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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네 가족, 내 가족

by 프라우지니 2018.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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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 생각이 많은 날입니다.

네 가족과 내 가족에 대한 생각도 깊이 해본 날이네요.

 

처음 시작은 이랬습니다.

 

남들은 쉬는 휴일에 근무하는 마눌을 위해서 잠자다 말고 일어나서 차로 요양원을 데려다준 남편, 저녁 퇴근에 맞춰서 요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마눌을 기다렸습니다.

(이날 비가 온지라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10 시간의 근무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남편의 차문을 여는데 차문은 잠겨있고, 차안에서 남편은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나랑 장난이 하고 싶은 모양인데...

 

비 맞고 서서 남편의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닌지라, 문을 두어 번 열어보고는 가지고 있던 우산을 쓰고는 걸었습니다. 집까지 걸어올 생각이었죠.

 

남편이 뒤따라오면서 “타라!”고 했지만 이미 기분이 상한지라 걸었습니다.

비도 오는데 우산을 쓰고 걷다보니 괜히 울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남편이 장난이 울고 싶은 인간이 제대로 울 수 있게 뺨을 한 대 때린 격이었죠.

 

집으로 걸어오며 “엉엉~”아주 큰 소리를 내면서 울었습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내 맘속의 슬픔을 울어서 풀어야 합니다.

 

“타라”고 해도 안 타는 마눌을 그냥 두고 집에 먼저 와있는 남편.

마눌이 집에 도착하니 변명을 시작합니다.

 

"내가 오늘 운동 가느라 시내에 갔었는데, 차문을 잠갔다는 걸 몰랐어.“

“....”

“내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이 들었었거든!”

“집에 걸어오면서 울었어.”

 

마눌이 우는 걸 제일 싫어하는 남편인데 마눌이 울었다니 짜증이 난 모양입니다.

 

“가끔 마눌이 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꼭 안아 달라”고 했었는데.. 그걸 잊은 것인지 짜증+잔소리를 쏟아내는 남편.

 

“왜 울었어?”

“근무도 힘들고 오늘 당신 외사촌형수하고 같이 근무했는데 재수 없었어.”

“근무가 다 다 그렇지 뭐!”

“같은 하루 10시간 근무라고 해도 마음이 맞는 직원들이면 하루가 즐겁지만, 힘든 직원들하고 일하면 하루가 힘들어, 일도 평소의 2배로 해야 하고!”

“그럴 때는 병동 책임자한테 이야기를 하라니깐!”

“.....”

 

모든 문제들이 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모르는 남편.

 

 

오늘 내 마음같은 우리(시부모님) 집 마당풍경.

 

사실 마눌에게 울 기회를 제공한건 남편이었죠.

차 문이 열려있었다면 마눌이 올라타서 별일 없이 집에 오는 일상이었을 텐데..

 

그랬다면 마눌은 “당신 외사촌 형수는 왜 그래?”하면서 뒷담화를 했겠죠.

 

마눌이 울었고, 남편은 짜증을 냈고, 사태는 악화되어갑니다.

이쯤 되면 마눌이 남편에게 보이는 건 가운데 손가락! (아시죠? 엿 먹어!)

남편의 짜증이 더 심해지면 이번에는 가운데 손가락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죠.

 

남편은 이미 열 받은 상태입니다.

마눌이 곱빼기로 "엿을 먹으라“니 말이죠.

 

열 받은 남편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합니다.

 

“당신 그러려면 한국 가! 한국 가서 그런 행동 하던가..”

 

전에 남편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나보고 ”한국 가!“라는 말은 하지 마.

그 말이 나를 제일 슬프게 하니까!”

 

국제결혼해서 남편의 나라에 살고 있는 아낙들은 사실 의지할 사람이 남편밖에 없습니다.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고 사는 남편인데, 나보고 가라면 안 되죠!^^;

 

마눌이 했던 부탁을 잊지는 않았을 텐데 화가 난 남편은 마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합니다.

마눌이 아무리 “엿 먹어라~”했다고 해도 이 말은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남편이 “한국에 가” 라는 말에 되받아쳤습니다.

 

“걱정 마, 나 안 그래도 1월에 한국에 가는데 가면 안 올 꺼야.”

“그래, 가서 당신 가족들 옆에서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아봐!”

“걱정 마, 내 가족 옆에서 잘 먹고 잘 살 꺼야. 혹여 내가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온다고 해도 다른 집 얻어서 살꺼니까 걱정하지 마, 이제는 혼인증명서 없이도 연장이 되는 비자여서 나 혼자 여기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부부의 대화는 거의 “막가파“입니다.

 

살아온 기간이 있으니 이렇게 싸워도 나중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서로 “미안해”하면서 끝내지만, 매번 마눌이 상처받는 말은 남편의 “그러려면 네 가족이 있는 한국 가!”입니다.

 

오늘은 남편의 말을 생각 해 봤습니다.

남편이 말한 “네 가족”은 다 한국에 있죠.

 

내가 여기서 “내 가족”이라고 믿고 살고 있는 건 다 남편의 가족입니다.

남편이 있어 “내 가족”이 되는 나에게는 “시”자가 붙은 가족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가족”이라고 믿고 살아온 이곳의 가족인데..

오늘은 남편의 “네 가족”에 다시 한 번 나에게 "가족“이란 의미를 한 번 생각 해 봤습니다.

 

이곳에 있는 “내 가족”속에 나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습니다.

며느리는 딸이랑 다르니 권리 대신해 해야 할 의무만 있죠.

 

남편의 장난이 심한지라 우리 집에서는 제 비명이 끊이질 않습니다.

장난으로 때리지만 나는 아플 때도 있고.

 

중요한건.. 옆집에서는 매일 비명소리를 듣죠.

옆집에서야 “장난인지 정말 때리는지”알 길이 없는 비명소리죠.

 

전에 시어머니께 농담 삼아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증언을 서야한다면 매일 비명소리를 듣는다고 해 주실꺼예요?”

“나는 아무 말 안 할 꺼다.”

 

엄마의 말인 즉은 “내 아들이 설령 때렸다고 해도 나는 내 아들을 신고하지 않는다.“이었습니다.

 

며느리 편은 절대 되어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주에 없습니다.

 

이래저래 믿고 사는 사람은 남편뿐인 국제결혼이니..

시댁식구들은 사실 나에게는 그리 중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편이 없다면 나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볼 사람들이니 말이죠.

 

오늘 남편의 말 한마디에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남편의 가족은 절대 내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어떤 일을 했건 간에 무조건 품어주고 내 편이 되어줄 내 가족은 여기 없습니다.

이곳은 “내 가족 코스프레”를 한 ”네(남편) 가족“만 있을 뿐입니다.

 

결혼생활 12년으로 넘어가고 있는 2018년을 1주일 남긴 날.

시댁식구는 절대 “내 가족”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임을 알았습니다.

 

이런 현실을 깨닫게 해준 오늘이 있어 다행입니다.

나는 진심을 다해도 내가 (시)가족들에게 느끼는 “섭섭함”의 이유를 알았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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