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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줄 사람 없는 헌 세탁기

by 프라우지니 201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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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30년 된 세탁기에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세탁기의 모델을 보자면 이미 사망했을 연세이신데, 아직까지 정정하신지라 잘 사용했었죠.

 

우리가 그라츠에서 사용했던 세탁기는 시댁으로 들어오면서 창고에 잘 넣어뒀었습니다.

시누이가 사용하는 세탁기가 늙기는 했지만,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어서 말이죠.

 

우리 집 세탁기의 문제라고 한다면..

물 온도가 30도 이상인 40도,60도,90도에서는 작동이 안 된다는 것!

그러니 세탁은 항상 30도로만 해야 하죠.

 

침구류 같은 경우는 40도나 60도로 빨아야하는데 30도로만 빨래가 되니 바꿔야 하기는 했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지라 바꾸지도 못하고 있었죠.

 

 

드디어 주어질 사람이 생겨서 나온 우리집 연세 많으신 세탁기.

 

가끔씩 시아버지와 세탁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아빠, 세탁기 바꾸면 헌 세탁기는 어떻하죠?”

“버려야지.”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30도로 빨 때는 이상이 없는데..”

“그래도 저건 모델이 오래돼서 버려야 할 거야.”

“건조기도 달려있어서 버리기는 정말 아까운데..”

“그래도 버려야지 뭐!”

 

헌 세탁기를 줄 사람이 있다면 얼른 줘버리겠는데,

줄 사람도 없다보니 버리기 아까워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라츠에서는 살때 아는 유학생들이 있었었는데..

 

우리부부와 가깝게 지내던 한 유학생이 누군가에게서 얻었다는 헌 세탁기에 문제가 있어서..

세탁을 하는 동안 문을 계속 잡고 있어야 한다고 하니 남편이 고쳐주겠다고 그 집에 갔다가..

그 문마져 고장 내는 바람에 그 유학생이 우리 집까지 빨래를 하러 오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줄 세탁기가 있는데, 그라츠는 너무 멀고,

그 유학생은 오래전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갔을 테니 줄 사람이 없습니다.^^;

 

 

 

 

창고에서 2년 머물다가 드디어 우리와 재회를 한 우리 세탁기.

 

세탁기를 바꾸자니 줄 사람도 없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타러 갔던 남편이 집으로 오더니만 허둥지둥 창고에 있던 우리 세탁기를 시아버지와 함께 욕실로 옮겼습니다. 그것도 어두운 밤에 말이죠.

 

“갑자기 왜 세탁기는 바꾸느라 난리야?”

“헌 세탁기 줄 사람이 생겼어.”

“자전거 타러 간 거 아니었어?”

“자전거 타러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이 낼 저녁에 가지러 온다고 했어.”

“그 집에 세탁기가 없대?”

“몰라. 헌 세탁기가 있다고 하니 그냥 세탁기를 가져가시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 다음날 세탁기를 가지러 차를 가지고 오신 아저씨. 세탁기를 아저씨 차에 옮기는 걸 도와드리면서 보니 아저씨 차에 세탁기 부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가신 후에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저 아저씨 중고세탁기 판매하는 업자야?”

“응”

“난 가난한 아저씨가 세탁기 필요해서 가지러 온다는 줄 알았었는데..”

“...”

“그럼 우리 헌 세탁기는 약간 손봐서 팔리겠네.”

“...”

 

 

아직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고, 건조기까지 달린 우리 헌 세탁기를 누군가 세탁기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럼 기능이 조금 딸리기는 해도 계속 사랑을 받았을 텐데..

 

내가 린츠에 유학 온 학생들을 알고 있었다면 주기도 수월했을 텐데..

이럴 때는 내 빈약한 인맥이 조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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