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는 “소매치기”로
유명한 도시들이 몇 개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나 ‘베네치아’도 그렇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나
프랑스의 ‘파리’도 마찬가지죠.
특히나 베네치아나 로마로
들어가는 밤열차는 소매치기를
안 당하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악명이 높은 구간이죠.
일단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동네에선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매치기.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인
“할슈타트”에서도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털렸으면
쪼맨한 시골 마을에 그런
경고문이 붙은 것인지..
사실 소매치기를 하는 사람들은
내가 소매치기 당한 그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를 떠도는 “집시”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 내가
소매치기 당한 바로 그 도시이지,
내 지갑을 털어간 누군가는 아니죠.
그렇게 유럽 여행에서
“주머니 다 털린 나쁜 추억”을
만들어준 “누군가”는 사실 현지인이
아닌 집시일 가능성이 아주 높죠.
https://jinny1970.tistory.com/422
나치시절 히틀러가 가스실로
보내 버렸던 사람들이 유태인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과 더불어 집시들도 있었죠.
유럽의 집시가 유명한
관광도시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관광객이 오지않는 작은 도시에도
있고, 작은 마을 심지어 우리동네
슈퍼마켓 입구에서도 만날 수 있죠.
내가 다큐멘터리로 봤었던
“내가 몰랐던 집시 이야기”를
한번 써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잊고 있었는데,
오늘 갔던 슈퍼마켓의 입구에서
구걸을 하는 집시 아낙을 보니
생각이 따악~
“아, 내가 집시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었지..”
그래서 시작하게 된 글입니다.
집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단어정리부터 해야할 거 같네요.
유럽에서는 “집시”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Sinti und Roma
신티&로마”라고 하죠.
집시 라는 말 대신에 요즘은
“신티와 로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소수민족인 “로마”와 신티”를
모아서 “집시”라는 단어로
사용하기는 하는데 이것도
차별적인 단어라 대놓고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신티는 보통 루마니아쪽에서
오는 집시라고 알려져 있는데,
헝가리쪽에서 오는 집시들도 있으니,
집시의 나라라고 한 나라를
콕 집어서 이야기 하는 건
조금 힘들 듯 합니다.
유럽의 작은 동네까지 들어와서
사는 “집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아니 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무서운 사람들”,
“가까이 하면 피해만
입히는 사람들”
애초에 말도 걸지않고,
나에게 다가오는 거 같으면
얼른 뒤돌아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방법이죠.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집시는 “앵벌이들”
그리고 그런 집시들을 관리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죠.
대부분의 유럽사람들이
알고있는 그 “앵벌이”라는
오명을 벗기고 싶었던 것인지,
독일 TV에서
“집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어쩌다 유튜브에서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됐죠
다큐의 제목은 “(루마니아 남부)
왈라키아에서 온 거지:
가난한 사람들인가 조직화된 갱인가?”
우리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구걸하듯이 뮌헨의 한 은행
앞에서 자리를 잡고
구걸을 하는 집시 아낙.
다큐는 이 아낙을 밀착 취재 했습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쭈그리고
앉아서 구걸을 하는 이 아낙은
두 아들이 있는 21살 엄마인 라취자.
뮌헨에서 2달정도 구걸을 하면서
500~600유로 정도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또 구걸하러
뮌헨에 온다는 집시죠.
라취자의 남편은 산에서 무허가로
나무를 베다가 발각이 되어서
카메라가 동행 취재하는
기간에는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라취자가 구걸을 하러
뮌헨에 오는 기간에는 라취자의
친척들이 두 아이를 돌봐주고 있었죠.
집시들이 구걸을 끝내는 저녁에는
다행히도 무료로 잠을 잘 수 있는
숙소가 있다고 합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잠도 노숙인처럼 거리에서
자는 줄 알았는데,
저녁은 따뜻한 쉼터 같은 곳에
가서 잘 수 있으니 그래도 마음 편하게
대도시로 구걸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쉼터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습니다.
25년전쯤인가?
유럽 여행중에 밤늦은 시간에
베를린 역에 도착을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숙소를
찾아서 역을 나가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에 알게 된
“역 쉼터 숙소”
여행자는 20마르크를 내라고 해서
20마르크를 내고 잠을 잔 뒤에
아침이라고 뭔가를 주길래
챙겨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하룻밤 머물렀던
그 쉼터 숙소가 집시들에게는
매일 밤 잠을 자러 가는
숙소였던 모양입니다.
숙소에서 21살 엄마인
라취자옆에 딱 붙어서
인터뷰한 또 다른 집시 여인.
언니라고 해서 아는 언니인가
했었는데, “친언니”라고!
친언니도 구걸하러
뮌헨에 와있는데,
저녁에 숙소에서 만난거죠.
13남매중 (1남 12녀) 3명의
딸이 주기적으로 뮌헨에 와서
구걸을 한다고 자매가 나란히
앉아서 증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쉼터에는 남자와 여자로
구분해서 숙소가 마련되는데,
기자가 갔던 남자 숙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빠가 구걸하러 온 뮌헨에
아들도 “돈을 벌어보겠다”고
왔다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잠을 자고 나간 후에 연락두절
되어버린 아들.
아들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교도소에 있다는
연락을 왔죠.
돈 벌러 왔는데,
저녁에 술 먹고 지나가는
사람들 주머니를 터는 강도질을
하다가 바로 교도소로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무소식이 되었었죠.
기자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라취자의 고향인
루마니아, 왈라키아로 찾아갔죠.
그곳은 정규적으로 들어오는
교통편이 없어서 말들이
모는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죠.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교도소에 들어간 남편은
이때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여서 두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라취자는 전보다
더 자주 뮌헨에 구걸 여행을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집시들이 모여 사는 이 동네는
1100여명의 집시들이
강가에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이 동네에서만 30여명의
주민이 주기적으로 뮌헨에 가서
구걸을 하며 살죠.
이곳은 행정상 주소가 없어서
우편물을 받을 수도 없고,
은행계좌 같은 건 감히
생각도 못하고 하는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동네입니다.
심장마비가 온 할매
때문에 구급차를 불렀는데,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거리에 물이 차서,
구급대원이 차에서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해 심장마비는
구하지 못했고,
마을에 들어왔던 구급차도
비 때문에 고립이 되어
3일만에 마을을 나갔다는
들어도 믿지못할 이야기를
하는 동네 사람들.
인터뷰에 응한 아저씨에
의하면 루마니아에서도
일자리는 있다고 합니다.
공사판 일을 하면 한달에
210유로 정도는 벌 수 있는데,
차가 들어오지 않는 동네이니
일터까지 가는 교통편도
만만치 않고, 솔직히 구걸하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버니 일하는 것에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동네인 듯도 했죠.
간만에 집에 온 라취자는
두 아이와 한동안 살다가
생활비가 떨어질 때쯤
다시 뮌헨으로
나갈 거라고 했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구걸하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생각하는 듯도 하고..
도저히 21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삶에 찌든
아낙의 얼굴입니다.
어떤 인생을 살면 겨우
21년산 여자의 얼굴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 것인지..ㅠㅠ
이 동네는 빠르면 13살,
늦어도 17살쯤에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다 보니 라치자의
동생인 파멜라는 17살인데
벌써 세 아이의 엄마.
몇 달 전에 낳은 쌍둥이 딸은
키울 능력이 안되어
고아원에 맡긴 모양인데,
고아원에서 아이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파멜라의 남편이
아이를 보러 갔다가
그냥 돌아와야 했죠.
파멜라는 뮌헨으로
구걸 여행을 가는 새내기.
구걸을 다니는 두 언니들을
따라서 뮌헨에 가 언니들이
하는걸 배우고 있는 중이죠.
루마니아 남부의 이 동네에서
구걸을 가는 뮌헨까지
가는 버스 요금은 편도 80유로.
더 저렴하게 가는 버스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조금 더 비싸지만
그들이 아는 사람이 운행하는
80유로짜리 버스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집시 마을을 잘 아는 사람이
조직적으로 사람들을 모아서
뮌헨에 데려다 주고,
돈이 없을 때는 후불로
낼 수 있게 편의를 봐주고,
집시들은 구걸로 번 돈을
잠시 맡아 두는 은행 역할을
할 정도로 집시들이 자신을
믿고 있다고 말하던 버스 운전자.
루마니아는 2007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루마니아도 무비자로
다른 유럽국가를 방문할 수
있어 이들의 뮌헨 구걸 여행이
쉬운 모양입니다.
집시들은 신분증이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줄 알았는데,
다큐에서 보니 독일 경찰이
검문을 할 때 구걸하던 집시
아주머니들이 신분증(?)을
제시합니다.
다큐에서는 한 영리단체에서
집시아이들의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집시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칠 선생님을
매일 차가 안 들어가는 집시 마을까지
출퇴근 시키고 있었죠.
아이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면 운전면허도 딸 수 있고,
직업교육을 받아 제대로 된
삶을 살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는
영리단체 대표의 말이었죠.
다큐에 나왔던 라취자 언니의
남편은 중세시대에나
나올 것 같은 마차를 끌고
각 마을을 다니면서 고물을
모아서 판매하는 일을 하는데,
열심히 모아서 팔면
1주일에 100유로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했죠.
각 마을을 다녀야 해서 숙식은
다 마차 근처에서 해결합니다.
잠은 마차 안에서 자고,
식사는 마차 옆에서
나무 주워서 불 피우고
냄비 올려서 요리 후다닥.
이런 생활을 하면서 아들
하나를 데리고 다니고 있었죠.
조만간 이 생활을 접고,
부부동반해서 뮌헨으로
구걸을 하러 갈 계획이라던데..
이 다큐를 보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거리의 구걸하는 앵벌이가
아닌 건 알겠는데,
굶어 죽지 않으려고
구걸을 한다면서 그 돈으로
끼니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집까지 짓는 집시 마을 사람들.
구걸해서 집을 짓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또 구걸하러 가고,
영리단체에서 만든 마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공부를 해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눈에 보이는 환경이
구걸로 먹고 살고,
그 돈으로 집까지 짓는데,
굳이 수고스럽게 공부하고
일자리를 찾을까 싶은 것이
조금은 부정적은 저의 마음이죠.
이 다큐를 통해서
모든 집시들이 다 개인의
삶을 위해서 구걸한다는 건
알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친근하게 느껴지지도,
만나면 내 지갑을 열어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하는
“읽지도 쓰지도 못해서
일하고 싶어도 못한다”가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구걸을 합리화
시키는거라는 생각이죠.
TV에서는 “구걸하는 집시들이
알고 보면 불쌍한 인생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모양인데,
집시 관련 신문 기사는 매번 같습니다.
“현관문을 구걸하는
집시에게 5유로를 줬는데,
집시가 돈은 건네던 90대
노파를 뒤로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집을 다 털어갔다.”
내가 읽은 신문기사의
90대 할머니는 다행히 집시들에게
두드려 맞지는 않았지만,
강도로 들이닥친 집시들에게
두드려 맞고 사망한
고령자들도 있으니,
역시 집시는 거리를
둬야하는 존재들이라는 걸
새삼 깨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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