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부모님이 아프면 일단 장남이 집에서 모십니다.
장남이 꼭 아니더라고 자식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요즘은 요양원이 생겨서 부모님을 그쪽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지만, 부모님은 그분들 나름대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자식들 또한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긴 했지만, “내 부모를 모시지 못 한다”는 죄책감을 갖게 만들죠.
우리보다 요양원이 더 먼저 생긴 유럽.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연세가 많으시거나 혹은 아픈 부모님은 다 요양원으로 모신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요양원으로 가시는 비율은 0.5% 이내라고 합니다.
그럼 95%의 어르신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다 집에서 사신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자식들이 아프신 부모님을 집에서 간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어 처음 배울 때 만났던 독일어선생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선생으로 정년퇴직하고 자원봉사 삼아서 할 일을 찾다가 오셨던 분!
돈 받고 일을 하는 다른 선생님과는 달리 강의시간 전에 와서 수강생들 하나 일부러 말을 걸어 주시고, 강의준비도 여느 선생님보다 더 빡세게 준비 해 오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자원봉사 하시던 강의를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하게 되셨고,
마침 우리 집에서 시내 나가는 길에 사셨던 지라 한번 그 댁을 인사삼아서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학원에서는 개인적인 일은 말씀을 하셨던 적이 없는데,
집에 방문을 하니 왜 더 이상 강의를 못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내 팔자가 그렇네. 아빠가 아프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넘게 간병했었어.
4년 전에 아빠 돌아가시고 이제 조금 편해지나.. 했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암에 걸렸어.
그래서 남편을 간병해야 해서 학원은 그만둬야 했어.”
이때는 이분이 대단해보였습니다. 아픈 아버지를 출가외인인 딸이, 집에서 간병하셨다니..
아프신 친정아버지는 그냥 요양원에 보내드렸어도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말이죠.
지금에서 생각 해 보니 그 분은 집에서 부모님을 간병하는 95%에 해당하는 분이셨습니다.
서양인들은 부모가 아프면 그냥 요양원에 보내드릴 거 같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학교에서 강의 중에 선생님이 설문조사한 내용을 우리에게 말씀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부모가 아프면 집에서 간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자식으로서 부모께 해야 하는 도리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죠.
보통 집에서 간병하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8~9년이라고 합니다.
짧지 않는 기간임에도 가족들이 아픈 부모를 집에서 모신다는 말에 감명을 받았었습니다.
가족들이 집에서 간병을 한다고 하니 요양원에서 간병하는 거 보다는 어설플 거 같지만..
가족들도 간병에 필요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습니다.
제가 전에 갔었던 병원이 실습실입니다.
보통은 병원에 있는 “간호사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지만,
집에서 간병을 하는 가족들의 교육을 위해서 개방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 크기의 인형이고, 실제로 많이 무겁습니다.
이 인형을 상대로 기저귀 가는 법이나 어떻게 앉히는지,
변기는 어떻게 아래쪽으로 넣어주는지..
씻길 때는 어떻게 하는지 등등을 배우게 되죠.
이런 것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음 하는 제도입니다.
제대로 방법을 알아야 간병도 쉬어지는 법이니 말이죠.
사람들이 집에서 간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정말 부모님께 효도하는 부류도 있는가 하면, 돈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집에서 제대로 보살피지도 않고, 끼니도 안 챙겨주면서 나라에서 주는 간병 급여비도 챙기고..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요양원으로 가야되는 상황인데, 집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에서 그 집을 담보로 가져가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들에게는 남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죠.
아예 가진 재산이 없으면 요양원 입주도, 매달 내는 비용도 사회보험에서 내주지만,
재산이 있는 경우는 개인이 이 비용을 내야하는데, 매달 2~3,000유로는 부담이 되죠.
만약 쓰러져가는 집이라도 있으면 사회보험에서 집을 담보로 요양원 입주를 승인합니다.
(편법이기는 하지만) 요양원 어르신께 들은 이야기로는..
최소한 요양원 입주 5년 전에는 재산을 다 자식들 앞으로 넘겨줘야 한다고 합니다.
요양원 입주 시기에 가진 재산이 하나도 없어야 부담 없이 요양원 입주가 쉽다는 이야기죠.
우리가 생각하는 “죽을 때까지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자식들에게 대접을 받는다.”는 여기서는 해당이 안 되는 거 같습니다. 요양원 입주 한참 전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미리 나눠주니 말이죠.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도리적인 이유에서든..
집에서 간병하는 가족들이 다 수월한 것은 아닙니다.
길어지는 간병기간에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서 저지르는 범죄도 종종 신문에 볼 수도 있습니다.
간병하던 아들이 잠자던 부모님을 야구 방망이로 때려서 죽인 사건입니다.
어떤 후레자식이기에 부모님을, 그것도 주무시는데 그랬을까? 했지만..
사건을 자세히 보니 이 아들 또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저지른 범죄였습니다.
농아인 부부가 1남 2녀를 낳았는데, 그중에 아들만이 아픈 부모님을 간병했던 모양입니다.
47살 난 아들이 철도청(공무원)에 근무하면서 아픈 부모님(85살,75살)을 모시니 주변에서 “참 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모양인데, 정작 본인은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아픈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니 그만큼 더 힘들었을 테고, 또 풀타임으로 일도 해야 하니
더 힘이 들고, 아픈 사람이 단순하게 주는 밥이나 먹고 있지는 않죠.
치매가 있으신 경우는 대변으로 온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시고,
갑자기 욕을 하기도 하시는지라,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떠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아마도 본인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였나 봅니다.
그러니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끝을 낸 거 같습니다.^^;
형제중 누가 함께 그 짐을 나눠지었더라면 조금 더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시기였으련만..
하는 아쉬움만 남습니다.
유럽에서는 부모가 아프면 다 “요양원으로 모신다.”는 틀린 말입니다.
그들의 문화가 우리가 다르고, 그들이 교육이 우리와 다르지만..
그들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가 말하는 “효도”와 같습니다.
부모가 아프면 가능한, 오래 집에서 간병하려고 하는 걸 보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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