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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길위의 생활기 2014

뉴질랜드 길 위의 생활기 934-과부가 되어버렸던 통가리로 길 위의 이틀

by 프라우지니 201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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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가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임에도 남편이 가야겠다는 나우루호헤산.

 

남편이 혼자 가는 건 영 불안했던지라 누군가 함께 갈 일행을 붙여줬던 것 뿐인데..

그 사람이 그날을 시작으로 남편 옆에 이틀을 더 붙어있게 될 줄은..

 

조금 느린 남편 옆에 짝을 맞춰서 완벽한 짝이 되었던 영국인 딘.

 

한 밤에 두 남자를 찾아서 미친듯이 헤매고 다녔던 마눌이 두 사람에게 붙여준 별명,

덤앤더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2512

 

뉴질랜드 길 위의 생활기 931-남편 찾아 삼만리

 

영국인 딘은 트랙킹 오는 사람치고는 참 특이하게 짐을 싸가지고 왔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기온이 한참 내려가는 곳인데도 재킷도 없는 셔츠차림에 반바지.

 

침낭도 없고, 가지고 온 식량들도 다 캔입니다.

캔 커피, 캔 스프, 비스킷과 견과류뿐.

 

보통 트랙킹 오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가벼운, 마른 상태의 식량을 가지고 오는데..

무거운 캔 스프에 캔 커피라니..

 

물론 계속 먹으면서 짐을 줄이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캔에 들어있는 음식은 트랙킹 한두 번 해본 사람들은 절대 가지고 오지 않는 아이템이죠.

 

첫날 망가테포포 산장에 일찍 도착한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딘.

 

트랙킹 오는 사람이 코펠도 없이 달랑 캔 식량만 가지고 왔다고 해서 첫날은 우리가 빌려준 코펠에 자신이 가지고 온 캔 스프를 데워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나우루호헤산을 갔었죠.

 

 

 

그리고 그날 이후 저는 거의 혼자 걸어야 했습니다.

사진도 내 그림자를 찍어야 했죠.^^;

 

왠만큰 눈치가 있는 인간이라면 부부사이에 안 끼는 것이 예의이건만,

영국인 딘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남편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출발하는 시간을 지연하는 듯이 꼼지작거리면..

마눌도 먼저 출발 해 버리건만, 딘은 그런 남편 옆에서 내내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보통의 남편은 출발은 마눌이 먼저 해도 항상 금방 따라잡고는 했었는데..

영국인 딘이 남편 옆에 붙은 다음부터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마눌을 혼자 걷게 뒀습니다.

 

 

 

나우루호에산을 배경으로 근사한 사진을 찍고 싶어도 찍어줄 남편이 없는지라..

나 대신에 배낭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남편은 아침에 산장에서 아침 먹을 때 보고 저녁에 다시 만나 저녁 먹으면서 봤죠.

 

낮에 트랙 중에도 한번 혹은 두어 번 만나기는 했지만..

중간에 남자 하나가 끼니 그냥 멀뚱하니 얼굴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날 과부로 만들어버린 주인공인 영국인 딘.

 

처음에 남편이 같이 안 간다고 마눌에게 신호를 보낼 때 무시하지 말 것을..

한 밤에 혼자 조난당하면 위험할거 같아서 둘을 보내면 한명은 조난신고를 하러 오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으로 남편 옆에 딘을 붙여서 보냈던 것인데..

딘은 그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 곁에 붙어서 남편만 바라봤습니다.

 

우리가 아침을 먹는데 자기 캔 커피를 어제 마셔서 더 이상 마실 것이 없다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티백도 줘야했고, 우리 코펠에 끓인 물도 나눠줘야 했습니다.

 

딘은 뭘 끓일 수 있는 코펠도 안 가지고 왔거든요.^^;

 

딘은 항상 남편 옆에만 붙어있었던지라 그를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마눌이 느끼는 그는 조금은 이상한 타입으로 보였습니다.

 

트랙킹을 왔는데 침낭도 안 챙겨와서는 산장지기한테 담요를 빌려서 잠을 자야했고,

코펠도 없이 “캔 음식”만 가지고 와서는 누군가 데울 그릇(코펠)을 빌려주지 않으면 캔 속의 차가운 음식을 그냥 먹고, 아침에 마실 음료가 없다고 해서 그 후로는 우리 차(티백)를 나눠줘야 했죠.

 

말도 조금 어눌하고 하는 행동도 조금은 이상하지만 본인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데..

 

“당신 어디가  아파요?” 혹은 “장애인이에요?” 할 수는 없는 거죠.

그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약간 필요한 사람이구나! 했었습니다.

 

 

날 트렉킹 과부로 만들었던 두 남자.

 

남편도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타입인지라 딘이 옆에 따라다니니,

아무소리 못하고 이틀 동안 마눌과 거리를 두고 딘을 데리고 다닌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내 남편을 뺏어간 딘이 그렇다고 나에게 미안해하거나 하는 따위의 행동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남편을 뺏어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

 

 

 

덕분에 저는 이틀 내내 과부로 지내야 했습니다.

 

남편은 뺏어간 딘은 가끔 만나도 마눌인 나에게는 약간 적대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최소한 내가 그에게 느꼈던 건 그랬습니다.

 

 

 

남편은 어디를 가도, 뭘 해도 항상 마눌과 함께 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입니다.

 

마눌이 귀찮아할 정도로 “물귀신”처럼 마눌을 물고 늘어졌었는데..

오히려 마눌이 남편 없이도 “혼자서도 잘해요.“ 타입이었는데..

 

이번에 알았습니다. 마눌도 남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디를 가도, 뭘 해도 항상 함께 했던 남편이 없는 이틀 동안 절실하게 외로웠고,

절실하게 남편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죠.

 

딘을 보내고는 그와 거의 3일 동안 붙어 다닌 남편에게 그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나와는 몇 마디 하지 않아서 나는 잘 모르는 딘에 대해서 물어보니 남편이 짜증만 냈습니다.

 

원래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 물으면 짜증을 내는 인간형인데..

딘과 다니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모양입니다.

 

마눌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마눌이 이틀 동안 사람들 틈에서 혼자 트랙킹을 할 때 그걸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어땠는지..

이틀 동안 딘이 하루 종일 옆에서 따라다닐 때 그의 마음은 어땠는지..

 

남편도 알지 못하지 싶습니다.

그 이틀 동안 마눌은 얼마나 많이 외롭고 서러웠고, 남편이 얼마나 많이 필요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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