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아도 나는 한국인.
주민번호도 있고, 여권도 있고,
운전면허증도 있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가장 중요한
본인 인증은 안되는 한국인이죠.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면
한국에서 사용하는 전화번호라도
하나 사용하겠지만,
짧게 머물 때는 로밍 같은 것도
하지 않고 한국 전화번호 없이 지내죠.
한국에 지내는 동안에는
전화번호가 없으니
가족들과 연락할 때는
무선 인터넷 있는 곳에서
카톡 같은 걸 이용하죠.
한국에서는 “당근 거래”로
쉽게 사고 팔던데,
나도 한번쯤은 당근 거래를
해보고 싶어서 한국에 있을 때
시간이 날 때마다 당근 마켓을
들여다 봤습니다.
당근 마켓을 봐도
나는 로그인도 안되고,
본인 인증도 안되니 맘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언니 핸드폰으로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냈죠.
봄에 자전거 타고 다닐 때 좋을 거
같아서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고,
판매자와 만날 장소까지 정했습니다.
그리고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일찍 약속장소에 나가서
판매자를 기다렸죠.
내 단순한 생각은 판매자가
옷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가지고
나타날 테니 알아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죠.
몰랐습니다.
요새는 대놓고 “당근거래 오셨어요?”
묻지 않고 그냥 핸드폰 문자로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판매자와 문자를 주고받은
핸드폰은 언니 것이라
내가 갖고 있지 않았죠.ㅠㅠ
약속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약속한 장소를 오가는
사람들을 집중해서 봤죠.
누군가 쇼핑백 같은 걸 들고
지나가면 “저 사람인가?”싶어서
그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봤고,
조금 전에 내 앞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 다시 또 오면
“저 사람인가?”싶었죠.
약속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고,
핸드폰이 없으니 판매자와
연락할 방법도 없어 약속시간을
지나 10분 더 기다리다가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생각 해 보니
내 앞을 지나쳐 길을 건너갔던
여자가 이내 다시 길을 건너와서는
골목에 서있던 차를 타고 갔는데,
손에 작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집에 가서 보니
판매자는 언니 핸드폰으로
문자를 여러 번 보낸 후에
바로 차단을 해 버려서 변명할
기회가 사라졌습니다.ㅠㅠ
집 나가면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만 연락이 되는 나와
언니도 연락할 방법이 없었으니
나는 그야말로 “연락 불통”
마음 같아서는 “당근 오셨어요?”
물어나 보지 싶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그 마음도
이해가 됐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동대문 시장에
가는 길이라 털모자 쓰고,
등산화 신고, 제법 큰 배낭까지
메고 있었으니 나는야
그야말로 “등산객“
“등산 가려고 친구를 기다리는
중년아줌마 패션”이었으니
판매자도 설마 내가 “당근 거래”를
왔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지
싶습니다. ㅠㅠ
그렇게 나의 첫 당근 거래는
실패를 했고, 덕분에 언니의
당근 매너 점수는 깎였을껄요?
그 판매자가 내 블로그를
방문 할리도 없고, 내 글을
볼 일은 거의 없겠지만,
이번 기회에 그분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침에 약속장소로 나갈 때
언니 핸드폰으로
“약속 장소로 지금 출발한다”와
더불어 “나는 핸드폰이 없어서
집을 나서면 연락이 안된다”는
안내도 미리 했었더라면
판매자도 나도 만족한 거래를
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ㅠㅠ
내가 성공한 당근거래는
출국을 이틀 앞두고!
내가 입고 간 봄 옷은 언니에게
벗어주고 올 예정이라 입고
돌아올 패딩이 필요했는데,
마침 내 눈에 적당한 가격의
패딩이 쏙 들어옵니다.
한국에 사는 여자들은
다 날씬한 것인지 대부분은
디자인이 맘에 들어도 사이즈
때문에 선택할 수가 없었는데,
찾다 보니 넉넉한 사이즈의
패딩이 내 앞에 딱 하고 나타났죠.
패딩은 검은색 밖에 없어서
다른 색도 있었으면 했는데,
정열적인 빨간색이니 당첨.
물건을 보고는 바로 판매자에게
구매가 가능한지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 연락이 가능한)
언니와 함께 약속장소로 가서
판매자에게 물건을 받았죠.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혹시 할인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기분 좋게 천원
할인도 해 주는 판매자!
실제로 물건을 받아서
입어보니 잘 맞고, 몇 번
안 입은 옷이라 거의 새것이었죠.
약간의 문제라고 한다면 경량 패딩이
아닌 한겨울용 두툼한 패딩.
겨울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지만
공항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밤이라 약간 쌀쌀할 테니
두툼한 것도 오케이.
나는 그렇게 당근에서
성공적으로 구매한 빨간
패딩 코트를 입고 돌아왔습니다.
며느리의 모든 것을
눈여겨보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입고 온 패딩 코트가
예쁘다고 하시는걸 보니
어머니 눈에도 며느리의 패딩이
예뻐 보이나 봅니다.
며느리가 입고 온 너구리 털
장착한 패딩이 단돈 10유로라니
놀라워하시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10유로가 있다고 해도 구매 불가.
내가 처음 한 당근거래는
이렇게 성공적이었으니
나는 다음 번에도 한국에 들어가면
당근을 기웃거리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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