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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불행한 결혼 속으로 다시 오려는 친구

by 프라우지니 2014.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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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일 붙어 있으려고 하는거죠!

사랑이 전제가 아닌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사랑해서 하게 되고 말이죠!

 

부부는 결혼식 주례사에 나오는 것처럼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 함께 살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연인이자 친구이고, 내가 힘들때 의지할 수 있는 평생 내편인 아군입니다.

 

서양에서는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가 아닌 "서로 사랑할 때까지로" 쓰이고 있지만 말이죠!(물론 주례사는 "죽음이 둘사이를 갈라놓을때까지라고 합니다만.) 

 

저희  결혼식날 남편에게 "우리 오래도록(늙어죽을때까지) 잘 살자!"했더니만, 퉁명스럽게 "사랑할 때까지 잘 살면 되지!" 그때는 조금 서운했지만 서양인에게는 "정"이라는 것이 없으니 사랑할 때까지 사는것이 맞는 말 같습니다.

 

 

해골이 되어도 이렇게 부부가 함께 할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힘들죠!^^;

 

제 친구중에 한명이 오스트리아를 떠나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곳에서의 결혼 생활도 불행했었고, 본국의 엄마도 아픈지라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이혼에 관한 서류들은 정리하지 않고) 지난 7월에 그녀는 이곳을 떠났습니다. 그동안 벌어놓았던 돈도 챙겨서 아픈 엄마를 돌보겠다고 말이죠.

 

최근에 그녀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녀의 엄마는 흡연자의 간보다 더 까맣게 변한 간암말기 환자라고!”

 

그녀의 엄마가 담배를 피우셨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7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겠구”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인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지나간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http://jinny1970.tistory.com/139

교포와 결혼한 그녀이야기

 

http://jinny1970.tistory.com/1349

고향으로 돌아간 내 친구

 

그러고 보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 아낙들이 다 오스트리아 남자를 만나서 결혼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입성한 후 이혼하고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아낙중 90%는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하고도 이곳에서 살면서 다른 국적의 남자 혹은 자신과 같은 국적을 가진 남자를 만나서 살고 있습니다.

 

전에 들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국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살면서 독일어 통역을 하는 A아낙이 한밤에 경찰서로 와서 통역을 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 걸음에 달려갔더니만 몇 번 본 적이 있는 B아낙이 경찰서에 있다가 통역하러 온 그녀를 보고는 마구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지만 교포사회라는 것이 워낙 좁으니 “누가 남편한테 두드려맞고 한밤에 경찰서에 갔다더라”라는 소문은 금방 나게되죠!)

 

B아낙은 소문이 걱정이 돼서 교포사회에서 자주 보게 되는 통역하는 A아낙을 안 보려고 했던 것이고 말이죠!
아무튼 그 A아낙은 남편한테 맞고온 B아낙의 통역을 해주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한테 맞았던 B아낙은 법의 결정으로 남편과 강제 이혼을 했고, 남편 월급의 반을 매달 받는 것으로 판정을 받았구요.

 

오스트리아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오스트리아 남편과의 사이에 딸을 가지고 있었던 B아낙은 이혼 후 살 길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혼하고 얼만의 시간이 지나고 A아낙은 거리에서 B아낙을 만났다고 합니다.   

 B아낙은 불편해 보이는(=장애인) 오스트리아 남자와 함께였다고 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홀로 경제생활이 힘들어서인지 아님 비자 때문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B아낙은 이혼후 차선책으로 장애인인 오스트리아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제가 주어들은 오스트리아의 이혼 법을 살짝 들여다보자면..

 

이혼할 때 부부 소유의 것(집?)은 반으로 나누고, 두 사람의 월급의 합계에서 반을 나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의 월급은 3000유로이고, 아내의 월급은 1000유로였다면, 이혼 후에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살던가 결혼하지 않는 이상 남편은 매달 아내에게 1000유로를 줘야합니다. 두 사람의 월급합계는 4000유로이고, 50%면 2000유로인데, 아내는 1000유로를 버니 그 나머지는 남편의 월급에서 줘야하는 거죠!

 

하지만 이혼하게 되면 “가족관계 비자”는 성립이 안 되니 한 달 안에 다른 비자를 바꾸어야 합니다. 쉽지 않는 것은 전업주부가 한 달에 1200유로의 월급을 받는 직장을 단번에 구할 수 없다는 것! 사실 실수령액 1200유로는 독일어 버벅대는 아낙들이 쉽게 구하는 청소만을 해서는 벌기 힘든 액수입니다.

 

그러다보니 차선책으로 또 다른 오스트리아국적의 남자를 찾게되는거죠!

계속해서 머물러야 하니!

 

그녀가 힘들게 이곳에서 살 때 저는 그녀에게 많은 충고를 했었습니다.

 

“너가 직업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전문 간병인의 월급 반만 준다며? 노동청에 실업신고 하고, 직업교육 받겠다고 신청해. 직업교육 들어가면 한 달에 800유로 정도 나온다고 하니까 그 돈으로 방도 얻고 생활비 하면서 살 수 있을 꺼야.

직업교육 끝나면 제대로 취직해서 월급 받을 수 있잖아.”

 

“남편 집에 살아도 식료품 지출은 네가 해야 한다며?

 그 돈이면 너 혼자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

 

만날 때 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그녀에게 쏟아 부었건만 “소귀에 경읽기”

 

그렇게 내가 그녀에게 외치던 교육은 사실 제가 받고 싶었던 교육이였습니다.

저는 시간이 안 되서 다음기회에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녀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했었죠!

 

그렇게 그녀의 귀가 아플 정도로 만날 때마다 외치던 그 교육을 내가 받을 준비 하고 있는 지금!

 

그녀는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생각을 밝힘과 동시에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교육과정에 엄청난 흥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도 이 교육을 받고 싶다고 합니다.

 

“내가 몇 년을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왜 진작에 안 했냐” 고 물어보니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너 남편이랑 같이 살겠다고 다시 오려는 거야? 너 여기 오면 다시 시아버지 간병인으로 일해야 하는거 아니야?. 직업교육 받을 시간은 되겠어?”

 

그녀가 왜 다시 돌아오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간암에 걸린 엄마라면 그 옆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서 간호를 해야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셨을때 가슴치며 후회하지 않을거 같은데 말입니다.

 

일단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법이 바뀌어서 6년이상 거주자들은 국적을 바꿀수 있데.

(예전에는 10년이상 거주만 국적취득가능)”

 

7년을 오스트리아에 살다보니 다시 돌아간 고향에서 적응하기 힘든 것인지, 그곳에서 취직하기 힘들어서 인지, 아님 이혼하고도 오스트리아에서 살아가는 다른 외국인 아낙들처럼 이곳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아서 오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편치않고 사랑없는 부부생활을 7년이나 해 놓고서 그 생활이 그리워서 다시 오는 건 절대 아닐텐데..

 

사실 오스트리아는 일을 하게 되면 좋은 조건들이 있기는 합니다.

1. 1년에 5주간의 휴가가 주어집니다.

    이때 비행기 타고 고국을 방문하게 되면 최소 1년에 1번은 방문하게 되네요.

 

2. 1년에 14번의 월급을 받습니다.

   여름과 크리스마스 무렵에 한 달 월급액의 휴가비를 2번 받습니다.

 

그 외 후진국의 경우에는 이곳에서 돈 버는 것이 훨씬 유리 할 수 있죠!  

한 달에 1000유로(한 140만원 되나요?)벌어도 고국에서 버는 월급의 몇 배에서 몇 십배나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죠!

 

어떤 이유에서 그녀가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녀가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고, 그녀가 나름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음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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