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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by 프라우지니 201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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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요새 공사가 한참 진행 중입니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우리 동네에서 린츠시내에서 전차 한번만 타면 갈수 있다니 신나기는 하지만, 공사 때문에 길은 많이 막히고 있습니다.

 

전차가 큰 쇼핑몰을 지나서 가는데, 그 기회를 놓칠 사업가들이 아닌거죠.

쇼핑몰에는 대대적으로 주차장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Park&Ride" 뭐 이런 이름인거죠. 주변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쇼핑몰에 딸린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전차를 타고 시내를 나가는..

 

린츠시내는 주차할 공간도 없고, 교통이 막히니 대부분은 시내까지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거든요.앞으로 생길 유료주차장을 홍보하는 선전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 쿠폰”입니다.쇼핑몰의 동서남북으로 공사 중이니 곳곳에 안전요원이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 쿠폰을 나눠주죠.

 

저는 동네사람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쿠폰을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보통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위주로 나눠주니 말이죠. 가끔씩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나 쿠폰이 필요할 때는 일부러 찾아가서 쿠폰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날은 왠지 아이스크림이 생각이 나서 버스에서 내려서 (보통 자전거는 쇼핑몰에 주차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니) 아이스크림 쿠폰을 나눠주는 아저씨한테 갔습니다.

 

“저 쿠폰 3장만 주세요~^^”

(한 장은 지금 쓰고, 나머지 2장은 나중에 남편이랑 와서 함께 먹을 생각으로)

 

아저씨는 씩 웃으면서 쿠폰을 마구 세더니 6장을 내미십니다.

이렇게 주는 쿠폰은 얼른 받아야 하는거죠!^^

 

한 장의 쿠폰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쇼핑몰 산책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쿠폰 나눠주는 아저씨가 생각이 났습니다. 평소에 내가 봐온 안전요원은 그 자리를 떠나면 안 됩니다.

간식이나 물병도 서있는 그곳 주변에 놓여있는 것도 봤었구요.

본인은 쿠폰을 나눠주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먹을 수 없는 아이스크림이기도 하구요.

 

쇼핑몰을 나서다 말고 다시 아이스크림코너로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쿠폰과 바꿨습니다.

그리고는 자전거가 있는 반대 방향에 서있는 아저씨쪽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갔습니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오는 걸 보더니 아저씨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입니다.

저는 “나한테 가져 오는겨? 잘했어!”라는 의미로 알아들었었는데, 정작 아이스크림을 아저씨한테 내미니 아저씨가 황송한 눈길로 날 쳐다보며 말씀하십니다.

 

“이거 지금 나 주려고 가지고 온 거예요?”

 

아하~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 의미는..

“쿠폰으로 제대로 아이스크림을 바꿨군요. 참 잘했어요~”였나봅니다.^^

 

아저씨는 황송하게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서서 아이스크림 쿠폰을 나눠주지만, 저처럼 받은 쿠폰을 아이스크림으로 바꿔서 들고온 사람은 없었나봅니다.

 

사실 전 아저씨께 감사하는 표현으로 아이스크림을 갖다드렸습니다. 전 3장이 필요했는데, 6장을 주셨으니 3장은 여유분인 것이고, 그 여유중의 한 장으로 아이스크림을 바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거든요. 제 생각은 여전히 한국적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드리고, 돌아와서 자전거를 타고 다시 아저씨 옆을 지나치는데도 아저씨는 몇 번이나 “Danke schoen 당케 쉔(=감사합니다)”을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후로는 아침에 자전거를 쇼핑몰에 주차하고 버스를 타는 대신에 집에서 가까운 버스정거장으로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다니는 관계로 쇼핑몰에서 일부러 내리지 않았고, 쇼핑몰에 정차하고 있는 버스안에서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 정거장에 서있는 안전요원이 버스 안의 날보고 환하게 웃습니다.

 

“설마 날 보고 저렇게 지금 웃고 있는것이 정말 맞나?” 하는 생각에 그 안전요원을 쳐다보니..

 

며칠 전에 내가 아이스크림을 건네 드린 그 아저씨였습니다. (안전요원들은 시시때때로 서있는 곳이 변경되거든요. 며칠 전에는 슈퍼마켓 입구쪽이였는데, 오늘은 버스정류장입니다.)

 

아저씨는 비슷해 보이는 동양인의 얼굴을 한 그 아이스크림을 주었던 아낙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버스에 타고 있는 내 얼굴을 알아보고 환하게 웃어 보일 정도로 말이죠.

그 순간이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작은 친절이였는데, 지금 저 사람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날 보고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말이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지만, 나는 한국인이고, 남을 더 배려하는 한국식 사고방식을 갖고 살고 있기에 감사한 순간들이 더 많은 거 같습니다.

 

얼굴 알아보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서양인의 얼굴을 잘 구분 못하는 것처럼 서양인들도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답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면 내 노란 자전거를 기억해서 나를 기억하겠지만, 버스 안에 앉아있는 아낙의 얼굴만 보고 알아봤다는 건 정말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인지라 저에게 더 그 순간이 감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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