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그냥 웃으면서 흘려
들었습니다.
“병가중이라고 퇴사하는
동료 송별회에 안 가는 건
쪼매 그렇지?”
그래도 병가중에는
가능한 회사와 연결된
행사에는 가지 말라고
남편은 말렸지만,
그날은 내 병가의
마지막 날이었고,
다음날은 근무를 해야해서
우리 병동의 책임자로 있던
C의 송별 파티에 갔었습니다.
송별 파티라고,
오라고 했지만 사실 공짜
음식을 먹을 생각으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의 문화가
‘같이 밥 먹자’해서
초대 하는 줄 알고 갔는데,
나중에 보면 밥값은
더치페이거든요.
우리나라는 “밥 먹자!”하면
당연히 먹자고 한 사람이
내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아니니 송별회라고
해도 내가 먹은 밥값은
당연히 내가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갔었죠.
그전에 잠깐 나의 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이해가 쉬울 거 같습니다.
나의 1월 근무는
동그라미가 쳐진 7번,
그중 NC라고 쓰여진 3번은
밤을 새는 야간 근무죠.
1월의 두번째 근무였던
1월 9일.
그냥 걸어도
왼쪽 발목이 불편했는데,
그날 점심이 담긴 엄청나게
무거운 카트를 병동으로
가지고 오는 과정에
내 발목에 무리가 갔는지,
오후에는 발목이 아파서
심하게 절룩거렸고,
다음 날인 10일 야간 근무는
못 올 거 같다고 9일날 오후에
미리 이야기를 했었죠.
1분이라도 빨리 말을 해야
대체 근무할 직원을 구할 테니
내딴에는 함께 야간근무를
하게 될 동료가 낭패보지
말라고 가능한 빨리
알렸습니다.
10일날 아침 일찍 가정의에
가서는 발목 때문에
“병가”가 필요하다고 하니
6일 병가서를 주면서
방사선과 이송표를 써줬죠.
사실 방사선과 이송표는
내가 써달라고 했습니다.
발목이 아픈지 한참인데
아직 내 발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니,
엑스레이랑 초음파 검사를
하겠다고 했었죠.
이송표를 들고는 바로
방사선과에 가니 엑스레이는
별도의 예약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초음파는
예약을 해야하니
16일 오후에 오라고 했죠.
병가는 15일까지 인데,
방사선과 예약은 16일 오후라,
발목에 이상이 있다고
진단이 나와도 16일
야간근무는 해야하는
상황이 됐죠.
16일 오후에 초음파를 했는데
발에 문제가 있다고,
근무 한시간 전에
“나 근무 못해”하는 건
동료를 엿 먹이는 일이니
그날은 어떤 일이 있어서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얼마전에 퇴사한
우리 병동의 책임자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자신의 송별회에
초대 했었는데
그 날이 15일 저녁이었죠.
남편은 15일까지 병가이니
송별회에는 가지
않는 것이 맞다고 했지만,
나는 어차피 16일은 근무를
해야하는 상황이니 15일
저녁에 송별회에 가는 건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해서
남편이 말렸음에도
그냥 밀어붙였죠.
송별회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왔었고,
내가 먹은 음식값은
내가 낼 거라고 예상을
했었지만, 무자식에
재산도 꽤 있다고 소문났던
C는 역시나 통 크게 직원들의
저녁 한끼를 모두 책임졌죠.
솔직히 C랑 개인적으로
그리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근무하는 동안
서로 불편한 사이는 아니었고,
또 이제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니 이 자리에는
꼭 참석해서 “앞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라~”
해주고 싶었죠.
다리가 아파서 병가는
냈지만, 앉아서 밥 한끼
먹는 데는 참석이 가능하니
참석을 했었던 거였죠.
다음날 야간근무를 앞두고
오후에 방사선과에 가서
진료를 하니 역시나
내 왼쪽 발목 인대에
염증이 잡힌 것을
모니터로 볼 수 있었죠.
병가라고 집에서
쉬기는 했지만 사실 쉰다고
염증이 빨리 가라 앉는 것도
아니고, 남편은 매일 정성을
다해서 소염진통젤을
발라줬지만 그런다고
염증이 후다닥 호전되는 것도
아니죠.
발목에 염증이 있다는
초음파검사 결과를 들고는
바로 가정의로 갔습니다.
마침 그날은 오후 진료가
있는 날이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갔는데,
거의 2시간을 기다려서
가정의를 만날수가 있었죠.
출근은 해야하는데
그러면 가정의를
기다리다가 못보고
가야하는 상황.
남편에게 문자로
“출근시간이 다 되었는데
내 앞의 대기자가
아직 서너 명”이라고 하니
남편이 “시간 확인증”을
받아서 조금 늦게
출근하라고 합니다.
보통은 근무중
의사를 만나러 갈 경우,
의원에서
“이 사람이 x시~x시까지
우리 의원에
방문중이었습니다.”는
확인증을 받아서 회사에
제출하면 의사를
만나러 갔던 시간도
근무시간으로 포함이 되는
시스템이라 내가 출근에
조금 늦더라도 의사가 발행한
“시간 확인증”을 받아서
가면 나는 정시 출근이
되는 거죠.
가정의의 “시간 확인증”을
챙겨서는 15분 늦은
저녁 7시에 출근 성공.
집에서 왔다리 갔다리 할 때는
별로 문제가 없었지만
12시간 넘게 계속 움직이며
근무해야하는 야간근무라
근무 전 준비는 철저히
준비를 했습니다.
발목을 고정하는 장치를
왼발에 신고서
야간근무를 나섰죠.
근무중 병동을 다닐 때도
조금 느리게 걸어야 했으니,
함께 근무하는 간호사도
내가 아픈 상황임을
알고있었고, 초음파에서
발에 염증이 발견됐음을
그에게도 알렸었죠.
“발에 염증이 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병가를 내면
너 혼자 근무를 해야하니
그런 상황이 안 생기게
하려고 왔어.”
이 말은 상대방에게
고마워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의 상황을
설명한 거죠.
사실은 방사선과 진료를
마치고 가정의에 들렸을 때
가정의에게 “병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당장에 들어가야 하는
야간근무는 피할 수 없으니
해야 하지만 4일후에 있는
월요일부터 “병가”를
써달라고 하니 병가는
미래형으로 쓸 수 없으니
월요일에 다시
오라나 뭐라나.
결론은 나는 월요일에 다시
병가를 받을 생각이라,
야간근무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근무 인계를
하면서 병동의 책임자에게
내가 월요일 근무를
못할 거라고 알렸습니다.
그렇게 퇴근을 했었고,
나는 20일 월요일 아침
일찍 가정의를 찾아가서
병가를 받은 후에 그걸
제출하러 요양원의
사무실에 갔는데 원장이
나를 보더니만 대뜸
“대화”를 하자고 합니다.
요양원으로 가는 중에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었는데 ..
난 모르는 번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서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그건 원장에 나에게
했던 전화였습니다.
우리 원장으로 말하자면
일단 인격이 쪼매 모자라고,
상사로도 자격이 없으며
이미지로 보자면
촉새 같은 인간형!
안 부딪히는 것이 상책이죠.
원장이면 아랫사람들을
품어주는 인품이
되어야 하는데,
아랫직원이랑 싸워서
사이가 틀어진 직원들이
결국은 다른 지점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외 다양한 방법으로
직원들이 퇴사를 하는데
큰 힘을 보태고 있는
자격 미달인 원장이죠.
나를 사무실에 부른
원장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해댑니다.
“너는 병가 중에는
송별회를 오고,
근무 한번하고 또 병가를
내는 건 무슨 경우야?
병동에서 사람들이 다
네 이야기만 하잖아.”
워낙 말이 많은 병동이라
누군가 내가 "병가중
송별회에 참석을 한 것’과,
‘근무 한번 하고는
다시 또 잠수 타듯이
병가를 냈다’고 뒷담화를
해댔던 모양입니다.
“직원들이
3명이나 병가를 내서
결국 인사부장
(으로 승진했던 간호사가)
인력이 부족해서 다시
병동으로 일하러 갔잖아.”
가뜩이나 직원들이 딸리는데
3명이나 병가를 냈으니
일 할 사람이 없어서 결국은
간부가 일하러 병동으로
내려갔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일 잘하는 사람 다 퇴사하게
만든 인간은 자기면서
그걸 모르는 것인지..ㅠㅠ
나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내 병가가 15일까지였고,
16일 방사선과 진료 후
야간근무를 했다.
사실 방사선과 진료에서
발에 염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래도
야간근무를 한 것이고,
12시간 동안 근무를 해보니
발에 무리가 가서 가정의가
다시 병가를 써 준거다.”
“가정의가 가능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해서
그럼 하루 종일 침대에 있을까?
했더니 그렇게 되면 다리에
혈전이 생길 수 있으니
적당히 움직이는 건 괜찮지만
10시간 근무는 안된다고
하더라.”
원장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했고 나도 같은
해명을 두 번 했죠.
해명을 하다 보니 이건
원장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원장이 듣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
“네 말은 병가 중에
송별회에 왔고,
근무 한번 한 후에
또 병가를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지?
병가중 송별회에 참석한 건
내가 잘못한 일이니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게 하면 되는 거지?”
원장의 나의 해명보다는
사실 자기가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고 싶었나 봅니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내가 병동에서
절룩거리며 일할 때는
못봤던 모양이니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죠?
원장실을 나오며
“잘못해서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혼나고 나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성인이고
50대 중반의 아낙인데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하는 충고를 받고,
“다음부터는 안 그럴께요.”
하고 나왔던 길이죠.
현지인 남편 말을
들을 걸 그랬습니다.
병가중이니 가지 말라고
했던 송별회였는데
내가 기 쓰고 갔고,
거기서 내 얼굴을 본 인간들은
파티에는 온 인간이
또 병가라니 자세한 상황은
모르고 찟고 까불며
나의 이야기를 했던 것이고,
그날 파티에 있던 원장도
파티에 내가 왔던 것은
맞으니 남의 말만 듣고는
나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원장에게 들은 개소리들은
그방을 나올때
다 잊었습니다.
예약 잡혀있는 정형외과
진료가 28일라 그날까지
병가를 받았으니
나의 1월은 이렇게
끝이 나지 싶습니다.
원래도 친구 하나 없는
직장이라 “근무하는 날까지
성실하게 다니자”
생각하며 살았는데,
역시나 근무하는 것
외에는 어떤 활동도
안하는 것이 상책이지
싶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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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목이 삐끗한듯한 장소는 바로 여기!
https://www.youtube.com/watch?v=zyDbdu9IB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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