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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아빠를 재활하게 하는 힘

by 프라우지니 2020.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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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서 사셨던 시아버지.

70대이신 지금도 하루 종일 바쁘게 다니시면서 보내셨죠.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정원에서도 할 일을 찾아서 하루를 보내실 정도로,

부지런해도 정말 심하게 부지런하신 분이셨습니다.

 

거기에 목청까지 우렁차서 절대 70대로는 보이지 않으시는 시아버지.

 

키도 크시지 않고, 덩치 또한 크지 않으시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는 아담한 외형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셨던 시아버지가 아주 약한 모습을 보이시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큰 병이라 당신도 많이 당황하셨을 텐데, 의연하게 하셨던 수술.

 

수술한 부위가 남달라서 당연히 뒤따르는 부수적인 불편함들.

 

아빠가 혹시나 좌절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당연한 것"이라 인식시켜 드리려고 해 드렸던 말도 있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3090

며느리를 놀라게 한 아빠의 행동

 

아빠가 보인 모습들을 봐서는..

당신이 겪고 계신 상황에 잘 적응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신의 머릿속은 또 다른 생각들이 가득하셨던 모양입니다.

 

수술 후 퇴원해서 집에 오신 시아버지.

 

처음 한동안은 환자이니 당연히 집안에서 지내시는 걸로 알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했죠.

 

수술도 잘됐고, 이제는 슬슬 몸을 움직이셔도 되는데..

항상 마당에서 하루를 보내시던 아빠의 모습은 없습니다.

 

수술 후 두어 달이 지나도 아빠는 집안에만 짱 박혀계셨습니다.

절대 밖을 나오시지도 않으셨죠.

 

아빠가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불편한 적이 없이 건강하셨던 분이 말로만 들어봤던 큰 수술이라니..

 

저도 시아버지와 비슷한 인간형입니다.

부지런히 바쁘게 몸을 움직인 날은 괜히 하루가 뿌듯하고,  (글을 썼던 편집을 했건 간에) 집안에서 꼼짝 않고 앉아서 보낸 날은 내가 게으르게 느껴지죠.

 

바쁘게 움직여야 하루가 뿌듯하고, 여간해서는 낮잠도 안 자는 내가 우울해지면 아무것도 안하고 싶고, 그냥 잠만 자고 싶죠.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배도 안 고프니 끼니때도 자고!

 

이런 경우가 아주 드물지만 가끔 저에게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나 남편에게 화가 났을 때는 바로 이런 증상이 나타나죠.

 

친구 하나 없는 지금의 나에게 남편은 꽤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빠같이 날 챙겨주고, 포근하게 안아 주고, 걱정 해 주는 사람!

연인같이 날 사랑 해 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아껴주는 사람!

 

친구같이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받은 차별, 내 안에 있는 모든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사람!

남동생같이 내 앞에서 마구 까불어서 (기가 막혀)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

 

이렇게 나에게는 유일한 가족같이 느껴지는 남편이 싸늘하게 나를 대한다?

아니면 화를 냈다? 이러면 나의 씩씩하던 모습은 한 번에 무너집니다.

 

"나는 왜 살까?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나는 이 남자와 계속 살아야 할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올라오고는 생각을 접으려고 그냥 잠을 자죠.

네, 전 슬퍼지면 잠을 자는 증세가 나타납니다.

 

물론 마눌이 이런 증상까지 진행되지 않게, 병 준 남편이 약까지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이런 증상을 느끼는 시간들이 아마도 "우울증"이겠죠.

 

시아버지도 수술 후에 우울증을 앓으시는 듯 했습니다.

 

항상 가을이 가기도 전에 겨울 준비를 하셨던 아빠가 마당에서 자취를 감추시고..

마당은 무성한 야채들로 가득했죠.

 

 

그러던 어느 날 마당의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당을 삥 둘러 화단같이 꾸며놓은 곳에 자라고 있는 야채들.

 

지하실에 저장 해 놓으면 겨우내 먹는 겨울용 샐러드는 마당에 그냥 두어도 적당히 추운 날에는 살짝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해서 굳이 추수할 필요는 없지만 다른 것들은 슬슬 추수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덥수룩했던 마당의 야채들이었는데 뭐가 확 빠져나간 듯 한 모습.

 

"야채 정리를 엄마가 하셨나?" 싶었습니다.

 

엄마도 디스크 수술을 하신 허리 때문에 힘든 일은 못하시는데...

"마당에 정리해야 할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시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밭일을 모르는 며느리지만, 그래도 시키는 일은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죠.

 

 

 

 

자전거를 갖다놓으려고 창고에 들어가니 그곳에 보이는 야채들.

 

마당에서 사라진 샐러리 악과 비트가 통에 담겨져 있습니다.

겨우내 싱싱한 상태로 뽑아 먹을 수 있게 플라스틱 통에 심었죠.

 

이건 아빠가 하신 일입니다.

 

매년 가을에 하시는 "아빠 일"이라 대번에 알아챈 며느리.

마당에서 만난 엄마께 "아빠 안부"를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 마당에 나오셔서 일하셨어요?"

"응, 잠시 마당에서 산책 하는 거 싶더니 뭔가 하는 거 같더라."

"엄마, 앞으로도 마당일은 하지 마시고 그냥 두세요."

"왜?"

"아빠가 마당에 할 일이 있어야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실꺼예요."

"알았다."

 

아빠가 밖으로 안 나오시는 동안에 아들내외는 일부러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당에서 만난 엄마와 속삭이듯이 아빠의 상태를 묻곤 했었죠.

 

마당의 야채들을 정리하지 않는 건 잘한 일 같습니다.

 

이미 정리를 끝냈다면 아빠의 집안 칩거는 계속됐을 텐데..

"당신이 해치워야 하는 마당일"이 눈에 밟히니 스스로 몸을 움직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아버지는 마당의 할 일 때문에 집을 나오시기 시작하셨고,

같은 단지에 사시는 시삼촌댁에도 카드놀이를 하러 다니십니다.

 

시아버지의 처음 재활을 도운 건 가족이 아닌 "마당의 할 일"

 

가족의 따뜻한 격려나 외로가 아닌 "일"때문이라니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그래도 시아버지가 우울증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을 하실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적당히 정리하지 않고 살아야겠습니다.

 

아셨나요?

정리해야하고, 해야 할 일 때문에 재활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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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지만 아직 지난 해의 크리스마스 시장을 구경하실 기회를 드립니다.^^

비엔나 시내의 크고 작은 광장에 들어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나는 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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