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보면 현지인이 아닌 나와 같은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외국인들끼리 더 친절해야하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알고 있던 제 친구가 그랬습니다.
처음 오스트리아에 들어와서 결혼한 시기도 비슷하고, 같이 독일어코스를 다닌지라 버벅이는 수준도 비슷했는데, 이 친구는 같은 외국인이면서도 자기보다 독일어가 조금 딸려서 조금이라도 버벅대면 대놓고 짜증을 내고는 했었습니다. 그때는 원래 성격이 그런가부다 했었는데...
제가 2년간 오스트리아를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보니 내 독일어는 떠나기 전 그대로인데, 그친구는 1년 반짜리 직업교육까지 받은 터라 엄청 훌륭한 수준의 독일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키우는 개 산책시키는 시간에 우리 집 근처에 오면 함께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는 했었는데.. 내가 뭔가를 이야기할라치면 “지니~”하면서 짜증을 엄청 냈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수준차이가 엄청나다 보니,
내가 조금 느리게 혹은 다른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면 언성까지 높이면서 절 구박했습니다.
“같은 외국인이면서 자기가 나보다 조금 더 독일어 더 잘한다고..우쒸!^^;”
이때는 이렇게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저도 같은 외국인이면서 불친절 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도 외국인이기에 상대방이 조금 더 열심히 살았음 하는 마음에 말이죠.
일 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을 이번에는 가정의에 가서 한지라, 아침 일찍 아직 문을 열지 않는 가정의 문 앞에 서 있는데, 내 뒤에 와서 줄을 서는 아주머니가 나랑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입니다.
오스트리아에는 중국인들도 많이 살지만, 한국인과 흡사한 외모를 가진 네팔, 티벳에서 온 난민들도 꽤 있는지라 나와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들을 거리에서 꽤, 자주 마주칩니다.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얼굴 쳐다보고는 그냥 멀뚱합니다.
가정의에 건강검진 오는 사람들은 전에 받아간 설문지를 작성해서 와야 합니다.
건강에 관한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설문지여서 자세하게 기록을 해야 하죠.
내 뒤에 선 그 동양아주머니 손에 들고 있는 설문지를 보니 백지입니다. 가정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직원은 바빠서 도와줄 시간이 없고, 사실 여기 직원이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사는 것이 바빠서 건강검진 오면서 설문지를 작성할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
내 뒤에 선 아주머니가 나를 툭 치더니만 빈 설문지를 보여주면서 묻습니다.
“여기에 뭘 적어야 해요?”
“거기 이름이랑 건강보험번호, 생년월일을 써야죠.”
얼른 쭈그리고 앉아서는 이름과 번호들을 쓰기 시작합니다.
외국인이여서 이곳에 사는 것이 녹녹치 않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더 노력을 해야 하건만, 이 아주머니는 그냥 대놓고 사람들에게 “외국인이여서 도움이 필요하다.”는걸 광고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독일어를 모른다고 해도 최소한 이름과 사회보장번호, 생년월일정도는 기록을 해 와야 하건만..
나도 모르게 말이 툭 나갔습니다.
“건강검진을 오면서 하나도 작성 해 오지 않았어요?”
독일어가 딸린다고 해도 젤 쉬운 이름이랑 사회보장번호, 생년월일정도는 쉽게 적겠구먼.
내 말이 퉁명스러웠는지 내가 가르쳐준 것을 적은 후로는 더 물어오지 않았습니다.
더 가르쳐줄 용의는 있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으니..
결국 그 아주머니 뒤에 온 연세가 조금 있으신 현지인 어르신에게 도움을 청해서는 작성을 합니다.
옆에서 보니 현지인 아주머니가 설문지를 읽어주니 다 이해를 합니다.
읽어주는 독일어는 이해하는데, 읽지는 못 하는 것인지..
도움을 청할 때 친절하고 도와주는 현지인을 만나면 감사한 일이지만,
현지인 중에는 외국인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적대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팔뚝에서는 혈관을 못 찾는지라 한 번 혈액채취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3~4번은 찔러야 하는 주사바늘.
이번에는 일찌감치 자수도 했었습니다.
“제가 팔뚝에서는 혈관을 못 찾거든요. 그냥 손등에서 피를 뽑기로 하죠!”
어떤 혈관에서 뽑는 것이 좋은지 가르쳐도 좋건만, 그 옆에 혈관으로 간지라..
결국 이번에도 2번 찔러야 했습니다.^^;
백지설문지를 들고 내 뒤에 줄을 섰던 아주머니는 설문지를 작성하느라 뒤로 밀려 버렸는지..
피 뽑고 가정의를 나올 때는 그 아주머니를 다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가정의에 건강검진 온 아시아여성이 있었거든.
근디 설문지를 완전 백지로 가지고 온 거 있지.”
“이름이랑 처음은 가르쳐주고 한마디 했더니만 더 이상 안 묻더라.”
“.....”
“독일어를 모른다고 해도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작성을 한 후 정말 모르는 사항은 물어볼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백지로 가지고 와서는 옆 사람에게 ”도와줘!“는 아니지 않아?”
“독일어를 모르나 부지.”
“설문지를 읽어주니 다 이해 하던데.. 그리고 당신이 맨날 나한테 그러잖아. 처음부터 도움을 청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 후에 도움을 청하라구!”
“그건 당신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고!”
“그건 아니지. 내가 외국인이라 뭐든지 ”도와주세요~“하는 건 아니지.”
“....”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내가 외국인이여서 더 노력을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 아주머니가 최소한 젤 쉬운 이름 같은 건 적어 와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친절하게 도와줬을 텐데.. 아무것도 안 해 와서는 도와달라고 하는데 짜증이 났어.”
“....”
제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외국인이여서 받는 이런 저런 차별을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모국어가 아니어서 조금 버벅이는 독일어 때문에 멍청하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내 나라가 아니고 내 언어가 아니어서 현지인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해야 그들과 비슷해질 수 있을 뿐인데, 그나마도 노력을 안 한다면 현지인들의 차별과 무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니 말이죠.
나와 같은 외국인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건 나에게도 자극이 되고 보기 좋습니다.
내게 조금 안일한 순간이 왔을 때 그 사람을 보면서 조금 더 나를 채찍질 할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외국인이라고 자신은 노력도 안하고 매번 주변의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보면 짜증도 나고, 그 사람 주위에 있는 현지인들은 그 사람을 보면서 “모든 외국인들이 다 이렇게 노력도 안하고 도움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할까봐 우려도 됩니다.
혼자서 열심히 노력을 해도 내가 할 수 없는 일들도 있고,
꼭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이나 시도도 하지 않고 “나는 외국인이여서 몰라. 도와줘!”는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일이니 그냥 넘어가는 되겠구먼, 같은 외국인이여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태도가 싫은 건 별난 내 성격 때문일까요?
눌러주신 공감이 저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공감은 가능합니다.^^
'내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만에 본 남편의 자상함 (8) | 2017.12.18 |
---|---|
어쩔수 없는 나의 오지랖, (6) | 2017.12.16 |
한번쯤 생각 해 봐야할 동남아의 페디큐어 (2) | 2017.12.13 |
가끔씩은 섭섭해지는 시집살이 (8) | 2017.12.10 |
사람들을 떨게 하는 남편의 이메일 (8) | 2017.10.18 |
조금 연기된 남편의 뉴질랜드 장기휴가 (2) | 2017.09.24 |
갈 곳 없는 내 발길 (13) | 2017.09.22 |
시어머니의 간섭과 알뜰함 사이 (8) | 2017.09.20 |
외국 시부모님과 살아보니 (30) | 2017.09.12 |
세상 모든 남편의 마음은 같다? (18) | 2017.08.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