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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

by 프라우지니 202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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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듣게 된 친구의 사망 소식과 장례식.


마지막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날 오후에 근무가 있었고

하필 시간까지 겹쳐서 갈 엄두를 내지 못했죠.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장례식은 오후 3.


오후 2시에 근무가 들어가는데

장례식장은 여기서 두어 시간 떨어진 도시


미리 알았다면 근무라도 바꿔볼 시도를 하겠는데

장례식 전날 알게 된 소식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우울하기만 했었죠.


페이스북으로 친구의 장례식을 

라이브 중계하겠다고 했던 시간은 오후


내가 근무하는 시간이라 생중계도 보지 못할 줄 알았었는데..

그날 오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을 봤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려놨던 장례식 시간은 여기 시간이 아니라 

친구의 나라 시간이었나 봅니다.





장례식이 오전인 줄 알았다면 

오전에 무리해서 라도 그곳으로 갔었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출근 전인 오전에 친구의 장례식을

 화면으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은 

초반에는 66명이 보는 듯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거의 9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있었죠.


장례식 중계영상에서 본 친구의 언니

어려운 시기에 마지막 가는 동생을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왔었나 봅니다.


마지막 가는 친구가 외롭지 않게 언니까지 

와준 것이 멀리서나마 너무 감사했습니다.


라이브 영상은 장례식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하나 비춰주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도 감사했습니다.


대부분은 친구와 같은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지만

오스트리아 현지인도 보였고


마지막 가는 친구의 인생에 대해서 말해준 건

 오스트리아 사람의 독일어였죠.




오스트리아에 사는 교포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한 첫 해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을 해 봤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고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간병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2년전에 대장암을 발견하고는 투병을 했었다는 아주 짤막한 이야기.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건강 상의 이유보다는 

1년에 한 번도 잠자리를 갖지 않는 남편 때문이었고


시아버지도 남편의 아버지가 아닌 

남편의 오스트리아인 양아버지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속사정은 그냥 묻는 거죠.






이곳에 살면서 지금까지 많은 장례식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많은 근조화환이 있는 장례식은 처음 입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떠나는 친구를 위로하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비엔나에 있는 친구의 나라 대사관에서 보낸 것도 있었고

각 가정이나 개인 몇몇이 같이 돈을 모아서 만들었는지 

각자의 이름이 쓰여진 것들도 있었죠.


가는 마당에 화려한 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시겠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친구를 생각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나는 멀리 살아서 친구가 얼마나 투병을 했는지

마지막은 혹시나 외롭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장례식의 모인 사람들의 숫자와 라이브로 중계되는 친구의 장례식을 보는 사람들

장례식에 놓여진 근조 화환들의 갯수로,

 친구를 생각 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 또 감사를 했습니다.


내 나라를 떠나서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세상에 혼자 뚝 떨어져 사는 그 느낌


어디 의지할 때도 없는데 아프면 그 외로움이 더 사무치죠.






장례식으로 바쁜 사람들에게 그녀의 마지막은 어땠는지외롭지 않았는지

많이 아파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건 너무 실례일 거 같고!


결국 생각해낸 사람은 친구를 알게 됐던 

당시 같은 독일어 코스를 다녔던 남미 출신의 아낙,M


독일어코스에서 알게 되어서 그 후에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친구만큼 자주 만나지도, 또 그리 친하지도 않았습니다.


친구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정도?


페이스북에 그녀의 사진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눌러주는 정도의 친분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죠.


M에게 몇 년 만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잘 지내냐고 친구의 갑작스런 장례식 소식에 너무 당황 했었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가게 될 줄 몰랐다고 하면서 


혹시 시간이 있으면 통화를 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니 바로 전화를 해준 M.


M은 친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때때로 자주 만났던 모양입니다

M은 친구의 마지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줍니다.


대장암으로 수술하고 항암 치료까지 받았었지만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서 또 다시 수술을 했었고

그때마다 M이 병원으로 친구의 병문안을 다녔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M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외롭지 않게 옆에서 지켜준 M이 있어서 

친구는 위안을 얻었을 테니 말이죠.






친구의 마지막에 친구의 남편은 어땠냐고 물어보니 

변함없는 태도” 였다고 하네요


남편은 아픈 친구의 마지막에도 

함께 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남편이 지켜야 했을 친구의 마지막은 

친구의 언니가 지켰다고 합니다


친구의 언니는 지난 8월에 이미 오스트리아에 도착해서는 

내내 친구와 함께였다고 하네요.


아픈 동생 병간호를 위해서 몇 달씩 자리를 

비우는 것이 가능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두바이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비엔나로 입국이 가능 했었나 봅니다.


생업을 뒤로하고 이곳까지 동생을 보러 온 언니 덕에 

친구가 가슴에 있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 편히 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번 생은 이리 힘들고, 불행했지만

다음 생에서는 더 좋은, 행복한 삶으로 태어나라고 

그녀의 언니는 떠나는 동생에게 이런 덕담을 해줬겠지요.


젊은 나이에 타국에서 외롭게 혼자 견디다가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준 

그녀의 언니가 있었다니 다행이다 싶고


그녀의 마지막이 사랑하는 언니의 

품속이었을테니 마음 한 켠이 가벼워집니다.


떠나는 그녀를 장례식에 찾아와준 사람들도 많았고

또 멀리서 라이브로 떠나는 그녀를 배웅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녀가 외롭지 않게 떠난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떠나가는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며 울어주고

다음 생에서는 더 행복하길 바란다는 사람들의 염원이 그녀에게 전해져서 


그녀도 그렇게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떠나갔길 바랍니다.


그녀의 마지막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고


또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해준 사람들이 많아서 

그 마음 하나하나를 다 가지고 친구가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나는 그녀와 멀리 살아서 아직도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인사는 독일어로  Wiedersehen 비더제엔


Wieder(비더/다시) sehen (제엔/보자)

다음에 다시 만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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