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니 전혀 기억나지 않는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죠.
뉴질랜드에 와서 나는
기억나지 않는 나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보인 반응은..
“내가 그런 그런 음식도 했었나?”
간만에 우리를 만난 남편의
전 하우스메이트, A가
내 기억 너머의 이야기를 꺼냈죠.
“너희들이 온다고 하니
윈터(당시 동거를 했던 전 남친의 장남)가
테오의 압펠슈트루델(사과 파이)가
정말 맛있었다고 하더라,
진의 비빔밥과 잡채도 생각이
난다면서 안부 전하래!”
그 집에서 남편은 오스트리아 음식을 하고,
나는 한국 음식을 했었군요.
10년전쯤의 일인데,
당시 우리는 그 집의 작은 방을
주당 얼마의 돈을 내고 지냈습니다.
https://jinny1970.tistory.com/670
처음부터 남편이 그녀의 집에
더부살이를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오클랜드에서 머물며 차를 사서
캠핑카를 만들 준비를 하면서
마눌을 기다리려고 했었는데..
오클랜드에서 월세 사기를
당하고 보니 뉴질랜드에 오만정이
떨어져서 떠나고 싶다고 하니
A가 그러지 말고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해서 A네 집에 머물게 된 거죠.
https://jinny1970.tistory.com/730
그 당시 남편이 산 봉고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동안 우리는
머물 방이 필요했었는데,
마침 A는 자신의 집에 창고 같은 방을
저렴한 가격에 지낼 수 있게 해줬죠.
전망은 끝내주는 집인데,
사실 우리가 머물던 방은 멋진 풍경과는
거리가 아주 먼 곳에 위치해 있는
그야말로 창고방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캠핑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저녁에 들어가서
잠만 자면 되는 것이니 방이 좁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그 집에 들어갔었는데..
https://jinny1970.tistory.com/672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작은 창고방에서 자는 잠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죠.
낮에는 캠핑카를 만들고
저녁에는 그 집의 창고방에 들어가서
잠만 잘 거라는 처음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한식을 좋아한다던 그 집 식구들을
위해서 자주 저녁을 만들어야 했었죠.
5인 가족이 한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시키면 적어도 100불은 나오지만,
집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아낙에게
부탁을 하면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황금 찬스.
물론 그들도 우리 부부를 위해
음식을 하기는 했지만, 5인 가족이
먹는 저녁에 2인분 더하는것과
2인 가족이 먹는데 5인분을
더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고,
외국 음식에 비해서 한식은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죠.
요리를 좋아하는 아낙이었다면
한식을 좋아하는 그 집 식구들을 위해서
기쁘게 요리를 했겠지만,
나는 요리하는 걸 즐기지도 않고,
더군다나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하는 음식이 아니라, 그들의 요청에
남편에게 등 떠밀려서 하는 요리라
음식을 만들면서도 사실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 집 식구 5명에 우리 부부까지
적어도 7인분을 만들어내야 하니
모든 것을 다 채 썰어야 하는
비빔밥을 한번 만들고 나면
손목이 후덜덜했었죠.
그 집에서 머문다는 이유로
그들이 한식 음식이 먹고 싶다 하면,
하루 종일 캠핑카 작업 후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모든 재료를
우리 돈으로 가 사 들고,
그들을 위한 요리를 해야했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는 참 고역이었습니다.
내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비빔밥을 몇 번 만든 건 기억이 나는데,
잡채까지 만들었던 건
나조차도 몰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낮에는 캠핑카 만든다고
남편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하고,
저녁에는 그 집 식구들의 밥까지
해내야 하는 내가 마치 그 집의
식순이처럼 느껴졌었고!
남편도 술 마신 A가 데리러 오라고 하면
(데리러 가기 싫다는) A의 남친 대신에
데리러 가곤 했었으니 방 하나
저렴하게 머문다는 이유로 우리부부가
나란히 그 집의 일꾼 같았죠.
그 집 식구들이 요청을 하면
거절 못하는 남편은 마눌에게
이야기를 하고, 마눌이 싫다고 하면
남편은 짜증을 내니 싫어도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남편이 A네 집에
간다고 했을 때 결사 반대를 했죠.
“그냥 에어비엔비 숙소를 잡아,
어차피 선물 사 들고 가고,
밥도 사고 하다 보면 숙소 비용보다
훨씬 더 나올 수 있어.”
그 당시 마눌이 음식을 하면서
얼마나 짜증을 냈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A가 자기네 집에
빈방이 많다고 하니 그냥 가겠다고
덥석 약속을 해버린 상황.
그 집은 안 가려고 했었는데,
가게 되어버렸으니 일단 하기 싫은 건
안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난 이번에 절대 음식은 안 할꺼야!”
그렇게 선언을 하고 갔지만,
A은 아이 셋 딸린 이혼남과의
동거를 끝내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서
사실 한식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한끼 식사를 해줄 수도 있었는데..
말끝에 “비빔밥과 잡채”을 운운한걸
봐서는 내가 온다니 이번에 먹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던 모양인데,
그녀의 집에서는 캠핑카 작업을 하느라
그녀를 위한 한끼 식사도 한식이 아닌
“생선&샐러드”로 남편은 생선 요리를 하고
나는 샐러드만 만들었었죠.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시간들이라
내가 그들에게 어떤 음식들을
해줬는지도 다 지워버렸었나 봅니다.
그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으니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인데 말이죠.
서로 다른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의 시간들.
“그때 그런 일도 있었구나.”하고
그냥 웃을 수 있는 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이라 가능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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