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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우리 집 고장 난 초인종

by 프라우지니 2016.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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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초인종은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장이 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았죠.

 

저 또한 불편하지 않았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죠.

 

요즘 오스트리아는 이상한 사람들이 집집마다 방문을 합니다.

 

국적을 초월해서 나라 간을 떠도는 집시(들이 정말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노래가사에 나오는 그런 낭만적인 인간형들은 전혀 아니죠.)들이 이제는 각 가정을 방문합니다.

 

2인 1조로 움직이며 초인종을 누른 후에 목이 마르다고 해서 집안에 들어가서는 물 주려고 돌아서는 집주인(대부분은 노인 분들)을 때려서 혼절 시킨 후에 집을 털어가기도 하고..

 

초인종을 누른 후에 문을 열어주면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해서 집주인이 약간의 돈을 주면 그것만 받아가기만 하면 되는디.. 밤에 그 집에 다른 일당들이 찾아와서는 다 털어가는 완전 범죄조직입니다.

 

우리 집도 노인 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정정하신 60대 중반이시지만..)만 계시는지라 항상 시어머니께 단속을 했었습니다.

 

“엄마, 누가 초인종 눌러도 열어주면 안 되구요. 그냥 집안에만 계세요.”

“우리 집 초인종 고장 나서 밖에서 아무리 눌러도 안 된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일이 없는 저는 엄마가 이 말을 하시기 전까지는 고장난줄 몰랐었습니다.

 

우리 집 대문은 사실 문을 여는 노하우만 알면 쉽게 여는 구조거든요.

문 뒤에 걸려있는 걸쇠를 열고 문을 양쪽으로 열면 열리는 구조입니다.

 

우리 집 식구를 포함해서 자주 오가시는 분들(이래봤자 다 시아버지 형제분들)은 다 아시고,

집배원들도 우편함에 편지들을 놓고 가니 굳이 초인종을 누를 필요 없고..

 

그랬는데 어느 날 오후에 이 초인종 때문에 한바터면 큰일 날 뻔 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은 수업중이라 핸드폰을 진동으로 돌려놨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봤던 핸드폰에 남편이 수없이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남겨놓은 남편의 메시지!

 

“우체국에 가라. 오늘까지 찾지 않으면 다시 한국으로 반송하는 국제소포가 있단다.”

 

언니가 물건을 보낸다고 말을 했었는데, 보냈다는 말을 따로 하지 않아서 아직 안 보냈구나.. 했었고, 물건을 이미 보낸 언니는 가끔 통해하면서도 까먹어서 말을 하지 않았었던 거죠.

 

보통은 물건이 오면 집배원이 초인종을 누르지만, 우리 집 초인종은 고장이 나있으니 눌러도 소리도 안 나고, 소리가 안 나니 나오는 사람은 당연히 없는 것이고 말이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아버지는 마당에서 야채를 가꾸시느라 시간을 보내지만 뒷마당에 계실 때에는 당연히 앞마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오고 가는지는 전혀 모르시죠.

 

보통 집에 사람이 없으면 택배를 가져온 사람이 우편함에 “물건을 언제까지 찾아가라.”는 안내쪽지가 있는 것이 정상인데, 이번에는 그것도 없는지라 물건이 아직 안 온 줄 알았던 거죠.^^;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오스트리아 우체국에 도착해있던 물건은 도착한지 3주가 지나서 다시 한국으로 반송을 한다는 문자가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갔던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언니는 나에게 연락이 안 되니 남편에게 문자에 전화까지 했었던 거죠.

다행이 그때 남편은 전화를 받았던 거구요.

 

다행이 그날 학교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집에 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날 요양원 근무였다면..

우체국이 문 닫은 다음에 근무가 끝나니 물건은 기한이 지나서 한국에 반송됐을 텐데 말이죠.

 

우체국에 가서 “안내쪽지”를 받지 못해서 물건이 도착한 걸 몰랐다고 하니,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미안하다”던지, “직원의 실수가 있었나 부다”라는지 하는 말은 한마디쯤 해주면 좋겠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런 말을 듣기가 힘이 들죠.^^;

 

그런 말을 하면 자기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큰일 나는 모양입니다.

 

 

 

한 바터면 받지 못했을 언니의 선물입니다.

 

넉넉하게 보내준 화장품은 저에게 가끔 선물을 보내주는 이곳에 사시는 분께도 보내드렸습니다.

그분의 가족 분들이 제가 보낸 선물의 용량을 보고 “한국의 넉넉한 정”이 뭔지 알았다고 하니 괜히 기분까지 좋았습니다.

 

고장 난 초인종 때문에 한국에서 보내온 물건이 다시 돌아갈 뻔 한 큰 일이 있었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초인종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집의 고장 난 초인종은 여전히 아무도 불편하지 않는 상태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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