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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며느리도 뒤끝 있는 까칠한 인간이다.

by 프라우지니 202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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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마당에서 시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시어머니는 하루 종일 집안에 계시다가 햇살이 조금 수그러지는 오후가 되면 마당에 잠시 나오십니다.

 

아빠는 뜨거운 땡볕아래 웃통을 벗고 마당에서  짧은 핫팬티 하나만 입고 일을 하시니 아빠는 여름에는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시지만, 엄마는 햇볕을 안봐서 하얀 백인이십니다.

 

마당에 시어머니만 계시고 시아버지는 안 계신 거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내 얼굴표정에서 뭘 보신 것인지 엄마가 한마디 합니다.

“아빠가 너한테 짜증냈다고 하더라.”

 

오전에 마당에서 만났던 아빠의 반응이 짜증이었군요.

 

나의 말에 퉁명스럽게 말을 받아치시기에 “왜 저러시나?”하고는 그냥 지나쳤었는데..아빠가 작정하고 며느리한테 화를 내셨던 거였군요.

 

아빠가 자정이 다된 시간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셔서 3일 만에 퇴원하신 것이 저번 주.

고열은 코로나 때문이 아니고 감기 증상이었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조심해야죠.

 

여름이라고 해도 올해는 비가 오는 날도 많고 흐린 날도 많아서 그리 덥지도 뜨겁지도 않는 여름날의 연속이었는데, 간만에 온도가 확 올라갔습니다.

 

 

 

 

낮에는 36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땡볕인데 아빠가 마당의 잔디를 깎고 계셨습니다.

 

세탁한 빨래를 마당에 널고 있는 짧은 순간에도 내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아빠는 땡볕 아래에서 잔디깍는 기계를 이리저리 이동중이십니다.

 

남편 점심의 같이 낼 샐러드에 넣을 루콜라와 토마토를 몇 개 따면서 잔디를 깎고 있는 시아버니께 한 말씀 했습니다.

 

“아빠, 더운데 왜 이 시간에 잔디를 깎으세요.”

“그럼 누가 깎냐?”

“나중에 해가 조금 진 다음에 깎으셔도 되잖아요.”

“....”

 

아빠의 퉁명스런 대답에 “내가 토마토 몇 개 땄다고 마음이 불편하셨나?”했습니다.

 

보통은 아빠가 따먹으라고 하신 다음에 토마토를 따는데, 올해는 엄마가 이미 말씀을 하셨길레 토마토를 땄었거든요.

 

토마토를 씨 뿌려, 모종으로 가꾸고, 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어서 물 줘서 키운 건 아빠이신데..아빠가 보는 앞에서 토마토를 따는 것이 “못 마땅하신 가부다..“생각했죠.

 

그리곤 방에 가서 남편에게 아빠와의 상황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빠한테 너무 뜨거울 때 잔디를 깍지 마시라고 했더니 아빠가 "그럼 누가 깍냐?" 하시더라. 나는 잔디깍는 기계를 못 다루거든.

 

설마 내가 잔디를 안 깎아서 역정을 내신 건 아니시겠지?

 

그리고 엄마는 집안에 계시고, 당신은 낮에 일하는데 결국 잔디는 아빠가 깍으셔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 집이나 마당은 다 아빠꺼잖아.”

 

남편은 대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시댁에 살고 있지만 마당은 온전히 시부모님 소유이십니다.

 

우리는 이 집에서 침실겸 거실인 방 하나를 사용하고, 우리 식기보다 여기에 살지 않는 시누이의 식기가 더 많은 시누이의 주방과 욕실 & 화장실을 사용하는 임차인이죠.

 

마당은 내가 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심고, 뭘 심게 땅을 달라고 해도 코딱지만큼 주시면서 잔디까지 깎는 임차인을 기대하신 것인지..

 

무슨 이야기냐구요?

제가 작년인가에 마당의 여기저기에 옥수수를 심는 것이 어떤지 여쭤본 적이 있죠.

 

옥수수를 심어놓으면 저절로 자랄 테니 따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 거 같아서 말씀드렸었는데..

 

“마당에 옥수수가 자라면 그 옆에 있는 것들이 못 자란다.”

 

뭐 이런 비스 무리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마당에 옥수수 몇 개 심는 것이 싫다는 말씀이셨죠.

 

내가 사는 환경이 어찌됐건 간에 나는 며느리.

가끔 까칠하게 댓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친절모드죠.

 

하지만 시부모님은 내가 만만한 며느리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시때때로 까칠해지십니다.

 

 

 

마당에서 만났는데, 날 보고도 안 보이는 척 지나치실 때도 있죠.

그런 날은 “내가 뭘 잘못했나?”할 때도 있지만 그냥 지나칩니다.

 

한 집에 살아서 불편한건 시부모님도 그러시겠지만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외출에 제한이 시작되면서부터 그런 불편함은 더해갔죠.

 

내가 장을 보러갈 때마다 시부모님은 무엇이 필요한지 여쭤봐야 합니다.

 

나는 남편처럼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내가 가지고 올 수 있는 짐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집 장만 볼 때도 사과 2kg (한 봉지), 양파 2 kg (한 봉지) 에 과일 한 두개(1~2kg) 사면 내 배낭은 이미 6~7kg이 되서 내가 메고 오기도 힘든 무게가 되죠.

 

우리 집 장만 봐도 무거운데 시어머니가 사다달라는 것이 있으면 내가 살 것을 줄이고라도 시어머니가 부탁한 물건을 사야하죠.

 

내가 물건을 사와도 내가 사온 물건에 대한 계산은 해 주시지 않습니다.

말로는 “내가 얼마주면 되냐?” 하셨지만 그때마다 “됐어요.” 했었죠.

 

두어 달 정도 우리 부부가 사다드린 식료품 가격을 시아버지는 얼마 전에 남편의 계좌로 이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한테 그 말을 안하시려고 하셨습니다.

 

“네 남편 계좌로 400유로 넣었으니 확인해보라고 해라.”

“무슨 돈을 넣으셨는데요?”

“으음, 그냥 좀 줄것이 있었다."

 

 

 

며느리에게는 그 돈의 용도는 말씀 안하시던 시아버지.

 

남편이 왔길레 아빠가 계좌이체 하셨다는 400유로 이야기를 하니 남편이 물었습니다.

 

“뭔 돈?”

 

며느리가 여쭤볼때는 말씀 안 하시던 아빠가 남편의 물음에는 대답을 하십니다.

 

“그동안 네가 우리 집 식료품 사다준거 얼추 계산해서 넣었다.”

 

영수증은 드린 적이 없으니 대충의 가격을 예상해서 400유로 넣으셨다고 하더라구요.

 

물건은 나도 사다드렸는데, (내가 사용한 생활비 영수증은 나중에 남편에게 환불받는다고 해도 일단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인데..) 물건을 사다준 며느리에게 물건 값을 환불 해 주는 것이 맞는것 같은데도 며느리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아빠와 아들간의 계산으로 끝냈죠.

 

내가 시부모님께 사다드린 식료품의 갯수와 가격보다는 남편이 차를 몰고 가서 사오는 물품의 수나 가격이 훨씬 더 많고, 금액도 더 큰 것은 맞지만, 그래도 며느리를 배재하고 주고받는 물건 값에 대해서는 섭섭했습니다.

 

원래부터 나는 왕따인 것을 알지만..

특히나 금전에 관한 일이면 더 배제되는 기분이죠.

 

남의 집은 며느리한테 시어머니가 무슨 보석 선물도 물려주고, 따로 용돈도 쥐어주고 한다는데 우리 집은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뭘 주고 싶은 마음, 한마디로 마음이 가난하신 분들이십니다.

 

 

 

그래도 나는 며느리이니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남편에게 한마디 하는 걸로 끝을 냅니다.

 

“아니, 내가 사다준 물품에 대한 돈은 나한테 줘야하지 않냐고?

 

우리가 사다준 물건에 대한 돈은  안주셔도 된다고 했는데..

당신한테는 주시면서 왜 나한테는 안 주시냐고???”

“.....”

 

며느리한테 짜증을 내셨고 당신도 스스로 “짜증을 냈다”고 하셨던 날. (엄마의 증언)

 

남편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아빠는 나한테 사과를 하셔야 할 거야! 며느리가 땡볕에 일하시니 걱정이 되서 한말인데 왜 화를 내시냐고? 그것이 화 낼 일이냐고?

 

내가 잔디를 깎아본 적이 없는데 어찌 깍냐고? 그리고 며느리는 재택근무 하는 아들 점심 차려주느라 바빴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시냐고?”

“.....”

“아빠는 나한테 왜 그러시냐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괘팍해지잖아. 가끔씩 그렇게 심술이 나나부지.”

“당신은 안 늙었는데 왜 괘팍한데?”

“......”

“내가 제일 만만하냐고?”

“당신이 이해해~”

“뭘 이해해? 아빠는 나한테 사과를 하셔야 한다고!”

“.....”

 

아빠는 당신이 잘못하신걸 알아도 절대 사과를 하시는 분이 아니시죠.

엄마가 아빠한테 평생 들어보지 못하신 말 중에 하나가 “미안하다.”

 

 

며느리한테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그걸 사과하실 분은 절대 아니신데..

 

“내가 며느리한테 화를 냈다”고 어머니한테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당신의 잘못을 인정하신 거죠.

 

다음날 오전에 남편 몰래 배낭을 메고 슈퍼에 장보러 나갔습니다.

마당에서 뭔가를 하시는 아빠를 봤으니 일단 인사는 해야죠.

 

"할로~ 파파! (=아빠 안녕!)“

 

그러고는 나가기 전에 문이 열려있는 엄마네 가서 엄마를 불러봤습니다.

장보러 가니 “필요한 것이 있으시냐?” 여쭤볼 생각이었죠.

 

평소 같으면 마당에 있는 아빠한테 “엄마가 뭐가 필요하시데요?”하고 여쭤봤는데.. 괜히 아빠랑 말 섞기 싫어서 엄마만 살짝 불러보고는 장보러 다녀왔습니다.

 

당분간 저는 까칠 모드 며느리로 지낼 생각입니다.

 

아빠가 마당에서 뭔가를 하셔도 안 보이는 척 그냥 지나칠 생각입니다.

걱정해서 말씀드려봤자 괜히 짜증내시면 나만 섭섭해지니 말이죠.

 

며느리는 동네북이 아닙니다.

며느리도 화나면 성질 낼 줄 아는 까칠한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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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지난 5월 우리집 마당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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