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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고향으로 돌아간 내 친구,

by 프라우지니 201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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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스트리아에서의 삶이 힘들다고 했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이용당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기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jinny1970.tistory.com/139

교포와 결혼한 그녀이야기

 

남편의 양아버지를 간호할 목적이였는지, 그녀의 나라에서 오스트리아로 오기 전에 이미 “간호보조학원” 에서 간호에 필요한 모든 교육을 받았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뇌출혈로 몸의 절반을 잘 가누지 못하는 남편의 양아버지를 간호하면서 그렇게 오스트리아에서의 삶을 시작했었습니다.

 

남편의 (오스트리아인) 양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를 보살피고, 남편의 양아버지가 주는 약간의 용돈을 받아서 그녀는 남편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료품을 산다고 했었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오스트리아에서 스스로 벌어서 생활했습니다.

왜 처음부터 그녀는 남편의 요구대로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공과금과 세금을 내고, 여자는 식료품을 내고!”

 

물론 이건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부부들이 하는 경제생활입니다만,

오스트리아에 사는 모든 (외국에서 온)사람들이 이대로 해야 하는 건 아닌 거죠!

 

각자가 돈을 벌어서 반반씩 부담하는건 좋지만, 그럼 집안살림도 반씩 나누면 좋으련만,

청소며 빨리며, 요리는 모두 여자가 해야하죠!

 

 

 

예쁜 내 친구입니다. 올해 마흔 두 살이 되었네요.

다른 환경보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더 힘들다던 그녀!

 

법을 전공해서 법조계에서 일하는 제 시누이에게 심각하게 그녀의 (이혼)문제에 대해서 의논한 적도 있었는데..(이혼을 하게 될 경우 그녀가 남편에게 청구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제가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는 날을 그녀에게 알렸더니, 그녀는 나를 다시 오스트리아에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가 오스트리아로 입국하기 하루 전에 오스트리아를 떠났습니다.

 

길고 길었던 7년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이혼 도장도 찍지 못한채..

그저 그녀는 그녀가 왔던 그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단지 오스트리아를 떠난다던 그녀에게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다 묻지는 못했습니다. 그녀의 속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리고 내가 그녀 곁을 떠나있던 지난 2년 동안은 어떤 일들이 그녀를 괴롭혔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녀가 오스트리아에 입국과 함께 시작되었던 남편의 양아버지 돌보기!

 

처음에는 몸의 반쪽만 불편하셨던 그분은 나중에는 전혀 거동을 못하셔서 침대에만 누워서 지내셨었는데.. 그녀는 그 큰 백인 할아버지를 지극히도 보살폈습니다.

 

처음에는 전문 간병인이 15일, 그녀가 15일씩 번갈아 가면서 24시간 일을 하면서도 전문 간병인이 받는 금액의 반밖에 받지 못했던 그녀는 그래도 참 열심히 지극정성으로 남편의 양아버지를 돌봤습니다.

 

대부분의 전문 간병인들은 시간때우기에 일관하고,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기저귀 갈아주기)도 제대로 안 해서 그녀가 다시 양아버지를 맡았을 때는 엉덩이 쪽이 헐었던 적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오스트리아서 활동하는 외국에서 온 간병인들은 보통 15일 입주해서 24시간 간병을 해주고 1000유로정도 받는다고 합니다.

 

간병인이 간병에 필요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요금이 더 추가되고 말이죠.

 

그녀와 번갈아 가면서 일을 하던 간병인은 15일에 1000유로를 받았고, 간병인보다 훨씬 더 정성으로 남편의 양아버지를 돌보던 간병인의 받는 월급의 절반 정도인 500유로정도를 남편의 양아버지의 친딸에게서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스트리아에 없던 지난 2년동안은..

남편의 양아버지 집에 입주해서 24시간도우미로 1년 365일을 휴일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그녀가 24시간 한달동안 남편의 양아버지를 돌보고 그의 친딸에게 받은 월급은 1000유로!

 

전문 간병인이 24시간동안15일 환자를 돌보는 가격보다 훨씬 더 싸게 그녀는 일을 했습니다. 실제로 친딸이 나라에서 받았을 아버지의 간병비용은 1800유로였을텐데 말이죠.

 

(제가 알기로는 노인요양도 급수가 있어서 움직일수 없는 1급같은 경우는 요양비용이 1800유로정도 나오고 1급~ 4급까지가 요양원에 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녀가 입주한 남편의 양아버지 집에 그녀의 남편도 따라서 입주했습니다.

남편은 그녀와 입주해서 살고, 자신의 집은 세를 줘서 거기서 또 다른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양아버지 간병도 해야 했고, 남편의 끼니또한 챙겨야했죠.

 

보통 입주 간병인은 환자와 함께 숙식을 해야하니 환자의 가족이 식료품을 제공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그녀옆에서 붙어서 그녀의 식료품을 함께 먹으면서 무료로 살았던 거죠!

 

환자를 돌보지 않는 시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녀가 써야할 방은 그녀 남편이 터를 잡은 관계로 그녀는 거실에 있는 양아버지의 침대옆에 간이침대를 놓고 잠을 자고 쉬고 했었습니다.

 

이쯤되니 부화가 치밉니다.

 

"나쁜 놈!"

 

그렇게 처음부터 내친구를 이용하려고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이 먼 오스트리아까지 불러들인 것인지.. 정상적인 부부관계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침에 출근하는데 욕실에 들어가서 꾸미는데 필요한 시간이 1시간이라던 그녀의 남편!

여가시간은 항상 늙은 아저씨들이랑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던 그녀의 남편!

 

정상적인 부부라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같은 침대(?)를 쓰는 것이 보통인데,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절대 같이 쓰지 않았다던 침대(?).

 

이런저런 그녀 남편의 행동들을 처음 들은 날 제가 했던 말은 바로!

 

"니 남편 게이 아니냐? 부모님한테 "게이"라고 말은 못하겠고, 양아버지 돌볼 여자도 필요하니 일단 결혼해서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인 남자로 보이게 하고, 뒤로는 자기 할 일(연애?) 하느라 바쁘니 당연히 너를 쳐다볼 시간이 없지!

 

너만 보면 짜증이 나는 것이고!"

 

내 말에 그녀 또한 긍정을 했습니다.

 

"울 언니도 그런거 같다고 얘기를 하더라."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짜증만 낸다던 남편 옆에서 그녀는 무엇 때문에 7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번의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고, 그로 인해 절망하고, 사랑없는 남편의 태도에 상처를 받고, 그러면서도 그녀는 오스트리아서 살기를 원했었습니다.

 

“사랑만 있다면 굳이 오스트리아일 필요가 있을까?”

 

나의 질문에 그녀는 숨겨놓은 또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나라에 사랑하는 가난한 남자를 두고 오스트리아 교포인 남편을 선택해서 결혼했었다고, 그 남자는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살고 있다고..

 

나에게 고백하던 날 저는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지만 가난한 남자보다는 유럽에서 사는 남자가 더 멋있어 보였던 모앙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살면 여유롭고, 행복 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돌아가! 그 남자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면 가서 행복하게 살아.

사랑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지 않을까?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이렇게 힘들게 살아. 돌아가!”

 

내말은 항상 흘려 듣는지 나만 만나면 항상 같은 얘기를 털어놓던 그녀!

내가 오스트리아를 떠나면서도 그녀 때문에 걱정이 되기는 했었습니다.

 

“나 없으면 그녀의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없을 텐데..어쩌나?”

 

그리고 2년이 지나 다시 돌아오니 그녀는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갔습니다.

 

“이왕 7년이나 참은거 3년만 더 참아서 국적을 바꿔서 그냥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다른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녀가 미련스럽게 떠나지 않겠다고 할 때는 바보 같아 보이더니만, 떠나고 나니 “조금만 더 참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지난 2년간 남편의 양아버지를 24시간 돌보면서 받았을 월급 한달에 1000유로,

그걸 2년동안 차곡차곡 모아서 만들었을 24,000유로.

 

그녀의 고향에서는 제법 목돈일테니 그 돈으로 조그만 사업을 해도 좋을거 같고,

작은 아파트를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일거 같은데..

그녀는 다시 취직을 하겠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정상적인 남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살았음 좋았으련만.. 그녀는 오스트리아에서의 7년이나 시간을 낭비한 후에야 정신을 차린 모양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이혼을 하게되면 돈을 내야한다고 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그 돈이 내기 싫어서 항상 그녀에게 얘기를 하고 했었다고 했습니다.

 

"이혼은 돈이 들어서 안되니  고국에 가고 싶으면 그냥 가라고!"

 

보통의 남자라면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 다음 순서!

 

"내가 이 여자랑 깨끗하게 호적을 정리해야 다음에 만날 여자랑 결혼하지!"

 

하긴 다음에 다시 여자 만날 일이 없으니 호적이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상관은 없었을까요?

 

그렇게 내친구는 오스트리아에 왔었던 흔적(정리되지 않는 결혼서류)만 남기고 갔습니다.

마지막 가는 모습을 봤었다면 좋았을 것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오스트리아를 떠난 그녀의 사진을 자주 봅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지는거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서 그녀를 보러 간다면..

사랑하는 남자옆에서 행복한 미소를 가득담고 나를 맞아줄 그녀를 상상해봅니다.^^

 

세상에 내 친구같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이가 없기를 바래보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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