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에게 실업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한 6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비자도 새로 만들고,
항공편도 알아봐서 뜨자는 이야기죠.
하지만 6개월 기다려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라는 보장은 없는 상태.
그러니 내 실업기간이
6개월 이상이 될 수도 있죠.
남편이 마눌을 실업자로 만들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을 것!
마눌이 돈을 벌어도 생활비나 집세 같은 것을
내지 않으니 다 마눌의 쌈짓돈.
그러니 남편은 마눌이 돈을 벌거나 말거나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남편 말대로 그냥 실업자로
있는 것은 내 마음이 허락을 안하고...
그렇다고 가서 계속 일하겠다고
하기는 면목이 안 서고..^^;
“난 회사에 말 못 해! 이번이 두 번째잖아.
작년에는 시아버지가 아프다고
퇴직 날짜 코앞에 두고 다시 일하게 됐고,
이번에는 비행기가 안 떠서 못 가니
그냥 일 할래요? 그러남?”
“그게 사실이잖아.”
“그래도 창피해서 말 못해!”
“그럼 그냥 실업자로 집에 있던가, 당신은 집에 있어도 하루가 바쁘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을 해도 주 20시간 일을 하니
내가 출근하는 날은 한 달 중 겨우 8~9일.
나머지 날은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서 잘 놀고 있죠.
집에 혼자 있어도
하루 종일 잘 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실업자가 되어서
한 달 내내 집에서 노는 건 조금 그렇죠.
사족이 멀쩡한데
일을 안하는 것도 그렇고...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ein unerwarteter Krankheitsfall in der Familie verhindert das antreten meiner beruflichen Auszeit. aus diesem Grund moechte ich meine Kuendigung zurueckziehen und ersuche mein Dienstverhaeltnis bei dem ZBP Traun aufrecht zu halten.
Mit freundlichen Gruessen
(뜻하지 않는 가족의 병환으로 내가 냈던 사직서를 철회하고 계속 일하겠다는 내용이죠.)
작년에 시아버지의 전립선암 때문에
사직서를 냈다가 다시 철회하면서
회사에 제출했던 내용입니다.
회사에서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연락을
해 왔을 당시에는 크로아티아에 휴가를
가있던때라 이메일로 해결했죠.
이번에도 또 이런 걸 써야할까 싶어서
작년에 보냈던 이메일을 확인했습니다.
중간에 단어만 바꿔서 사용하려고
커닝용으로 찾아놨습니다. ㅋㅋㅋ
남편은 실업자가 되라고 했지만,
그러기는 싫어서 요양원의 나의 상사들에게 알렸습니다.
내 첫 번째 상사는 병동관리자,K
(50대 중반 간호사 아줌마)
“K, 나 비행기가 안 떠서 뉴질랜드 못 가게 됐어.
계속 일하고 싶은데 그것이 될까?”
“간병 관리자를 찾아가 봐!”
“남편은 그냥 실업자로 있으라고 하는데 그러기는 싫거든.”
"일을 해야지!
간병관리자, S한테 가서 물어봐!”
내 두 번째 상사는 간병관리자,S
(50대 중반의 간호사 아저씨)
요양원내 2인자로 요양원내 직원들과
더불어 요양원 어르신들을 관리하죠.
요양원 원장이 없을때는
S가 요양원을 관리합니다.
S의 사무실로 가는 길에
복도에서 S를 만났습니다.
“S, 시간 있어? 나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응, 뭔데?”
“나 비행기가 안 떠서 뉴질랜드에 못 가게 됐어.”
“그래? 그럼 헤엄쳐서 가야지. (농담입니다.)”
“남편은 나보고 그냥 실업 신고하고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 그러기는 싫어.”
“네가 실업 신고하면 노동청에서 우리한테 연락을 해 와!”
요양보호사가 실업신고를 하면
근처의 요양원으로 바로 연락이 오는 모양입니다.
그럼 회사에서도 내가 실업자가
된 것을 금방 알 뻔했네요.^^;
S는 감정 표현이 얼굴에 들어나는 사람이기만
대체로 친절한 편입니다.
나에게 “원장에게 가보라”고 합니다.
인사권에 대해서는 병동관리자도 간병관리자도
다 원장한테 미뤄버리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다리 타듯이
원장사무실까지 갔죠.
원장실 앞에 가니 어딘가 갔다가
들어오는 원장이 보입니다.
원장 T는 50대 초반의 간호사입니다.
이름 앞에 타이틀(학사학위)이 붙은걸 보니
원장이 되려고 따로 공부를 한 모양입니다.
오스트리아의 간호사는 우리나라처럼
"간호대학"이 아닌 3년제 직업학교를 다니면
될 수 있는 직업군으로 대부분은
중졸 + 간호사 직업과정 3년이거든요.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중졸의 간호사들 위에 "고졸+ 간호사 교육을 겸한 학사 학위"
간호사들을 새로 올리고,
중졸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와 (학사학위 소지자) 간호사 사이에
새로운 직업군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요양원에 있는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다 중졸 출신이라,
일단 고졸학력을 만든 후에
추가로 교육을 더 받으면
(학위소지)간호사가 될 수 있지만,
이미 50대인 간호사들은 추가로
공부나 교육을 더 받을거 같지않고,
아직 어린 20~30대 간호사들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공부를 하겠죠.
“T,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시간 있어?”
“그래, 들어와!”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나는 병동관리자를
시작으로 원장한테까지 갔습니다.
“뉴질랜드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캔슬이 되서 못 가게 됐거든.
나 계속 일해도 될까?”
“음..네가 나가면서 직업교육이 끝나는 실습생 중에
한 명을 입사시키기로 했거든!”
“그럼 난 힘들까?”
“안 그래도 본사랑 통화 할 때,
이 코로나 시기에 뉴질랜드를 들어간다고?
하면서 본사에서도 의아해 하더라.”
“항공권 결제까지 다 끝난 상태라 변동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항공사에서 그냥 캔슬 연락만 받았어.”
“네가 다시 일하는 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본사에 연락을 해봐야 해.
내가 내일 연락을 해보고 .. 아니다,
오늘 바로 연락을 해 봐야겠다.
나중에 알려줄게!”
여기서 잠깐!
상사라며 정말로 위에 대화처럼
반말 하냐구요? 네.
독일어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나
거리를 둬야하는 경우 존칭을 쓰고,
가족이나 회사 동료, 상사등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이름 부르고, 반말을 합니다.
그러니 상사라고 어렵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퇴직이 코앞이라 함께 근무할 때마다
나의 뉴질랜드 행을 물어오던 직원들도
나의 새로운 소식에 “그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 세계를 코로나가 휩쓸고 있는데,
네가 뉴질랜드 간다고 할 때 알아봤다.”
뭐! 그런 반응이었습니다.
동료들은 “요즘 인력이 딸리는데
당근 다시 일해야지!”하지만..
이것이 우리 맘대로 되는 건 아니죠.
우리 같은 지역 요양원 열 댓 개를 관리하는
주연방 정부의 예산에 따라서
직원의 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상황이라
내가 본사라고 부르는 주연방 정부의
소속 부서에서 결제가 떨어져야 가능하죠.
나야 계속 근무를 하면 좋겠지만..
나 하나 때문에 우리 요양원 원장은
또 본사랑 통화를 하고,
합의를 봐야하고 여러 사람
귀찮게 하는 거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내가 계속해서 근무를 하게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원장과 본사와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는가에 따라서 결정이 나겠지요.
계속 일을 하라고 하면 마음 편하게
한동안 지내게 되지 싶습니다.
코로나가 지나갈 때까지
숨 죽이고 조용히 지내는 것도
이 시기를 잘 보내는 방법이니 말이죠.
다른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라 절차대로
마지막 근무를 한 다음에 퇴직을 하라고 하면..
집에서 삼식이 남편의 끼니를 챙기면서
실업자로 지내게 되겠죠.
다른 단체 소속의 요양원에
취직을 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니
대놓고 정식으로 취직하기도 애매한 시기라
그냥 실업자로 살면서 남편에게
“월급”을 달라고 해볼 생각입니다.
멀쩡하게 일 잘하던 사람을 실업자로
만들어버린 책임은 다 남편이 져야할거 같은데..
그렇다고 월급까지 달라고 하면
너무 심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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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작년 회사에서 사유서 내라고 했을때
우리가 갔었던 크로아티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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