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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길위의 생활기 2014

뉴질랜드 길 위의 생활기 931-남편 찾아 삼만리

by 프라우지니 2018.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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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인 남편은 가끔 아이가 되는 거 같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냥 하려는 경향이 있죠.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안 될 거 같은데 꼭 가고 싶다는 남편의 고집.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면 심통이 장난이 아닌지라 웬만하면 마눌은 들어주는 편입니다.

하지만 걱정은 되니 항상 한마디를 합니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고, 시간이 안 될 거 같으면 그냥 중간에 돌아와!”

 

 

남편이 가고 싶다는 곳은 Mt. Ngauruhoe 나우루호에 산.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코스인데,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시간상으로 따져본다면 남편은 자정이 되어야 돌아오게 됩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니 남편이 마눌에게 항의라도 하듯이 대놓고 나우루호에산을 바라봅니다.

 

“저것 봐, 구름이 산등성이에 내려와 있으니 가도 아무것도 못 봐!”

“저렇게 있다가도 정상에 올라가면 싹 사라질 수도 있어.”

“그렇긴 해도 출발하기는 너무 늦은 시간이야. 어차피 내일 지나가는 길이니 Red Crater 레드 크레이터에서 4시간 짬 내서 갔다 와.”

“내일 낮은 사람들이 많아서 많이 붐빌 거야.”

“그래도 지금 가는 건 무리야. 어차피 정상까지 올라가지도 못할걸?”

“......”

 

무언으로 데모를 하는 남편입니다.

 

“갔다가 너무 늦으면 깜깜해서 못 돌아와. 저번에도 낚시 갔다가 돌아올 때 깜깜해서 길 잘못 들어서 엄청 고생했잖아.”

“....”

“그럼 갔다가 시간이 안 될 거 같으면 그냥 돌아와, 알았지?”

“알았어.”

 

저번의 일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용~^^

http://jinny1970.tistory.com/2454

 

뉴질랜드 길 위의 생활기 902- 나루로로 강, 수렁에서 건진 내 남편,

 

 

 

남편 혼자 보내는 건 걱정이 되는지라 우리처럼 헛에 일찍 도착한 사람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이왕이면 둘이가면 더 나을 거 같아서 말이죠.^^

 

“내 남편 지금 나우루호에 산에 간다고 하는데, 같이 갈 사람~”

 

일행 없이 혼자 온 영국인이 가겠다고 손을 번쩍 드는데..

마눌이 보기에는 영 불안한 행색입니다.

 

트랙킹 오신 분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입니다.^^;

 

남편은 눈짓으로 싫다는 표현을 나에게 해왔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나으니 남편이 보내는 사인은 그냥 무시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영국인과 같이 출발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추워지니 남편은 잠바에 긴 바지 거기에 발토시까지 무장을 했는데..

영국인은 여전히 반바지에 슬리퍼 그리고 한 손에는 노란색 슈퍼마켓 플라스틱 봉지.

 



 

남편은 없어도 밥 때는 돌아오고 배는 고픈지라 혼자서 저녁을 해 먹었습니다.

 

어제 만들어서 냉동실에 얼렸다가 가지고 왔던 볼로네제 소스에 방금 삶은 파스타를 섞으니..

나름 먹을 만한 파스타 요리가 탄생했습니다.

 

후딱 한 끼를 해 치우고, 오랜 산행 후 고픈 배를 안고 돌아올 남편 몫도 잘 챙겨뒀습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갈 무렵.

산장지기가 오늘밤 산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출석을 확인하고, 산장(숙박) 예약을 확인합니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결제를 한 사람들은 번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석을 확인하고 이 헛에서의 주의사항과 트랙킹중 주의/안내를 받습니다.

 

출석 중에는 이미 이곳에 도착했지만 지금은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야하죠.

 

“저, 제 남편이랑 영국남자가 나우루호에 산에 올라가서 아직 안 왔는데요.”

“아직 안 왔어요? 조금 기다려서 안 오면 찾으러 가야하는데..”

 

산장지기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듯이 조금 투덜거렸습니다.^^;

 

그래놓고는 더 어두워진 후에 내가 찾으러 갈 테니 큰 후레쉬를 달라고 했더니만..

 

“우리 산장에는 후레쉬 큰 건 없는데...”

 

 

 

이왕이면 큰 후레쉬가 있음 했었지만, 후레쉬는 없고..

숙박객에게 사고가 생기면 자기책임이라고 했던 산장지기는 따라올 생각을 안 하고..

 

그렇다고 산장 숙박객에게 “내 남편 찾기 프로젝트”를 하자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결국 스마트폰에 달려있는 LED 후레쉬 하나를 들고 한 밤에 길을 나섰습니다.

 

남편 혼자는 불안해서 한 명을 붙여 보냈건만 둘 다 행방불명이니..

한밤에 열심히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주위는 더 어두워지고 이제는 깜깜합니다.

원래 무서움을 많이 타는 아낙인데, 어째 남편을 찾으러 갈 때는 겁이 없어지나 봅니다.

 

중간에 사고라도 나서 남편이 못 돌아올 수도 있는 남편이니 빨리 찾아야 하는 거죠.

그저 열심히 발길만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걸었나 봅니다.

 

평지가 끝나고 오르막이 이어지는 구간.

캄캄한 오르막의 어디쯤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납니다.

 

두 남자가 캄캄한데 그냥 계단도 아닌 울퉁불퉁한 계단을,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내려오고 있었나 봅니다.

 

“테오~(남편 이름이죠^^)”

“응, 우리 여기 있어.”

 

아래에서 두 남자가 내리막을 잘 내려올 수 있게 후레쉬를 비춰주니,

두 남자가 드디어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냅니다.

 

남편을 만나니 일단 안심을 됐습니다.

캄캄한 밤에 발을 잘못디디면 구를 수도 있는 구간임에도 잘 내려왔네요.

 

한편으로는 화도 났습니다.

늦게 올 것을 알았다면 후레쉬는 챙겨갈 일이지..

 

“덤 앤 더머냐? 혼자는 불안해서 하나 붙여줬더니만 똑같아.”

“....”

 

내려오면서 남편은 자기가 본 풍경이 얼마나 근사한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올라갈 때까지는 산등성이에 계속 구름이 끼여 있는 상태였는데,

정상에 올라갔더니만 갑자기 구름이 싹 걷히면서 사방이 다 눈에 들어 오는 거 있지.“

 

남편은 정상에서 이 동네 석양을 제대로 본 모양입니다.

(석양이 지는 시간에 나우로호에 산 정상에 있는 사람을 사실 드물죠.

석양이 질 때는 다들 하산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니 말이죠.^^;)

 

나우루호에 산 정상에서 구름 속에 뾰족하게 삐져나온 마운트 타라나키(원뿔형)산 정상이 석양에 비친 모습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이야기도 했습니다.

 

 

사진속 젤 촤측의 두 남자(파란베낭/빨간셔츠) 때문에 한밤에 미친듯이 뛰었었죠.^^;

 

그리고 다음 날 알았습니다.

왜 낮에는 나우루호에 산을 제대로 오를 수가 없는지를.

 

낮에는 오르는 사람들도 꽤 있고, 올라갈 때 계속해서 돌이 아래로 구르는데,

위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으면 내려오는 돌들도 많은지라 아랫사람들이 조심해야하고..

 

거기에 쉽게 오를 수 있는 산도 아닌지라 낮에는 그만큼 더 힘든 조건이라는 것을 말이죠.

 

나우루호에 산은 우리부부에게 각기 다른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마눌은 한밤에 남편을 찾아 깜깜한 밤에 미친듯이 뛰어다녀야 했던 밤으로!

남편은 아무도 없는 산 정상에서 즐긴 석양이 아름다웠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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