화가 삶의 마감은 다 양로원에서 한다고 인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면 다 양로원으로 보내는 이곳.

내가 근무하는 양로원에는 참 여러 종류의 자식들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도 “효녀”라고 생각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저런 자식은 없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싶은 자식들도 있습니다.

 

자식이 없는 경우나 자식이 있지만 부모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포기하는 경우 어르신은 Sackwalter 작발터 (법적대리인) 를 갖습니다.

 

자식이 어르신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고 작발터를 선임하는 경우,

어르신의 자식은 어르신의 재산에 대한 권리도 포기가 됩니다.

(물론 부모의 재산이 없으니 미리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경우 어르신이 필요한 물품이나 사망 하셨을 시의 여러 가지 일들을 작발터랑 상의하죠. 자식이 없는 경우 작발터는 친척 중에 한명이 되죠.

 

자주 오는 어르신들의 자제분 같은 경우는 매일 요양원을 찾습니다.

안 오는 자제분들은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치매를 앓으시는 할매 한분이 여름에도 겨울신발을 신으시는지라, 그분의 아드님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 할매같은 경우는 작발터(법적대리인)가 없는지라 아드님께 연락이 불가피했죠.

 

“당신의 어머님이 여름 신발이 없어서 겨울에도 여름신발을 신으시는데, 신발이 작아서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니 신발을 사서 보내시던가 어떤 조치를 원하시는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일 년에 딱 한번 요양원에 있는 쪽으로 스키여행을 오면 들린다는 할매의 아들은 이메일을 보내고 몇 달이 지나도 답변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여름 신발 한 켤레 사서 보내줄 여유가 안됐던 것인지..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찾아와서는 그동안 엄마가 모아놓은 용돈을 털어가는 딸도 있습니다.

 

요양원의 어르신들은 자신이 받는 연금 전액이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각자가 받는 연금이 20~30%가 용돈개념으로 어르신들의 통장으로 들어갑니다.

 

이걸로 사고 싶으신 걸 사시는 거죠.

 

담배를 피우시는 어르신인지라 할매를 모시고 직원이 통장의 돈을 찾아서 담배를 샀었는데, 몇 달 만에 와서는 엄마의 통장잔고가 얼마 안 되니 괜히 직원들을 잡았었습니다.

 

“자기 엄마 돈을 직원이 다 털어갔다”고 말이죠.

 

할매는 골초이신지가 하루 한갑이상을 피우시니 통장에 돈이 남아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직원을 잡으면 안 되죠. 직원이 할매께 담배피우라고 권하는 것도 아닌데..

 

한 어르신의 경우는 돈이 엄첨 많다고 소문나신 할매이신데, 그분의 70대 아드님은 엄마께 항상 싸구려로 사오십니다. 이제 90중반의 엄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자기 돈도 아닌 엄마 돈으로 사는 물건을 그렇게 저질로 사온다고 직원들이 수군거리죠.

 

엄마가 돌아가시면 다 자기 재산이 되니 미리부터 아끼는 것인지..

 

이 할매가 워낙 부자라고 소문이 난지라, 어릴 때부터 부자로 사셨는줄 알았었는데..

말씀하시는걸 들어보면 어릴 때 남의 집에 식모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시중드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양원 직원들이 도와드리려 해도 스스로 하시려고 하시죠.

 

“내가 느리기는 해도 천천히 하면 되니까 괜찮아, 가서 다른 일 해요. 밥 먹고 하루 종일 하는 일도 없는데 내가 자고 일어난 침대는 내가 정리 해야지.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야.”

 

키도 작으시고 살도 없으셔서 한 30kg이나 될까 싶으신 할매이신데..

“긍정적인 마인드만은 왔다” 이신 분이십니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니 다시 화제를 돌려서..

우리 요양원에는 내가 생각하는 효녀가 두 사람 있습니다.

 

한명은 제 선배이며, 멘토이며, 제 동료이기도 한 안드레아.

 

그녀의 어머니는 다 우리 요양원에 계습니다.

안드레아가 근무하는 1층에 사시죠.

 

다른 직원들은 지층,1층,2층 번갈아 가면서 근무가 들어가는데, 그녀는 엄마 때문에 항상 1층 근무만 합니다. 엄마를 더 옆에서 돌보려고 말이죠.

 

엄마가 사시는 층에 근무한다고 해서 엄마에게 더 신경을 써주거나 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녀는 근무외 시간을 엄마에게 투자하죠.

 

그녀는 항상 아침 9시 출근 - 저녁 8시 퇴근하는 근무를 합니다.

 

근무는 9시에 시작이지만 아침 7시에 요양원에 와서 아침을 챙겨서 엄마랑 같이 먹고, 엄마를 자신이 직접 씻겨드린 후에 근무시간에 맞춰서 자신의 근무를 시작하죠. 근무시간에는 따로 엄마를 돌볼 시간이 없어, 중간에 휴식시간 15분과 점심시간 1시간을 엄마가 머무는 방에서 보냅니다.

 

그녀의 형제들이 요일을 정해서 그녀의 엄마를 방문하지만, 엄마에게 제일 의지가 되는 것은 요양원 근무로 일하면서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안드레아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여름 S부인과 산책중인 그녀의 따님 뒷모습입니다.

 

직원 중에는 안드레아가 “효녀”라면..

방문객 중에 제일 효녀는 S 부인의 따님입니다.

 

어르신들은 잠자리에 드셨고, 대부분의 직원들도 퇴근하고 조용한 저녁 7시쯤.

그녀는 어김없이 엄마를 찾아서 요양원으로 출근합니다.

 

와서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서 여름에는 밖의 공원을 돌고, 날씨가 쌀쌀한 겨울에는 요양원 건물 내를 두어 바퀴 돌고 난 후에는 엄마랑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서 카드게임을 합니다.

 

두어 시간 그렇게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저녁 9시가 되면 그녀는 다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친하지 않아서 봐도 그저 짧은 인사만 주고받았는데..

매일 찾아오는 그녀가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었습니다.

 

무엇을 하는데 매일 저녁이면 주말도 없이 찾아오는 것인지.. 엄마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활이 있을 텐데, 주말도 없이 매일 찾아오는 것이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80대 어머니를 찾아오는 그녀는 60대의 딸.

자신도 이미 손주까지 본 할머니죠.

 

도대체 뭐를 하는데 매일 저녁 시간을 내서 엄마를 찾아오는지 물어보니..

자신은 “Tagesmutter 타게스무터(사실 탁아소)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Tagesmutter 타게스무터는 두단어가 합해진 말로,

Tag(탁/day/날)과 Mutter(무터/엄마)의 조합입니다.

 

“낮 동안 엄마”가 되어 돌봐주는 사설 탁아소죠.

 

낮 동안은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시간이 없어 저녁에만 온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어린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진이 빠지는 일일 텐데,

그녀는 한 번도 빠짐없이 저녁 7시면 엄마를 보러 요양원에 옵니다.

 

와서는 누워서 하루를 보낸 엄마랑 산책하고,

둘이 마주 않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카드놀이.

 

“효”란 것이 그리 대단한 것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매일 엄마와 약간의 시간을 보내는 것.

참 단순하지만 엄마가 가장 바라는 것이 그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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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9.01.01 00:00

 

 

오늘은 참 생각이 많은 날입니다.

네 가족과 내 가족에 대한 생각도 깊이 해본 날이네요.

 

처음 시작은 이랬습니다.

 

남들은 쉬는 휴일에 근무하는 마눌을 위해서 잠자다 말고 일어나서 차로 요양원을 데려다준 남편, 저녁 퇴근에 맞춰서 요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마눌을 기다렸습니다.

(이날 비가 온지라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10 시간의 근무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남편의 차문을 여는데 차문은 잠겨있고, 차안에서 남편은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나랑 장난이 하고 싶은 모양인데...

 

비 맞고 서서 남편의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닌지라, 문을 두어 번 열어보고는 가지고 있던 우산을 쓰고는 걸었습니다. 집까지 걸어올 생각이었죠.

 

남편이 뒤따라오면서 “타라!”고 했지만 이미 기분이 상한지라 걸었습니다.

비도 오는데 우산을 쓰고 걷다보니 괜히 울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남편이 장난이 울고 싶은 인간이 제대로 울 수 있게 뺨을 한 대 때린 격이었죠.

 

집으로 걸어오며 “엉엉~”아주 큰 소리를 내면서 울었습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내 맘속의 슬픔을 울어서 풀어야 합니다.

 

“타라”고 해도 안 타는 마눌을 그냥 두고 집에 먼저 와있는 남편.

마눌이 집에 도착하니 변명을 시작합니다.

 

"내가 오늘 운동 가느라 시내에 갔었는데, 차문을 잠갔다는 걸 몰랐어.“

“....”

“내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이 들었었거든!”

“집에 걸어오면서 울었어.”

 

마눌이 우는 걸 제일 싫어하는 남편인데 마눌이 울었다니 짜증이 난 모양입니다.

 

“가끔 마눌이 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꼭 안아 달라”고 했었는데.. 그걸 잊은 것인지 짜증+잔소리를 쏟아내는 남편.

 

“왜 울었어?”

“근무도 힘들고 오늘 당신 외사촌형수하고 같이 근무했는데 재수 없었어.”

“근무가 다 다 그렇지 뭐!”

“같은 하루 10시간 근무라고 해도 마음이 맞는 직원들이면 하루가 즐겁지만, 힘든 직원들하고 일하면 하루가 힘들어, 일도 평소의 2배로 해야 하고!”

“그럴 때는 병동 책임자한테 이야기를 하라니깐!”

“.....”

 

모든 문제들이 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모르는 남편.

 

 

오늘 내 마음같은 우리(시부모님) 집 마당풍경.

 

사실 마눌에게 울 기회를 제공한건 남편이었죠.

차 문이 열려있었다면 마눌이 올라타서 별일 없이 집에 오는 일상이었을 텐데..

 

그랬다면 마눌은 “당신 외사촌 형수는 왜 그래?”하면서 뒷담화를 했겠죠.

 

마눌이 울었고, 남편은 짜증을 냈고, 사태는 악화되어갑니다.

이쯤 되면 마눌이 남편에게 보이는 건 가운데 손가락! (아시죠? 엿 먹어!)

남편의 짜증이 더 심해지면 이번에는 가운데 손가락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죠.

 

남편은 이미 열 받은 상태입니다.

마눌이 곱빼기로 "엿을 먹으라“니 말이죠.

 

열 받은 남편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합니다.

 

“당신 그러려면 한국 가! 한국 가서 그런 행동 하던가..”

 

전에 남편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나보고 ”한국 가!“라는 말은 하지 마.

그 말이 나를 제일 슬프게 하니까!”

 

국제결혼해서 남편의 나라에 살고 있는 아낙들은 사실 의지할 사람이 남편밖에 없습니다.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고 사는 남편인데, 나보고 가라면 안 되죠!^^;

 

마눌이 했던 부탁을 잊지는 않았을 텐데 화가 난 남편은 마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합니다.

마눌이 아무리 “엿 먹어라~”했다고 해도 이 말은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남편이 “한국에 가” 라는 말에 되받아쳤습니다.

 

“걱정 마, 나 안 그래도 1월에 한국에 가는데 가면 안 올 꺼야.”

“그래, 가서 당신 가족들 옆에서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아봐!”

“걱정 마, 내 가족 옆에서 잘 먹고 잘 살 꺼야. 혹여 내가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온다고 해도 다른 집 얻어서 살꺼니까 걱정하지 마, 이제는 혼인증명서 없이도 연장이 되는 비자여서 나 혼자 여기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부부의 대화는 거의 “막가파“입니다.

 

살아온 기간이 있으니 이렇게 싸워도 나중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서로 “미안해”하면서 끝내지만, 매번 마눌이 상처받는 말은 남편의 “그러려면 네 가족이 있는 한국 가!”입니다.

 

오늘은 남편의 말을 생각 해 봤습니다.

남편이 말한 “네 가족”은 다 한국에 있죠.

 

내가 여기서 “내 가족”이라고 믿고 살고 있는 건 다 남편의 가족입니다.

남편이 있어 “내 가족”이 되는 나에게는 “시”자가 붙은 가족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가족”이라고 믿고 살아온 이곳의 가족인데..

오늘은 남편의 “네 가족”에 다시 한 번 나에게 "가족“이란 의미를 한 번 생각 해 봤습니다.

 

이곳에 있는 “내 가족”속에 나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습니다.

며느리는 딸이랑 다르니 권리 대신해 해야 할 의무만 있죠.

 

남편의 장난이 심한지라 우리 집에서는 제 비명이 끊이질 않습니다.

장난으로 때리지만 나는 아플 때도 있고.

 

중요한건.. 옆집에서는 매일 비명소리를 듣죠.

옆집에서야 “장난인지 정말 때리는지”알 길이 없는 비명소리죠.

 

전에 시어머니께 농담 삼아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증언을 서야한다면 매일 비명소리를 듣는다고 해 주실꺼예요?”

“나는 아무 말 안 할 꺼다.”

 

엄마의 말인 즉은 “내 아들이 설령 때렸다고 해도 나는 내 아들을 신고하지 않는다.“이었습니다.

 

며느리 편은 절대 되어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주에 없습니다.

 

이래저래 믿고 사는 사람은 남편뿐인 국제결혼이니..

시댁식구들은 사실 나에게는 그리 중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편이 없다면 나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볼 사람들이니 말이죠.

 

오늘 남편의 말 한마디에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남편의 가족은 절대 내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어떤 일을 했건 간에 무조건 품어주고 내 편이 되어줄 내 가족은 여기 없습니다.

이곳은 “내 가족 코스프레”를 한 ”네(남편) 가족“만 있을 뿐입니다.

 

결혼생활 12년으로 넘어가고 있는 2018년을 1주일 남긴 날.

시댁식구는 절대 “내 가족”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임을 알았습니다.

 

이런 현실을 깨닫게 해준 오늘이 있어 다행입니다.

나는 진심을 다해도 내가 (시)가족들에게 느끼는 “섭섭함”의 이유를 알았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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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12.25 00:00

 

 

시부모님을 모시고 갔던 체코의 체스케부데요비체 나들이 길에서

오랜 시간 헐벗어가면서 제 곁을 지켜줬던 디카를 읽어버렸습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들을 찍은 기억은 나는데..

도착해서 거리를 걷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디카가 없습니다.

 

차 안에서 사용하고 무릎위에 디카를 올려놨었는데..

주차장에 도착해서 급하게 내릴 때 떨어졌던 것인지!

 

새 카메라를 사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겉모양은 조금 안쓰럽지만 아직도 사진 잘 찍는 디카라, 버릴 생각은 죽어도 없었습니다.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2070

벌거숭이 내 디카

 

작고 앙증맞아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부담이 없었는디..

 

잃어버리고 나니 카메라보다 그 안에 있는 메모리 카드가 더 신경이 쓰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람의 나의 사진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그리 유괘하지는 않습니다.

 

메모리카드 안에는 2012~2014년 뉴질랜드에서 찍은 사진들도 왕창 있는데...

 

차안에 떨어졌나 싶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 내 친구,

벌거숭이 디카.

 

기능은 휼룡한 디카인데, 외장은 상품가치를 오래 전에 상실한 녀석.

이 녀석을 주운 사람도 어디다 팔지는 못할 비주얼인디..^^;

 

체코의 체스케부데요비체의 주차장에서 분실했다면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주었을 텐데.. 체코 사람의 민족성도 모르면서 잠시 비현실적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 디카를 주운 누군가가 나에게 연락을 해올지도 모른다.

 

이름이나 주소도 없는 디카인데, 어떻게 주인을 찾냐구요?

제가 이곳의 신문에서 아주 많이 보는 기사들이 꽤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캡처

 

이곳 신문에서도 주운 물건의 주인을 찾는다는 기사들을 자주 봅니다.

주운 것을 자기가 챙기지 않고, 그것의 주인을 찾아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원에서 반지를 주었는데, 결혼반지로 예상되어 주인을 찾는다는 페이스북의 포스팅.

 

그런 페이스북의 포스팅도 올라오는걸 몇 번 봤습니다. 이런 포스팅을 몇 번 보다보니 내 디카도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에게 올지로 모른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디카를 주었는데, 팔아먹지는 못할 비주얼이고 안에 들어있는 메모리카드에서 사진이 왕창.

팔지도 못하니 주인을 찾아주는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기회가 남게 되죠.^^

 

디카를 주운 사람은 메모리카드의 사진중 몇 개를 체코의 페이스북에 포스팅합니다.

 

디카를 주었는데, 그 안에 이런 사진들이 있었다. 이 사진을 주위에 퍼서 널리 알려라. 그렇게 되면 주인을 찾을 수 있지도 모르니..

 

그렇게 사람을 통해서 여기저기 퍼진 사진들을 내 주위의 사람들이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물론 이건 제 상상속의 시나리오입니다.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고 그냥 지나치거나. 돈을 주어도 경찰서로 바로 가져가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가는 나중에 벌금을 내야하는 오스트리아는 주운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이 많지만...

 

체코는 거리에서 주운 돈은 당연히 내 주머니행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누군가 잃은 물건을 내가 주어서 잘 쓰면 되지!하는 생각을 가진 문화일수도 있고!!

 

이래저래 나에게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한 내 디카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어느 날 내 벌거숭이 디카가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잃어버린 디카를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디카를 열심히 물색 중입니다.

 

내가 쓰던 캐논 디카는 남편에게 2012년에 선물 받은 것으로 6년이나 지난 제품임에도 인터넷에 검색 해 보니 지금도 6년 전 제품 가격과 비슷한 가격에 신제품이 판매중입니다.

 

원래 가전제품을 매년 새 제품이 나오고 그렇게 되면 나온 지 오래된 제품은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정상이건만, 디카시장에서 만은 그것이 예외인 것인지..

 

 

인터넷에서 캡처

 

한국의 사이트에서 디카를 검색하다 발견한 모델.

캐논 파워샷 N2.

 

여행 중에는 디카를 목에 걸고 다니는지라 최대한 가벼워야 하는데, 이 제품은 모니터를 펼 수도 있어서 한번쯤 사용해보고 싶기는 한데, 출시된 지 몇 년이 된 제품임에도 신제품은 25만 원 이상, 중고는 15만 원 선에 거래가 되는데, 그나마 중고로 나와도 금방 팔리는 모양입니다.

 

작다고 하니 갖고 싶었는데, 출시된 지 몇 년 된 것을 비싸게 신제품 가격으로 사고 싶지는 않고, 중고로 한번쯤 사용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중고는 구하기 힘들고...

 

 

페이스북에서 캡처

 

요새 페이스북에 생긴 중고시장에 디카를 찾다가 발견한 모델.

내가 전에 쓰던 캐논 익서스 hs 200의 자매모델인 hs230.

 

보라색이 심하게 튀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무시가 가능한 것이 금액이죠.

착한 금액 50유로에 내 마음이 훅~ 갔습니다.^^

 

전에 쓰던 디카와 같은 종류이니 디카 배터리도 호환이 될 거 같아서 이것으로 구입할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주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페이스북 중고장터를 이용해서 지난번에 배낭을 한번 사봤었죠.

배낭을 직접 만나서 직거래도 한지라 돈을 떼이는 일은 없었는데..

 

이 디카는 다른 지역 사람인지라 사게 되면 돈을 송금하고 디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돈을 먼저 송금하고 나중에 디카를 받아야 하는데, 물건이 제대로 오려는지...

 

페이스북에 자기 얼굴이 고스란히 나오는 사람들이라 웬만하면 사기는 안칠 거 같은데,

모르죠! 사기를 치려고 작정하면 가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수도 있는 법이니..

 

중고 디카를 살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잃어버린 디카가 저를 찾아 올지도 상상을 하면서 보내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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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12.1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