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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남편 안에는 아이가 산다

by 프라우지니 2020.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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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 독립 기념일에 맞춰서 결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미국 독립일인 7월 4일은 우리부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3달이니 미리 시청에 결혼식 예약을 걸었었는데.. 남편이 원했던 7월 7일에는 이미 예약완료인 상태라 차선책으로 선택한 날이 7월4일이 됐죠.

 

견우, 직녀도 아닌데 왜 칠월칠석에 결혼을 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남편이 하는 일에는 “그런가 부다..”하지만,

그 당시에도 “결혼을 하나 부다..”했었죠. ^^

 

결혼 13년에 연애 6년, 총 19년 알고 지낸 남편과의 세월.

 

남편은 장남이라 뭐든지 자기가 컨트롤 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붙여준 별명도 “김(일성)테오“

 

그렇게 마눌 앞에서는 항상 어른인척, 다 아는 척하는 남편이었는데..

어제 그동안 내가 알던 남편과는 또 다른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 안에는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철없는 아이처럼 “남동생 모드”로 돌변하는 남편이 있기는 했지만..

 

어제는 그동안 내가 만나왔던 남편의 여러 모드 (아빠, 오빠, 남친, 남편, 독재자)중 가장 어린 동자.

 

신을 받아서 사는 사람도 아닌데 웬 동자?

남편이 행동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죠.

 

완전 세 살 박이 아이가 나타났었습니다.

남편과 함께한 19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자아였죠.

 

 

 

 

남편이 어제 저녁에 해 먹은 내 믹서.

 

남의 믹서를 고장 내 놓고는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 없이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일로 속상한 남편.

 

자기가 원했던 걸 못하게 됐다고는 입을 삐죽이 내밀고는..

 

“실망했어.”

 

삐친 아이처럼 한동안 말도 안하고, 마눌을 쳐다도 안 보고..

 

분명히 자기가 잘못했는데, 마눌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나 삐침 모드”

 

손실로 따지면 마눌은 40유로짜리 믹서를 잃어버렸고!

남편은 다 따져도 3유로 안 되는 새 발의 피.

 

마눌 돈 주고 산 믹서를 해 먹었으면 무릎끓고 엎드려서 사정을 해도 마눌이 풀릴까 말까인데..

 

지금 마눌 때문에 믹서도 고장이 났고, 자기가 해 먹으려던 것도 다 버려서 짜증이 난다는 남편의 태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믹서에 고무패킹이 찝혀서 같이 갈아버리는 참사를 냈다고 하길레..

 

“고무 패킹 여유분 하나 있을 거야!”

 

이렇게 말을 하고 돌아섰는데..

남편은 마눌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와서 봐달라고 했는데 당신이 안와서 이렇게 된 거야!”

 

 

 

 

남편은 지금 믹서 뚜껑을 제대로 닫지 못해서 중간 고무패킹이 빠져 함께 갈린 것을 마눌에 안 봐줘서 그렇게 된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지금 마눌 믹서 해 먹었는데 마눌이 화를 안 내니 심심했었나 봅니다.

 

사건은 이랬습니다.

 

남편이 아이스크림을 만들겠다고 냉동실에 얼려놨던 우유에 냉동 베리 (산딸기, 블루베리, 복분자류)까지 믹서에 넣어서 갈았는데,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상태라 중간 틈에 있던 고무패킹이 함께 갈렸고, 고무가 같이 갈렸으니 그 안에 있던 얼린 우유, 베리류를 다 버리게 된 거죠.

 

자신이 그걸 해 먹기 위해서 기대를 하고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걸 다 버리게 됐으니 조금 화나는 건 이해를 하지만..

 

그 잘못을 마눌에게 덮어씌우는 남편의 고단도 기술!

 

“당신이 믹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그런 거야”

“믹서 한두 번 사용해?”

“안에 고무패킹이 제대로 안 들어있는 상태였어.”

“당신은 믹서 뚜껑도 제대로 못 닫아?

믹서뚜껑을 제대로 닫았으면 고무패킹이 중간에 같이 갈릴 일이 없었지!

 

당신이 뚜껑을 제대로 안 닫은 상태에서 사용을 한거잖아.”

“당신이 안 봐줘서 그래!”

 

남편이 끝까지 하는 주장은...

 

“마눌 믹서”여서 사용법도 자신보다 마눌이 더 잘 아는데, 마눌이 그걸 봐주지 않아서 자신이 잘 모르고 사용 했다가 믹서는 망가지고 자신의 아이스크림 재료는 다 버렸다!“죠.

 

처음에는 “고무패킹 하나 더 있어”로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남편은 나랑 더 이상 말하기 싫다고 하면서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자기가 잘못 해 놓고도 “미안하다” 대신에, 괜히 짜증내서 마눌을 기가 막히게 하는 남편.

 

 

 

그렇게 마눌은 어이없는  상태에 잠이 들었었는데.. 남편의 마음이 풀린 것인지 자는 마눌에게 다리를 떠 걸고는 장난을 쳐오는걸 잠결에 느꼈죠.

 

그렇게 아침!

 

마눌 보다 먼저 일어난 남편이 아직 자고 있는 마눌의 머리를 쓰다듬는가 싶더니만 (머리에) 뽀뽀를 하고는 (자는) 마눌 얼굴을 쓰담쓰담 하면서..

 

 “나는 지금 너를 아주 예뻐하고 있는 중”입니다.

 

밤사이에 “삐침 모드”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왜 그거 있죠?

 

악을 바락바락 써가면서 땡깡 부리던 아이가 자기가 땡깡 부려도 안 될 거 같으면 갑자기 급 애교 모드로 돌아서서 코맹맹이 소리 내면서 마구 안기며 하는 “사랑받고 싶어요~” 애교.

 

남편도 그러는 과정이었습니다.

 

남편의 애교와는 별개로 자고 일어나서 내가 한 첫 마디는 “잘못 했지?”.

 

마눌의 말은 안 들리는 듯이 마눌에게 안겨서 애교를 떠시는 곰탱이 덩치의 남편.

덩치는 곰인데 하는 짓은 여우인 눈치 삼백 단 남편입니다.

 

애교는 애교고 잘못한건 가르쳐야 할 남편 교육의 시간!

 

“어제 왜 그랬어?”

“아이스크림 해 먹으려고 했는데 믹서가 망가지는 바람에 다 버려서 속상했어.”

“손실로 치면 당신이 더 커? 내가 더 커? 그거 내 돈 주고 산 믹서였어.”

“.....”

“잘못 했어 안 했어?”

“잘못했어.”

“앞으로는 그러지마! 한 번만 더 그러면 갖다 버려버린다!”

 

시댁에 살고 있으니 남편을 갖다 버리는 거 보다는 내가 나오는 것이 더 현실적인 일이지만.. 말은 이렇게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고무패킹을 새것으로 끼우면 될 줄 알았는데...

 

본체의 딱딱한 플라스틱 부분도 망가졌고, 칼날이 돌아가는 부분도 제대로 돌아가지를 못하네요.

 

얼어서 딱딱한 우유에 얼린 베리까지 고무패킹을 갈릴 때 힘을 보탠 모양입니다.

그렇게 내 믹서는 “사용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마눌 믹서를 해 먹고 남편이 하는 말.

 

“믹서를 새로 살 예정이야!”

 

마눌이 믹서 사 내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자진 납세할 모양입니다. ^^

 

나는 일이 있으면 바로 잘잘못을 이야기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일단 시간을 두고 자신의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하죠.

 

어제도 내식대로 바로 따졌으면 더 큰 싸움으로 번졌을 수도 있는데..

조용히 그냥 넘어가서 남편이 생각할 시간을 벌어준거 같습니다.

 

어제는 나의 현명한(?)대처로 남편 안의 아이를 잘 처리(?)했는데..

앞으로도 자주 그 아이를 보게 되는 건 아니겠지요?

 

다중 인격도 아닌 남편에게서 본 세 살짜리 아이의 모습은 의외였는데..

화내지 않고 나중에 남편의 잘못에 대해서 지적을 한건 정말 잘한 거 같습니다.

 

중년이지만 내 안에는 아직 10대의 내가 살고 있듯이..

남편 안에는 나보다 어린 세 살짜리가 살고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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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봄에 체리나무 아래서 남편과 하는 연중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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