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남자를 만나서
6년 롱디를 한 후에
결혼하고 17년.
나는 표현이 인색한 남자
옆에서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표현이 인색한 남편을 보면서
나는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됬죠.
엄마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아빠를 보면서
자란 아들이 뭘 배워서
자신의 아내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말을 건낼 수 있을까요?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맛있게 요리해서 차려준
음식을 드시면서
“맛있다,”,”고맙다”,
“고생했다”등의 말은
하실 줄 모르시는
독불장군이시죠.
며느리가 옆에서 아들 교육을
시켜서 매끼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아들과는 달리
시아버지는 가능한 그 말을
안하려고 노력을 하시죠.
https://jinny1970.tistory.com/1482
시아버지도 당신의 부모에게
배운 것이 없어서 그렇다는 건
이 집의 역사를 들어서
알고 있었죠.
시아버지는 십대에 페인트공으로
직업교육을 받으신 후에
20대 초반에 “페이트공 마이스터”
자격을 얻은 후 바로 작은 가게를
차려서 평생 혼자 일을
해오신 분이시라 함께 일하는
동료를 챙기시는 건
절대 모르시고, 시어머니는
두 아이를 키우시면서
혼자 일하는 페인트공 남편을
따라다니며 조수 노릇까지
하시며 사신 인생이라 두 분은
사장과 직원 같은 사이죠.
사장과 직원은 월급을
주고받는 사이이고,
사장이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시아버지도 시어머니께
고맙다고 하지 않으시는거죠.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시간제 직원으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 외에 아이들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양육비와
생활비도 받으셨다고 하니
시아버지로서는
더더욱 “고맙다” 말할
이유가 없으셨지 싶습니다.
당신은 다 지불했다고
생각하셨을 테니!
남편은 부모님 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으니 대충 19년을
보고 배운 결과인데,
성격이 딱 시아버지죠.
뭘 해줘도 “고맙다”하는
경우도 없고, 오히려 그 안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콕
골라내서 그걸로 타박을 하죠.
요새는 내가 음식을 해다주면
그자리를 떠나지 않고
남편을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뭐 잊은 거 없어?”하고
자리를 깔아주죠.
그래야 나오는 말
“고마워.”
남편이 다 먹고
빈 그릇을 가지고 오면
다시 또 빤히 쳐다봅니다.
내가 빤히 쳐다보면
남편은 마지못해
“잘 먹었다. 맛있었다.
고맙다”라고 하죠.
이것도 그동안 교육시켜서
나온 결과라 나는 흡족 하지만
꼭 뭘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이 듣고 싶을 때도 있죠.
남편은 지금까지
마눌에게 대놓고 칭찬을
한적이 없습니다.
아니 했는데
내가 기억 못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얼마전 우리의 오랜 지인인
“연상연하 커플인
T군과 E양”과 함께 했던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왔던
친구 이야기.
오스트리아
남자를 만나서 17년.
오스트리아 직업학교에서
2년동안 직업교육을 받고
직장생활 7년이면
친구 하나쯤은 만들 수
있었을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친구가 하나도 없죠.
직업학교를 다닐 때도
나보다 어린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외국인들을
왕따시켜서 나는 2년동안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며
그 시간을 보냈었고,
그후 직장에서도 마음 맞는
동료 하나 찾지 못해서
여전히 혼자죠.
그렇다고 내가 외롭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동안 당했던 설움이나
어려움은 나의 대나무 밭인
블로그에 다 털면서
살아서 나는 외롭다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죠.
친구 하나 없이도
이 땅에서 잘살고 있다는
내 이야기에 E는 내 옆에
앉아있던 남편에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테오,
네 부인은 정말 강한 여자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다 안다는 듯이 내 어깨를
툭툭 쳐줬는데, 나는 괜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너는 강한 여자”라는 그 말이
나에게는 “그동안 참 잘
버티고 살았다. 장하다.”
로 들렸죠.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 해주지 않았었죠.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내 아들과 살아줘서
고맙다” 하신 적 없고,
“네가 말도 문화도 낯선
이곳에 사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도 참 잘하고 있다.”
하시지도 않았죠.
내가 “잘 버티고 살고”있는 건
사실 내 가장 가까운 남편이나
시댁식구들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 같은데,
나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고,
일년에 한번 연중행사로
만나는 타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처음
들은 칭찬처럼 느껴져서
그 말을 해주는 E가
너무 고마웠죠.
“국제결혼”해서 외국에 살면
뭐 엄청 좋을 거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상을 사는 건 외국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고!
나와는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데다가
성격까지 다른 인간들
사이에 살다 보면 마음속에
사리도 쌓일걸?
국제결혼해서 외국에 사는
사람들을 상상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우리나라에 시집온 동남아
여성들을 상상하시면 쉽습니다.
(동남아 여성이)
한국남자를 만나서 결혼해
사는 것이 사실 팔자 핀 것은
아니고, 말도, 문화도 낯선데
아무도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죠.
엉성한 발음으로 한국어를 하면
사람들이 무시하며 대들고,
일이나 해볼까 싶어도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쉽지도 않고,
또 한국인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와도 다정하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고,
거기에 시어머니는 왜
그리 알아듣지도 못하는
잔소리를 하시는 것인지..
정말 국제결혼은 산 너머 산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너는 강한 여자다.”,
“너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거다.”
라고 해 주면 그 한마디가
지쳤던 삶을 위로하면서
다시 한번 숨을 고르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죠.
내 고향을 떠나서
남편의 나라에 사시는
세상속의 모든 한국인
아낙들에게 위로와 동시에
“당신은 지금 잘하고 있다.”는
한마디를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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