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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간만에 본 남편의 자상함

by 프라우지니 201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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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경상도 남자라 참 무뚝뚝합니다.

 

남편을 “경상도 남자”라 칭하면 사람들은 제 남편이 정말 경상도 출신인줄 알지만..

아시는 분들은 아시죠? 제 남편은 오스트리아 사람입니다.^^

 

무뚝뚝하고 말도 별로 예쁘게 안 하지만 마눌을 챙기는 마음만은 살뜰한 남편.

문제는 그 마음이 보이지 않아서 마눌에게는 항상 “투덜거리고 무뚝뚝한 남편”이죠.

 

언젠가 저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남편의 모습을 지인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같이 있다가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모양인데..

남편은 앉아 있었지만 남편의 눈은 이동하는 마눌을 따라다니고 있더랍니다.

 

“그냥 따라 가지. 왜 앉아서 그렇게 눈으로만 쫓고 있누?”

 

보다 못한 지인이 이런 핀잔을 주니 남편은 그냥 웃기만 하면서,

눈은 여전히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마눌을 열심히 쫓고 있더랍니다.

 

어쨌거나 마눌이 느끼는 사랑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마눌에 대한 사랑이 유난히 돋보이고 깊은 조금은 특이한 인간형이 바로 제 남편입니다.^^;

 

평소에는 “다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남편인데..

이번 휴가에서 마눌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남편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남편 뒤를 따라가면 마눌이 히죽거리면 혼자서 웃었답니다.

“내 남편이 날 이렇게 챙기네..”하는 마음에 말이죠.^^

 

 

 

우리는 눈신발까지 챙겨서 눈이 엄청 내린 산속을 걸었더랬습니다.

 

눈신발이 없었다면 허벅지 이상 빠져서 걸을 수 없는 상태였겠지만,

눈신발을 신으니 웬만한 곳은 다 무릎 아래정도의 깊이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눈신발이 더 깊게 빠지지는 않거든요.

 

 

 

뒤 따라오던 마눌이 앞서가는 남편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남편, 눈신발이 자꾸 벗겨져~”

 

벗겨진 신발을 다시 신으려는 마눌에게 남편이 가까이 와서는 눈 신발을 고정해줍니다.

 

고정하는 부분이 고무인데 영하의 날씨인지라 고무는 얼었고,

고정하는 부분을 열어서 작게 줄인 후 다시 끼우는 작업이 힘들고 더뎠습니다.

 

평소 같으면 마눌이 신발이 벗겨진다고 하면 “다시 신어~”했을 남편인데..마눌이 걷기 불편할까봐 장갑까지 벗고는 언 손으로 마눌 신발을 고정하는 남편을 내려다보면서 마눌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너무 좋아서 말이죠.

 

오해마시라~

 

남편이 고생하는 것이 쌤통이어서 좋아한 것이 아니고,

마눌이 생각하는 남편의 마음이 보여서 좋아한 겁니다.^^

 

 

 

눈길을 걸을 때도 절대 마눌을 앞서게 두지 않습니다.

 

“남편, 내가 앞에서 걸을까?”

“아니야, 당신은 그냥 뒤에 따라와.”

“앞에서 걷기 힘든데..당신이 힘들면 내가 조금 걸으면 되잖아.”

“아니야, 됐어.”

 

무거운 눈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 생각보다는 조금 더디고, 힘이 듭니다.

 

남편 뒤를 따라가는 마눌이야 남편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에 다시 발을 편안합니다.

하지만 처음 발자국을 찍은 남편은 힘이 들죠.

 

 

 

마눌에게는 그냥 “내가 찍어놓은 발자국만 밟으라”는 남편인지라..

너무 편안하게 눈길을 걷는 거 같은 마눌이 남편의 발자국을 벗어나봤습니다만,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다시 남편의 발자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내는 것이 생각보다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작업인지라,

몇 걸음 걷고 나니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고..

몇 걸음 안 걸어도 이리 신체적인 변화가 바로 오는 것을..

남편은 한 시간을 넘게 앞에서 묵묵히 걷고 있었습니다.

 

마눌은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찍은 발자국만 따라오라고 하고,

마눌이 앞서서 발자국을 남기며 걷겠다고 해도 힘드니 말렸던 거였죠.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으면서 마눌은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눈신발이 벗겨졌다고 타박하지 않고, 마눌 크기에 맞게 고정을 해주고.

마눌이 힘들까봐 자신의 발자국만 밟고 따라오라던 남편.

 

오늘 마눌은 (마눌을 끔찍하게 챙기는)남편의 마음을 봤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힘든 눈길을 걸어도 투정하지 않고 조용히 따라다녔습니다.

 

“매일 이런 마음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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