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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엉뚱한 곳에서 내가 말하게 된 한국 현대사

by 프라우지니 201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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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원래 공부를 잘했던 큰언니 덕에

“공부하라”는 소리는 안 듣고 컸죠.


맏딸이 공부를 잘하니 그 밑의 동생들도 

당연히 잘하리라 생각하셨던 엄마.

 

시험 전날까지 잘 놀고 보는 시험이라 

한 번도 우등생이었던 적이 없는 나!^^

 

나이 마흔이 넘어서 이곳, 오스트리아에서 받았던 “요양보호사 직업교육”.


2년동안의 교육 과정을 하면서

 내 암기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도 알게 됐습니다.

 

참 너무 늦게도 발견한 나도 몰랐던 

나의 숨은 기능 중에 하나인 “암기력”이었죠.^^;

 

http://jinny1970.tistory.com/1966

자랑스러운 내 시험 점수

 


 

그렇게 대충 공부했던 실력이라 

한국사도 한국인이면 아는 딱 그 정도!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와 

하늘에서 날아온 환웅이 낳은 우리의 시조 단군 할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인들이 지금은 중국 땅을 된 지역을 꽉 잡고 있었고.. 


고려, 조선을 거치며 근대사도 지나고 

일제 식민지 36년을 거치고 독립 한 후 바로 한국전쟁.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대에는 참 지지리도 가난했던 한국.

 

백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한국은 초고속 성장을 해서 

지금은 세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죠.

 

정치나 경제, 스포츠 같은 거 좋아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나는 대충만 알고 있죠.


그렇게 한국 역사도 대충 알고 있던 내가 

내 머리를 쥐어 짜야만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구글에서 캡처

 

자! 한국도 아닌 곳에서 


한국어도 아닌 언어를 사용하면서 살고 있는 내가 

뜬금없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한국의 현대사를 

대충이나마 설명해야 할 일이 발생했었습니다.

 

바로 이곳, 오스트리아의 요양원에서 말이죠.


자! 사건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실까요?

 

우리 요양원에 사시던 어르신 몇 분이 돌아가시고,

그 비어있던 병실은 신속하게 새로운 분들이 오셨습니다.

 

보통은 활동이 가능하실 때 요양원에 들어오셔서 

점점 더 기억도 가물가물해지시고,


힘도 없어지셔서 나중에는 직원의 도움이 있어야 

거동을 하시는 분들이 보통인 요양원.

 

오스트리아의 요양 등급은 7단계가 있습니다.


가장 가벼운 등급인 1단계부터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삶이 힘든 7등급까지.

 

요양원에 들어 오실 수 있는 자격은 보통 3~4등급이 되어야 하지만!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도움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약간의 치매 증세라 혼자서 먹고,혼자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신체적 장애가 있으신 경우라면 씻겨드리고, 

먹여드리고, 기저귀도 갈아드려야 하죠.

 

새로 오시는 분들이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이왕이면 혼자서 하실 수 있는 분들이 오시면 직원들이 조금 편하지만, 


아예 침대에 누워서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시는 분들이 오실 경우는 

직원들이 힘들죠.ㅠㅠ

 

 


새로 오신 N할배는 뇌출혈로 몸의 반쪽을 쓰시지 못하십니다.


전에는 집에서 사셨던 모양인데,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갔다가 우리 요양원으로 오셨죠.

 

약간의 치매 증상도 있으시다는데, 

아직은 정신을 챙기고 계십니다.

 

문제라고 한다면 이 ㅜ분이 직원들을 참 피곤하게 하신다는 것!

3분에 한 번씩 호출벨을 눌러 대십니다.^^;

 

당신이 심심하시니 직원을 불러놓고는 쓸데없는 일을 시키십니다.

 

“창문에 커텐을 열어라!”

“커피는 왜 안 주냐?”

 

다른 직원들은 다 점심시간 휴식에 들어가고 혼자 하는 점심 근무!

N할배는 끊임없이 호출을 하십니다.

 

할배방에 가서는 “커피는 나중에 갖다 드리겠다" 고 말씀드리고

 돌아서는데 한마디 하십니다.

 

“린츠에서 왔슈?”



내 외모를 보면 내가 외국인인줄 아실텐데..


“넌 어디서 왔니?”라는 말을 이렇게 하십니다.

 

“저는 한국사람이에요. Sued Korea 수드(남) 코리아에서 왔어요.”

“부산?”

“아니요. 서울이요.”

“.....”

 

다른 방의 호출 벨이 들어와서 일단은 그 방을 나와야 했고,

나중에 시간이 나서 N할배께 갔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한, 북한?”하는 것이 보통의 반응인데..


단번에 한국의 도시 이름을 대는 분은 처음이었거든요.

 

“부산은 어떻게 아세요?”

“내가 거기에 갔었어.”

“거기서 뭐하셨는데요?”

“내가 15년동안 선원으로 일을 했었거든 그때 거기랑 일본등도 다녔지.”

“그때가 언제였는데요?”

“1960년대.”

“정말 옛날이네요.”

“그렇지, 그때는 5불이면 (한국)여자를 데리고 밤새도록 잘 수가 있었어.”


 

구글에서 캡처

 

1960년대라면 한국이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이었네요.


이분 기억에는 한국이 아직도 못사는 

동남아의 한 나라로 남아있는 듯 합니다.

 

“그때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국이 어려울때였네요. 


그때는 필리핀이나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도 

한국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그래?”

“가난한 1960년대를 보내고 1970년대에는 우리의 오빠들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돈을 벌었고, 


아빠들은 중동 건설 노동자로 나가서 돈을 벌었죠.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 공부를 시켜서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셨던 분들이 계셔서 한국은 고속 성장을 했어요.”

“‘그래?”

“지금은 한국이 오스트리아보다 물가가 더 비싸고, 더 잘 살아요.”

“....”

“삼성, LG도 다 한국꺼예요. 

지금은 한국이 잘사는 나라중에 하나라니까요.”

“....”


 

이제 89세가 되신 N할배가 삼성이나 LG를 모르실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할배가 아실만한 회사 이름을 

나열하면서 설명을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설명한들 할배가 가지고 계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지는 않겠죠.

 

“5달러면 여자랑 하룻밤 잘수 있는 참 가난한 나라, 한국”


그것이 할배의 추억 속에 한국일테니 말이죠.

 

내가 지금의 한국이 얼마나 잘살며 

세계의 경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말한들, 

할배의 관심 밖의 일이겠죠.

 

하지만 저는 할배 기억 속의 

“지지리도 못사는 나라에서 온 한국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변명처럼 한국의 현대사를 이야기와 더불어 

한국의 부강한 나라라는 걸 말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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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회사 야유회 영상을 업어왔습니다.

내가 그동안 다녀온 야유회 중에 가장 "진상"인 날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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