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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폭우 속 산책

by 프라우지니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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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면

얼른 우산을 받쳐들지만,

 

유럽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우산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웬만한 비는 그냥 맞고 다니거나,

 

옷에 모자가 달려 있다면

그걸로 그냥 머리를 덮는 정도죠.

 

비가 많이 온다면야 우산을 받쳐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되지만,

 

그저 가볍게 내리는 비라면 맞고 다니거나,

옷에 달려있는 모자만 쓰죠.

 

오스트리아에 살아도 나는 한국사람.

비가오면 맞는 것보다는 우산을 받쳐드는 쪽이죠.

 

 

하루 종일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라

오후에는 가능한 남편과 들판 한 바퀴를

가능한 매일 돌려고 하는데

날씨가 안 좋은 날은 하고 싶어도 못하죠.

 

 

하늘을 보니 우중충하고,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오후.

 

비가 조금씩 내린다고 산책을 쉬어 버리면

하루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하니

가능한 산책은 나가야 하는데..

 

 

오늘 이야기속의 그 산책을 나갈때 부부의 복장 ^^

 

마눌은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 인간형이지만

 

30여분 하는 산책이니 자켓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는 걸로 대신했죠.

 

그렇게 남편과 들판으로의 산책을 나섰는데..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가볍게 내리던

비가 조금씩 더 세지기 시작하고,

거기에 바람까지 더해지니 완전 폭우.

 

 

우산도 없이 나온 산책길인데

허허벌판에서 폭우를 만난 두 사람.

 

들판의 중간쯤이라 되돌아 와도,

남은 거리를 걸어도 비슷한 시간.

 

그래서 그냥 부지런히 들판을 걷는 방법을

택하기는 했는데..

 

우비를 안 입은 상태에

 

이리저리 들이치는 폭우 속을 걷다 보니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버린 부부.

 

 

우리부부가 매일 걷는 들판 산책의 초입구.

 

상의는 그래도 두툼한 자켓을 입어서

옷이 젖는 속도가 더뎌

추위를 느끼지는 못하겠는데,

 

나의 트레이닝 바지도 남편의 청바지도

들이치는 비 때문에 다 젖어버린 상태.

 

 

내 트레이닝 바지는 젖어서

내 다리에 감기기 시작했고,

 

날씨도 추운데 젖은 트레이닝 바지가

살에 착 달라붙으니 내가 느끼는 추위는 2.

 

쏟아지는 빗속을 둘이 부지런히 걷는데

짜증이 마구 올라왔습니다.

 

들판으로 산책을 나서기 전에

남편에게 물어봤었죠.

 

남편, 비가 많이 올지 모르니 그냥 주택단지를 몇 바퀴 돌까?”

“……”

 

결정 장애가 있는 남편은

이런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디..

 

결국 대답을 듣지 못하고 들판으로 나왔던 거죠.

 

폭우에 푹 젖은 상태로 걷다 보니

울화가 확~ 남편을 째려보고 날린 한마디.

 

내가 그냥 우리 주택단지를 돌자고 했었잖아.”

언제?”

 

 

 

 

아니, 이 인간이 오리발을??

 

내가 두 번이나 이야기 했잖아.

그냥 주택단지 돌다가 비가 더 오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냐고!”

 

“……”

 

 

다 내 잘못이다. 미안해!

결정 장애 있는 인간에게 질문을 했으니

당연히 대답을 듣지 못하는데, 내가 왜 물었을까?

다음 번에는 그냥 내가 결정 할께

 

“……”

 

봄이 오는 길목이라고 해도 날씨는 겨울날씨.

 

겨울 비에 바지가 다 젖어서 다리에 감기니

내가 느끼는 추위는 더 강해지고..

 

허벅지의 살이 아파오기까지 합니다.

 

남편도 나처럼 바지가 젖기는 했지만

 

조금 넉넉한 폭을 가진 청바지라

최소한 살에는 감기지 않으니

 

나보다는 덜 추울 듯..

 

 

 

다음날 산책에 혹시나 싶어서 챙겼던 우산.

 

처음에는 애초에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내 탓도 했지만,

 

센 바람에 비가 이리저리 들이치는 날씨에는

사실 우산을 쓰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

 

우산을 가져왔던들

(상체가 아닌) 젖은 바지가 살에 감겨서
내 체온을 내려가는 것에는 도움이 안됐을 듯..

 

그렇게 20여분 빗속을 걸어서

부부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자켓은 두툼하니 안에 있는 옷이 젖지는 않았는데,

신발을 포함한 하체는 푹 젖어버린 상태.

 

빗속을 걷는 동안에도 젖은 바지에 감긴

허벅지가 너무 추워서 벌벌 떨면서 왔는데,

 

젖은 바지를 벗어보니 살은 벌겋고

얼음처럼 차가워진 다리.

 

소고기도 아닌데 내 다리에 붉은 마블링이..ㅠㅠ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마눌이나,

청바지를 입었던 남편이나

허벅지의 색이 동일합니다.

 

마치 불에 댄 것처럼 벌겋고 얼룩덜룩 마블링이..

 

얼음처럼 차갑고 벌겋게 변했던 피부색은

따뜻한 욕조 물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다시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죠.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겪어본 경험이었습니다.

 

걷는 동안 느꼈던 살을 에이는 듯한 통증과

젖은 바지를 벗어도 계속 느껴지던

 

얼음처럼 차가운 내 피부에서 느껴지는

표현이 불가능한 아픔.

 

내가 느꼈던 아픔이 저체온증의 시작인지,

동상의 시작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죠.

 

그 날 이후 들판으로 산책을 나갈 때는

하늘을 더 신경 써서 봅니다.

 

푹 젖어서 폭우를 걷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기는 했지만,

 

다시 또 그 상황을 만나는 건 피하고 싶거든요.

 

시원한 폭우 속을 걷는 계절이 여름이라면

시원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겨울의 폭우 속을 벌벌 떨면서 걷는 건

딱 한번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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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첨부되는 영상은

 

올해 두번째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렸던

노르딕스키를 타러 갔던 고사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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