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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지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들

by 프라우지니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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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봉사”라고는 했지만 내 사심으로 행한 것들도 약간 있었죠.

어떤 종류의 봉사로 내 사심을 채웠냐구요?

 

어딘가로 가는 것이라면 어디든지 OK~~

 

“경주”를 보고 싶은 마음에 의정부 어느 한 성당의 “자원봉사자 모집”에 응한 적도 있었죠. 이주노동자들과 경주로 여행가는 통역 봉사였거든요.

 

버스 몇 대가 움직였는데..

그중 버스 한대를 책임지고 경주를 오고가는 여행의 통역을 책임졌습니다.

 

경주여행 준비한다고 십 원짜리 동전까지 준비 해 갔었습니다.

경주의 “석가탑”이 동전에 있어서 가기 전에 그걸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언제가 경주에서 찍었던 단체사진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못 찾겠어요.

 

혹시 제 글 읽으시다가 그 사진 보신 적이 있으신 분은 신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길도”를 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교회의 농어촌 미용봉사도 갔었습니다. 물론 제 지인이 다니는 교회의 행사에 “전문인(=미용사)로 초대되어 간 거죠.

 

보길도에 데리고 가고, 재워주고, 먹여준다니 마다할 일이 없었죠.^^

전라도 쪽은 그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시골동네에 “미용 봉사”가 왔다고 하니,

어디서 초보 미용사가 온 줄 알고는 아무도 머리를 안 맡기더라는!

 

결국 그 동네 교회 전도사님이 마루타가 되는 심정으로 내 앞에 앉으셨는데..

그때 그분의 표정이 “내 한 몸 희생 하겠소~”였습니다.

 

이분의 머리를 끝장(?)낸 후에야 동네 남자 분들이 몰려드셨죠.

 

보길도 구경한다는 사심으로 간 미용봉사였지만..

난 여기서 이 동네 사람들 머리만 실컷 구경하고 왔습니다.

 

 

 

철창너머까지 갔던 봉사도 있었네요.

 

더 이상 미용사로 일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은 버리기 아깝죠.

그래서 지인이 몸담고 있는 “미용 선교회”라는곳을 통해서 갔던 곳.

 

“안양소년원”

 

인터넷 검사를 해보니 지금은 “여자 청소년”만 머무는 곳으로 바뀐 모양인데,

제가 미용봉사를 다닐 때는 “더벅머리 남자아이들”만 있었습니다.

 

매월 둘째 주였는지 셋째 주였는지 생각은 잘 안 나지만,

신촌의 어느 미용실에 모여서 함께 차를 타고 이곳으로 가곤 했습니다.

 

미용봉사를 하게 되는 장소는 소년원 안의 건물의 어느 방!

 

우리는 건물 안에 들어가서 철창을 넘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느 방에 도착하면 각자의 도구를 꺼내놓고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죠.

아이들은 순번대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습니다.

 

 

유튜브에서 캡처

 

소년원 아이들은 상고머리가 아닌 3mm정도의 길이로 머리를 균일한 머리를 하고 있고,

이 머리가 자라면 더벅머리가 되는 거죠.

 

사실 기술까지는 필요 없는 스타일입니다.

바리캉(이발 기계)에 3mm짜리 케이스를 끼워서 한번 밀어버리면 되니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은 제각기 원하는 머리를 부탁하죠.

 

“누나, 저기요! 저 이번에 나가거든요. 조금 길게 부탁드려요!”

"누나, 저는 약간 상고머리식으로 아래를 조금 더 짧게 해주세요.

 

직원들은 전부 3mm혹은 5mm로 밀어버리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상고머리 비슷하게 해 주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앞에 앉은 아이가 나에게 개인적인 것을 물어볼까봐 살짝 두려웠습니다.

이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범죄자”

 

우리가 철창 안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매번 같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안의 아이들과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마라! "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마라!”

 

어떤 범죄로 들어왔는지 모르니 다들 무섭게 보였죠.

그때는 저도 어린 나이였거든요.

 

유튜브에서 캡처

 

소년원이라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아직 청소년기였지만..

그들의 덩치는 나보다 훨씬 더 큰 성인이었던 아이들.

 

혹시 아이들이 사고를 일으켜서 미용봉사를 하고 있는 이 방을 차지한다면..

이방에 들어온 10명 이내의 봉사자들은 다 인질이 될 수도 있는 상황!

 

“뭐 이런 영화시나리오를 쓰시나?“ 하시겠지만..

소년원 건물로 들어가서 직원이 열어주는 철창 너머로 들어가면 마음은 쫄아듭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있는 아이들이 착한 아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니..

이런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내가 미용봉사를 다녔던 시기는 아마도 20대 후반이지 싶습니다.

나도 나름 어렸던 시기였죠.

 

 

유튜브에서 캡처

 

그렇게 내 기억너머의 가물가물한 추억을 더듬게 된 계기가 방송.

“SBS 스페셜 기적의 하모니“

 

가수 이승철이 소년원의 아이들과 합창단을 만들고 연주회를 준비하는 기간을 담은 다큐.

 

나도 가봤던 소년원.

나도 들어가 본적이 있었던 그 철창너머의 풍경.

 

이 다큐를 보면서 내가 알던 그 무서운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됐고, 철모를 때 떼 지어 다니다가 저지른 범죄.

자신의 행동이 그런 결과가 나올 줄 모르고 했던 아이들의 후회.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또한 눈물 흘렸습니다.

 

“저 아이들이 저렇게 여리고, 저런 마음으로 사는 곳이었구나!”

 

그들이 “누나”하면서 말을 걸어 올 때, 난 무서워서 떨었었는데..^^;

그당시 그들이 내 남동생 또래의 아이였지만, 내 눈에는 범죄자로 보였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아이들이여서 더 무섭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그 안에 들어갈 때마다 받는 교육이 날 그렇게 생각하게 했을 수도 있었겠죠.

 

“안의 아이들과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마라!”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마라!”

 

중년이 된 지금 보니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아이들.

그때는 내가 어렸나봅니다. 아이들을 그저 무섭게만 보였으니..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의 영상에서 내 기억 너머의 추억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내 앞에 앉아서 나와 눈을 맞출 때, 그들을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봐줄 것을..

머리를 자르고 일어나서 가기 전에 꾸벅 절을 하는 그들에게 웃어줄 것을!

 

지금 다시 미용봉사를 간다면...

 

지금은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눈길로 그들을 대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 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알게 됐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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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눈이 조금 시원한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올해는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겨울날의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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