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요양원에는 생신을 맞으신 분들에게
케익이 배달됩니다.
사실은 케잌이 자동으로
배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병동에서 미리 주문을 해야 식당에서
어르신의 생신 당일에 케잌을 병동으로 보내주죠.
직원이 미리 주문을 못하면 생일인데,
케잌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이 생기기도 하지만,
오후에 생일 케잌이 배달이 되면
직원들이 가능하면 함께 모여서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를 해드리죠.
근무에 들어가면 그날 생신이신 분들이 있다는
정보를 직원들에게 알려주는데,
그런 정보를 들으면
일부러 그분에 방에 들어가서
“생신축하”노래를 불러드리기도 합니다.
이 날 생신을 맞으신 분은
우리 요양원에 오신지 얼마 안된 80세 P할매.
직원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분이시라,
씻겨드려야 하고, 매 식사 때가 되면
침대에서 휠체어에 앉혀드린 후에,
음식을 먹여드리고는
다시 침대에 눕혀드려야 하죠.
이날 이 P할매가 생신이라는 건
직원 회의때 들었는데..
씻겨드리려고 방에 들어가니
할매의 친인척분들이 보내주신
생일축하 카드와 꽃 화분들이 있습니다.
가만히 엎드려 할매의 귓가에 한마디를 했습니다.
“P부인, 생신 축하드려요.”
이 한마디에 할매가 우시기 시작합니다.
가족이 하나도 없는 요양원에
누워서 맞은 생일이
당신 생애의 그 어떤 생일보다 더 슬프고,
처량한 날이니 그렇게 우신 것이겠지요.
우시지 마시라고, 오후에는 가족분들이 오실거라고
위로를 해 드리는 것이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위로의 전부.
하지만 가족분들이 오후에 오실지는
장담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양원내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코로나 백신주사를 다 맞았지만,
여전히 방문객들은 1주일에 1회에 한 해서
방문이 허용되는 기간.
요새 유튜브에 많이 올라오고 있는
“Jerusalema 예루살레마 챌린지”영상.
유럽내 항공사,경찰서, 공공기관및
병원이나 요양원등 이런저런 곳에서
챌린지 영상이 올라옵니다.
우리 요양원에서도
이 영상을 만들겠다고
직원들이 매일 오후에 춤을 추죠.
내가 근무하는 이틀 동안 동영상을 찍어서
나도 하나의 영상을 만들기는 했는데,
영상 안에 우리 요양원에 사시는 분들이
잔뜩 찍혀서 이건 공개되지 않을 거 같네요.
내가 만든 영상은 예루살레마 챌린지 영상을
편집한다는 직원에게 보내줬습니다.
내 영상 중에 필요한 부분은 잘라서
사용할 수 있게 말이죠.
P할매의 생신인 그날도 직원들은 오후에
예루살레마 춤을 어르신들 앞에서 췄습니다.
그날 오후에 내가 할매께 말씀 드린대로
P할매의 가족들이 할매를 면회왔죠.
면회온 할매의 가족분들도
예루살레마의 음악에 맞춰서
할매의 휠체어를 이리끌고, 저리 끌고!
예루살레마 춤을 춘 다음에는
모든 어르신들이 계신 곳에서
P할매의 생신을 축하 드리는
파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테이블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미리 귀띰을 해드렸죠.
“아시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P부인, 생일축하 합니다.” 이렇게 부르세요.
케잌에는 초 하나를 켜고,
거기에 모인 모든 어르신과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 P부인의 가족분(남편분과 따님)도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드렸죠.
모두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또 우시는 P할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받은 생일 축하라
“감동을 하셨나?” 했습니다.
쪼맨한 생일 케잌을
거기에 모이신 20여분의 어르신께 나눠드려야 해서
가능한 아주 얇게 썰어야 하는
고충은 있었지만,
거기 모이신 모든 어르신들은 케잌과 샴페인 혹은
주스로 가벼운 생일파티를 즐기셨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P부인이 침대로 들아가실 시간.
가족 분들이 가시기 전에
혹시 마지막이 될지 모를 P부인의 생신이실거 같아서
내가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세 분(P부인 남편과 따님) 가족 사진 찍어 드릴께요.”
선물로 받으신 꽃을 가슴에 안은
P부인의 양 옆으로 남편분과 따님을
서게 해서는 사진을 두 장 찍어 드리고,
세 분의 얼굴을 나란히 붙인
사진(셀피 각도)까지 서비스로!
그렇게 P부인의 생일날을 보냈습니다.
이른 아침 나의 생일축하 인사에 눈
물을 보이셨을 때는 참 슬픈 얼굴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오후에는
감동을 하신 듯 했는데..
저녁에 가족들이 돌아가기전에
함께 찍은 사진 속의 P부인은 편안 해 보이셨습니다.
그날 P부인을 침대에 눕혀드리고는
한마디 해드렸습니다.
“ 꽤 괜찮은 생신날이셨죠?”
내 말에 P부인은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다행입니다.
언제나 슬프고 우울한 요양원 생활이지만,
생신날만 그리 외롭게 지내신 거 같지 않아서..
어떤이들은 요양원이
살기 끔찍한 곳이라고 생각 하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요양원 어르신들을 “해야 하는 일(?)”로만
인식하는 직원도 있지만,
진심을 다해서 안아주고,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는 직원들 또한 공존하죠.
자신의 근무에 최선을 다해서
어르신들에게 헌신하는 직원들이
생각보다는 꽤 많다는 걸
세상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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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지난 겨울의 산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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