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일반 직장인과는 다르게
교대근무를 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주중과 주말이 따로 없고,
그날은 꼭 쉬어야 하는데 근무가
잡히는 경우도 종종 있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동료와 근무 바꾸기.
나 같은 경우는 내가 필요한
날을 먼저 알리고,
동료가 근무하는 날을 기준으로
내가 가능한 날을
몇 개 골라서 알려줍니다.
그러면 동료는 자기가 편한 날을
선택해서 나와 근무를 바꾸죠.
무슨 말이냐구요?
나는 5일에 쉬어야 하는데
5일에 근무가 잡혀 있으면
그날 근무가 없는 동료들을
물색 후 동료의 근무 날 중
내가 가능한 날
(예를 들어 7일, 9일, 15일)들을
동료에게 알리고 동료가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난 그날 일을 하는 거죠.
나도 가끔 근무를 바꿀 때가
있기 때문에 근무를 바꿔 달라고
알려오면 가능한 바꿔주려고
노력을 하지만 수당이 더 나오는
내 빨간(국경일/일요일) 날을
콕 찍어서 바꿔달라고 하면
짜증이 납니다.
“이것이 칼만 안 들었지 강도네!”싶죠.
자기 빨간 날을 나의 평일과
바꿔달라고 하면 얼씨구 좋다고
얼른 바꾸겠지만 자기의 평일을
내 빨간 날과 바꾸자면 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죠.
자기가 아쉬워서 바꿔달라고
하는 상황인데, 나의 빨간 날을
강탈 해 가려고 하다니..
대놓고 “그날 수당이 더 나오니 안돼!”
하기는 조금 그렇고 다른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참 그렇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지..
우리 요양원 30년 넘게 일한
동료 E는 겉보기에는 정말 친절하고
병동내 어르신께도 정말 잘하는데,
나는 항상 조금 다르게
느껴 왔었습니다.
겉으로는 친절한데 날 바라보는
눈빛은 괜히 쎄하고 그런 느낌!
한마디로 표현을 한다면
날 좋아하지 않는 거죠.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다른 이유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웬만큼 눈치가 없지 않고서는
한번에 알 수 있으니 남들에게는
친절하지만 나는 조금 거리를
두는 그런 동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E가 지난 번에도
나의 빨간 날을 콕 찍어서 나와
근무를 바꿔달라고 하더니만
이번에도 또 나의 빨간 날을
콕 찍어서 바꿔달라고 합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입사한
외국인 동료들에게 내가
강조하는 말이 바로 이겁니다.
“근무를 바꿔달라고 할 때는
상대의 빨간 날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날짜를 하나만 지정하지 말고,
너가 필요한 날을 말한 후에
상대가 몇 개의 날짜 중에 한 개를
지정할 수 있게 선택권을 줘!”
근무를 바꿔달라고 부탁을
해오면서 나의 빨간 날을
달라고 하는 건 내 기분이
심히 언짢은 일이니
근무 교환 요청 시 에티켓”을
살짝 알려줬던 거죠.
우리 병동의 직원들은
보통 한달에 2번 정도
일요일(빨간 날)
근무를 하게 되는데,
입사 7년차인 나 같은 경우
빨간 날은 대충 60유로 정도
수당이 붙는 거 같으니,
입사 30년차가 되면 100유로는
훨씬 더 넘게 붙을 테니 빨간 날 근무
한 두 번이면 꽤 괜찮은 수입입니다.
E는 입사 35년차이니
같은 일을 해도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고,
빨간 날 근무를 하면 나오는 수당은
거의 나의 두 배 일 텐데,
그런 E가 나의 빨간 날을
탐냅니다.
“금요일에 우리 옆집에 살던
사람의 장례식이 있는데
내가 너의 월요일
(이스터 먼데이/국경일)에
근무를 할 테니 네가 나의
금요일을 맡아 줄래?”
장례식에 간다는 금요일에
근무를 대신 해주는 건
문제가 아닌디..
하필 왜 나의 빨간 날을
지정해서 달라고 하는 것인지..
처음에는 일단 남편 핑계를 댔습니다.
“금요일(바로 주말이니)에 남편이
따로 계획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지금 말하기는 조금 그렇고
나중에 알려 줄께.”
했는데, 남편 이야기에 옆에 있던
이혼녀 동료 S가 쌍지팡이를
집고 나섭니다.
“넌 뭐든지 남편에게
물어봐야 하지?”
내가 혼자 사는 여자도 아니고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아빠 같은 남편의 계획 아래에
주말 여행이나 나들이를 가니
남편이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인데,
내 동료들은 내가 남편이
시키는 대로 사는 아주 착한
마눌이라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뭐! 남들의 생각이 중요한 건
아니니 그 순간을 그냥 넘겼는데,
그날 오후에 다시 또 물어오는 E.
“남편에게 물어봤어?”
저녁에 집에 가서 물어
보겠다는 이야기였는데,
심하게 재촉하시는 E.
E가 가겠다는 이웃의 장례식도
중요하지만 굳이 나의 휴일
수당이 나오는 날을 콕 찍어서
바꿔달라고 하는 건 나에게는
너무 무리한 부탁.
(나의 60유로를 강탈 당하는
느낌입니다. ㅠㅠ)
“4월1일 말고 다른 날
바꾸면 안될까?
그날은 내가 일하고 싶거든!”
자기 딴에는 자기와 근무를
바꿔줄 사람이 나밖에 없고,
꼭 그날만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를 해서 못 바꿔 주는
내가 미안하게끔 말을 하더니만,
전에도 나에게 자주 보여줬던
그 싸한 눈빛을 던지고는 가버리는 E.
나밖에 바꿔줄 동료가 없다고 하니
혹시나 나 때문에 장례식을
못 가는 건 아닌가 걱정을
했었는데, 이틀 후에 근무 교체
신청서를 보니 E는 다른 동료와
자신이 필요한 날 근무를 바꿔서
이미 신청 해 놓은 상태.
나밖에 바꿔줄 사람이 없다며
날 미안하게 만들더니
내가 최후의 보루는
아니었나 봅니다.
오늘 근무를 하면서 나의
멘토였던 S와 휴식시간에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4월1일은 이스터 먼데이
(부활절 월요일/공휴일)라서
시누이도 와있고, 집에 있으면
점심 식사 전에 시어머니 댁에
넘어가서 같이 식사 준비하고,
먹고, 카드 놀이까지 해드리면
오후 늦게야 우리 집에 올 수 있거든.
그래서 나는 빨간 날은
일하는 것이 더 좋아.”
내 말에는 무조건 쌍지팡이를
집고 나서는 이혼녀 S가 이번에도
한마디를 합니다.
“시어머니가 요리를 하는데
왜 네가 도와?”
연세가 많으신 시어머니가
힘이 딸려서 팔을 덜덜 떨어가면서
준비해서 차려놓은 식사를
달랑 가서 먹고 다시 돌아오는 건
한국인 며느리가 할만한
행동은 아니죠.
“시누이는 자기 엄마가
요리할 때 도와줘?”
“아니!”
“딸도 안 하는걸 며느리가 왜 해?”
딸과 며느리는 위치부터 다르죠.
딸래미는 눈치 안 보고 개길 수 있지만
며느리는 누울 자리를 보고
개겨도 개길 수 있는 거죠.
일단 뭐든지 못마땅하게 보는
S에게는 한국 문화라고 했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같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는데
옆에서 설거지라고 해서
거드는 것은 며느리가 아니라
이웃이어도 할 수 있는 일이죠.
아무튼 “내가 국경일이나 일요일 같은
빨간 날 집에 있으면 식사준비
및 카드놀이까지 시어머니
옆에서 나의 반나절을 까먹어야
하는데 그날 근무가 잡히면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니 좋다.”
대충 이렇게 얼버무렸습니다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시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신다고 하면
내가 가서 도와드리니
나의 반나절을 소비하는 건
맞지만 매주 하시는 건 아니죠.
단, 시누이가 오는 명절 연휴에는
시어머니가 매 끼니를 준비하시니
부활절 연휴에도 집에 있었다면
나는 매일 나의 반나절을
까먹어야 했겠죠.
물론 핑계입니다.
수당이 더 나오는 날이
한달에 겨우 한두 번인데,
그날을 꼭 찾아 먹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마음.
빨간 날 근무 이야기를 하다가
E의 근무 교환을 요청 해 왔지만
집에 있으면 시어머니께
반나절 헌납을 해야하니
근무를 하고 싶고 대신에
“다른 날을 바꿔줄 수 있다"
고 했었다.
끼리끼리 뭉치는 우리 병동이라
자기네들끼리는 이미 내
이야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장례식에 가야 하는데
내가 근무를 안 바꿔줬다고
말이죠.
(자기가 맡겨 놓은 것도
아니면서 너무 당당하게!)
“장례식이 얼마나 중요한데..”
S가 흐리는 말끝에서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상상이 됐죠.
한마디로 중요한 장례식에
가야하는데 나는 근무를
바꿔주지 않는 나는
개년이 된 모양입니다.
내가 안 된다고 한 것은
그녀가 지정한 빨간 날이고,
다른 날은 된다고 했었는데..
그깟 60유로 때문에
근무를 바꿔주지 않은
나의 변명은 이렇습니다.
(땅 파보세요.
돈이 나오나요?
60유로 절대 작은 돈 아니고,
같은 근무인데 단지 빨간 날이라는
이유로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되죠!)
솔직히 말하면 직계가족도 아닌
이웃이고, 장례식이 하루 종일
걸리는 것도 아니니
꼭 가야한다면 근무중 한 두시간을
다녀올 수 있는 문제이고,
그럼 자신이 비는 시간만
잠시 근무를 서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수당이 더 나오는
빨간 날을 지정해서
바꿔달라고 하는 건
날 너무 호구로 본 것이
아닌가 싶죠.
E가 나와 절친한 사이였다면
60유로 때문에 근무를 바꿔주지
않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60유로가 더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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