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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시아버지의 어릴적 꿈, 제과사

by 프라우지니 201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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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시아버지는 평생 페인트공으로 일하셨습니다.

 

14살에 견습공으로 일을 시작하셔서, 20대 초반에 마이스터(장인) 시험을 보셨고, 그리고는 자영업을 하시면서 시어머니와 두 분이서 사업을 운영하셨습니다.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소규모 자영업자인지라 입소문으로 고객들을 모았고, 시부모님이 직접 일을 하시면서 한평생 사셨습니다.

 

항상 몸을 움직이시며 일을 하신 관계로..환갑이 채 되기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하셨죠!

지금은 은퇴연금을 받으시며 바쁘게 마당에 야채를 가꾸시는 바쁜 농부로 살고 계십니다.

 

시아버지 역시 남편을 당신의 대를 이어서 페인트공으로 살기 바라셨지만, 고집불통 아들은 아버지와 대적하면서 끝끝내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지금은 학벌도 훌륭하고, 월급도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편을 페인트공으로 만들고자 하는 건 시아버지의 뜻도 계셨지만, 사실 시아버지 뒤에 계셨다던 시할머니의 입김이 상당히 세게 작용했다는 것이 시어머니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시어머니께 전해 듣는 시할머니는 성질도 고약하고, 한지붕 옆 건물에 사는 며느리에게 “설움”을 제대로 주시곤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시부모님이 함께 페인트 일을 하러 집을 비우게 되면 집에 남아있는 어린 남매를 할머니가 봐주시면 좋으시련만...시어머니는 두 아이를 집에 두고, 문을 잠그고 일을 다니셨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아닌데, 이 부분에서 짠했습니다. 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린 두 아이를 집에 가두고 일을 나가야 하는 엄마의 심정에 말이죠.

 

가끔씩 시어머니의 언니가 빈집에 갇혀있는 아이들을 봐주러 집에 와서 두 아이와 놀면서 조금 시끄러우면, 바로 달려와서 조용히 하라고 항의를 하셨다는 시할머니.

 

시아버지는 그 성질 고약한 시할머니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착한 아들이였답니다.

그러니 시할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자신의 아들이 가겠다는 대학진학을 결사반대하셨고 말이죠.

 

 

전 시아버지의 어릴 적 꿈도 “페인트 공”인줄 알았었습니다.

그러니 14살 어린나이에 일찌감치 그쪽으로 일을 나선 것이고 말이죠!

 

어느 날 무심코 며늘이 한마디 했습니다.

 

“아빠, 아빠는 어릴 적 꿈이 Maler 말러였어요?”

 

Maler말러 (1) 화가 (2) 페인트공

한국은 화가와 페인트공이 단어로 구분되지만, 독일어는 이 두 가지 뜻이 다 있습니다.

 

집안 곳곳에 아빠가 직접 그리신 그림도 꽤 있는지라..

아빠는 화가로서의 자질도 충분하신 분이시거든요.

 

저는 당연히 “그래!”라는 답을 기대했었는데.. 아빠는 엉뚱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제과사가 되고 싶었다.”

 

시아버지의 형님이 제빵사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아마도 제빵사로 일하시는 형님을 보시면서 제과사의 꿈을 꾸셨던 모양입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는 제과사로 일하면 맛있는 케잌도 많이 먹을 수 있는 꿈도 있었을 거 같고 말이죠!^^ (이건 단순한 며늘의 생각입니다.^^)

 

 

아시죠?

제빵사는 빵을 굽고, 제과사는 케잌이나 과자를 굽는거죠!

 

어린 시절의 시아버지는 맛있고, 멋진 케잌을 만들고 싶은 꿈을 꾸셨던 모양입니다.

현실은 페인트공으로 사셨지만 말이죠.

 

제가 알고 있는 서양인들은 다 자기가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지고 계신 꿈과는 다른 길을 걸어오신 시아버지가 조금은 의외인지라, 왜 제과사가 되시지 않으셨는지 물었습니다.

 

“울 엄마가 말러(페인트공)을 하라고 해서 그랬지!”

 

허허~ 여기서 또 시할머니가 등장하시는군요!

 

제과사도 페인트공처럼 14살에 견습생으로 들어가서 일 배우는 건 같은 과정이였는데, 왜 시할머니는 시아버지의 꿈을 꺾으신 것인지.. 월급차이로 별로 날 거 같지 않는 두 직업인디..^^;

 

한국에는 저렴하게 제과, 제빵을 배울 수 있는 복지관도 많이 있고, 사설학원도 많이 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제과점으로 들어가서 견습생 생활을 하면서 배우는 방법이 가장 대중적입니다.

(모르죠! 사설 학원이 있는데, 제가 모르는 것일수도..)

 

물론 견습생의 나이는 어려야하고 말이죠. 환갑도 지나 할배가 제과점에 견습생으로 들어가서 일 배우는 것도 거시기 하지만, 본인이 간다도 해도 받아줄만한 제과점도 없을 거 같기는 합니다.^^;

 

시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으로 가슴에 품은 채 살고계십니다.

현대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제 시부모님의 세대에는 부모는 자식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존재이셨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꿈도 군소리없이 조용히 접을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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