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사실 친구라고 해도 그녀를 만난 시간보다
만나지 못한 시간이 더 길었죠.
내가 그라츠를 떠난 것이 2012년이니
그때 이후로 보질 못 했었네요.
내가 오스트리아로 다시 돌아온 것이2014년.
우리는 린츠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그녀의 소식은
페이스북으로 접하고, 가끔 문자나 전화 정도만 했었죠.
어떻게 보면 타인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구” 라고 우길 수 있는 건,
내가 그녀의 사정을 남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정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남편 이야기나,
자기 형제들 이야기와 엄마 이야기.
들어도 좋은 이야기 보다는 “네 엄마는 왜 그러시니?”
혹은 “네 동생은 쫌 너무 한 거 같다.”는
조금은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아무에게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친구 기능”이니 나는 그녀에게 친구가 맞았던 거 같습니다.
뜻밖에 접한 그녀의 사망 소식.
그리고 불행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무거웠고,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한 내 친구, 죽을 때까지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만 하다가 간 것은 아닌지..”
다음날 또 근무가 있어서 일찍 자겠다고 마눌이 침대에 누었는데..
울고 있으니 남편이 마눌의 머리를 쓰담쓰담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지만,
남편은 천냥 대신에 (마눌에게)
천대를 맞을 수 있는 언변의 소유자.
말로는 마눌에게 절대 위안을 못 주는 걸 아는
남편이 선택한 방법은 그냥 조용히 마눌을 쓰다듬어 주기.
내 친구가 죽었다는 말을 하니 남편도 조금은 놀란 듯 했었죠.
남편이 내 친구를 만난 적은 없지만,
마눌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던 친구.
그녀의 불행했던 결혼과 남편의 양아버지 24시간 간병일,
그리고 대장암과 나중에 전이된 암들까지
(마눌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던) 친구가 죽었다고 하니
마눌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죠.
남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마눌이 우울”입니다.
마눌이 말을 안 하기 시작하면 눈에 띄게
어색한 눈빛과 행동으로 마눌의 눈치를 살피는데..
남편이 바로 그 행동을 하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서 우는 마눌의 머리를 “쓰담 쓰담”하면서
남편은 최선을 다해서 온몸으로 마눌을 위로 했습니다.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볼을 쓰다듬고,
마눌이 눈물을 멈추고 이제는 잠자려고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니
이번에는 마눌의 손을 꼭 잡아 줍니다.
평소에는 마눌이 손 잡자고 해도 마눌 손을 냅다 갖다 버리는 인간형인데,
마눌이 남편의 손이 귀찮다고 저리 치우라고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마눌의 손을 잡아줍니다.
저는 그렇게 그날 저녁에 남편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남편은 “왕 친절 모드”.
그녀의 장례식은 근무가 있어서 못 가지만,
그 다음날 그녀의 유해를 모신다는 그녀의 집에 가고 싶다는 뜻을 비추니
처음에는 “안 된다” 고 결사 반대하더니만
나중에는 “당신이 가고 싶으면 같이 가 줄게!”로 많이 양보했습니다.
남편이 가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밖에 나가는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도 이왕이면 안 가면 좋은 시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던 거죠.
남편 딴에는 마눌의 건강을 생각해서 완강하게 반대를 했었는데..
나중에는 내가 원하면 자신이 그라츠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라츠까지 왕복하면 4~5시간이 걸리는 거리.
재택 근무로 일을 해야 하는 남편이
하루 휴무를 내고 마눌을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거죠.
장례식은 중계 영상으로 이미 봤고,
그 다음날 유해가 모신 집까지 찾아가 봤자,
나는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나라 사람들만 있을 테니
남편까지 고생 시키고 싶지 않아서 안 가기로 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마음속으로 떠나는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고,
이런 내 마음이 친구에게도 전해졌다고 믿기로 했죠.
그리고 친구의 죽음으로 “삶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지..”에 대한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느라 며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근무를 하는 날은 근무를 가서 평상시처럼 행동했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의 죽음이나
내 기분을 알릴 필요는 없으니 그저 근무만 열심히!
어르신들 사이에서 많이 웃고,
평소처럼 유쾌한 직원으로 하루를!
마눌의 “우울 모드”가 며칠 진행되니
남편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합니다.
평소에는 마눌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틈만 나면 마눌 머리 끝에 올라가서 대장 노릇을 하려는 남편이
마눌이 우울한 며칠 동안
납작 엎드려서는 마눌의 눈치를 봅니다.
평소에 큰소리 치고,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하려는 독재자 모드의 남편이
갑자기 “비굴 모드”로 전환하니 내가 보기도 애처러운 상황.
틈만 나면 마눌 옆에 와서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고, 머리에도 뽀뽀를 하고,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애정 표현이 총 출동했습니다.
그리곤 마눌이 말을 할 수 있게 자리를 깔기 시작했죠.
“남미 출신 아낙M이 친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친구의 마지막 상황을 알거 같다"
하니 하니 빨리 M에게 연락을 해 보라도 재촉도 하고!
M과의 오랜 시간 통화를 하고 나니 얼른 쫓아와서는
친구의 마지막은 어땠는지 물어 봐주고!
친구의 남편은 전과 변함없이 자기는
양아버지네 집에서 24시간 간병인과 함께 살았고,
친구는 혼자 남편의 집에서 살았었다는
이야기에는 혀를 차기도 하고!
이 부분에서 남편에게 쐐기를 박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같이 결혼 때문에 집에서 멀리 나와있는 사람들은 남편이 가족의 전부야.
남편이 잘해야 시댁 식구도 예쁘게 보이는 거지.
남편은 개떡 같은데 시부모님이 잘해줘 봐야
그건 10~20%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러니 남편이 잘해야 하는 거지.”
“알지”
남편이 정말 뭘 알아서 안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눌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고,
또 마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위로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요 며칠 시간 날 때마다 남편은 말없이 마눌의 머리를,
뺨을 쓰다듬어 주고, 손도 잡아주고, 안아 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무언의 위로를 했으니 말이죠.
친구는 외롭게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떠났으니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운 마음은 담아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내 눈치 보느라 가재미 눈이 되어가고 있는 남편에게도
다시 살기 발랄한 마눌을 보여줘야 할 거 같습니다.
남편이 다시 마눌 머리 끝에
올라앉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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