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을 왠만해서는 상대방에게 밥 사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데이트를 해도 자기 밥값은 자기가 계산하는 더치페이입니다.
(물론 한명이 다 내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서양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도 서양인의 문화에 적응을 해 가고 있는지 아님 정말로 밥을 사주고, 얻어먹고 할 정도의 관계가 되지 않아서 인지..
저도 사람들을 만나면 거의 더치페이를 했죠!
결혼생활 7년중에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한 기간은 아직 4년이 조금 안 되는 정도이고, 내가 오스트리아에 머물 때도 “내 친구”라고 손에 꼽을만한 사람들이 사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선물을 챙기고 하던 내 오스트리아에서의 첫 번째 친구는 나보다 10살이 어린 헝가리 아낙(안드레아)이였고, 두 번째 친구도 나보다 거의 20년이 어린 헝가리 아가씨(췰라)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친구가 동양의 한나라에서 온 아낙(산다)이였습니다.
제가 그라츠에 살 때는 동양인들과 만날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루 4시간 일을 해야 했고, 일주일에 두 번 독일어 학원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바쁘게 산지라 따로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고, 누가 내 집 근처나 나를 방문하지 않는 한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 린츠에 살게 되면서 다닌 독일어학원!
그곳에서 동양인들을 만났습니다.
나보다 6살이 많은 일본인 아낙(미유키)와 20대 중반의 어린 대만아가씨(림핑)
어쩌다 보니 림핑과는 수업 후에 같이 도서관을 다니게 됐고,
미유키와도 수업시간외에 시간을 내서 만나려고 노력을 했죠^^
내가 만난 이들이 나에게 “동양인의 인심”을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습니다.
26살의 림핑은 오스트리아 남친이 비행기표를 사줘서 오스트리아에 3달 동안 다니러 왔다고 했습니다. 3주간의 독일어 학원비 170유로도 남친이 납부 해 줬고, 그 외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 모든 생활비도 다 남친이 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돈은 대만에서 챙겨온 약간의 비상금정도 있다는 걸 그녀에게서 들은지라,
그녀의 경제사정을 잘 알고 있는 터였습니다.
도서관이 문을 늦게 여는 수요일. 그녀와 시내를 걸었습니다.
그녀를 따라 걸어가니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멈추더니 나에게 묻습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after eight (민트향이 진한 초코렛) 아이스크림이 있어.”
“아니!”
(사실 저는 아이스크림도 초코렛도 과자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이스크림 살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다시 말합니다.
“내가 아이스크림 사 줄께!”
“나 원래 아이스크림 안 좋아해!
그녀가 가진 돈이 얼마 안 되는걸 아는데,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그 마음이 참 고맙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서양인들에게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그런 인정을 말이죠!
평소에는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번개같이 자리를 뜨는 미유키가 그날따라 우리를 따라서 걷겠다고 우리와 함께 도서관쪽으로 걸었습니다. 걷는 중에 발견한 인도 식당 앞의 간판!
“평일 뷔페 7.20유로!”
배도 고팠던지라 그 간판을 보자마자 서로 외쳤습니다.
“우리 밥 먹고 가자!^^”
그렇게 들어선 인도식당!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미유키가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들 점심값을 낼께!”
서양의 식당은 우리나라처럼 음식만 주문하면 되는 것이 아니죠!
항상 음료를 따로 주문해야하고, 그렇게 되면 1인당 거의 10유로가 필요합니다.
지금 미유키가 우리와의 점심값으로 선뜻 30유로를 내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그녀는 (오스트리아인)남편이 하는 유기농 식당을 겸한 식품가게에 시간제 직원으로 등록이 되어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지도 않았고, 시간제 일에 대한 월급도 받지 않고, 남편에게 생활비 혹은 용돈을 받아쓰고 있는 처지인걸 우리가 아는데 그녀가 우리 밥값을 내겠다고 합니다.
(여자들끼리는 이렇게 서로 소소한 개인 이야기를 하게 되죠!^^)
항상 속이 안 좋아서 뭐든지 조금씩 먹는 림핑은 함께 뷔페식당을 들어왔지만 자기는 점심은 됐고, 그냥 맥주만 한 잔 마시겠다고 했고(림핑은 맥주를 사랑하는 아가씨입니다.)
림핑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 제가 한마디 했죠!
“내 밥값은 내가 낼테니까, 미유키 너는 림핑 맥주값만 내줘!”
그렇게 식사를 하고, 계산할때가 돼서 다들 지갑을 꺼내들고는 웨이터 올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웨이터가 오니 미유키가 얼른 말합니다.
“3명이 먹은 음료 값하고, 뷔페 한 사람분 계산이요~”
네, 그녀는 림핑의 맥주 값과 더불어 내가 먹은 음료수 값도 계산했습니다.
주머니 사정으로 봐도 내가 그녀가 훨씬 더 나은 상황(저는 남편한테 얻어 쓰는 상황이 아닌 나라에서 주는 실업급여를 받는 실업자 신분^^)이였는데도, 그녀는 자기가 나이가 젤 많다는 이유로 어린 동생들에게 뭔가를 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전 또 다른 동양인을 만났습니다.
“요양보호사” 직업교육 안내가 있는 곳(BFI라는 학원)에서 만난 캄보디아인 “사라”
오스트리아 국적(난민으로 와서 국적 취득후 오스트리아 생활 30년차)을 가진 캄보디아 남자를 만나서 오스트리아에 산지 15년차라는 아낙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인연으로 직업교육 안내가 끝난 후에 잠시 이야기를 하기위해 옮겨간 맥도날드에서 선뜻 내 커피값 1유로를 지불했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먼저 이야기 하자고 했었으니 내가 내야하는 커피값인데...
병원에서 1주일에 20시간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나보다 더 많은 정보가 있을거 같았고,, 정보 교환차원과 직업교육을 함께 받게 될 수도 있으니 친하게 지내면 좋을거 같았거든요.
커피를 사도 내가 사야하는 상황인데, 그녀는 얼른 계산대에 가서 돈을 지불했습니다.
나중에 내 커피값 1유로를 그녀에게 내밀었지만 그녀는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음에 내가 그녀의 커피값을 내면 되지만, 이 작은 친절이 “아! 역시 동양인에게는 서양인에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인정이라는 것이 있구나!”싶습니다.
나에게 동양인의 인정을 실감하게 해준 세 사람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인 림핑은 3개월의 오스트리아 생활을 마치고 다시 대만으로 돌아갔습니다.
오스트리아 남친과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고, 대만에서 독일어 시험 B2(중급)을 잘 치뤘으며, 지금은 열심히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두 번재 인물인 미유키는 독일어 학원이 끝난 후 한 두번 전화 통화만 했었습니다.
50대 아낙답게 핸드폰 문자도 못 보내는지라 문자를 보내면 바로 전화를 하는 아낙인데..
요새는 바쁜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맛있게 익은 김치 있는데, 니가 말하면 갖다 줄께!”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작은 선물(엄마가 만든 크리스마스 과자^^)이라도 들고 그녀의 남편 가게를 한번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세 번째 인물인 사라는 저와 함께 BFI 면접시험과 인터뷰를 가볍게 통과하고 최근에 40시간의 실습도 끝냈습니다. 내년 2월에 그녀와 나란히 2년간의 직업교육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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