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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내가 치고 온 허탕

by 프라우지니 201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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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합니다.

그것도 뜬금없는 시간에 말이죠.

 

아침에 바쁘게 출근하면서 집에 남아있는 마눌에게 한 질문.

“오늘은 뭐 할 거야?”

 

할 일 없는 마눌이 집에서 뭘하는 것이 궁금한 것인지 아님 그냥 인사말인지..

 

“오늘 저녁에는 연극 공연을 보러갈 예정이야.”

“그리고?”

“모르겠어, 요양원에 독감예방주사를 맞으러 갈까 생각중이야.”

“왜?”

“신문 보니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물론 독감으로 저세상을 가려면 면역력도 심하게 약해야 하고 등등의 조건이 따르겠지만,

아무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맞지 뭐~”하는 생각이었죠.

 

독감주사를 맞으러 갈까 말까 살짝 고민을 했었는데 남편에게 말을 해놓고 보니,

가서 맞아야 겠다는 생각에 요양원으로 향했습니다.

 

가을을 지나 초겨울 날씨이기는 하지만 아침 바람 가르면서 자전거 타는 것도 나쁘지 않고,

또 요양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장도 봐오면 좋고, 겸사겸사 집을 나섰죠.

 

 

 

올해 우리 요양원에는 직원들을 위한 2번의 독감 예방주사가 있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우리 병동의 직원들은 아무도 안 맞는 분위기여서 나도 덩달아 맞지 않았죠.

 

이곳 사람들은 “예방주사”에 대해서 조금 부정적인 편입니다.

 

“나는 예방주사 맞고 독감을 앓았어.”

“난 그거 맞고 나면 몸이 더 안 좋아.”

“그거 왜 맞아?”

 

대충 이런 분위기라 나는 맞겠다고 하면 왠지 튀는 분위기였죠.^^;

 

독감의 파도가 또 몰려온다고 하니 이번에는 맞아야 할 거 같아서 남편에게 ‘독감 예방 주사’를 맞겠다고 이야기 하니 남편의 반응도 내 동료랑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거 왜 맞아?”

 

예방주사이니 당연히 예방하려고 맞는 건데..

맞아도 독감은 찾아오는데 왜 맞냐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놔주니 내가 좋아하는 “공짜”이고,

내가 시간만 조금 내면 되는데 굳이 마다할 일이 없어서 갔었습니다.

 

사실 요양원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다 면역력이 약하신 분들이어서.. 감기 걸린 직원 하나가 콧물 훌쩍거리면서 방을 다니면 그 다음날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콜록 콜록하시고, 어느 방의 어르신이 설사를 하시면 그 다음날 다른 방 어르신들도 다 설사를 하십니다.

 

자기 건강을 잘 지켜야 하는 요양원 직원이지만,

“독감 예방 주사”에 대한 강제성은 없습니다.

 

“네가 맞고 싶으면 맞고, 말고 싶으면 마세요.”

 

거의 이런 분위기이니 대부분의 직원은 맞지 않죠.

 

오늘이 올해 마지막 독감 예방주사여서 시간에 맞춰서 열심히 요양원에 갔는데..

“예방 주사는 어디서 맞아?”하고 질문을 하니 다들 “인사담당자”한테 가라고!

 

그래서 요양원 (직원)주치의가 거기에 있나 싶어서 부지런히 갔는데..

“인사담당자”가 나에게 하는 말!

 

“너 예방주사 신청했었어?”

“뭘 신청해? 오늘 오면 주사 맞는 거 아니었어?”

“아니, 독감 백신을 미리 신청했어야 하거든!”

 

깜빡했습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죠!

 

전에 젝켄(살인진드기) 주사를 맞으러 보건소에 갔을 때도,

약이 든 주사기를 주는 곳이 달랐고, 그 주사를 놔주는 곳이 달랐습니다.

 

이곳의 의사는 “약(주사기)”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사)들고 와야 그것을 놔주는 일만 하죠.

 

주사를 맞으러 온 다른 직원을 보니 미리 신청해서 와있는 독감백신을 받아서는,

의사가 와서 놔주기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몰랐어? 휴게실에 있는 직원노트에 ”예방주사를 맞을 사람은 미리 신청“을 하라는 안내가 있었을 텐데..”

 

예방주사가 10월과 11월 중순이니 그런 공고는 이미 9월쯤에 기록이 되어있었을텐데..

그 당시에는 읽었을지 몰라도 잊은 지 오래이고 생각나는 건 그저 “예방접종날짜”

 

그래서 아침 바람 가르면서 요양원까지 달려갔던 건데..

허탕 친 나를 나보다 더 비참한 얼굴로 쳐다보는 "인사담당자.“

 

“괜찮아, 내년에 맞으면 돼지 뭐!”

 

이렇게 씩 웃으면서 그곳을 나왔습니다.

 

이곳의 “주사”맞는 방법이 한국하고 많이 다르다는걸 잊고 있었습니다.

젝켄주사를 맞은 지도 한참이라 이곳의 시스템을 잊었던 거죠.

 

이렇게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이곳 생활.

나는 아직도 오스트리아 생활 초보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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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그로스글로크너" 산악도로를 달렸던 지난 6월의 어느 날 입니다.

아래쪽 나라로 가면서 달리는 길에 이곳을 거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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