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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철저한 AS가 필요한 국제결혼

by 프라우지니 2019.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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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국제결혼을 해서 살다가 헤어지게 되면 철저한 AS가 따라야 한다는..

 

세상의 모든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할 수도 있지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서 살다가 이혼하는 것과, 국제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혼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로 남편하나 믿고 시집와서 잘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다면..

 

국제 결혼한 아낙은 딛고 있던 반석 같은 땅이 사라져버린 것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거죠.

 

남편 때문에 온 나라인데 남편이 없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아님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지..

 

남편이 없다고 해도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떠나온 시간이 긴만큼 다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혹시 아이라도 있다면 더더욱 내 나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나라에서 아이가 받게 될 차별이나 언어문제를 고려해야 하니 말이죠.

 

남편이 없는 나라에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다 알아서 해주던 관청일이나 계약에 관한 이런저런 일들도 이제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혼자 부딪혀야한다는 이야기이니 말이죠.

 

내 나라로 돌아가던, 남편의 나라에 남아서 살던, 제일 심각한 문제는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꼬?” 바로 경제적인 문제죠.

 

내 문제도 아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내가 만난 한 아낙 때문입니다.

내가 다니는 시민대학의 독일어 코스!

 

거기서 만난 선생님 때문에 “국제결혼의 AS"를 생각하게 됐죠.

 

 

우리반 강의시간

 

처음에는 그녀가 나잇값 못하고 사는 인간형인줄 알았습니다.

 

중년의 아낙인데 강의 중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전혀 프로 같지 않고!

(저는 강의 시간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100%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 1인입니다.)

 

패션도 어떤 날은 히피풍으로, 어떤 날은 나팔바지 복고풍으로 입고오고, 참 특이했습니다.

 

강의를 한다고 고리타분하게 입고 다니라는 법은 없지만, 특이한 패션의 극과 극을 달리는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온 선생님하고는 차원이 달랐죠.

 

우리 반에서 독일어가 딸려 잘 못 알아듣는 이집트 아저씨에게 “아랍어”로 대화를 시도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외국어 (독일어, 영어, 아랍어 등등)를 나열할 때는 조금 철이 없어 보이기도 했죠.

 

그녀와의 수업이 길어지니 조금 더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이집트에서 17년을 살았고, 남편이 이집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하는가 했더니만, 어느 날은 “남편과 사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낮에 그녀가 가르치는 다른  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과부라 낮에 하는 난민상대 독일어 강의를 하면 젊은 난민청년들이 들이댄다.”

 

남자 학생들이 추파를 던져도 대놓고 정색을 하면서 거절하기보다는 그저 웃고 마는 그녀.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혼자 몸이니 가끔 젊은 청년들을 만나나 보다..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은 수업 중에 “오스트리아에 다시 돌아온 지 4년 됐다.”는 그녀.

 

그녀가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을 대충 종합해보면..

 

이집트 남편과 이집트에서 17년 살았고, 남편과 사별했고, 오스트리아에 다시 돌아온 지 4년.

 

항상 수업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저와 일찍 온 선생님이 잠시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개인적인 것을 물어도 되냐고 한 뒤에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죠.

 

“샘, 이집트에서 17년 살다가 오스트리아에 오신지 4년 되셨다고 하셨는데..

그 시기가 샘의 부군이 돌아가신 다음인가요?“

“네”

“샘 상당히 어려 보이시는데 큰아이가 23살이라고 하시고, 혹시 연세를 여쭤봐도 될까요?”

“올해 42살이에요. 큰 아이를 19살에 낳았죠.”

“이집트에서도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남편분이 살아계실때도 일을 하셨어요?”

“네,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난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독일어 개인교습도 하면서 살았는데, 남편도 죽고, 이집트내의 물가가 갑자기 몇 배로 뛰는 바람에 더 이상 그곳에 살수가 없어서 아이들 데리고 돌아왔죠.”

 

이집트의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했다면 웬만한 수입은 될 텐데 하는 마음에 전공이 “영어”였나고 물어보니 대답을 어물거리는걸 봐서는 (어디선가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기는 한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국제 외국인 학교”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19살에 이미 아이를 큰 아이를 낳았다면,

대학은 시집가서 살던 이집트에서 나온 것인가 했었거든요.

 

샘의 올해 나이가 42살이니 남편이 돌아가신 4년 전에는 38살이었겠네요.

 

어릴 때 만난 첫사랑 남편과 이집트에 살면서 잘 먹고 잘 살았는데..  4년 전 갑자기 남편에게 암선고가 내려졌고, 암투병 3달 만에 남편은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습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오스트리아, 친정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독일어 강의부터 저녁 8시 30분에 끝나는 시민대학 강의까지 바쁘게 산다고 했습니다.

 

아이 셋은 다행히 아랍어와 독일어가 가능해서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 잘 적응했고, 큰아이는 이미 독립해서 살고 있고, 20살인 둘째와 막내인 15살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니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였습니다.

 

“이집트에서 17년 살았음 그곳에 집같은거 사놓은 건 없으세요?”

“그러게 말이예요, 물가 싼 그때 집 한두 채 사놨으면 지금 부자가 됐을 텐데.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보니 못 샀어요. 지금은 비싸서 엄두도 못 내죠.“

 

남편에게 갑작스런 암 발병이 없었다면 지금도 이집트에서 잘 살고 있을 그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남편은 돌아가셨고, 그곳에서 더 이상 살기가 힘드니 돌아왔지만!

이곳에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로 보였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독일어 개인교습하느라 바쁘게 살았다는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강의를 다니고,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는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봐주고, 교정하는 일까지. 정말 전투적으로 생활을 합니다.

 

이제 42살이니 그녀는 최소한 앞으로 20년 이상 오스트리아에서도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립하고 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덜 일해도 되겠지만, 그건 아직은 먼 이야기.

그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국제결혼은 철저한 AS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남편이 먼저 가면서도 그녀가 혼자 살아갈 수 있게 준비를 해뒀더라면..

 

그녀가 대학에 진학해서 영어전공을 했고, 정말 제대로 된 외국인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을 했더라면 남편 없이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 경제적은 어려움없었을텐데..

 

그랬다면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계속해서 살았겠죠.

 

어느 날 남편이 사라지고, 딛고 있던 반석이 사라져서 맨땅에 주저앉은 외국인아낙!

내 독일어 샘은 그곳에서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오는 쪽을 택했습니다.

 

너무 오래 떠나 산 고국인지라, 4년이 지난 지금도 적응중이라는 그녀.

 

남편과의 사별이나 이혼이나 외국인 아낙에게는 같은 의미죠.

남편 없이 혼자서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

 

외국인 남편을 만나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낙도 있고,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시간제 일을 하는 아낙도 있고,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사는 아낙도 있겠죠.

 

외국인 아내를 맞이해서 사는 몇몇 남편들은 아내를 집에 가두려고 합니다. 아내가 밖에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날개옷을 가진 선녀”처럼 자기 곁을 떠날 꺼라 생각하는 것인지...

 

외국인 아내는 살다가 이혼을 하고 싶어도 혼자 자립할 능력이 안 되니 그냥 살아갑니다.

 

아이를 데리고 직업도 없이 혼자 살아갈 자신도 없고, 국제결혼 했던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이를 데리고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건 사실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이죠.

 

아빠의 나라에서 아이도 성장하고, 공부를 하고, 한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최후의 선택으로 하는 고국행!

 

“내가 없어도 내 아내가 “내나라”에서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살 수 있게 ‘직업교육“을 알아봐주고, 경제적인 자립도 가능한 직업을 만들어 주는 것이 외국인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AS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내의 날개옷“이라고 믿는 현지인들과의 소통과 현지에서 받는 직업교육.

날개옷을 감춘다고 아내가 날아가지 않는 건 아니죠.

 

갑작스런 남편의 부재로 혼자서 힘들게 사는 내 독일어 샘을 봐도, 또 지금 이 순간 외국인 남편과의 원활하지 않은 소통 때문에 힘들어도 “이혼”은 엄두도 못내는 아낙들을 봐도!

 

국제결혼의 제대로 된 AS는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국제결혼이고, 사랑해서 결혼한 국제결혼이지만..

사별이나 이혼 후에 “국제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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