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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가까이 하기엔 두려운 간호사 실습생

by 프라우지니 2018.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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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이 들이기가 힘들지, 한번 몸에 배면 그것에 익숙해집니다.

 

평소에는 낮잠을 안자는 아낙인데, 일을 하러 요양원에 가면 꼭 낮잠을 잡니다.

이것도 요양원 근무를 하면서 몸에 밴 습관 때문이죠.

 

3년 전 처음 요양원에 실습생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항상 잠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공부하면서 요양원에 근무도 해야 했고, 또 실습을 하는 시기에는 실습장(병원, 데이센터, 방문요양)도 다녀야 했고, 독일어도 딸리는 외국인이라 시험 때만 되면 모든 것을 다 암기해야 했던지라, 잠을 더 줄여야했죠.

 

그래서 근무하러 간 요양원의 점심시간 1시간은 저에게 꿀 같은 낮잠을 잘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피곤한 일상 중에 잠시 몸을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속에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근무 1년차 직원이지만, 3년 전 실습생 때부터 근무하는 날은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는 습관을 들여놓으니 요즘도 점심시간이 되면 잠을 잡니다.

 

우리 병동에 침대가 2개있는 빈방이 하나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직원이 가서 쉴 수 있는 공간이죠.

 

가끔은 2개의 침대를 누군가 이미 차지한 경우도 있지만, 요새는 낮잠을 자는 직원이 별로 없는지라 가끔은 저 혼자 그 방을 독차지 했었죠.

 

우리 병동에 “간호사 실습생”인 청년이 하나 등장했습니다.

 

그 친구도 점심시간이 되니 낮잠 자는 방에 와서 내 옆의 침대를 잠을 자더라구요.

 

네, 외간남자랑 나란히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잔다는 뜻이죠.

같은 침대는 아니니 오해마시라~^^

 

처음 이틀은 그저 조용하게 잠을 잘 잤었는데..

그와 나란히 잠을 자는 세 번째 날.

 

눕고 1~2분이 지났나 싶었는데..

갑자기 들여오는 엄청난 굉음. “드르렁~ 드르렁~”

 

점심시간 1시간 내내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쩜 코를 그렇게 크게 고는지.

귀를 막아도 들리는 그의 스테레오 사운드의 웅장한 소리.

 

가끔 그가 몸을 뒤척이면 잠시 멈추는가 싶어서 다시 잠을 자려고 집중하고 있으면..

또다시 들리는 그의 소리. “드르렁~ 드르렁~”

 

처음이었습니다.

점심시간 1시간을 내내 뜬눈으로 보낸 것은..

 

그의 코고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

주말이라 집에 있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내 옆에 있는 홀랜더(Hollaender/네덜란드사람) 간호사 실습생이 날 미치게 만들어.^^;”

“왜?”

“이 실습생 때문에 낮잠을 못 자겠어.^^;”

“왜?”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 처음이야, 이렇게 웅장하게 들리는 코고는 소리.^^;”

“...”

 

 

여기서 잠깐!

 

오스트리아에서 간호사 공부를 하는데 웬 네덜란드 사람? 싶으신가요?

같은 유럽 연합 내에서는 이동이 자유롭고 취업도 자유롭죠.

 

이미 본국은 네덜란드에서 다른 직업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고, 이미 오스트리아에 10년째 머물고 있는 그였던지라, 이곳에서 직업교육을 시작했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의외로 독일어 소통이 자유로운지라 다른 곳에서 온 외국인들보다는 더 쉽게 공부가 가능하죠.

 

그 청년과 잠을 자보니 내가 참 “축복받은 아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남편은 최소한 밤에 마눌이 편하게 잘 수 있게 조용한 환경을 제공 해 주니 말이죠.

 

내 남편이 내 옆에 밤마다 이리 코를 골았다면..

 

잠 못 자서 눈탱이 벌게진 토끼(마눌의 애칭)로 살고 있거나..

벌써 오래 전에 건강상의 이유(잠 못 자서?)로 “이혼”을 했겠죠.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청년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 네 옆에서 잠 못 자겠어.”

“내가 코를 골지?”

“너도 알고 있어, 네가 코를 곤다는 걸?”“
"응, 가끔 내가 코고는 소리에 내가 깨!”
“너 여자 친구는 있니?”

“응”

“네 여자 친구는 밤에 잠잘 때 괜찮아?”

“응, 내 여자 친구는 한번 누우면 못 일어나, 그래서 내가 코고는 건 별로 문제가 안 돼!”

“다행이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니 다른 중년아낙 간호사가 한마디.

 

“우리 집은 남편은 안 고는데 내가 코를 곤다.ㅋㅋㅋ”

 

몸이 피곤하면 가끔 코를 골수도 있겠죠.

제 남편도 가끔 코를 골고, 남편 말에 의하면 마눌도 가끔 코를 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깊은 밤도 아니고, 낮잠을 자면서 이리 코를 골지는 않는디..^^;

 

결론은 이 청년 옆에서 잠을 자는 건 불가능하니...

함께 근무하고 같은 시간대에 점심시간이면 다른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가 찾은 또 다른 곳.

빈 방 하나에 사용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넣어놓는 공간입니다.

 

평소에는 제 친한 동료이자 멘토인 소냐가 점심시간에 쉬는 공간인데..

그녀가 근무를 안 하는 날인지라 이곳을 차지했습니다.

 

창고 같은 공간에 소냐가 만들어놓은 휴식처.

 

이곳에 있는 소파도 요양원에 사셨던 어르신이 돌아가신 방에서 나온 것 같은데,

버리지 않고 이곳에 두고는 사용하고 있었네요.

 

요양원 어르신들은 각자의 방을 자신의 원하는 가구로 꾸밀 수 있습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그분의 자제분들이 그 방에 있었던, TV나 가구를 가지고 가거나,

필요 없는 물건들은 요양원에 놓고 가죠.

 

이 방에는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옷가지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돌아가신 분의 옷을 태워서 함께 보내드리지만,

이곳은 카리타스 같은 곳에 기증을 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쌓아놓은 옷들은 옷이 필요하신 요양원의 다른 어르신들에게 드립니다.

 

여기서 잠깐!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의 자제분들이 시시때때로 방문하고 옷을 사오는 경우도 있지만,

 

요양원에 버리듯이 내버려놓고는 몇 년이 지나도 찾아오지도 않고,

 

새 옷이나 새 신발이 필요할 때 연락을 해도 답변을 아예 안하는 경우도 꽤 됩니다.^^;

 

옆에 코고는 인간이 없어서 이곳에서 편안하게 한 시간 내내 꿀잠을 잤습니다.

 

보통 실습을 나오면 한두 달은 집중해서 하는지라,

앞으로도 이 청년은 우리 병동에 아주 자주 나타 날 것 같은데..

앞으로 점심시간 그와 같은 공간에서 또 잠을 자야한다면 어찌하나 고민입니다.

 

내가 쉬었던 이 공간도 소냐만의 공간인지라 소냐도 근무하는 날은 이곳에 머물 수 없고!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에서는 그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자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한 시간 내내 다리를 쉬어준다는 명목으로 누워서 뜬눈으로 있을 수 없는지라,

찾아도 안 보이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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