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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길위의 생활기 2013

뉴질랜드 길 위의 생활기 374-자랑스런 한국인, 체리패커

by 프라우지니 201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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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딱 하룻밤 머물렀던 크롬웰 살레 홀리데이파크!

 

제가 난민촌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반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밥을 해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일터에 가져갈 도시락을 준비한다던,

두 명의 한국여성을 주방에서 만났습니다.

 

마눌이 한국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는 체를 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마눌을 “이상한 사람”취급할 수 있으니 말이죠!

 

1년간 뉴질랜드에 머물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있는 두 명의 아가씨들은 이미 뉴질랜드 생활이 막바지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체리 포장을 하고 있노라고, 이곳의 일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라 두 명중 한명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예정이고, 한 명은 그동안 집에서 키우던 개가 수명이 다해가고 있어서 예정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얘기를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깟 개 때문에 여정을 앞당긴다고?”하시겠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그깟 개”가 아닌, “가족”으로 생각한답니다.

가족 중에서 죽어가는 개가 있다는데, 빨리 들어가서 저승 가는 길 환송 해줘야 하는 거죠!

 

자! 지금부터는 마눌이 이 두 아가씨에게 주어들은 이곳의 일터상황입니다.

 

이 두 아가씨는 1주일에 7일을 일 한다고 합니다.

체리 성수기에는 따로 휴일이 없이 매일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죠!

 

하루 근무시간은 8시간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10~12시간을 꼬박 서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 1주일에 40시간 일하고 받는 주급이 420불이라고 들었는데..

체리팩킹(packing)는 1주일 일하고 받는 돈은 720불 정도라고 합니다.

금액으로 보면 법으로 정해진 40시간의 2배에 가까운 시간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마눌도 “체리포장도 가능하면 한 번 해보지!”생각했었는데..

하루 종일 서서 체리 포장하는 일은 못 할거 같습니다.

왜 앉아서 포장하면 안 되는 것인지 원!!

 

더불어 체리를 따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약간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체리 picker피커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의 경우 1주일에 1200불도 넘게 번다고 합니다.

세금빼고 손에 쥐는 돈이 이 정도면 엄청나게 잘 받는 거죠!

 

하지만, 이 정도로 돈을 받으려면 베테랑이 돼야 한다는 얘기죠!

체리피커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10kg짜리 통을 10번 채워야 한답니다.

 

하루에 100kg이 기본이라는 얘기죠!

이것보다 못하는 경우는 중간에 짤린다고 하더라구요.

 

동양 남녀가 한 그룹으로 이곳에 일하려 왔는데, 여자들은 팩커로 취직이 쉽게 되지만,

남자같은 경우는 하루쯤 테스트로 일을 시켜보는 정도에 그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들이랑 같이 나란히 서서 패킹을 할 수도 없는 문제이고...

동양남자들은 서양남자들에 비해서 과일을 따는 쪽으로는 취직이 힘들다고 합니다.

 

원래 “Working Holiday Visa'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일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고,

그중에 한국 사람들이 제일 중점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로 “영어”입니다.

 

중국인, 홍콩인, 일본인, 태국인등등 많은 아시아권에서 뉴질랜드로 오고, 크롬웰까지 농장 일을 하러 왔지만, 생각보다는 한국인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이곳에서 충분히 영어를 쓸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뉴질랜드에 영어를 배우러 왔다는 것을 망각한다면..

한국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던가, 한국 사람들 하고만 몰려 다닌다던가,

주변의 외국 사람들과 사귀는 노력 없이는 안 되는 것이 영어입니다.

 

다행이 제가 만났던 두 명의 아가씨들은 어느 정도 목표한 영어실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마눌이 볼때도 훌륭한 영어실력이였습니다.^^

 

자! 이제는 농장의 취직자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농장이 많은 이런 지역에 오면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일단은 과일 시즌전에 와야 하며, 도착해서는 근처의 농장들을 다니면서 자기 이름을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마눌이 만났던 이 아가씨들도 체리시즌 한 달 전에 이곳에 와서 여기저기 농장을 찾아다니면서 이름을 올린 덕에 취직이 됐었다고 하더라구요.

 

일단 취직이 되고나면, 해당 농장에서 교통편을 제공해줘서 출 퇴근를 하게 되지만,

취직하기 전에는 일일이 농장을 찾아다녔어야 했는데, 그때는 차가 없으면 불편하다고 합니다. 차가 있는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자! 그럼 농장에서 하루종일 체리포장을 하게 되면 체리는 맘대로 먹을까요?

체리는 맘대로 가지고 와도 될까요?

그것이 궁금하시죠?

 

뉴질랜드산 체리 중에 1등급들은 대부분 수출품이고,

뉴질랜드에서 유통되는 체리들은 농장에서 나오는 2등급 제품이랍니다.

 

문제는 이 2등급 체리도 가격이 만만치 않게 비싸다는 거죠!^^;

뉴질랜드의 특징이라면 제철과일이라고 해서 가격이 싸지는 않다는 겁니다.

 

체리 성수기인 이곳의 농장에서 팔리는 체리 2등급의 가격은 1kg당 16불이였던거 같습니다.

농장에서 파는 것이고, 체리가 제철인 것에 비하면 무지하게 비싼 가격이죠!

 

체리포장을 하는 아가씨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체리는 포장 중에 맘대로 먹을 수 있고,

집으로 가지고 올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체리포장만 두어 달 넘게 하다보면 이제는 지겨워서 안 먹겠죠!

 

중국인들은 체리들을 매일 가져와서 와인도 만들고, 잼을 만들기고 한답니다.

하지만 그 외 사람들은 이제 체리는 쳐다보기도 지겨운 과일로 생각하더라구요.

 

마눌은 두 명의 한국아가씨와 자정이 넘도록 수다를 떨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해가 안 가는 키위문화에 대해서, 그들의 방식에 대해서!

 

아무리 농장에서 단순작업인 체리포장을 한다고 해도 배울만큼 배운 한국사람인데..

아무리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해도 다 알아들을만한 단순작업 설명인데..

키위들은 설명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나중에는 열이 받더랍니다.

 

“아니 이 인간이 내가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영어 못한다고 해서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이쯤되면 별별 생각이 다 들만도 하죠!

 

저는 명쾌하게 이 아가씨들의 불만을 해결했습니다.

 

“원래 서양인들이 동양인들보다 머리회전이 둔하고..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실감하실겁니다. 의외로 서양인들의 머리회전이 둔 하다는 것을.)

 

자기네들은 1번~10번까지의 설명을 다 들어야 모든 것을 이해했던 관계로..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가 들었던 1번~10번까지 설명을 다 해야 그 사람이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거죠!

 

자기가 2번 설명하는데, 중간에 말을 자르고, “다 알아들었어!”하면 안되는 거죠!

아직 10번까지 8개의 설명이 남아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2번까지만 들어도 이미 다 알아듣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다는 얘기인지..

이미 알고 있는데, 10번까지 이어지는 얘기를 다 들으려니 속이 터지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들이 방식이니 그냥 조용히 하고 들어줘야죠!“

그렇게 이런저런 문화차이에서 오는 오해들을 수다로 풀었습니다.

 

자정이 넘어서 각자 잠자리로 가야할 시간쯤에..

 

“언니, 내일도 여기에 계시면 우리가 체리 가져다 드릴 수 있는데, 갖다드릴까요?”

두 명의 한국 여성외 같이 얘기를 나누던 홍콩아가씨도 덩달아 가지고 온답니다.

체리가 비싸서 맛도 못 봤는디.. 이리 감사 할 때가!!

 

“남편, 우리가 이곳에서 머물지는 않지만, 이 근처에 머물기는 할꺼잖아!

어차피 농장에서는 맘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데, 조금 갖다 달라고 할까?

저녁에 만나서 받으면 되잖아~“

하지만 남편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죠!

 

“왜 농장에 것을 가져오라고 그래?”

“농장에서는 가져가도 된다잖아~”

“그래도 안~~돼!!”

 

대답은 이렇게 해놓고 가져오면 먹을꺼면서...^^;

 

다음날 아침에 농장으로 일을 나가는 아가씨들에게 남편은 훈제송어 2토막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주었습니다. 오늘 가져간 도시락 먹을 때 같이 곁들여 먹으라고!!

 

 

 

 

그렇게 그녀들과 헤어졌습니다.

 

농장에서 오는 출근버스를 타러가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애국이라는 것이 별거 아닌거 같습니다.

 

어디에 있던 간에 열심히 살아 주는 것!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보여서 눈물이 난거 같습니다.

 

“그대들은 내가 만난 애국자중의 두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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