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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나에게 쌓여가는 하늘 가시는 분들과의 추억들

by 프라우지니 2019.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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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사는 것이 힘들어 도움을 받고자 나이 드신 분들이 모여드는 곳, 요양원.

도움을 필요하다고 해도 처음부터 아무나 주는 도움을 받지는 않으십니다.

 

제가 실습생으로 근무했던 2년 동안 저는 내내 2층에만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1층이나 3층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얼굴만 아는 상태였죠.

 

그저 얼굴만 보며 오가도 친하게 말을 걸어오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소 닭쳐다보듯이 멀뚱거리며 우리를 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특히나 이국적인 외모에 억양도 특이한 직원들 같은 경우는 이런 경우가 더 많죠.

 

요양원 근무 20년을 너머 30년에 들어선 동료직원들에게 물어보면 지금은 무거운 분들을 옮기는데 약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 전보다는 몸이 조금 더 편해진 듯 하지만..

 

대신에 정신적으로는 더 피곤해졌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예전보다 지금의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겠죠.

 

특히나 “기싸움”은 아주 치열합니다.

 

상대에 따라서 직원을 데리고 노시는 분도 계시고..

강한 직원을 만나면 아양을 떠시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요양원에 근무하는 날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

경력있는 직원들이 말하던 "그 의미(정신적으로 더 힘든)"를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르신들 중에 유난히 까다로운 분들이 계십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씻겨드려야 하는데, 안 씻는다고 하시고, 짜증내시고, 심하면 침도 뱉고, 때리기도 하시죠. 그래서 상대의 기분까지 봐가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근무하면서 어르신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자주 있죠.

 

3층에 내게는 참 힘든 상대가 한 분 계셨습니다.

70대 후반의 할배,Z.

 

젊은 시절에 축구를 하셨고, 축구 코치까지 하셨다는 Z할배.

연세는 드셨지만 덩치가 산 만하고 힘이 장사라 참 힘들었던 상대.

 

가끔 Z할배께 손목을 잡히면 얼마나 아프게 잡으시는지..

내 손목을 빼내고도 한동안 벌건 상태이곤 했죠.^^;

 

요양원 어르신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하십니다. 내가 목욕탕에 들어가야 하는 날인데, Z할배 목욕시켜야 하는 날은 시작 전부터 식은땀부터 났죠.

 

가끔은 나는 불가능해서 선배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안 되는데 선배는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어르신들도 직원과 기싸움을 하는데 신입 같은 경우는 어르신이 월등히 유리하지만..

경력직원의 기는 이겨낼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요양원의 어르신들이 도움이 필요하니 아무 직원에게나 몸을 맡긴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친해질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죠.

연세가 드시고, 치매가 있으시다고 수치심을 못 느끼시는 건 아닙니다.

 

직원과 친해질 때까지는 자기 몸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걸 꺼려하시니 이미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직원이 아닌 새내기라면 도움을 거절하실 수도 있고, 협조를 안하실수도 있습니다.

 

가령 새내기 직원이 어르신께 “우리 화장실에 가서 얼른 기저귀 갈고 올까요?”하면 버럭 역정을 내시는 어르신이 경력직원이 와서는 “언능 일어나, 빨리 화잘실 갖다 오자.”하면 순한 양처럼 일어나서 따라 가십니다.

 

잠깐! 위에 나온 대화는 반말이지만,

친근한 사이에서만 쓰는 독일어식 대화입니다.

 

처음 요양원에 입주하셔서는 씻으려고 화장실에서 옷을 벗겨드리면 가슴이나 아랫동네를 자꾸 덮으면서 가리시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고 직원들과 친해지면 그런 부끄러움은 다 벗어던지죠.

 

직원이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방귀를 아무렇지 않게 뀌어대고, “미안해!”는 말씀도 안하십니다.

 

심할 경우는 당신이 볼일을 보시는 동안 나가지 말고 화장실에 계속 서 있으라고...^^;

 

 

방귀뀌고 아무 말씀 안 하시는 어르신들께 저는 한마디 합니다.

 

“나오는 방귀야 참을 수 없으니 그렇다 쳐도 최소한 ”쏘리~“는 하셔야지요.”

 

치매 걸렸다고 매너까지 잊는 건 아니거든요.

 

볼일 보시는데 나가지 말고 안에 있으라고 하시는 어르신께는 농담처럼 말합니다.

 

“지금 독가스로 저를 질식 시키려고 그러시는 거죠?

볼일 끝나시면 변기물 내리시고 직원 호출벨 누르세요. 그럼 와서 닦아 드릴게요.”

 

씻겨드리는 중에 변기 위에 앉아서 볼일을 보셔 냄새를 풍기시는 할배.

얼른 변기 물을 내리니 “왜 내리냐?”고 성질을 내셨습니다.

 

 

이분은 매일 당신 변의 색이나 상태를 확인하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백세 할배.

 

“변기 물 내려도 당신이 어떤 색과 어떤 형태의 변을 보셨는지 확인은 가능하구요.

물 안 내리고 계속 안에 있음 우리 둘 다 산소부족으로 질식해요.“(뻥입니다.^^)

 

참으로 다양하고, 이상한 이야기가 많은 요양원.

 

다른 어르신들은 괜찮은데 나에게 유난히 까칠했던 Z할배.

 

내가 목욕탕에 들어가는 날 Z할배가 리스트에 있으면 아침부터 눈치를 살핍니다.

실실 웃으면서 가서는 인사를 하고 “목욕하러 갈래?”하면서 꼬드기듯이 이야기를 하죠.

 

기분이 좋아서 “그래”했다고 해도 언제 또 돌변할지 모르니 목욕이 끝날 때까지 노심초사.

 

한번은 “목욕가자”고 하니 기분 좋게 일어나서 따라 오셨고..

“우리 면도 할까요?”도, “우리 손톱도 깎을까요?”도 다 OK.

 

목욕탕 열기에 (어르신들이 욕조 물에서 나오면 추우실까봐) 난로까지 켜놔서 후끈거려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저 이날 참 많이 행복하고 뿌듯했습니다.

 

참 이해하기 힘드신 상황이고 현장이지만..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주는 Z할배께 인정받았다고 생각한 날이죠.

 

2년이 넘도록 나에게만 까칠했던 Z할배가 내가 하자는 대로 다 따라주셨으니 말이죠.

 

외모도 발음도 유난히 튀는 외국인직원이여서 그랬던 것인지..

항상 실실 웃으면서 다니니 만만히 보였던 직원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그렇게 Z할배를 목욕시켜드리며 인정받은 줄 알았었는데..

이분은 그 후로도 참 변화무쌍한 태도로 저를 대하셨습니다.

 

 

 

 

“히스테리”는 노처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히스테리는 여자들의 전유물인줄 알았었는데, 할배들의 히스테리는 여자들보다 더합니다.

 

물론 이것이 병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신이 가진 상황에 불만족스러워 그러실 수도 있지만.. 히스테리를 언제 부리실지 몰라서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게 했던 Z할배.

 

그런 날들이 꽤 많았습니다.

 

복도에 서서히 퍼지는 독가스(=떵냄새)

코를 킁킁거리면서 누구의 뒷동네인지 확인 해 보니 Z할배의 궁디쪽 냄새.

 

“Z, 우리 얼른 화장실에 갈까요? 바지를 갈아입어야 할 거 같아요.”

 

잡아끄는 내손을 뿌리치고는 얼른 엘리베이터를 타시는 Z할배.

엘리베이터 타고 아래층으로 가시면 다른 층의 직원이 다시 우리 층으로 모시고 오죠.

 

달래고, 꼬시고 해서 Z할배를 화장실로 모시고 가서 씻겨드리고, 닦아드리고, 새 옷도 갈아입혀드렸죠.

 

그날 저녁에 야간근무자에게 근무인계를 하면서 “Z이 떵싼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갔었다”했더니만, 야간근무자가 날리는 한마디.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에 (떵)냄새가 진동했구나!“

 

그 말에 사무실에 있던 직원(이라고 해봐야 야간근무자 1명과 1,2층 근무자 2명)이 다 웃었었죠. 요양원에서만 있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냄새 진동하는 엘리베이터.

 

Z할배는 100살까지 사시겠다던 어르신이었습니다.

 

거동은 마비가 조금 덜된 반쪽에 의지해서 아주 천천히 걸어 다니실 수는 있으셨지만,

반신불수의 몸이시라 씻고, 입고, 먹는 것은 직원의 도움이 없이는 힘드셨던 분.

 

그래도 살고자 하는 의지는 참 강하셨던 Z할배.

어느 날 근무를 들어갔더니만 자리에 없으신 Z할배.

 

항상 그 자리에 산처럼 지키고 있으셨던 분이고, 도대체 어디를 가셨나 싶었더니만..

“심장에 문제가 약간 있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 다음에 근무를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병원에 계시다 던 Z할배는..

최근에 들어갔던 근무 날에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 “요양보호사“의 삶에서는 절대 잊지 못할 Z할배.

 

쌩초보 실습생일 때부터 봐와서 내가 더 만만하게 보셨던 걸까요?

 

근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전문인처럼 보이고 행동하기는 했겠지만,

그분께는 그 “쌩초보 실습생”의 모습이 여전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죠.

 

날 많이 힘들게 하셨고, 엄청 까칠하게 대하셨지만..

가끔씩 내 이름을 불러주시고, 내 말에 따라주실 때 만족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해주셨던 분.

 

나에게 자주 웃음을 보이지는 않으셨지만, 가끔 기분이 내키시면 웃어주시는데..

환하게 웃으실 때는 너무 해맑아서 70대 노인의 얼굴이 아닌 아이 같은 표정이셨죠.

 

이제는 반신불수의 몸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계시겠죠?

Z할배는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요양원 어르신들 중에 한분이 되시지 싶습니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셔도 슬프지는 않습니다.

가시는 분들께는 “사시느라 고생하셨다. 이제는 편안히 가시라.”라는 인사도 드립니다.

 

저는 매일 죽음이 오가는 길목에서 일을 하는 요양보호사입니다.

근무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나에게는 돌아가신 분들과의 추억이 쌓이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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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건강하시지만 연세가 드시고 계시니..

기회가 되고 시간이 될때 시부모님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집안에서 하루르 보내셔서 많이 안  움직이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자전거 타러 가신다는 시아버지를 따라 나섰습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까지 합세하면 시어머니는 그냥 따라나서게 되는 상황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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