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이 살고 있는 유럽.


유럽의 한복판인 오스트리아에서 나는 우리나라에서나 

느낄 법한 인정을 시시때때로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고!”


나라마다 문화와 언어는 다르지만,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어떤 이는 인색하고, 어떤 이는 너그럽고, 어떤 이는 마음이 따뜻하고

그런 사람들 중에 이번에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23일간의 와이너리 지역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잠시 사과를 사러 갔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남부인 Steiermark 슈타이어마르크(슈타이어막)주는 

유명한 상품이 2가지 있는데

하나는 아랍국가에서 대부분을 수입해 간다는 호박씨 오일.

또 하나는 바로 사과!

한국에서도 사과하면 떠오르는 지역이 몇 군데 있죠.

오스트리아도 슈타이어막하면 바로 사과가 나옵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당에서 

일을 하시는 시아버지께 여쭤봤습니다.


아빠, 올 때 호박씨 오일 사다 드리냐고 엄마한테 여쭤보세요.”


집안에 계신 엄마께 아빠가 호박씨 오일이야기를 하시니 

시어머니가 나오셔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올 때 사과도 좀 사다 다오!”


지금까지 우리가 슈타이어막에서 사과를 사온 적은 없었는데..


사실 슈퍼에서 파는 사과들의 생산지가 슈타이어막 이어서 

굳이 사과를 사올 필요는 없는데!


 

일단 엄마가 사과를 사다 달라고 하시니 여쭤봤습니다.


얼마나 사올까요? 5kg? 아님 더 사올까요?”

그냥 두어 개만 사다 다오!”


대놓고 몇 kg라고 말을 하시면 더 쉬운데.. 

절대 본심을 내놓으시지 않으시니 대충 내 맘대로 2~3kg로 결정!


호박씨 오일이야 아무 가게나 들어가면 살 수 있지만

사실 사과는 아무데서나 살 수는 없습니다.




슈타이어막까지 갔는데 2kg짜리 포장된 

슈퍼마켓 사과를 사다 드릴 수는 없고!


일반 슈퍼가 아닌 가게는 보통 저녁 6시면 문을 닫아버리니 

시간이 늦어버리면 사고 싶어서 사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죠.


23일간의 여행


그라츠에 사는 친구 집에서 하루를 더 머물면 조금 더 여유가 있었을 텐데.. 


혹시나 싶어서 침낭에 매트리스까지 챙겨갔지만 자기가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집에서 자는 것은 힘들겠다는 친구.


그래서 23일의 여정을 마치고 

저녁에 다시 린츠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


예상대로 일정은 오후5시가 넘은 시간에 끝이 났고

린츠로 돌아오는 길에 사과를 사야 하는데...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문을 연 가게를 찾아야 하는 상황!


시간이 늦어서 사과를 못 산다는 나의 독촉에 

남편이 뱉은 한마디.


걱정 마! 거기는 오후 8시까지 영업을 한데.”

 




일단 저녁까지 영업을 한다니 일단 그곳으로 가기로 했죠.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로, 달랑 주소 하나만 들고 

가는 길이라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엄마가 일부러 부탁을 하신 건데

농장까지 찾아갔는데 이미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사과가 우리가 생각한 품질이 아니면 어쩌나?


네비게이션에 주소만 치고 가는데..

 가는 길은 구불구불.


날씨까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굽이굽이 산길로만 달렸죠.


남편은 도대체 어떤 과수원을 찾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습니다.


날은 어둡고, 초행 길인데 길은 구불구불


운전하는 것도 버거운 남편이라 길만 보고 초집중하면 

마눌이 물어도 대답은 들을 수 없거든요.

 

단지 운전하고 가면서 남편은 이 한마디만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운전해서 가는데 사과가 형편없으면 안되는데..”





우리가 찾아간 곳은 내가 생각한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주소지에는 철문이 있고

그 안에서 사과 상자를 옮기시는 노부부


두분 다 너무 연로하셔서 두 분이 함께 드셔야 

사과 상자를 옮기실 수 있으셨죠.


아무리 봐도 가게는 안 보이지만

일단 철문 안의 두 분께 사과를 사러 왔노라고 하니 


철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들어가니 할매랑 사과 상자를 내리던 

작업을 하시던 할배가 우리를 사과가 있는 곳으로 안내 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남편과 대화 시작!


처음에는 할배가 일하시기 싫으셔서 그러시나? “했습니다.


트랙터에서 사과 상자를 할매랑 내리셨는데

할배가 이렇게 들어가 버리시면 할매 혼자는 작업이 불가능하거든요.


처음에는 밖에서 할매가 할배를 부르시는 소리가 몇 번 들렸지만

할배는 정말 안 들리시는 것인지, 아님 안 들리시는 척 하신 것인지 

남편과 계속 대화중!


처음 본 우리에게 당신이 파킨슨 병이라 손을 떤다고 하신 할배

그런 할배께 내 마누라가 요양원에 일한다.”고 한 남편.


처음 만난 과수원 주인과 사과 사러 온 손님인데

사과를 사고 파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화를 하시는 두 남자분!




할배는 남편에게 가게 옆에 딸린 사과를 구분하는 공간도 데리고 가서는 보여주시고

나오시면서 커다란 사과를 2개 가지고 오셨습니다.


가게 안의 사과를 보니 적당한 크기의 사과가 1등품이고

너무 큰 것들도 2등품으로 분류를 하던데..


할배가 주신 커다란 사과 2개를 저울에 

올리면 1kg는 나올만한 크기


이것이 2등품이라고 해도 돈 주고 사려면 1유로를 내야 하는데,


할배는 늦은 저녁에 사과를 사러 온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주신다고 

(파킨슨이라) 손을 떠시면서도 사과를 챙겨 오셨습니다.


아무리 사과가 많이 나는 과수원이라고 해도 

이렇게 큰 사과를 아무에게나 선물로 주지는 않을 텐데


할배는 남편이 맘에 들었던 것일까요?


할배가 너무 연로하시고 중얼거리듯이 말씀하셔서 

내가 알아듣기는 조금 힘든 독일어였지만


남편과는 끊임없이 대화를 하셨습니다.


남편이 내 마누라는 한국 사람이다.”했더니만 

북한의 독재자이야기를 하시는 할배!


보통 파킨슨은 치매로 이어지는데, 할배는 아직 정신도 또렷하시고

남편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셨는데 



남편도 할배가 박식하다고 하더라구요.


할배가 운영하시는 과수원에 딸린 가게는 

무인 가게여서 평소에는 사람이 없는데..


할배는 간만에 만난 사람에 좋으셨는지 

우리가 물건을 고를 시간도 안 주시고 


남편과 대화를 하셨죠.


할배는 남편이 대화를 오래 해 줘서 사과를 주신 건 아닙니다


사과는 우리가 가게 안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서 가지고 오셨었거든요.


우리가 과일을 얼마나 살지도 모르면서 

일단 선물로 챙겨 오신 사과 2


과일을 많이 산다고 주는 건 덤인데, 이건 덤도 아니고!


물론 우리가 사과를 조금 많이 사기는 했지만

럽의 문화가 많이 샀다고 깎아주거나 덤을 주는 문화는 아닙니다.


할배는 날씨도 어두워지는데 그 구석까지 

사과를 사러 온 관광객이 고마웠던 것일까요


아님 남편이 할배가 하시는 말씀을 들어드리고 

대화를 해 주니 답례를 하신 걸까요?


남편은 이곳에서 산 사과도 만족스럽고, 할배와의 대화도 좋았고

거기에 커다란 사과를 2개나 선물로 챙겨주신 

할배가 계신 이곳이 맘에 들었다고 합니다.



다음 번에 다시 그라츠로 가게 되면 다시 

또 이곳에 들려서 저렴하게 사과를 사올 거라고 하네요.


할배가 워낙 연로하셔서 우리가 내년에 가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계셨음 좋겠습니다.


그라츠에 사시는 분들은 추천 해 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최상품의 사과들이 kg1,50유로, 2등품이 kg1유로.


주스나 쨈등을 만들 용도라면 kg30센트/50센트짜리 사과도 있고

저렴하다고 해도 과수원에서 바로 딴 사과들이라 다 싱싱하다는 것!


인터넷에 찾아보니 사과뿐 아니라, 복숭아, 체리등 

다양한 과일들이 철마다 나오는 모양입니다.


다음 번에는 어떤 계절에 그라츠를 가던 이곳을 들리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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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오늘의 이야기 속 그 사과를 사던 현장입니다.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9. 00:00
  • 비엔나코피 2020.10.29 06:53 ADDR EDIT/DEL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자전거로 달리던 들판으로 남편과 간만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남편이 재택 근무를 하면서 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자전거를 타러 나가거나 친구랑 테니스를 치기도 했었는데..


며칠씩 비가 오면 그런 활동은 불가능.


보통 출 퇴근할 때는 퇴근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저녁 10시를 넘기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재택 근무를 하면서 남편이 자정까지 앉아서 일하는 날들이 늘어갑니다.


아침 8시경에 책상에 앉으면 자정까지 

그 자리 그래도 앉아서는 동료들과 인터넷 전화로 그룹 통화를 하기도 하고

거기서 고쳐야 할 부분은 수정을 해서 또 통화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니 

남편의 건강이 걱정스러운 지경.


나야 근무를 하면 하루 10시간을 하루 종일 움직이고 다니니 운동량 충분하고!


집에 있는 날도 2층의 주방에서 1층의 남편에게 간식이나 점심을 갖다 나르고

장 보러 가기도 하는 등, 최소한의 활동은 하고 있지만 ...


며칠 씩 하루 종일 앉아만 있는 남편이 걱정되어 내가 제한한 것은 산책!




마당에 내놓은 홈트레이너 자전거를 30분 정도 타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비가 오는 날은 지붕 있는 마당에 앉아서 홈트레이너 자전거를 30분 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또 운동량도 걷는 것보다는 더 될 테니 좋겠지만!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는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상쾌한 가을 바람이죠


그래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운동량 보다는 

온몸 운동에 좋은 산책을 제한했습니다.


남편의 성격상 마눌이 뭐 하잔다고 한 번에 OK하는 성격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쇠뇌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남편, 하루에 1시간 정도 산책을 가자.”

?”

당신 하루 종일 앉아만 있잖아. 그러니 운동을 해야지.”

그럼 밖에서 자전거 타면 되잖아.”

그건 비 오는 날 하고, 비가 안 오면 저녁에 나랑 산책 가자.”

“……”


그렇게 며칠 남편과 비슷한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 말미의 남편의 말은 항상 같았죠.


그럼 내일 하자.”



평소 같으면 이 말에 버력 화를 냈을 겁니다.


남자가 왜 그러니? 한번 뱉은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기다렸습니다


재택 근무를 하면서 남편이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 퇴근을 했다면 자정까지 일한 것에 대한 수당을 받겠지만

재택 근무에서는 자정까지 일해도 나오는 수당이 없습니다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자정까지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죠.


오죽했으면 자정까지 일을 할까 하는 마음에 산책을 가자고 제안은 했지만

남편이 나설 때까지 그냥 제안을 하고 기다렸습니다.


운동량의 부족은 나보다 본인이 더 잘 알 테니 말이죠.





그렇게 산책 가자를 며칠 했더니만 

남편이 드디어 산책을 나섰습니다.


날씨가 어둑해질 무렵에 평소에는 자전거로만 달렸던 길을 걸었죠

간만에 가을 바람을 코끝으로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간만에 나가는 들판이라 액션캠을 가지고 갈까 했었지만

이미 어둑해지는 시간이어서 다음 번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그저 걸으면서 가을도 느끼고, 또 바람도 느끼고!


홈트레이너에 앉아서 미친듯이 자전거를 타는 것 보다야 

운동량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걷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온몸 운동이죠.


그렇게 남편과 들판을 걸으면서도 쇠뇌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밖에 나오니까 좋지? 우리 내일부터 매일 한 시간씩 걷자!”


물론 비가 오는 날은 밖으로 못 나올 수도 있겠지만


비가 와도 우비를 입거나 우선을 챙겨 들고 

걸을 수는 있으니 일단 쇠뇌 교육은 진행중~


간 만에 나온 들판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자전거 타고 달릴 때 봤었던 대마초 밭은 대마초는 얼마나 더 자라는지 보고 싶었는데

간만에 가본 들판에 대마초는 흔적이 없어진 상태.


호박 밭에 추수를 다 끝내서 밭 언저리에 다 문드러진 호박 하나가 

그곳이 호박 밭이었음을 알려줬죠.



여기서 잠깐!

오스트리아의 특산물 중에 호박씨 오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이 오일이 

남성들의 전립선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죠.

오스트리아에서 심은 호박은 호박씨 오일 용이라 

밭에서 호박의 씨만 추출합니다


그래서 가을의 호박 밭을 보면 호박들만 고랑을 따라서 따 놨다가 

기계가 지나가면서 호박씨만 추출하고 호박들은 다시 밭에 다 버려버리죠.

아까운 호박들을 왜 버리나 싶지만


필요한 것은 씨뿐이라 나머지 호박들은 다 으깨서 

밭의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가끔 추수가 끝난 밭 언저리에 멀쩡한 (쪼맨한) 호박들이 있는 경우도 있죠


그런 것을 만나며 주어와야지..했었는데 

아직까지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을 들판에는 생각보다 주어올만한 것들이 꽤 있었죠.^^




이런 걸 주어올 줄 알았다면 비닐 봉투나 장바구니를 하나 가지고 갈 것을..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라 두 손만 채웠습니다.^^


추수가 끝난 옥수수 밭을 지나면서 주운 것은 작은 옥수수

유럽의 들판에서 보는 옥수수는 사람 용이 아니라 사료 용이죠.


그래서 옥수수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기계가 지나가면서 옥수수를 통째로 갈아버리죠


기계가 뱉어낸 것인지 아예 기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옥수수가 보여서 주어 왔습니다.


꾸미는 것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는 아낙이지만

남편이 자연에서 주어 오는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 가을용 데코로 챙겼죠.^^


그리고 배나무 아래를 지나칠 때는 나무 아래 떨어진 배를 주었습니다


밭 옆으로 난 길가에 서있던 커다란 배나무는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 

그냥 야생 배처럼 작은 크기죠.


떨어진 것 중에 멀쩡한 것으로 2개만 주었습니다

달랑 손이 2개라 더 주어 올 수도 없었죠.


그렇게 걷다가 만나게 된 것은 추수가 끝난 사탕무 밭 언저리에서 뒹굴던 사탕무.


내 눈에는 순무로 보이지만 

이곳의 들판에서 흔하게 보는 것이 바로 사탕무


사탕수수는 들어봤어도 사탕무는 처음이라 나에게는 신기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많이 심는 작물인 모양입니다.


어떻게 무에서 설탕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어봤었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남편인 데도 저는 매번 묻습니다.^^


사탕무를 끓여서 설탕을 추출할 걸?”


어쨌거나 몰라가 아닌 대답이라 만족^^





남편은 사탕 무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순무처럼 보여서 일단 챙겼습니다

이것을 맛보면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순무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죠.^^


산책하면서 마눌이 이런 것을 주울 때 남편은 구경만 합니다.


옥수수는 데코용으로 주웠고

야생 배는 당근 먹으려고! 사탕 무인지 순무인지는 궁금해서 챙겼습니다

정말로 설탕을 추출할 정도로 단맛이 나는지도 봐야죠.^^


산책하는 1시간동안 주운 것은 세가지 종류지만 

눈에 띈 것은 더 많았답니다.


밭은 놀릴 목적인지 아님 사료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끼풀 같은 것이 자라는 곳도 많은데 거기서 내가 본 것은 무청.


무청이 눈에 밟힌다고 남의 밭을 마구 들어가면 안되죠


하얀 꽃, 노란 꽃이 달린 무청들을 보면서 

저거 갖다가 말리면 시래기로 왔다인데 하면서 아쉬워했는데


비포장 도로 옆의 밭 언저리까지 나와서 자라고 있는 무도 봤습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 밭에서 날아온 씨앗인 듯 한데

무가 자라는 언저리의 밭은 추수가 다 끝난 허허벌판이라 

이곳의 무청은 잘라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간만의 산책에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고 나니 

더 자주 나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죠.


집에서 가까운 가을 들판이라고 해도 혼자 나다니는 건 

남편도 별로 권하지 않고, 나 또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죠.


허허벌판에서 뭔 일이 일어나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도 있고

또 숲을 지나가는 것도 별로 안전하지도 않고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들판 길 산책.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추수가 끝난 밭 언저리에서 사탕무 3형제를 만났습니다


내 손에는 이미 사탕무랑 옥수수 

그리고 배까지 2개라 더 이상 주어 갈 수가 없는디..


남편에게 배와 옥수수를 주면서 들고 있어봐!”


그리곤 사탕무를 하나 더 주어서 두 손에 하 나씩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잠깐 들고 있으라고 하는 줄 알고 들었던 남편은 

옥수수와 배를 집까지 군소리 없이 배달했죠.^^



주어온 사탕 무 2개는 처마 밑에 잘 모셔 놨습니다


3일 연달아 근무하는 중이라 시간도 없어서 

근무가 없는 날 사탕무를 분해해볼 생각입니다.


사탕 무는 도대체 어떤 맛이 나는지

내 눈에는 순무로 보였는데 정말로 순무가 맞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깍두기나 무 피클로 만들어볼 예정입니다.


근무가 없는 날 남편과 하게 될 

들판 산책에 은근 기대가 됩니다.


장바구니를 가져갈지

아님 작은 배낭을 메고 산책을 나설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무청을 베어 올 수 있게 작은 칼 하나는 챙길 예정입니다.

정말 신나는 가을이고, 기대되는 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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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오늘 산책 같은 들판 영상입니다.


생각 해 보니 전기자전거 테스트로 달렸던 들판이 

올해 마지막 달렸던 들판이었네요.^^




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7. 00:00
  •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까 2020.10.27 10:20 신고 ADDR EDIT/DEL REPLY

    사탕무.? 본적 먹어본 적 없어서 궁금합니다.

  • Favicon of https://maru1217.tistory.com BlogIcon 핑크 봉봉 2020.10.27 13:26 신고 ADDR EDIT/DEL REPLY

    뭔가 수확한다는 것은 정말 기쁠것 같아요 ^^

  • 호호맘 2020.10.27 15:25 ADDR EDIT/DEL REPLY

    안그래도 지금쯤에 호두 주워 모은얘기 밤 주운 애기가 있어야 또 가을이
    오고 있구나 할텐데 지니님 드디어 많은것을 채집 하셨군요.
    남편분도 이제 들판 채집에 잔소리 안하시는걸 보니 그동안 지니님한테 많이 보고 배운게
    효과가 있나 봅니다 ㅎ ㅎ
    엊그제 주말엔 지니님 지난 뉴질랜드 이야기를 들어가 몇편 읽었더랬습니다.
    조개를 줍고, 홍합을 따서 요리를 하고 . 무서운 파도 이야기 . 눈부셨던 조개 껍질 해변 .
    잡은날 저녁으로 구워 드셨던 파란 물고기.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던
    해변들 이야기에 한참 빠져 있더랬습니다.


    .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7 17:14 신고 EDIT/DEL

      뉴질랜드의 북섬 끝에 가셨었군요.^^ 우리가 다시 뉴질랜드에 가면 다시 가고 싶은 곳중에 한 곳입니다. 지난 8월에 비행기가 캔슬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뉴질랜드의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냈지 싶은데요.^^

      짧게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곳이지만, 뉴질랜드에 가면 내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중 열손가락 안에 우선순위에 드는 곳이랍니다. 호호맘님도 그곳의 풍경을 보시면서 힐링하셨길 바래요.^^



얼마 전에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사실 친구라고 해도 그녀를 만난 시간보다 

만나지 못한 시간이 더 길었죠.


내가 그라츠를 떠난 것이 2012년이니 

그때 이후로 보질 못 했었네요


내가 오스트리아로 다시 돌아온 것이2014


우리는 린츠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그녀의 소식은 

페이스북으로 접하고, 가끔 문자나 전화 정도만 했었죠.


어떻게 보면 타인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구” 라고 우길 수 있는 건

내가 그녀의 사정을 남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정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남편 이야기나

자기 형제들 이야기와 엄마 이야기


들어도 좋은 이야기 보다는 네 엄마는 왜 그러시니?” 

혹은 네 동생은 쫌 너무 한 거 같다.”


조금은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아무에게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친구 기능이니 나는 그녀에게 친구가 맞았던 거 같습니다.




뜻밖에 접한 그녀의 사망 소식


그리고 불행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무거웠고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한 내 친구, 죽을 때까지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만 하다가 간 것은 아닌지..”


다음날 또 근무가 있어서 일찍 자겠다고 마눌이 침대에 누었는데..

울고 있으니 남편이 마눌의 머리를 쓰담쓰담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지만


남편은 천냥 대신에 (마눌에게

천대를 맞을 수 있는 언변의 소유자.


말로는 마눌에게 절대 위안을 못 주는 걸 아는 

남편이 선택한 방법은 그냥 조용히 마눌을 쓰다듬어 주기.


내 친구가 죽었다는 말을 하니 남편도 조금은 놀란 듯 했었죠


남편이 내 친구를 만난 적은 없지만

마눌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던 친구.


그녀의 불행했던 결혼과 남편의 양아버지 24시간 간병일

그리고 대장암과 나중에 전이된 암들까지


(마눌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던) 친구가 죽었다고 하니 

마눌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죠.




남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마눌이 우울입니다


마눌이 말을 안 하기 시작하면 눈에 띄게 

어색한 눈빛과 행동으로 마눌의 눈치를 살피는데..


남편이 바로 그 행동을 하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서 우는 마눌의 머리를 쓰담 쓰담하면서 

남편은 최선을 다해서 온몸으로 마눌을 위로 했습니다.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볼을 쓰다듬고

마눌이 눈물을 멈추고 이제는 잠자려고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니 


이번에는 마눌의 손을 꼭 잡아 줍니다.


평소에는 마눌이 손 잡자고 해도 마눌 손을 냅다 갖다 버리는 인간형인데

마눌이 남편의 손이 귀찮다고 저리 치우라고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마눌의 손을 잡아줍니다.


저는 그렇게 그날 저녁에 남편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남편은 왕 친절 모드”.


그녀의 장례식은 근무가 있어서 못 가지만

그 다음날 그녀의 유해를 모신다는 그녀의 집에 가고 싶다는 뜻을 비추니 


처음에는 안 된다 고 결사 반대하더니만 

나중에는 당신이 가고 싶으면 같이 가 줄게!”로 많이 양보했습니다.




남편이 가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밖에 나가는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도 이왕이면 안 가면 좋은 시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던 거죠.


남편 딴에는 마눌의 건강을 생각해서 완강하게 반대를 했었는데.. 

나중에는 내가 원하면 자신이 그라츠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라츠까지 왕복하면 4~5시간이 걸리는 거리


재택 근무로 일을 해야 하는 남편이 

하루 휴무를 내고 마눌을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거죠.


장례식은 중계 영상으로 이미 봤고

그 다음날 유해가 모신 집까지 찾아가 봤자


나는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나라 사람들만 있을 테니 

남편까지 고생 시키고 싶지 않아서 안 가기로 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마음속으로 떠나는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고

이런 내 마음이 친구에게도 전해졌다고 믿기로 했죠.


그리고 친구의 죽음으로 삶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지..”에 대한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느라 며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근무를 하는 날은 근무를 가서 평상시처럼 행동했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의 죽음이나 

내 기분을 알릴 필요는 없으니 그저 근무만 열심히!


어르신들 사이에서 많이 웃고, 

평소처럼 유쾌한 직원으로 하루를!


마눌의 우울 모드가 며칠 진행되니 

남편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합니다


평소에는 마눌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틈만 나면 마눌 머리 끝에 올라가서 대장 노릇을 하려는 남편이 


마눌이 우울한 며칠 동안 

납작 엎드려서는 마눌의 눈치를 봅니다.


평소에 큰소리 치고,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하려는 독재자 모드의 남편이 

갑자기 비굴 모드로 전환하니 내가 보기도 애처러운 상황.


틈만 나면 마눌 옆에 와서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고, 머리에도 뽀뽀를 하고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애정 표현이 총 출동했습니다.



그리곤 마눌이 말을 할 수 있게 자리를 깔기 시작했죠.


남미 출신 아낙M이 친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친구의 마지막 상황을 알거 같다


하니 하니 빨리 M에게 연락을 해 보라도 재촉도 하고!


M과의 오랜 시간 통화를 하고 나니 얼른 쫓아와서는 

친구의 마지막은 어땠는지 물어 봐주고!


친구의 남편은 전과 변함없이 자기는 

양아버지네 집에서 24시간 간병인과 함께 살았고


친구는 혼자 남편의 집에서 살았었다는 

이야기에는 혀를 차기도 하고!


이 부분에서 남편에게 쐐기를 박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같이 결혼 때문에 집에서 멀리 나와있는 사람들은 남편이 가족의 전부야

남편이 잘해야 시댁 식구도 예쁘게 보이는 거지


남편은 개떡 같은데 시부모님이 잘해줘 봐야 

그건 10~20%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러니 남편이 잘해야 하는 거지.”

알지


남편이 정말 뭘 알아서 안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눌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고



또 마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위로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요 며칠 시간 날 때마다 남편은 말없이 마눌의 머리를

뺨을 쓰다듬어 주고, 손도 잡아주고, 안아 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무언의 위로를 했으니 말이죠.


친구는 외롭게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떠났으니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운 마음은 담아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내 눈치 보느라 가재미 눈이 되어가고 있는 남편에게도 

다시 살기 발랄한 마눌을 보여줘야 할 거 같습니다


남편이 다시 마눌 머리 끝에 

올라앉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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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5. 00:00
  • 지니님매력에푹빠진 2020.10.25 07:55 ADDR EDIT/DEL REPLY

    마눌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현명한 남편이십니다
    이젠 지니님이 아무리 남편 흉을 봐도 그의 지니님 사랑을 절대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 호호맘 2020.10.25 08:41 ADDR EDIT/DEL REPLY

    지니님 남편분 은근 귀여우세요ㅎㅎ
    타인을 위로하거나 마음을 달래주는 방법을 세련되게 하지는 못 하지만
    마누라 마음이 아플까봐 전전긍긍하고 계시는 그 모습이 남편의 진심아니겠어요.
    지니님이 먼 타국에서 기대고 살아갈 유일한 버팀목인 남편인데 이제 그만
    친구분 상실감을 털고 두분이 행복한 일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갈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겠어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3 신고 EDIT/DEL

      네. 마눌이 집에 있으면 근무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궁시렁 대고, 마눌이 근무하고 퇴근해서는 "근무를 더 할까?" 하면 됐다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죠. 매번 이야기가 달라지는 남편입니다. ㅋㅋㅋㅋ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25 18:48 신고 ADDR EDIT/DEL REPLY

    남편분의 마음도 알거 같습니다!
    자신은 없는데 남편분은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니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독단적인 면은 저도 있고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6 신고 EDIT/DEL

      마눌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어르고, 빰치고 하는 능력이 탁월하기는 한데, 마눌의 기분을 우울하면 눈에 띄게 반응하는 남편을 보면 말씀대로 마눌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거 같아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6 신고 EDIT/DEL

      마눌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어르고, 빰치고 하는 능력이 탁월하기는 한데, 마눌의 기분을 우울하면 눈에 띄게 반응하는 남편을 보면 말씀대로 마눌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거 같아요.^^



갑자기 듣게 된 친구의 사망 소식과 장례식.


마지막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날 오후에 근무가 있었고

하필 시간까지 겹쳐서 갈 엄두를 내지 못했죠.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장례식은 오후 3.


오후 2시에 근무가 들어가는데

장례식장은 여기서 두어 시간 떨어진 도시


미리 알았다면 근무라도 바꿔볼 시도를 하겠는데

장례식 전날 알게 된 소식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우울하기만 했었죠.


페이스북으로 친구의 장례식을 

라이브 중계하겠다고 했던 시간은 오후


내가 근무하는 시간이라 생중계도 보지 못할 줄 알았었는데..

그날 오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을 봤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려놨던 장례식 시간은 여기 시간이 아니라 

친구의 나라 시간이었나 봅니다.





장례식이 오전인 줄 알았다면 

오전에 무리해서 라도 그곳으로 갔었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출근 전인 오전에 친구의 장례식을

 화면으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은 

초반에는 66명이 보는 듯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거의 9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있었죠.


장례식 중계영상에서 본 친구의 언니

어려운 시기에 마지막 가는 동생을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왔었나 봅니다.


마지막 가는 친구가 외롭지 않게 언니까지 

와준 것이 멀리서나마 너무 감사했습니다.


라이브 영상은 장례식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하나 비춰주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도 감사했습니다.


대부분은 친구와 같은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지만

오스트리아 현지인도 보였고


마지막 가는 친구의 인생에 대해서 말해준 건

 오스트리아 사람의 독일어였죠.




오스트리아에 사는 교포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한 첫 해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을 해 봤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고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간병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2년전에 대장암을 발견하고는 투병을 했었다는 아주 짤막한 이야기.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건강 상의 이유보다는 

1년에 한 번도 잠자리를 갖지 않는 남편 때문이었고


시아버지도 남편의 아버지가 아닌 

남편의 오스트리아인 양아버지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속사정은 그냥 묻는 거죠.






이곳에 살면서 지금까지 많은 장례식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많은 근조화환이 있는 장례식은 처음 입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떠나는 친구를 위로하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비엔나에 있는 친구의 나라 대사관에서 보낸 것도 있었고

각 가정이나 개인 몇몇이 같이 돈을 모아서 만들었는지 

각자의 이름이 쓰여진 것들도 있었죠.


가는 마당에 화려한 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시겠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친구를 생각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나는 멀리 살아서 친구가 얼마나 투병을 했는지

마지막은 혹시나 외롭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장례식의 모인 사람들의 숫자와 라이브로 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을 보는 사람들

장례식에 놓여진 근조 화환들의 갯수로,

 친구를 생각 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 또 감사를 했습니다.


내 나라를 떠나서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세상에 혼자 뚝 떨어져 사는 그 느낌


어디 의지할 때도 없는데 아프면 그 외로움이 더 사무치죠.






장례식으로 바쁜 사람들에게 그녀의 마지막은 어땠는지외롭지 않았는지

많이 아파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건 너무 실례일 거 같고!


결국 생각해낸 사람은 친구를 알게 됐던 

당시 같은 독일어 코스를 다녔던 남미 출신의 아낙,M


독일어코스에서 알게 되어서 그 후에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친구만큼 자주 만나지도, 또 그리 친하지도 않았습니다.


친구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정도?


페이스북에 그녀의 사진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눌러주는 정도의 친분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죠.


M에게 몇 년 만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잘 지내냐고 친구의 갑작스런 장례식 소식에 너무 당황 했었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가게 될 줄 몰랐다고 하면서 


혹시 시간이 있으면 통화를 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니 바로 전화를 해준 M.


M은 친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때때로 자주 만났던 모양입니다

M은 친구의 마지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줍니다.


대장암으로 수술하고 항암 치료까지 받았었지만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서 또 다시 수술을 했었고

그때마다 M이 병원으로 친구의 병문안을 다녔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M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외롭지 않게 옆에서 지켜준 M이 있어서 

친구는 위안을 얻었을 테니 말이죠.






친구의 마지막에 친구의 남편은 어땠냐고 물어보니 

변함없는 태도” 였다고 하네요


남편은 아픈 친구의 마지막에도 

함께 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남편이 지켜야 했을 친구의 마지막은 

친구의 언니가 지켰다고 합니다


친구의 언니는 지난 8월에 이미 오스트리아에 도착해서는 

내내 친구와 함께였다고 하네요.


아픈 동생 병간호를 위해서 몇 달씩 자리를 

비우는 것이 가능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두바이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비엔나로 입국이 가능 했었나 봅니다.


생업을 뒤로하고 이곳까지 동생을 보러 온 언니 덕에 

친구가 가슴에 있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 편히 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번 생은 이리 힘들고, 불행했지만

다음 생에서는 더 좋은, 행복한 삶으로 태어나라고 

그녀의 언니는 떠나는 동생에게 이런 덕담을 해줬겠지요.


젊은 나이에 타국에서 외롭게 혼자 견디다가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준 

그녀의 언니가 있었다니 다행이다 싶고


그녀의 마지막이 사랑하는 언니의 

품속이었을테니 마음 한 켠이 가벼워집니다.


떠나는 그녀를 장례식에 찾아와준 사람들도 많았고

또 멀리서 라이브로 떠나는 그녀를 배웅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녀가 외롭지 않게 떠난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떠나가는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며 울어주고

다음 생에서는 더 행복하길 바란다는 사람들의 염원이 그녀에게 전해져서 


그녀도 그렇게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떠나갔길 바랍니다.


그녀의 마지막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고


또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해준 사람들이 많아서 

그 마음 하나하나를 다 가지고 친구가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나는 그녀와 멀리 살아서 아직도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인사는 독일어로  Wiedersehen 비더제엔


Wieder(비더/다시) sehen (제엔/보자)

다음에 다시 만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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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4. 00:00
  • 호호맘 2020.10.24 18:08 ADDR EDIT/DEL REPLY

    친구 장례식 영상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네요.
    멀리 이곳 한국에서도 지니님의 친구분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편안하고 좋은곳으로 가시길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5 03:16 신고 EDIT/DEL

      네. 멀리서나마 장례식을 볼수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웅을 받으며 친구가 좋은 곳으로 갔다고 믿습니다. ^^

  • Favicon of https://cheersmyvancouver.tistory.com BlogIcon cheersj 2020.10.26 06:12 신고 ADDR EDIT/DEL REPLY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몇주전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코로나때문에 한국에 가지 못했어요. 마음 너무 아프죠... 기도 열심히 해드리고 있어요. 친구분도 이렇게 생각해 주는 분들 있으니 좋은 곳에 가셨을거에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7 15:42 신고 EDIT/DEL

      시아버님도 가시면서 먼 곳에서 가슴 아파하는 며느님의 마음을 아셨을겁니다. 좋은 곳에 가셨을테니 이제는 그 마음 내려놓으셔도 좋을거 같아요. ^^



그녀의 소식을 접하려고 그랬나 봅니다

왠지 스마트폰의 페이스북을 열어보고 싶었죠.


매일 확인하는 페이스북이 아니어서 

내가 놓치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근황 들이 많이 있는데


어제 페이스북을 보다가 

내 친구의 얼굴이 보이길래 클릭 해 봤습니다.



내 친구의 사진을 게시한 것은 친구의 언니였죠

친구의 사진들 속에서 많이 보던 언니라 만난 적은 없지만 친근한 얼굴.


거기서 읽게 된 뜻밖의 소식.


친구의 장례식에 대한 안내였습니다

가끔 페이스북에 얼굴을 비치길래 잘살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작년 12월경에 그녀가 전화를 해 와서 알았던 그녀의 대장암 전이 소식.


9월 말에 그라츠 쪽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녀를 만나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녀에게 연락조차 못 했었죠.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간 만에 접하게 된 소식이 장례식이라니..


화장을 해서는 그녀의 유골을 고국으로 가지고 가려고 

그녀의 언니가 이곳에 온 모양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들이 거의 결항이라 

오스트리아 입국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 그녀의 마지막을 언니가 지켜줘서 다행이네요.


어떤 친구인지 궁금하신 분은 아래로.



내가 아는 그녀는 참 불쌍한 인생이었는데.. 


그녀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불쌍한 인생을 살다가 

간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디에 살건, 어떤 일을 하건 행복은 마음에서 오는 것인데..

내가 아는 그녀는 참 부정적이었죠.


그래도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힘들었나 봅니다삶의 끈을 놓아버린 것은 보면..


그라츠에 같은 나라 출신의 교포들도 

꽤 있어서 나름 인맥이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다 남편을 너무 좋게 보고

또 남편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친절한 천사 같은 존재라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안 믿는다 고 했었는데..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이중 인격자 같은 행동을 하는 남편 때문에 

어디에 진실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서 빈집 살다가 삶을 마감한 것은 아닌지..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일단은 멍했고

그 다음은 그녀가 불쌍했습니다.


한번 살고 가는 세상,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한 날만 살아도 짧은 것이 이번 생인데 

그녀는 행복한 날보다 힘들고 우울한 날이 더 많았죠.


요양보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자주 접하는 죽음이지만

친구의 죽음은 나에게는 달랐습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는 목숨이 어디 있겠냐마는 ..


요양원에서 80대 혹은 90대를 넘어 백살까지 바라보고 

사시던 분들이 돌아가시면 잘 가셨다.”고 했었죠.


주무시다가 가신 분들은

그래도 당신 손으로 다 하시다가 가셔셔 다행이다.”


침대에 식물인간처럼 누워서 직원들의 손에 

목숨을 연명하시던 분이 돌아가셔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의사 표현도 못하고 타인에 의해서 

연명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죠.


요양원 직원인 우리들이 말하는 가장 행복한 삶의 끝은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하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삶을 연장하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요양원에 사시는 분들이나 

일하는 직원이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거든요.

 

그렇게 지금까지 잘 된 일이다.”라고 생각했었던 죽음과는 

달리 친구의 죽음은 마음이 먹먹합니다.


이제 48살인데, 아직 환갑도 지나지 않았는데.. 

적어도 환갑까지는 살아야지 조금 덜 억울할 거 같은데.. 

누구는 죽고 싶다고 울면서도 죽지 못해서 사는 하루지만

누구는 살고 싶어도 못사는 하루!”


불행했던 그녀의 삶과

젊은 나이에 하늘로 떠나버린 친구 때문에 마음이 먹먹했는데..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한 내 친구, 죽을 때까지 그렇게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그걸 즐기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이죠


피할 수 없는데, 그 상황만 비관하고 불평하면 나만 힘들어질뿐인데..


친구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드리고 마지막을 평안하게 갔는지

아님 끝까지 자신의 불행한 삶만 생각하고 비관하다가 갔는지는 모릅니다.


그녀가 암의 합병증으로 시간이 다 된 것인지.. 


아님 면역력이 약했던 암환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이 더 짧아진 것인지 알 길이 없죠.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우울하고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끝까지 타국에서 외롭게 살다가 간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말이죠.





그렇게 그녀의 페이스북에서 그녀 언니의 페이스북으로

또 그녀 지인의 페이스북으로 옮겨가면서 

그녀의 사진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녀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가는 그녀에게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포스팅하면서 


작별 인사를 하는 그녀의 친구들이 있어 

그녀가 외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는 타국에서 만난 인연으로 된 친구지만

그녀의 고국에는 나보다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이니 

그녀에 대한 마음도 나보다는 더 진한 사람들이겠지요.

 




올해는 찾지 못했지만, 해마다 그녀의 생일을 챙겨주는 지인들이 

그라츠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나는 생일이라도 해도 누구를 초대할 사람도 없어서 

그냥 조용하게 보내는데...


나보다는 인복이 많은 친구였던 모양입니다

매년 생일을 함께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죠.


이렇게 친구의 친구를 통해가면서 그녀의 사진들을 보다 보니 

처음보다는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행하게 만 산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나보다는 더 많았으니 말이죠.

 



나에게는 그냥 동글뱅이로 보이는 그녀의 모국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번역기를 돌려봤습니다.


그리고 알았죠

그녀는 지난 13일에 이미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을.


1019일에는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다고 하는데 

그날은 근무라 힘들고!


다음날에는 그녀가 살던 집으로 유골은 모시고 

오는 모양인지, 집 주소도 있습니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마눌이 너무 우울해 하니 

내가 원하면 그라츠까지 같이 가주겠다고 하는 남편.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안 가는 것이 좋고


또 그 나라 사람들만 모였을텐데, 말도 안 통하는 그곳까지 가는 것보다는 

그냥 나는 이곳에서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지인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그녀와의 추억을 그녀에 페이스북에 업로드 했습니다.


그녀의 38번째 생일날 함께 했던 나들이.


그녀와 만난 날이 그녀의 생일이었고

같이 밥을 먹고 그라츠 근처의 성당이 있는 동네로 나들이를 갔었죠.


남편 밥을 해주러 가야 한다던 그녀에게 네 생일이라고 하루쯤 

안 챙겨도 큰일 나는 거 아니라고 했던 남편의 식사 한끼.


그날 저녁에 그녀는 남편의 한 끼를 챙기지 않는 것 에 

대한 잔소리를 한 보따리 들었다고 했었죠.


그녀의 가족들은 몰랐을 38살 그녀의 생일날 풍경을 

내 추억 속에서 꺼내 보내줬습니다.


불교가 국교인 나라 출신이니 그녀는 환생을 믿었겠지요.


죽기 전 자기가 가진 것들을 여기저기 시주 하러 다닌 그녀를 보니 

그녀도 마지막은 준비하고 있었던듯 합니다.


 

잘 가! 친구야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서 만나 서로의 외국어로 대화를 하면서 

친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생에도 만났으니 다음 생에도 만나게 되겠지.

너의 삶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줘서 고맙다


다음 생에서는 이번 생보다 더 행복하고 

사랑 받는 인생을 살게 되길 바랄께.

마지막 가면서 나까지 마음에 담고 갔을지 모를 친구

하늘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멀리서 나마 이렇게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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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 10. 21. 00:00
  • Favicon of https://cheersmyvancouver.tistory.com BlogIcon cheersj 2020.10.21 07:08 신고 ADDR EDIT/DEL REPLY

    요즘 죽음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조용히 또한번 마음을 정리하게 되네요.
    갑작스럽게 당황한 모습으로 떠나지 않도록, 아직은 젊은 시간들을 소중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
    친구분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janiceshin86.tistory.com BlogIcon jshin86 2020.10.21 12:13 신고 ADDR EDIT/DEL REPLY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gi8park.tistory.com BlogIcon 집끼끼 2020.10.25 18:36 신고 ADDR EDIT/DEL REPLY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모두 가야할 길이지만 빨리 떠난 친구분
    그 믿음대로 다음 생에는 좀더 행복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20.10.26 03:54 신고 EDIT/DEL

      각자가 가진 환경은 사실 피 한다고 피해지지 않죠. 그저 자기가 가진 환경에서 만족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 그녀도 마지막은 다 내려놓고 미련없이 이세상을 떠났기를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