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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아픈 건 나

by 프라우지니 2017.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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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 요양원 어르신들께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프시면 당신만 손해이시니 나오는 음식도 다 드시고, 잘 주무시고, 약도 잘 드셔야 해요.”

 

내가 아프면 옆에서 걱정은 해줄 수 있죠. 하지만 걱정은 순간뿐입니다.

 

나는 계속 아픈데, 옆에서는 그걸 잊는지 아픈 내 몸과는 상관없는 주문을 곧잘 합니다.

 

제가 탈장수술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6일 동안 남편은 매일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마눌이 보기에도 감동적인 정성이었고,

자기 딴에도 마눌이 처음 아프고 보니 신경을 쓰는 듯 했습니다.

 

퇴원해서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마눌이 환자라는 걸 가끔은 잊는 듯 합니다.

 

당분간은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된다니, 빨래바구니 같은 경우는 세탁기가 있는 2층까지 가져다주고, 빨래가 끝나면 마당에 갖다 주고 하는 서비스도 하고, 아예 직접 마당의 빨랫줄에 빨래를 엉성하게나마 널기까지는 합니다.^^

 

마눌이 퇴원하고 3일이 지나고는 남편은 뜬금없이 2일 동안 휴가를 냈습니다.

마눌은 아픈데 왜 휴가를 냈냐고 물어보니 남편이 하시는 말씀!

 

“이틀 동안 날씨가 완전 여름이고 그 이후에는 비가 오고난후에 기온이 내려간다네.”

 

마눌을 돌보려고 휴가를 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휴가를 즐기려고 내셨답니다.^^;

 

오스트리아의 관광명소 잘츠캄머굿에 있는 호수들은 생각보다 물의 온도가 낮아서 한여름이 아닌 이상은 수영이 힘들거든요.

 

남편이 말하는 의미가 바로 호수에서 수영하고 싶다는 거죠.

 

퇴원하고 3일됐지만, 낮에 두어 시간 산책삼아서 슈퍼마켓을 도는 것도 아주 천천히 걸어야 가능한지라 안 따라 가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작년에도 Attersee 아터세(아터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을 하지 않은 터라, 올해는 해야 할 거 같아서 따라나섰습니다.

 

 

구글지도에서 캡처했습니다.

 

남편은 해마다 여름에는 꼭 한번 자전거로 아터세를 한 바퀴 돕니다.

아터세는 잘츠캄머굿 지역에 있는 호수 중에 가장 큰 호수로 호수의 둘레는 46,3km입니다.

 

호수 둘레는 자전거 도로가 되어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왕복2차선인 차도를 달려야하는지라, 사실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여름에는 엄청난 수의 자전거를 이 도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몸은 안 좋은 마눌을 데리고 남편은 아터세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아터세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자전거타고 호숫가를 도는 2시간동안 마눌이 앉아서 기다릴 담요랑 수건을 넣은 가방도 무거운 거 못 드는 마눌을 위해서 직접 챙겨들고서는 그렇게 호숫가로 갔습니다.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있을 시간에 마눌은 호숫가에 자리를 펴놓고는 주변을 오락가락하면서 잠깐의 산책을 했고, 잠시 앉아서 쉴까 하는 차에 남편이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타는지, 매번 남편은 2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도착합니다.

 

땀을 많이 흘린 남편이 얼른 호숫가에 들어가서 땀을 씻고 빨리 집으로 가면 좋으련만..

앉아있기도 조금은 힘든 마눌의 무릎을 베고는 잠시 코까지 골고 주무셨습니다.

 

지금 미친 거죠.

아파서 제대로 앉아있기 힘든 마눌의 무릎을 베고 팔자 좋게 코까지 골고 주무시다니..

 

마눌의 짜증이 섞인 독촉에도 별로 신경을 안 쓰고 남편은 잘 만큼 자고 일어나서는 호수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수영겸 샤워를 하고서야 집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내가 원래 이런 저질의 체력이 아닌데..

몸이 아프다 보니 2시간이 채 안되는 가벼운 산책도 버거운 상태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날씨 좋은 금요일!

어제 아터세에 갔다 왔구먼 남편은 오늘 또 가자고 합니다.

 

어제 갔다 왔잖아.”

“어제는 자전거를 탔고, 오늘은 보트를 탈 예정이야.”

“나는 안 가, 혼자 가!”

“그럼 당신은 앞으로 계속 집에만 있어. 난 앞으로 다른 사람이랑 다닐 테니까.”

“그러던가.”

“궁시렁~ 궁시렁~”

 

같이 가야하는데 마눌이 안 간다니 남편이 심통을 부리십니다.

마눌이 아프다는 건 잠시 잊으신 거죠.

 

“마눌이 아프다는데 꼭 그러고 싶냐?”

“오늘까지 날씨가 좋고는 계속 비오고 그러면 여름도 가고..어쩌고저쩌고!.”

“무슨 소리야? 9월에도 날씨는 좋잖아.”

“오늘이 마지막으로 수영이 가능한 날인데...어쩌고저쩌고!”

 

웬만하면 안 따라가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남편의 심통+궁시렁이 도가 넘은지라 그냥 따라 나섰습니다.^^;

 

 

 

사실 보트를 타려면 보트를 차에서 내려야하고, 보트에 바람도 넣어야하고,

호수에 띄우려면 둘이서 들어야하고.. 등등의 일이 있습니다.

 

마눌이 아프니 남편이 혼자서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보트에 앉아있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남편 딴에는 아픈 마눌을 배려한다고 호숫가에 작은 해변에 보트를 대고는..

 

자신이 수영하는 동안에 마눌이 누워있을 수 있게 배려도 했지만,

보트를 타고 내릴 때 조금 많이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2017년 8월의 아터세를 제대로 즐겼습니다.

 

보트를 타고 다니다가 얕은 호숫가에 보트를 대고 수영도 했고,

혼자서 사방을 둘러보면서 감탄도 했습니다.

 

가끔 마눌이 누워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남편의 걱정이 아픈 내 몸에 도움이 되지는 않죠.^^;

 

남편은 만족스러운 4시간 동안의 보트놀이&수영 이였는데..

마눌에게는 조금은 힘들고 버거운 4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버린 마눌은 아프다는 소리도 못한 채,

잠을 자는 듯이 마는 듯이 그렇게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마눌이 못 일어나니 남편이 걱정이 되는지 와서는 얼굴을 쓰다듬고,

자기 딴에는 애교 아닌 애교를 피우십니다.

 

마눌이 퇴원한지 얼마 안 된 환자인 것을 잊었던 것인지..

아픈 건 마눌이지 자기는 아니니 신경을 안 쓴 것인지..

마눌의 통증이 이 정도인지 몰랐던 것인지..

아님 반성하는 의미인 것인지..

 

아픈 건 나죠.

남편이 내 아픔을 알리는 없습니다.

 

생각 해 보니 나도 그랬습니다.

나도 남편이 아플 때 걱정만 하는 정도였습니다.

 

발목골절로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이 해 달라고 이것저것 주문을 해 올 때,

처음에는 남편의 손발이 되어서 다 해줬지만, 기간이 길어지니 짜증도 났었습니다.

 

남편의 아픔은 남편의 것이니 통증이 얼마나 깊은지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알 길이 없었죠.

 

아픈 마눌을 끌고 여기저기 다닌 남편은 괘씸죄로 처단해야 마땅하지만,

나또한 남편이 아플 때 무성의한 적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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