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은
근무에 들어가기 전에 사무실에 있는
“근무일지”를 잠깐 들여다 봅니다.
근무일지라고 하니
근무에 대단히 도움이 될 정보가
있을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일지 안에는 아파서 출근을
못하는 직원의 이름도 있고,
병동내 고장 난 물건에 대한 것도 있고,
병동 어르신의 보호자가 이메일로
보내온 감사 인사도
프린트 해서 붙어 놨고,
병동에 사시는 어느 어르신이
어느 병원에 입원을 했는지도 적혀있고,
내가 근무에 들어오지 않았던 기간동안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도 있죠.
고령의 어르신들이 사시는 요양원이니
요양원내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 요양원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시죠.
근무 일지에 있는 누군가의 사망이
다른 소식보다 더 눈에 잘 띄는 이유는
바로 십자가 모양의 심볼 때문이죠.
며칠 밀렸던 일지를 읽다 보니
눈에 띄는 십자가 하나.
어느 분이 돌아가신건가 했더니만
병원에 입원하셨던 T씨의 부고입니다.
“T씨 4월 10일 병원에서 임종”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건
참 슬픈 일인데, T씨의 사망을
오래도록 기다렸던 누군가는 참
“오래도록 기다렸던 죽음이겠구나..”
하는 마음에 씁쓸.
T씨는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로
우리 요양원에 입원을 하셨었죠.
암이 온몸에 전이가 된 상태라
더 이상 치료 방법은 없으니
가능한 통증없이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내려 오셨던 분.
T씨가 우리 요양원에 오실 때는
부인과 따님을 대동하셨었는데,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편을
요양원에 넣는 가족이라 병동내
동료들은 수군거렸었죠.
T씨가 우리 요양원에 오시고
3개월이 지났는데,
T씨는 전보다 더 건강해지셨고,
남편이 죽을거라 생각했던 T부인은
요양원에 올 때마다 직원들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3개월만 산다던 내 남편은
왜 아직도 살아있냐?”
아래 이야기 속의 T씨가
이번에 돌아가신 그 분입니다.
https://jinny1970.tistory.com/3660
애초에 3개월 시간이 남은 남편을
요양원에 갖다 넣은 것도
이해가 안됐지만,
살 수 있다는 기간보다 더 오래 살면
더 좋아할 일인데 그걸로 짜증을
낸다는 것 자체가 더 이해가 안됐죠.
올 때마다 “내 남편은 왜
이리 오래 사냐?”고 직원들에게
괜한 심술을 부려 대던 T부인.
T씨께 여쭤보니 당신의 부인은
운전을 못해서 집에서 요양원까지
30여분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하셨는데,
이틀에 한번씩 자전거를 타고
요양원에 오는 것이 힘들어서 올 때마다
그렇게 짜증을 내셨던 것인지..
올 때마다 직원들의 근무 태도와
요양원의 부족한 서비스에 대해서
온갖 불평을 쏟아내는 것도
예상보다 오래 살고 있는
남편 때문이었던거죠.
3개월 시한부이셨던 T씨는
우리 요양원에 오셔서 1년 하고도
6개월을 더 사시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동료에게 말을 들어보니
T씨는 병원에서 가족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남편의 죽음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T부인은 숨이 넘어가고 있는
남편 옆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해집니다.
남편이 죽어야 받을 수 있는
유산이라 돌아가실때까지
기다리셨다면 마지막 숨을 쉬는
남편 옆에서 기쁜 마음을 가지셨을까요?
마지막 숨을 내쉬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 보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통증으로 고통을 받으셨던 분이라면
숨을 멈추는 그 순간이
그 분에게는 통증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니 더 이상 고통 없는 곳으로
가시는 분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 드리지만..
이도 내 가족이 아닌 타인이니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거죠.
남편이 죽기를 오랫동안
기다린 T부인도 남편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옆에서 많이 슬퍼하셨겠지요?
속으로는 기쁘셨다고 해도
적어도 겉으로는 아주 많이
슬퍼하고, 많이 우셨길 바랍니다.
나와 한평생 살아온 내 아내가
내 죽음을 기뻐하는 모습을
몸에서 벗어난 T씨의 영혼이 보고
계셨을지도 모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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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씨와 T부인은 개와 고양이 같은 사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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