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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남편이 받고 싶었던 위로

by 프라우지니 201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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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자치고는 애교가 별로 없고 무뚝뚝한 편입니다. 물론 내 필요에 따라서 가끔씩 애교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없는 듯이 사는 아낙입니다.^^;

 

성격도 급한 편에 속하고 무뚝뚝하기까지 하니 주변인에게도 꼭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해도 내가 필요한 용건만 말하고 끊는지라, 나중에 상대방에게서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넌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끊으면 어떡해?”

 

제 무뚝뚝함은 제 식구에게는 더했음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습니다.^^;

언니들이 나에게 전화를 해도 제 첫마디는 항상 같습니다.

 

“왜 전화했어?”

 

자매 사이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변함없는 이 첫마디에 언니들이 늘 섭섭함을 표현했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언니들에게 한마디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언니야! 미안해!

그런디...앞으로도 이 첫 마디는 변함이 없을 거 같다.^^;”

 

한국을 떠나서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살고 있는 지금도 저의 무뚝뚝함은 변화가 없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전화를 하면 전화를 받으면서 제 첫마디는 항상 같습니다.

 

“Was? 바스(왜?)”

 

언어가 달라졌을 뿐 저의 전화 첫마디는 항상 같습니다.

전화를 한 용건이 있을 테니 그 용건을 말하라는 거죠!

 

어째 참 쉽지 않는 성격을 가진 아낙이죠?

 

반대로 남편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주변 사람들에게는 차갑고 냉정한 성격인데, 마눌 앞에서는 애교가 넘쳐납니다. 물론 저처럼 자기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죠.^^

 

다른 부부들은 아침에 헤어져서 저녁에 다시 만나는 일상을 사는데도 하루에도 서너 번씩 통화를 하면서 사랑(혹은 화목)을 키운다지만, 저희부부는 서로 전화하는 법이 없습니다.

 

 매일은커녕 한 달에 한 번도 통화를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봤고, 저녁에 또 보는데 뭘 통화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제가 학교에서 수업중이거나 현장 실습 중일 때는 전화를 가방 안에 넣어두지만, 그나마도 진동으로 해 놓은 상태라 전화가 와도 모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녁에 집에 와도 전화가 진동모드이면 놓치는 전화들도 가끔씩은 있고 말이죠.

 

(오늘은 이 아낙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리 서론을 길게 펼치고 있누???)

 

남편이 마눌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물론 이때 마눌 전화가 진동모드인지라 못 받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말이죠.

 

4시가 되면 뛰어나오는 회사에서 조금 더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나 회식이 있을 경우는 마눌에게 신고전화를 합니다. 조금 늦을 거 같다고 말이죠.

 

마눌은 저녁에 집에 와도 주방에서 공부하느라 바쁜지라 남편이 와도 신경도 안 쓰는디..

남편의 신고정신은 투철한지라 잊지 않고 신고를 합니다.

 

슈퍼에서 장보다가도 전화를 합니다. 뭐 필요한 거 없냐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2시간거리의 코스를 달려가서는 전화를 합니다.

이제 목적지 찍고 집으로 오겠다고..

 

이렇게 열거하니 생각보다 남편이 전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봤자 한 달에 서너 번이지만 말이죠.^^

 

그날도 남편은 자전거를 타러 나갔습니다.

 

보통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데, 마눌은 절대 느리지 않음에도 남편보다는 한참 처지는지라 함께 출발해서 어느 정도까지 가면 남편 혼자 열심히 달리고, 마눌은 느긋하게 뒤따라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남편이 전화를 해 오면 저는 그쯤에도 되돌아서 다시 집으로 오다가 열나 달려오는 남편을 만나서 집으로 오는 부부가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도 조금 이상한 구조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요?

쉽게 말씀 드리자면...

 

부부가 함께 청량리에서 자전거를 출발해서 신설동까지는 함께 달리고..

신설동부터 여의도까지는 남편이 혼자서 급행으로 달리고..

마눌은 신설동부터 여의도 방향으로 느긋하게 달리다가..

남편이 여의도 찍고 다시 돌아온다고 전화를 해 오면..

전화 받은 지역(종로5가)에서 다시 청량리 쪽을 되돌아 오는 거죠.

 

마눌이 느긋하게 청량리로 돌아오다 보면..

뒤에서 급행으로 달려오는 남편도 다시 만나게 되거든요.

 

(이거 이거 서울 지하철 1호선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가 쉽지 않겠는디...^^;)

 

아무튼 이런 둘이면서도 혼자 타는 자전거도 그렇지만, 요즘은 자전거 도로상에 성범죄자들이 자주 등장해서 여자 혼자 달리는 경우는 성폭행까지 한다는 뉴스가 났던지라, 젊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는 아낙임에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 달리는 것을 더 꺼리게 됐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남편의 자전거타기에 동행하지 않고 몇 번을 혼자 다녔던 남편!

 

그날도 혼자 자전거를 타러 나갔는데, 중간에 저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입니다.

낮에 학교에서 진동모드로 전화기를 돌려놓았던지라 저는 받지 못했고 말이죠.

 

날씨가 이미 어두워진 다음에 돌아온 남편은 오자마자 짜증을 냈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말이죠.

 

“왜 전화를 했는데? 자전거를 가지고 나갔으면 어두어지기전에 돌아오면 되지.  왜 전화를 했고, 왜 안 받았다고 짜증을 내는데??

 

마눌도 저녁이면 주방에서 저녁 준비, 아침 준비에 남편 간식까지 챙겨야 하고, 설거지에 청소, 거기에 공부까지 해야 하는지라 바쁜데 전화 안 받았다고 짜증을 내는 남편에게 제가 오히려 더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욕실로 가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사이클 복이 쪼매 더럽습니다.

 

 

-사진

 

 

그날 저녁에 남편이 샤워를 끝내고서야 알았습니다.

자전거타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자전거 사고가 났었다는 것을..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는지라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달렸는데, 길옆에서 토끼가 튀어나오는 걸 피하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잡았던 모양인데, 덕분에 자전거가 전복을 일으킨 거죠.

 

종아리, 허벅지는 물론이고 도로에 피부를 살짝 갈은지라, 입고 나갔던 사이클복까지 너덜해져서버려야 했습니다.^^;

 

 

 

이곳 신문에서 발췌한 사진입니다.

 

이렇게 사고가 난거죠. 사고가 났다고 마눌에게 신고전화를 했는데, 마눌은 전화를 받지 않는지라, 남편은 사고 나서 옷도 너덜해지고 상처도 났지만 나머지 길을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게 내가 평소에 자전거 급행으로 달리지 말라고 했지!

사고가 났음 천천히 조심해서 집으로 오면 되지, 왜 전화를 하려고 했누?“

 

남편의 상처를 보니 속도 상한지라 마눌이 주절거리면서 핀잔을 줬습니다.

 

사실 사고가 난 순간 남편에게 필요했던 것은 마눌의 위로 한마디였고, 그걸 듣고 싶어서 마눌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번 사고 예방 차원에서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해서 자전거를 타라.”고 만 했습니다.

 

자전거 도로에서는 토끼가 나오지만,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서는 야생노루들이 튀어 나오는 곳이 이곳의 교통인지라 밤에 이동할 때는 더 많이 조심해야 사고를 방지 할 수 있거든요.

 

그날 저녁에 남편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면서 마눌이 무심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아프지 마!” (한국말로)

 

이 말에 남편이 아파서 속상한 마눌의 마음을 읽었는지, 남편이 두 눈을 끔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 끄덕합니다. 신혼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중년의 나이이지만, 남편은 가끔씩 마눌의 위로와 관심, 사랑을 느끼고 싶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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