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요양원은 처음이라..

by 프라우지니 2023. 4. 19.
반응형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우리 요양원.

 

오고 가는의미는 다 아시겠죠?

 

인생의 마무리를 하는 요양원이다 보니

집에서 더 이상 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오고,

삶을 다한 사람들은 하늘로 가는 거죠.

 

최근에 몇 분이 돌아가시고,

방이 비자 마자 바로 들어오신 T할배.

 

어눌한 말씨와 음식을 먹을 때

흘리시는 걸 보니 뇌의 혈관에

문제가 있으셨던 분!

 

요양원에 새로 어르신이 오시면

저는 그분들의 병명을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어르신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드리는 일이니,

어르신께 당신은 무슨 병이냐?”

여쭙는 일은 없죠.

 

물론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에는

병동 어르신들의

모든 신상이 있습니다.

 

나는 읽어도 모를

전문 용어로 쓰여진 병부터

나도 아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까지.

 

재밌는건 어르신들이 가지고 계신

병들은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것!

 

대부분 5개는 넘고,

10개가 넘는 분들도 계시죠.

 

 

https://pixabay.com

 

그렇게나 많은 병을 가지고

요양원이 오셨다면 시한부 인생이

아닌가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몸의 가벼운 증상만으로도

병명들은 튀어나오죠.

 

뚱뚱한 사람이 과식을 하면서도

소화를 못 시키고,

혈압이 약간 높고,

무릎이 아파서 걷는 것이 힘들고,

유제품을 먹으면 설사를 하고,

잠을 잘 못 자는데,

잠잘 때 무호흡.

 

이 정도면 먹어야 하는

약들이 꽤 됩니다.

 

당뇨약, 소화제, 혈압약, 진통제,

수면제 등에 산소 호흡기도 필요.

 

거기에 나이가 들면

모든 신체의 기능이 저하가 되니

병명은 늘어나고 먹어야 하는

약들도 많아집니다.

 

가끔씩 들어가는 근무이고,

또 병동은 세 개 층으로 구분이 되어 있어서,

요양원에 새로 누군가가 오셔도,

내가 근무하는 층이 아니라면

나는 잘 모르죠.

 

내가 그 층에 근무한다고 해도

새로 오신 분의 방에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면을 틀 기회가

없으니 계속 모르는 상태로

지내기도 하죠.

 

 

https://pixabay.com

 

지난 주에 3층 근무를 들어가면서

새로 오셨다는 T할배를 만났습니다.

 

내가 목욕탕 근무를 해야했던 날이라,

할배는 알몸으로 저와 대면을 하셨죠.

 

요양원에 새로 오신 분께는

항상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요양보호사 지니라고 합니다.”

 

물론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제 정신도 아니신 분들은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상황인데,

직원들의 이름 따위는

저 세상 이야기죠.

 

할배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등을 밀어 드리고, 면도도 해 드리고,

손톱까지 깎아 드린 후에

목욕은 끝이 났고,

할배를 모시고 방에 갔습니다.

 

목욕 후 할배가 주무시고

일어나신 침대까지 정리를 해야

내 일을 끝나니 마무리를 하려고

할배의 방에 함께 갔던 거죠..

 

할배는 방에 오시자마자

머뭇거리시면서 뭔가를 찾으십니다.

 

서랍에서 당신의 지갑을 찾는데

일부러, 엄청 느리게

그 일을 하신다고 느꼈죠.

 

할배가 왜 그러시는지 감은 잡았지만,

나도 방에서 할 일이 있으니

약간의 시간을 보내야 했죠.

 

 

 

할배는 아주 느리게 지갑에서

5유로를 꺼내시더니

나에게 내미십니다.

 

당신이 나한테 받는 서비스가 있으니

팁은 줘야 할거 같은데,

일부러 천천히 꺼내면서 시간을 끌면

내가 나갈 거 같아서

당신 딴에는 일부러 천천히

돈을 꺼내셨던 거죠. ㅋㅋ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직원은 팁을 받지 않습니다.

돈을 주실만큼 감사하다는

마음만 챙겨서 받죠.

 

T할배는 내가 해 드린 목욕 서비스가

너무 감사해서라기 보다는

서비스를 받았으니 줘야 할거 같은

의무감에 돈을 꺼내셨지만..

사실 할배의 표정에서는

내가 너무 고마워!”

보이지 않았거든요.

 

서양에는 한국에는 없는

팁 문화가 엄청 발달했죠.

 

외식하러 갔는데 친절하지도 않으면서

주문 받고 음료랑 음식 갖다 줬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팁을 요구합니다.

 

가끔은 내 돈을 뜯긴다

기분까지 드는 팁 문화.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는데,

미용사가 내 머리보다는

나와 수다를 떠는데 더 집중했다면

더 후한 팁을 줘야 합니다.

 

미용사는 입으로 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했으니 말이죠. ㅋㅋㅋ

 

 

 

할배가 나에게 서비스(?) 받은 시간은

대충 40여분.

 

머리도 감겨드렸고,

등도 밀어드렸고,

다리랑 왕십리 쪽도 닦아드렸고,

손톱을 깎아드린 후에

바디 오일로 온몸을 코팅하고,

목욕 타월로 뽀송하게 닦은 후에

새 옷을 입혀드리고,

머리는 드라이로 말려드렸습니다.

 

! 이 모든 서비스를 팁으로

계산한다면 과연 얼마나 줘야 할까요?

 

당신이 요양원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은 이미

지불하시고 계시지만,

직원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받았다면 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 같은데,

당신이 생각한 팁은 5유로이고,

그걸 가능한 천천히 꺼내면서

내가 방을 떠나길 바라셨던

할배의 속마음.

 

저에게 들키셨습니다.

ㅋㅋ

 

 

 

저도 할 일이 있어서

방에 계속 있는 것이었지만,

할배는 내가 팁을 받으려고

일부러 시간을 끌고있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었을 시간이었죠.

 

요양원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선 할배의 행동을 보면서

은근 재미가 있었습니다.

 

서비스는 받아서,

팁을 줘야할 거 같기도 한데……

마음 한 켠에는 안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별로 고맙지는 않는데,

팁은 줘야하는 상황 속에 계신

할배의 표정이나 동작들이 보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어르신, 그냥 빨리 돈을 내미세요.

내가 빨리 사양을 해야 당신이

마음 속의 갈등에서

자유로워지실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5유로로

저와 안면은 트신 T할배.

 

오늘은 할배가 따님의 점심 초대를 받아

따님네 집에 식사를 하러

가셨다가 돌아오셨습니다.

 

함께 병동까지 들어온 따님이

사무실에 와서 했던 한마디.

 

아빠가 커피는 왜 매번 잔을

안 채워주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당신은 커피를 더 드시고 싶은데,

잔을 채우다 만 상태로 커피가 나오니

불만이셨던 모양입니다.

 

 

 

왜 요양원에서 커피잔에

커피를 꽉 채워드리지 않는지

속 시원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르신들중에는 파킨슨 같은 병으로

손을 떠시는 분들이 계셔서

저희는 커피를 잔의 70%만 채운답니다.

더 드시고 싶은 경우는 직원에게

말씀을 하시면 더 드실 수 있죠.”

 

, 그렇군요.

아빠한테 앞으로는 커피를

더 달라고 하시라고 할께요.”

 

요양원은 처음이신 T할배는

직원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소소한 불만을 당신의 따님에게만

털어놓으셨던 모양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주에도

T할배를 목욕탕에서 만났습니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방까지 모셔다 드린 후에.

방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할배가 날리시는 한마디.

 

고마워요.”

 

T할배는 이제 요양원에서 사시는

법을 알아가고 계십니다.

 

돈 몇 푼 보다는 정말로 감

사한 마음을 담은 한마디가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다녀가신 흔적은 아래의 하트모양의 공감()을 눌러서 남겨주우~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공감은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