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우리 병동에서
생일을 맞았던 올드미스 간호사, A가
동료들을 위한 간식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10시에 15분간의 휴식 시간에 들어가니
자기 생일이 지났다고 하면서 동료들을 위해서
훈제 연어와 바게트를 꺼내 놓았죠.
예쁘게 접시에 세팅 된 것이 아니라
슈퍼에서 사온 것을 포장 그대로
테이블 위에 풀어놨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동료들을 위해서 준비한
“그녀의 한턱”이 중요한거죠.
“생일 축하한다” 고 예쁘게 말해 주고는
그녀가 테이블 위에 꺼내놓은
음식 맛있게 먹어주기.
어차피 지난 생일이고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본인이 이렇게 지난 “생일 턱”을 쏘니
얻어먹는 입장에서는 참 감사한 일이죠.
바게뜨 조각에 훈제연어를 끼워서
두개나 먹고 나니 살그머니
케이크도 꺼내 놓습니다.
“이건 울 엄마가 구운 케이크”
집에서 구운 케이크는 비주얼은
조금 투박하지만, 맛은 판매되는
완제품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이 있죠.
역시 딸내미 사랑은 엄마인가 봅니다.
나이 오십에 다 되어가는
올드미스 딸내미지만,
생일이라고 이리 케이크를 구워
보내는 엄마의 사랑이 감동입니다.
A의 생일턱을 먹으면서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도 맛있게 구운 엄마 케이크를
동료들 앞에 꺼내놓으며
“이거 울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구워 주신 거!”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이건 그냥 생각이었죠.
시어머니가 작정하고
며느리 생일케이크를 구워주신다면
모를까, 며느리가 먼저
“생일 케이크를 구워 달라”고 하기는
쫌 그렇죠.
내 생일이 돌아오는 시점에
시어머니는 저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어 오셨죠.
그날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실 생각이셨던 거죠.
시어머니는 생일을 맞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십니다.
한 번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말한 적이 없는 며느리라
시어머니가 매번 “어떤 음식?” 하고
물어 오시지만, 며느리가 하는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엄마가 하는 건 다 맛있어요.”
오스트리아 음식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또 엄마가 만드신 음식들이
다 맛있는 것이 사실이니
어떤 음식을 해도 감사하게
먹는 며느리입니다.
올해 내 생일은 오전 근무가 있었고,
점심은 요양원에서 먹고 올테니
일부러 며느리를 위한 한끼는
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마음은 편했습니다.
생일축하를 생일 전에 하면
불운이 따른다는 오스트리아.
내 생일에 오전 근무가 있으니
오후 1시까지 근무를 끝내고
돌아온 다음에 생일 선물을
주셔도 되는데,
시부모님은 생일 전날인
1월 8일 저녁에 퇴근하는 며느리를
일부러 오라고 하셔서 선물 봉투를
하나 주셨죠.
남편은 생일 전에는 선물을
미리 보는 것이 아니라며
생일날 열어보라고 했지만,
한국인 마눌은 생일 전에
선물을 열어봤다고 불운이 온다고
믿지않으니 홀라당 열어보기.
시부모님이 주시는 선물은
매년 같습니다.
시아버지가 정성스럽게 쓰신
생일 카드와 현금 50유로.
보통은 여기에 제과점에서 산
자허토르테가 함께 하는데 올해는
봉투 하나면 주시길레 그런가부다..
“올해는 케이크 없는 선물인가..”했었는데..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방에 시어머니가 구우신
쿠겔호프 케이크가 있습니다.
올해는 제과점에서 산 13유로짜리
자허토르테 대신에 시어머니가 직접
케이크를 구워 주셨습니다.
근무 가면서 “내 생일 케이크”를
들고 가고 싶은 맘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쿠겔호프”는 아닌디..ㅠㅠ
시어머니가 케이크를 구우시면
보통 3단에 과일 듬뿍 들어간
아주 맛있는 종류를 구우시죠.
시어머니가 쿠겔호프를
구우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쿠겔호프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
2개로 나눠 한쪽에는 코코아 가루를 넣어
2개의 색이 나는 반죽을 틀에 넣어서
굽는 난이도가 거의 없는 쉬운 케이크죠.
우리 병동의 60대 초반의
이혼남 아저씨 동료가 가끔
“내가 구웠어”하고 들고 오는 것도
바로 이 쿠겔호프.
들어가는 재료도 밀가루에
버터, 설탕 등이고, 대충 만들어도
기본은 하는 가장 쉬운 케이크라
이걸 “시어머니가 구운 내 생일 케이크”라고
동료들에게 내밀기는
쪼매 거시기 한디... ㅠㅠ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면..
“쿠겔호프”는 맛이
없는 케이크입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라면
절대 먹지 않을 단맛이죠.
시어머니가 며느리 생일이라고
일부러 구워주신건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데,
나는 안 먹는 케이크인디..ㅠㅠ
마눌이 안 먹는 케이크 인걸
아는 남편은 “생일 케이크이니
한쪽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강요를 했지만,
한쪽까지는 무리가 있어서,
한입으로 해결했습니다.
커다란 쿠겔호프중 적당량은 잘라서 시
부모님께 갖다 드리고,
(나는 먹지 않으니 처치 곤란이
되어버린 내 생일케이크는)
다 남편 차지가 됐습니다.
남편은 케이크를 조각으로 나눠서
랩에 싸서는 다 냉동실로 보내 버렸죠.
냉동실에서 재워놓은 쿠겔호프는
남편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하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남편이 잘 먹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다음 번에 또
“쿠겔호프”를 받게 될지 모르니
미리 말씀을 드려 봐야겠습니다.
“엄마, 케이크는 직접 굽지 마시고,
그냥 제과점에서 파는
“자허토르테”로 주세요."
정성스럽게 직접 구운 케이크는
감사하기는 한데, 나는 안 먹는 케이크는
처리하기도 불편한 선물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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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우리동네 제과점에서 파는 케익 종류.
이야기 속 제과점에서 파는 “자허토르테”를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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