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이야기

(주택) 단지 내 소문조심

by 프라우지니 2017. 9. 30.
반응형

 

제가 사는 시댁은 개인주택 단지로 이루어진 동네입니다.

 

시부모님이 사시는 집도 지은 지 80여년이 넘었다고 하니 꽤 오래전에 이미 주택단지로 형성이 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세월이 지나가면서 헌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 정도이고, 집주인만 바뀌었을 뿐이지 단지는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 온 거죠.

 

구글지도에서 다운받은 우리 단지입니다.

 

우리 옆집은 혼자사시는 할매가 돌아가시고 자식이 없어서 조카한테 집이 넘어갔다고 하더니만..

 

의사라는 조카가 이사 와서 헌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은 지 1년이 훨씬 넘었는데,

여기에는 헌 집인걸 보니 구글 업데이트가 꽤 느린 모양입니다.

 

우리 단지 내 혼자사시는 어르신이 두어 분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잘 모릅니다.

 

요양보호사 직업교육 당시에 “방문요양”을 저는 다른 지역으로 다녔는데, 우리 반 학생 중에 한명은 우리 동네로 다녔다고 하면서 매일 이곳으로 방문요양을 왔었다고 했었습니다.

 

 

 

내가 버스나 전차를 타러갈 때 항상 지나치는 작은 사거리.

 

왔다 갔다 하면서 연세가 많으신 할매가 마당에서 일하시는 걸 본지라,

이곳에 거동이 불편하신 할매가 사시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문에 꼽힌 열쇠를 그 안에 들여다 주기도 했었던 집이거든요.

 

그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

 

 

 

한동안 할매가 마당에 안 나타나신다.. 생각했었는데..

비오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어떤 아저씨가 물건들을 밖으로 내놓고 계십니다.

 

아마도 할매가 돌아가셨거나 요양원으로 가셨나봅니다.

집안에 할매가 쓰시던 물건들을 다 앞으로 내놓으면서 내가 머뭇거리고 서있으니 한마디 합니다.

 

“여기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챙겨가세요.”

 

할매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습니다.

돌아가셨다고 해도, 요양원에 가셨다고 해도 즐거운 소식은 아니니 말이죠.

 

 

 

아저씨가 내놓으신 물건 중에 새 물건인 오븐용 쟁반을 2개 챙겼고, 이 당시에는 카리타스 학생 이였던지라 혹시나 졸업프로젝트에 쓰일까 싶어서 사진만 빠진 상태의 액자만 여러 개 챙겼습니다.

 

챙겨서 일어나는 나에게 아저씨가 뭘 하나 챙겨주십니다.

 

“이거 새거예요.”

 

자식들이 할매에게 로레알 크림을 선물했었던 모양인데,

할매는 비닐포장도 뜯지 않는 상태로 가지고만 계셨던 모양입니다.

 

아저씨가 챙겨주신 로레알크림은 손에나 바를까 싶어서 포장을 뜯어보니..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것이 선물 받은 지 몇 년은 족히 지났던 모양입니다.

 

할매는 선물 받으신 거여서 아끼셨던 모양인데..

아끼다가 쓰레기 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주어온 것을 보여주면서 할매 이야기를 하니 남편이 하는 말.

 

“할매가 병원에 입원하신 것이 아닐까?”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집안에 할매 물건을 정리하는 건 아니지 않아?”

“....”

“내 생각엔 할매가 돌아가신 거 같아. 그래서 아들이 집 정리를 하는 거지.”

“...”

“거기에 허브종류도 있었는데, 가서 더 챙겨와야겠다. 나 프로젝트할 때 쓰게.”

“안 돼, 가지마.”

“왜? 아저씨가 가져가라고, 더 가져가라고 하셨단 말이야.”

“자꾸 그러면 단지 내 소문나.”

“뭔 소문이 나?”

“XX댁 며느리가 거리에서 쓰레기 줍고 있다고!”

 

나는 이 동네 사람들을 모르지만 아마도 단지 내에서는 내가 누구 며느리인지 다 알고 있나봅니다. 단지 내 유일한 동양인이니 말이죠.^^;

 

“지금 비와서 사람들이 밖에 안 내다 볼 텐데.. 빨리 갔다 오면 안 될까?”

“안 돼, 당신은 왜 부모님을 창피하게 만들려고 해?”

 

내가 한 행동 때문에 시부모님이 창피해 하신다니 더 이상 우기지 못했습니다.

 

모든 일에 무심한 듯 행동하는 남편이 단지 내 마눌 소문까지 신경 쓰고 있었던 걸까요?

 

 

 

단지 내 소문날까봐 더 이상 주우러 오지 않았던 그 집 앞.

다음날 아침에 지나가면서 보니 어제 그리 많던 것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하얀 접시는 금박이 테두리가 있는 고급스러운 거였는데..

(우리 집에도 시 할매가 쓰시던 접시 몇 개가 있는지라 압니다.)

 

내다놓은 것들을 싹쓸이 해갔다면 새로 살림을 차려도 될 만큼 다양한 종류였는데..

여기는 단지 내 사거리여서 외부 사람들이 와서 가져갈만한 조건도 아닌데..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할매네서 내놓은 그릇들 거의 사라졌다.”

“그래?”

“나보고 단지 내 소문나니까 가지러 가지 말라며?”

“...”

“내 생각에는 단지 내에서 그 그릇을 싹쓸이 해간 거 같아.”

“.....”

 

남편은 누가 그것을 가져갔는지는 관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눌이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마눌이 가져오지 않았으니 단지 내 (마눌에 대한)소문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습니다.^^;

 

눌러주신 공감이 저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공감은 가능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