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11명의 입주민을
책임져야 하는지층 근무.
어르신들의 몸을 씻겨드리는
오전 간병을 끝내고, 점심을 먹을
식사용구를 준비하면서 똑같이 생긴 수저들
사이에 조금은 다른 수저를 만났습니다.
그 수저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수저의 주인이 우리 요양원에서
사시다 가셨지..”
몇 년 전에 보스니아 출신의
어르신 내외가 우리 요양원에
들어오셨었습니다.
할배는 오스트리아에서 돈을 버셔야 했으니
그나마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가능한데,
집에서 살림만 하셨던 할매는 독일어로
의사소통의 거의 불가능한 상태.
내외분이 한방에 계시니 아쉬운 대로
할배가 할매를 대신해서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해주셨는데, 할배는 1년을
넘기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요양원에 오실 때 “온몸에 암이 전이된
상태라 시한부 진단“을 받고 오셨었는데,
그래도 진단 받으신 것보다는 꽤 오래 사셨죠.
이 내외분은 다른 분과는 달리
당신들이 가지고 오신 수저와 포크를
이용해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방에는 일부러 식사 용구를
세팅할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는 식사를 한 후에 자주 일어났죠.
식사가 끝난 접시들을 치우는 과정에서
접시에 걸쳐있던 이분들 소유의 수저랑 포크를
다 가지고 나오는 일이 반복이 됐죠.
그래서 이분들의 분실한 수저를 찾아서
주방까지 찾아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수저에 금박이 있으니 다른 수저와는
시각적으로 구분이 가능해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 같지만,
수백 개의 수저 중에 하나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한번 분실하면
다시 찾는데 며칠이 걸리기도 했었습니다.
분실한 수저를 찾는 날보다
못 찾는 날이 많아지니 이분들은
당신들의 수저로 식사를 못하시는
날들이 더 많았었죠.
그런 날이 반복되다가
할배는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독일어를 전혀 못하시는 할매를 대신해서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은 가능하셨던 할배가
직원들과의 대화를 이어 주셨는데,
할배가 돌아가시고도 할매는 의사소통
전혀 안되는 상태로 우리 요양원에 사셨습니다.
독일어가 가능한 외국인도 요양원에 오면
현지인들 사이에서 왕따아닌 왕따가 되어서
어울리지를 못하는데, 독일어가 안되는
외국인은 더 힘이 들죠.
그래서 할매는 하루 종일
방안에만 계셨습니다.
방 밖을 나가면 복도에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앉아서는 남의 흉이나 보는
현지인 어르신들이 계시니 나오시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누군가 나의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해도
부정적인 느낌은 전해지니 말이죠.
처음에는 많은 분이 사시는 2층에 사시다가,
조금 더 한가한 지층으로 이사를 오신 후에야
방밖을 나와서 복도를 걸어다니시며
산책을 하시기도 했죠.
처음에는 직원의 도움없이 사시던 할매셨는데,
요양원에서 살아가는 날이 길어지니
나중에는 직원의 도움 없이는
씻는 것이 힘든 나날의 연속!
요양원에 사시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지만,
문제는 할매와는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된다는 것!
할매는 보스니아어로 말씀을 하시고,
직원들은 독일어를 하고!
막말 잘하는 직원은 할매께 대놓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르신, 여기서 살려면 독일어를 배워야지요!”
오스트리아에 사신 20년동안
집에서 가족들과 보스니아어로만 대화를 한
할매께 이제야 독일어를 배우라니
그건 웃기는 일이지만,
이 말을 한 직원은 꽤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었죠.
독일어 못하는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 놓고도
자식들은 사는데 바빠서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
할매는 우시는 날이 참 많았었습니다.
그렇게 남편도 먼저 하늘나라에 가셨고,
아이들은 가뭄에 콩 나듯이 와서는
한시간 앉아있다가 가버리는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날 제가 지층 근무를 했었네요.
할매의 요양원에서의 마지막 날 말이죠.
모든 어르신이 아침식사를
잘 하시는지 방들을 둘러보는데,
보스니아 할매 방도 잠깐 들여다보고는
방을 나서는데, 내 뒤에서 들리는
커피잔이 박살 나는 소리.
바닥에 떨어진 도자기 커피잔의
깨진 조각에 잔에 담겨있던 커피까지
쏟아져서 바닥은 얼룩덜룩.
뒤돌아보는 나에게 할매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그나마
하실수 있는 독일어로 한마디.
“엔출디궁(미안해요)”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바닥을 치운후에
할매께 새로 커피를 한잔 갖다 드렸는데,
할매 손에 커피잔을 쥐여드리는데
할매는 잡지 못하십니다.
손에 힘이 없어서
커피잔을 놓치셨던 거였죠.
당장에 간호사를 호출했습니다.
“여기 와봐야 할거 같아,
보스니아 할매가 조금 이상해.
손에 힘도 없고..”
간호사가 달려오고 할매의 손을 확인하고,
맥박을 확인하고 있는데
할매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얼른 구급차를 불러서는 바로
병원으로 할매를 모시고 갔는데..
나중에 병원에서 할매의 진단이 나왔습니다.
할매는 뇌졸증이셨고,
병원에 도착해서 바로
수술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술을 잘 끝내고
돌아오시나 했었는데, 수술후 3일만에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할매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일부러 묻지 않아 정확한 사인은
지금도 잘 모릅니다.
그저 낼 모래 구십을 바라보시는 어르신이
말도 안 통하는 나라의 요양원에서
외롭게 사셨으니, 먼저 가신 할배가
마중을 오셨나 싶은 것이 저의 생각이죠.
사람이 삶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리면
생각보다 쉽게 하늘가는 길이 열리는걸
요양원에서 근무하면 꽤 자주 봐왔거든요.
요양원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누군가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하면
이렇게들 말씀하십니다.
“드디어 그 일을 해냈네.”
드디어 그 일을 해내신
보스니아 할매의 방은 그분의 자식들이
와서 정리를 해갔습니다.
그 당시에 분실중이던 할매의 수저는
요양원의 수많은 수저들과 섞여서 살다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수저 라는 걸 알지만,
나는 그 수저를 다른 수저들과 함께
어르신들 식사하시는 테이블에
세팅을 했습니다.
사용한 수저는 주방으로 가서
세척이 끝난 후에 다시 수저통에 들어가겠죠.
이 수저를 만나면 동료들은
오늘의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싶습니다.
“이거 보스니아 할매 수저네,
이 수저 찾으려고 주방으로
엄청 뛰어다녔었는데..”
이 수저가 다시 우리 병동으로 오면
그곳이 어느 층이건 할매를 아는 직원들은
한번쯤 보스니아 할매를
기억하지 싶습니다.
오늘의 나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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