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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우리 집 밥상 위의 논쟁

by 프라우지니 2019.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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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는 말씀 하시는 걸 좋아하십니다.

여자인 시어머니보다 말씀이 더 많으시죠.

 

모르겠습니다.

연세가 드시면서 여성호르몬의 분비로 이렇게 변하신 것인지..

아님 원래 젊을 때도 이런 성향이셨는지!

 

저는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더 깁니다.

장보러 가다가 마당에서 시아버지를 만났다?

 

“시간지연 30분에 당첨되셨습니다.!!!”

 

마당에 서서 시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어야 합니다. 며느리가 간다고 발걸음을 떼는데도, 계속 말씀하시니 도대체 언제쯤 시아버지의 말씀을 끊어야 하나.. 고민스러울 때도 있죠.

 

시아버지는 언쟁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의견과 다르면 투쟁을 하시는 거죠.

 

얼마 전에는 저도 밥상 위의 그 전쟁에 참여할 뻔 했었습니다.

 

자! 그 이야기 속으로...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것이 요양보호사

 

인력 미달직업군이라 나라에서는 무료교육에 직업훈련 기간 동안 생활비도 지원하지만..

실제로 직업교육을 끝나고 요양원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은 많이 않습니다.

 

남의 살 냄새를 맡으면서 일한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겨울에는 조금 덜하지만 여름에는 땀 냄새에 서양인 특유의 체취 때문에 조금 역할 때도 있습니다. 거기에 이방 저 방을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궁디를 닦아드리면서 맡는 떵냄새는 보너스!!

 

“벽에 떵칠 한다는 치매.” 우리 병동에도 특이한 재료(떵?)로 벽이며, 화장실 안 가리고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 몇 분이 계십니다.

 

그려놓은 (떵) 그림을 많이 본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정신이 외출하신 어르신은 당신 손에 묻은 걸 닦으려는 목적으로 그러시는 겁니다. 일단 손에 혹은 몸에 묻었으니 얼른 닦아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입니다.

 

당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고 그러시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작정하고 골탕먹이려고 그러시는 분도 있기는 합니다.^^;)

 

남편은 밥 먹을 때 입 다물고 얼른 자기 접시를 해치우면 벌떡 일어나는 타입입니다.

 

마눌 앞에서는 잔소리도 늘어지고, 재롱도 떨고 할 거 다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무뚝뚝!

 

식탁 위에서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말을 주고받아도 자기에게 오는 질문이 아니면 끼지도 않고,  자기에게 질문이 와도 “네, 아니요”로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죠.

 

 

지난 크리스마스때 모였던 식구들

 

얼마 전에 시누이가 올케의 직업인 “요양보호사”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새 유난히 미달인력으로 고생하고 있는 직업군이죠.

 

요양보호사는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2년 받아야 가능한 직업인지라, 지금 미달인력이라고 해도 급하게 채울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걸려야 채워질 수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우리 요양원 직원들에게 “실습생은 우리의 미래 동료들이니 친절하게 대해서 교육이 끝나면 이곳에 남게 해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갈구지 말고 잘 가르치라는 이야기죠.

 

밥 먹다가 인지, 식사 후 게임을 하다가 인지, 시누이가 요양보호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니 요양보호사가 요새 많이 부족한가봐.”

 

내가 일하는 계통이니 내가 대답해야하는 거죠.

 

“우리 요양원에도 직원이 부족해서 어르신들 다 씻겨드리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아랫동네)만 씻겨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시누이와 올케가 주고받는 대화에 시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오십니다.

 

“요새 인력이 안 딸리는 직업이 어디 있어. 판매직원도 딸리더만.”

 

이쯤되니 딸내미가 아빠의 말을 자릅니다. 딸과 아빠의 전쟁이 시작됐죠.

 

“아빠, 요양보호사는 그런 종류의 직업과 달라.”

“직업이 다 같지 뭐가 달라?”

“요양보호사는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받는다고!”

“판매사원은 안 받냐? 다른 직업도 다 3년 동안 직업교육 받아.”

“요양보호사는 그런 것과는 다른 직업교육이라고!”

“직업교육이 다 똑같지 뭐!”

 

이쯤 되니 며느리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빠, 판매사원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요양보호사는 교육 없이는 불가능해요.”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냐? 어떻게 교육 없이 판매사원을 해? 3년 동안 직업교육 받아야 한다.”

 

아빠는 “우물 안 개구리“

오스트리아의 직업교육만 생각하시죠.

 

오스트리아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진학률30%이하)을 가던가,

중학교 졸업 후에 레링(견습공)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서 판매사원이 되고 싶으면 회사를 하나 찾아갑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이 보는 슈퍼마켓인 Spar슈파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슈파에서도 여러 직업군의 견습공을 구합니다.

제과 부분, 육류 부분, 야채 부분, 사무직 부분, 진열대 부분 등등등.

 

슈퍼마켓의 제과 부분에 들어갔다고 해서 제과를 배우는 건 아니고 제과 판매를 배우는 거죠. 슈파에서 3년 동안 견습 생활을 하면서 저렴한 일꾼으로 일하면서 제과 판매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배웁니다.

 

우리말에도 있는 속담이죠.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어려운 70년대는 가난한 집에서는 중학교 졸업하면 자식들을 보내곤 했었습니다. 미용실이나 의상실 같은데 가서 시다(견습공)로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라고 말이죠.

 

유럽의 직업교육이 우리나라 예전의 그런 식의 기술교육입니다.

 

대부분의 기술(기능)직은 3년 동안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일주일에 하루 학교에 가서 이론을 배우는 거죠. 그렇게 3년을 마치고 나면 시험을 보고 전문 직업인으로 태어납니다.

 

우리나라는 미용사가 되고 싶으면 미용학원가서 배워서 미용시험을 보면 바로 미용실을 차릴 수 있지만, 여기는 미용사가 되고 싶으면 15살(늦어도 20살 이전)에 미용실에 들어가서 3년 동안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청소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배운 후에 3년이 지나면 미용사 자격시험을 보고 미용사가 되는 거죠.

 

거의 모든 직업군이 이런 시스템이니 아빠는 3년 교육은 어느 직업이나 받는 것이고, 판매직원도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며느리가 판매는 교육이 필요 없다니 팔짝 뛰실 일이죠.

 

저도 한국에서 판매 알바를 많이 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판매직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제가 알바할때만 해도 아무런 교육없이 어떤 제품인지 대충 설명만 듣고는  물건을 팔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교육시스템은 전혀 모르시는 아빠는 당신이 옳다 믿으시니 목소리가 높아지십니다. 당신이 보기에는 요양보호사도 다른 직업군과 같이 직업교육을 받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이쯤에서 며느리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아빠로 말씀드리자면 법대 나온 시누이랑 논쟁을 하셔도 절대 지지 않으십니다.

 

법대 대학원 졸업에 현재 법조계에 종사하고 있는 시누이가 법적으로든 시사 쪽으로든 더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당신이 옳다 믿으시면 끝까지 당신의 주장을 펼치시고 나중에는 소리까지 지르시죠.^^;

 

그래서 가끔 성격을 꼭 빼다 박은 부녀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토론 아닌 토론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부녀거든요.^^;)

 

거기에 며느리가 끼면 앞으로의 삶이 힘들어지니 꼬리를 내려야 하는 거죠.

 

며느리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니 대화는 종료가 됐지만, 아빠는 며느리가 하는 일이 “아무나 직업교육을 받으면 할 수 있는 판매사원”정도의 그저 그런 직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섭섭했습니다.

 

직업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사명감이 없으면 못하는 일인데...

 

며느리가 얼마나 힘든 공부를 했는지 아신다면, 며느리가 실제로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아신다면, 시누이가 며느리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아셨을 텐데..

 

당신에게는 며느리가 그저 그런 일을 하는 여러 직업 중에 하나로 생각하신 것인지...

아님 며느리를 섭섭하게 하시려고 작정하시고 그런 것인지...

 

나의 판정패로 끝난 우리 집 밥상 위의 논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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