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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역사 속에 사는 사람들

by 프라우지니 201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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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요양원에 계신 분들 중, 요 며칠 새에 몇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르신들의 생이 다하는 순간은 생각만큼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죠.

 

어르신들도 심하게 땀을 흘리시거나, 설사를 한 이틀 하면서 탈수가 오는가 싶으면..

아주 짧은 순간에 돌아가십니다.

 

우리요양원에 영화의 주인공 같은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인터넷에서 캡처

 

혹시 영화“말레나”를 아시나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여배우가 나왔었죠.

 

너무 아름다워서 여성들의 시샘을 받던 여성이 전쟁 중에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팔아야만 했는데.. 적군이 물러가고 마을의 아낙들은 이 아름다운 창녀의 머리를 다 뜯어서 마을에서 쫓아내죠..

 

뭐 이렇게 영화가 흘러갑니다.

 

전쟁 중에 먹고 살기 위해서 몸을 팔아야만 했던 현실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었는데.. 우리 요양원 한 어르신의 서류에서 “말레나”를 봤습니다.

 

“전쟁 중 몸을 팔아서 생계를 이었고, 남편과는 이혼을 했고...”

 

아무리 현실이 그래도 이런 사실은 숨기고 싶은 역사인데..

이런 진술은 이 어르신의 (친척)조카가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어르신은 말을 안 하십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어서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시는 분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말을 못하시는 줄 알았었는데...

어느 날, 이 어르신의 방에 들어가서 아침인사를 했습니다.

 

“Guten Morgen 굿텐 모르겐(좋은 아침)”

 

평소에는 인사를 하면 쳐다보고 그냥 웃기만 하셨었는데..

이날은 날보고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굿텐 모르겐~”

 

깜짝 놀랐습니다. 말을 하실 줄 알았는데 그동안 안 하신 거네요.

 

밖에 나가서는 “로또”맞은 사람처럼 신이 나서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방에 계신 XX부인이 말을 하셔, 말을 하신다고~”

“몰랐어? 그 양반 가끔 말씀 하셔.”

 

저만 몰랐습니다.^^;

이분이 기분 날에는 이렇게 짧은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치매가 있으신지라 자기만의 세상에 사셨던 분.

그분의 세상은 힘든 시기였던 그 전쟁 중에 머물러 계시지는 않으셨기를..

 

제 직업교육의 마지막 과정에서 저는 어르신 몇 분들과 “냄새(향기)에 관련된 (살아온) 기억”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이때 우리 요양원의 연상연하 커플인 95세 할매/89세 할배 부부와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냄새(음식/허브/양념)와 관련해서 들었습니다.

 

95세 할매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딸이 셋 있었는데, 하나는 20살 때 로터리 교통사로로 죽고, 또 하나는 30대 후반에 병으로 죽고 지금은 딸 하나만 남았어. 그 딸이 1남1녀를 두고 있지.”

 

이렇게 시작된 두 분의 역사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2차 대전이 있었던 그 시절까지 갔습니다. 할배는 10대의 나이에 전쟁터에 끌러갔어야 했답니다.

 

“나는 전쟁에 징용되어 러시아까지 가서 싸워야 했어.

거기서 적군에 잡혀서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

 

할매는 린츠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살았었는데..

 

“우리가 살던 지역에 연합군의 일원인 이탈리아군이 주둔하고 있었거든,

군인들이 매일 여자를 겁탈하러 찾아다녔어.

 

내가 실제로 목격한 것은 길거리에서 배부른 임산부를 성폭행하는 것을 봤고,

내 학교동무였던 아이는 이탈리아군에 끌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

돌아가면서 성폭행하다가 죽여버린거지.

 

그리고 우리 집에 날(20대 초반) 찾으러 왔던 이탈리아군이 날 못 찾으니 우리엄마를 죽이고 갔어. 거기 더 있으면 내 목숨이 위험해서 그 지역을 벗어나 린츠근처에 와서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해서 자리를 잡았지.”

 

우리가 생각하는 2차 대전은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켰으니..

독일/오스트리아는 전쟁 중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 피해자인거 같습니다.

 

남자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터에 끌러가야만 했고, 여자들은 적군들에게 성폭행 후, 죽임을 당하거나, 생계를 위해서 매춘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죠.

 

혹시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독일처녀들이 들에서 일을 하는데,

연합군들이 지나가다가 독일처녀를 겁탈하려고 마구 쫓아왔습니다.

 

독일처녀가 도망가면서 “Nein, Nein 나인, 나인(아니요)”하니,

갑자기 연합군들이 한 줄로 섰다고 합니다.

 

연합군들은 독일어 Nein 나인(아니요) 를 nine(아홉)으로 알아들은지라 9명이 일렬로 줄을 선거죠.

 

이건 정말 농담인줄 알았었는데, 전쟁 중에는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거죠.

 

우리 요양원에는 싱글인 할매가 몇 분 계십니다.

전쟁 중에 당한 성폭행 휴우증으로 결혼을 할 수 없었던 거였죠.

 

그래서 남자직원이 새로 오면 항상 주의를 줍니다.

 

“XX부인한테 신체적인 접촉을 하는 걸 자재해라. ”

 

어르신들의 머무시는 방의 곳곳에는 아직도 2차 대전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나치 장교 옷을 입은 군인 사진이 벽의 곳곳에 걸려있습니다.

어르신의 젊어서의 모습이겠지요.

 

나는 오늘도 그분들의 역사 속을 걸어 다닙니다.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지만 언제든지 살아있는 증언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시고,

방의 곳곳에 걸려있는 나치장교의 사진들과 나치관련 물품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치매를 앓고 계신지라 그분들만의 세상에 계시니..

어르신 중 몇 분은 오래전 전쟁이 있던 그 시절에 머물러 계시지 싶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흔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있는 이곳은 아직 그 역사 속에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번 생이 다할 때까지 그 힘겨운 역사 속에서 계속 머물러 계시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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