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한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르신 부부가 나란히 한 방을 사용하셨는데,
할배(93세)가 3일 전에 먼저 가셨고,
오늘은 할매(88세)가 가셨죠.
할배는 특별한 지병이 없으셨지만,
할매는 피부암을 앓고 계셨던 분이시라
할배보다는 할매가 더 먼저 가실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할배가 먼저 가셨죠.
돌아가시기 전, 할배는 한동안
식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양원에서 제공하는 삼시세끼 대신에
할배가 즐겨 드시는 크래커를 몇 개로
하루를 버티시느라 기운은 없으셨지만,
그래도 직원이 “화장실을 가시자”하면
없는 기운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곤 하셨는데, 할배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셨고!
할배가 생전에 드시던 크래커와 럼이
들어있는 초콜릿은 다 직원들
차지가 됐습니다.
럼 초콜릿은 쌓아놓고 드셨었는지
사무실로 대여섯 통이 왔는데,
직원들이 오며 가며 열심히 먹어대더니
한 이틀 지나니 바닥이 났죠.
참고로 저는 돌아가신 분 소유였던
음식이고, 또 럼초코렛도 먹지않아서
손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할배가 돌아가셨음을
옆에 누워계신 할매께 알려드리니,
할매는 우시지는 않으셨지만,
시시때때로 직원 호출을 해서
“내 남편이 숨을 쉬는지 확인해달라.”
하셨다는 걸 봐서는 당신보다 더
건강하셨던 남편이 먼저 떠난 것을
실감하지 못하신 듯 했죠.
이른 아침부터 S할매의 방에서
한바탕 소란이 있었고, 잠시 후
S할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들었죠.
고인을 만나러 올 방문객을 준비 해야하니
S부인의 방에 널려있는 간병물품들을
정리하려고 방에 들어가니
이미 숨이 끊어진 할매의 손에는
3일전 돌아가신 할배의 사진을
들려 있었습니다.
돌아가실 때 누군가의 배웅없이
혼자 조용히 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가시는 그 순간에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 봐준다면 그것은 가시는 분의
복이라 생각하죠.
최소한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외롭지 않으셨으니 말이죠.
오늘 가신 S할매가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숨을 몰아 쉬고 계실 때,
한 손은 연락을 받고 온 따님이,
나머지 손은 우리 병동의 책임자인
C가 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인의 따님은 자신의 엄마이니
그 힘든 마지막 순간을 지킨 것이지만,
우리 병동의 책임자인 C는 일부러
그 방에 가서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한거죠.
S할매의 마지막은 병동의 책임자인
C가 지금까지 봐온 임종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게
가시는 분은 없었다고..
아침에 드셨던 우유는 다 토해내고,
두 눈은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이
튀어나오고 거기에 숨까지 헐떡거리면서
너무 힘들어 하니 S할매의 손을 잡고 있던
따님이 한마디를 했다고 들었죠.
“엄마, 이제 그만 놓고 가!”
힘들게 가신 S할매를 보내드리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C를 보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며칠 전에 돌아가신 또 다른 S부인은
일가친척이 없으셨던 분이신데,
그분이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도
C는 그분의 손을 잡고 있었다고 들었죠.
병동의 책임자라고 해서,
근무시간이라고 해서
“임종을 지킬 의무”는 없는데,
C는 가시는 분들이 외롭지 않게
자신이 근무하는 시간이라면
함께 해드리는 거 같습니다.
요양원에서는 죽음이 일상이라고 해도,
“어느 방에 어느 분이 돌아가셨다”고
듣는 것과 “바로 옆에서 임종을
지키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르죠.
특히나 병동의 책임자인 C는
유방암을 이겨낸 병력이 있어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건강한
사람과는 많이 다르고, 매번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을텐데..
그 힘든 일을 매번 해내는 C가
짠하면서도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일을 한다고
다 마음이 따뜻하지는 않습니다.
단순하게 “일”로만 생각하고,
상대방을 대할 때도 아무런 감정을
담지않고 “일”로 대하는 직원도 있지만!
마음을 담아서 일을 하고,
어르신의 어깨를 보듬어주고,
손을 잡아서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직원도 있죠.
특히나 임종의 순간을 지켜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닌데..
떠나는 분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담아서 배웅해주는
직원이 우리 병동의 책임자라 감사하고,
또 존경할 수 있는 상사라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다녀가신 흔적은 아래의 하트모양의 공감(♡)을 눌러서 남겨주우~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공감은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의 포스팅과 관련이 많은 요양원 영상입니다.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첫 요양원 철야 근무 (16) | 2023.08.12 |
---|---|
내가 거절하지 못하는 부탁들, 땜빵 근무 (17) | 2023.08.04 |
내가 처음 겪은 내 고객의 낙상. (16) | 2023.07.25 |
뜻밖의 곳에서 만난 직업학교 은사님 (14) | 2023.07.07 |
한국의 럭셔리 실버타운은 오스트리아의 요양원 수준. (34) | 2023.06.25 |
직장동료에게 강매 당한 물건 (18) | 2023.06.08 |
내 병가에 대한 동료들의 반응 (28) | 2023.06.06 |
내가 말하지 않는 것들 (16) | 2023.05.27 |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는 방법 (24) | 2023.05.19 |
나의 빡셌던 요양원 근무, 2시간 (14) | 2023.05.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