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를 하던 중에 전날 병원에
실려 가셨던 S 어르신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분이라
내가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되물었었죠.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으로 이송을 했는데,
병원에서도 별다른 증세는 없다고
“퇴원 시키겠다”는 연락을
해 왔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퇴원 준비를 하는 중에
어르신은 침대 위에서 의식불명이 되었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심장이 다시 뛰지 않았다는..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들었던 생각.
“이번에도 같이 사시던 분이
외롭다고 같이 가자고 하신건가?”
돌아가신 S부인은 2인실에
거주하셨던 분이시죠.
함께 사셨던 또 다른 S부인이 돌아가시고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http://jinny1970.tistory.com/3179
한 방을 사용하셨던 분들 중
한 분이 먼저 가시면, 같이 사시던 분도
가시는 경우를 몇 번 보고나니
이제는 여기 사람들도 믿는듯 합니다.
편의상 두 분의 S부인들을
S1부인과 S2부인으로 부르겠습니다.
S부인들은 두분 다 치매가 있으신 분으로
오랫동안 한방을 사용하셨습니다.
치매의 증상에 차이는 있었지만,
거의 비슷한 (치매의) 단계에 계셨죠.
함께 방을 쓰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서로를 쳐다보고 “잘자!”라는
인사를 하시기도 하고!
쳘야 근무를 하는 직원들 말을 들어보면
밤에는 컴컴한 방에서 치매 어르신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하신다고 합니다.
물론 묻는 질문에 하는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엉뚱해서 웃음이 나온다지만
일단 대화는 하신답니다.
얼마 전에는 이 두 분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었네요.
“아침 식사를 배달하고 있는데
S2부인이 S1부인한테
“커피가 너무 뜨거워서
나는 입천장을 델 뻔했어,
네 커피는 안 뜨거워?”하니
S1부인이 “나는 벌써 다 마시고
없는데?”하는 거 있지.”
아침 식사에 제공하는 커피가
따뜻한 정도이지 입천장을
델 정도는 아닌데,
그 날은 정말로 뜨거웠는지
그랬다면 S1부인은 입천장이 홀라당
다 벗겨졌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휴식시간에 치매 어르신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하면서 웃는
직원들이 있는데, 그때 나왔던 이야기죠.
어르신들의 말투까지 흉내내면
사실 조금 웃기기는 합니다.
한 방에 사셨지만 먼저 가신
S1부인은 찾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들리는 소문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지만,
요양원에서 보내는 어떠한 소식에도
반응은 하지 않았었죠.
그래서 난 몇 년 동안 S1부인의
가족(아들)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S1부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요양원 복도의 테이블에 앉으셔서
아침, 점심, 저녁을 드셨었고..
치매 증상이 심해지고,
몸이 허약해져 가면서는
점심은 당신의 지정 테이블에서 드셨지만
아침과 저녁은 침대에서 드셨죠.
그렇게 매일 매일 직원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한 방에 사셨던 S2부인은
딸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손꼽는
엄청난 효녀였죠.
세상에 “엄마와 딸”만 존재하는 듯이
그렇게 엄마에 대한 사랑은 보여줬습니다.
http://jinny1970.tistory.com/2860
내가 S2부인의 딸에서 들었던
"이 모녀의 이야기"는
“엄마가 어린 나를 데리고 재혼
(여기서는 이렇게 표현하지만 결혼은
안 했던 듯 합니다. 오랫동안 동거만 한 거죠.)
을 해서 새 아빠와 함께 살았다.
지금 생각 해 보면 S2부인은
참 복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S2부인의 동거남도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매일 요양원에 오셨었죠.
오전에는 동거남이 와서 같이
카드놀이를 하고 휠체어를 끌고
주변을 한바퀴 돈 후에 돌아가면
저녁에는 딸이 와서 2시간정도
엄마와 카드놀이를 하고 바깥으로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갔죠.
지금도 기억나는 그때의 상황.
매일 오전에는 S2부인의 동거남이
자전거를 타고 온듯한 복장으로
찾아오시곤 했었는데..
몇 주의 휴가를 마치고
다시 근무에 들어갔는데
매일 오시던 그 분이 안 오십니다.
하루 이틀은 그렇다고 쳐도
안 오시는 시간이 길어지길레 동료에게
물어봤더니만 돌아 가셨다고..
그렇게 건강하셨던 분이..
같이 살던 치매 걸린 동거녀 요양원에
보내놓고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먼저 가셨다고 해서 하늘 가는 길에
순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죠.
물론 치매 걸린 동거녀는
자신이 사랑하던 동거남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죠.
코로나로 요양원의 방문객 금지 정책이 실행되면서
S2부인의 효녀 딸은 거의 1년동안
엄마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에 전화는 자주 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엄마를 찾아오던 그 시간을
그녀는 뭘 하고 지낼까?”하는
궁금증이 나에게는 있었죠.
봄부터 다시 요양원 방문이 허용되면서
그녀도 다시 엄마를 찾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녀가 다른 보호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직원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합니다.
엄마와 산책을 나가기 전에
엄마의 기저귀를 직접 갈아주고,
엄마와의 시간을 보낸 후 집에 가기 전에는
잠옷까지 갈아 입혀서 직원의 일손을 돕죠.
자신의 엄마/남편/아빠의 기저귀를 갈아 달라고
직원을 불러 놓고는 뒤에서 팔짱 끼고
우리가 잘하는지 감시하듯이 쳐다보는
보호자와는 확실히 다른 그녀의 태도.
가끔은 자신의 엄마 외에도
외로운 다른 어르신들에게 잠깐
바깎 바람을 쐬어주는 선행도
곧 잘 하곤 했었죠.
그녀의 엄마가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그녀의 상심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를 기쁜 마음에 보내 드렸던 모양입니다.
S2 부인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그 날
늦은 오후에 효녀 딸이 이미 다녀갔다고 합니다.
대충이나마 엄마 짐
(이라고 해봐야 장롱에 있는 옷가지 정도)을
정리하러 왔다는 그녀는 직원들과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병원에 갔더니 만 요도염의 염증이
이미 온몸에 퍼진 상태여서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는 이야기와
“엄마가 웃는 얼굴로 가셨다.”
보통 요도염이 있으신 분들은
통증을 호소하시면 소변 테스트를 한 후에
양성이면 가정의에게 연락을 하거나
병원에 연락을 해서 처방약을 받았을 텐데..
S2부인은 아무런 증상이 없으셨는지
그런 말씀이 없으셨고, 직원들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었죠.
나의 생각과는 달리 효녀 딸은
엄마의 죽음을 기쁘게
받아 들인 듯 했습니다.
“엄마가 웃는 얼굴로 가셨다”고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내가 요양원에 실습생으로
발을 디딘 7년전부터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매일 엄마를 찾아와서
시간을 보냈던 효녀 딸.
엄마에게 최선을 다한 그 시간이 있어서
지금은 기쁘게 엄마를
보내 드리는듯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를 하죠.
“울 엄마 요양원에 있을 때
1주일에 한번이라도 찾아볼걸!”
“울 엄마랑 여행이라고 한 번 해볼 걸.”
그럴 시간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는데,
그때는 내일이 있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았더라면
늦은 후회를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효녀인 내 동료처럼 부모님이 계신 요양원에
직원으로 취직해서 부모를
돌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S2부인의 효녀 딸처럼 매일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위해 2시간씩
투자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달에 1번이라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없겠죠.
60대 딸은 80대의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렸습니다.
가시는 엄마께 효녀 딸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엄마, 가서 조금만 기다려,
나중에 내가 가면 우리 다시
카드놀이 하고, 산책도 가자.”
엄마의 죽음을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직원들의 눈에도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다는
그녀를 보면서 “최선을 다한 효도”의
끝 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돌볼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나
시간/장소 등의 제약으로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낸 자식들은 그것이
부모 삶의 끝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요양원은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걸
그곳에서 사시는 분들도 알고 계시죠.
요양원에서 사시는 내 부모가 죽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삶을 마감하는 곳이 요양원이니 말이죠.
자기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놓고
시간이 있을 때는 찾지도 않다가
돌아가신 다음에 요양원에 찾아와서
울고불고 하는 자식들은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매일 자신의 엄마를 찾아오던
60대의 효녀 딸이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실 때 한번 더 전화를 드리고,
찾아 뵐 수 있을 때 한 번
더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우리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없고,
우리가 효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늘뿐일지도 모르니 말이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는 말이 있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쁜 마음으로 하늘 가시는 길을
배웅 해 드릴수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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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요양원 근무 10시간 하는 저의 하루입니다.
실제로는 영상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시간을 간병을에 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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