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포스팅은
날 기분좋게 하는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따져보면 나랑은
상관없는 남의 인생이고,
일인데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참 자랑스럽게
예쁜 사람 이야기입니다.)
국제결혼을 해서 남편의
나라로 오게 되면 외국인
아내에게는 선택권이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받은
교육을 인정 받는 것도 어렵지만,
인정받게 된다고 해도
일단 언어가 안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학위와 관련된 직업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죠.
나는 지금까지 다양한 외국인
아낙들을 만나봤습니다.
다 나처럼 오스트리아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
오스트리아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었죠.
브라질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던 흑인삘 나던
아낙은 세탁 공장에 취직을 해서
일을 시작 했었죠.
언어가 안될 때는 단순 노동이
최선이니 일을 하다가
직업교육을 받고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해봤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울 자신이
없다던 그녀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세탁공장에서
대형 세탁기를 직장동료 삼아
세탁물을 넣었다 뺐다 하는
일을 했었죠.
귀화시험에도 만났던
중국인 아낙은 결혼
16년차라고 했지만,
자신이 사는 동네는 온통
야채 밭이라
자신은 한 농가에서
야채를 포장하는 일을
풀타임으로 하고 있다고 했었죠.
내가 오스트리아에서
직업교육을 받은 후에
취직했다는 말에 그녀는
나를 우러러 보면서
존경스럽다 했었죠.
나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AMS(오스트리아 노동처)에서
주선한 독일어 코스를
노력해서 겨우 다닐 수 있게
된 때에,
누군가 이미 AMS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면
어떻게 그걸 쟁취
해낸 것인지 궁금했고,
그 사람이 버벅이는 독일어
실력으로 직업교육까지
받는다니 그야말로
존경스럽고 나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죠.
외국어라는 것이
참 그렇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는
언제나 자신이 없죠.
일상생활도 겨우 하는데
낯선 분야의 직업 교육이라니
섣불리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할 용기도 없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직업교육인데
그걸 받아서 취직까지
했다니 정말 존경의 눈빛이
저절로 발사되죠.
나도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해서
새벽에 식당 청소를 하는
단순노동으로 시작해서
직업교육을 받고 나름
전문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명의 직업인이 됐죠.
나는 지금까지 두가지 방법
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냥 아무데나 취직해서
평생 단순노동을 하면서
살든가, 나처럼 독일어,
직업교육을 거친 후에
이곳에서 현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문 직업인으로
살든가!
물론 내가 모국에서 배운 것을
이용해서 먹고 살면 좋겠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위의 두가지 방법이
최선이고, 첫번째가 두번째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경우였죠.
이번에 우연치 않게 만난
한국인 아낙에게서 나는 그녀만의
새로운 개척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한국어 강사.
오스트리아의 크고 작은 도시에는
일종의 “시민대학”이 있습니다.
언어부터 각종취미까지
다양한것들을 배울 수 있죠.
나도 이곳에서 독일어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 강의 외에
현지인을 위한 다른
언어 강좌는 다 있는데,
한국어는 없었죠.
“중국어, 일본어 강좌는 있는데
왜 한국어 강좌는 없을까?”
은연중에 불편한 마음을
들어내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나는 불평만 했지
“왜 한국어 강좌는 없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었죠.
(물론 내가 한국어를
가르칠 수준도 아니었지만
말이죠.)
한동안 시민 대학에 가지않아서
한국어 강좌가 개설된 것을
전혀 몰랐던 나는 “한국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녀가
놀라우면서도 존경스러웠죠.
인터넷에서는 온통 한국어,
한국음식, 한국드라마로
전세계가 난리라는데,
정작 내 주변에서는
그걸 느낄 수가 없었거든요.
김치를 좋아하는 내 동료와
남편의 동료에게 내가 만든
김치를 건네는 방법으로
나는 나름 한국 문화&
음식을 널리 알린다고
착각을 했었죠.
내가 다닐 때는 없던
“한국어 강좌”였는데 어떻게
그녀가 한국어 강사가
된 것인지 물어보니
그냥 이력서를 들고 사무실에
찾아 갔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시민 대학의
한국어 강사가 되어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가끔씩은 한국 요리도
가르친다고 했죠.
물론 한국어나 한국 요리를
가르치는 것이 일반 직장인처럼
한 회사에 소속되어 풀타임으로
하는 일은 아니니 (큰)돈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내 언어를,
내나라 음식을 현지인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자긍심
하나만은 충만한 직업이죠.
나는 불평은 했지만
없는 강좌를 만들어 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는데,
용감한 그녀 덕에 오스트리아의
시민대학에서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고, 한국 요리도
맛보며 조금 더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현지인들이
많아지게 됐네요.
한국 관련된 일을 하는
그녀가 부럽지만 나는 못하는
일이기에 질투를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인이라고 다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한국어도 언어를 가르쳐본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고,
한국음식도 음식 하는걸
즐기는 사람이 해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죠.
나는 언어를 가르쳐 본 적도 없고,
또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국어 강사로,
한국요리 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 덕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한국문화를
배우고 익히고 있는 거
같아서 기분 좋습니다.
나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그녀가 오래도록 여러
시민대학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는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지인에게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는 그녀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우면서
그런 일을 하는 그녀가
너무 예뻐 보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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